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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선생님 공부법

달굼과 불림 (비상시) 2 - 단좌의 의미와 방법론 2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19.01.17|조회수206 목록 댓글 0

 

 

달굼과 불림 (비상시) 2 - 단좌의 의미와 방법론 2

 

 

 

 

 

 

달굼과 불림 (비상시) 2

단좌의 의미와 방법론 2

지난번 단좌의 의미와 방법론 1’에서는 단좌시 요구되는 몸뚱아리의 모습, 즉 신법身法에 대해 다루었다. 이번에는 기화氣化와 형화形化의 관점에서 단좌에 대해 설명하며, 《용호결》에 따라 몸 안의 기운 길을 살피고, 단좌시 요구되는 의법意法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기화氣化와 형화形化

형화란 정精과 기氣가 서로 합일이 되어 끊어지지 않고 형체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기는 여기서 정을 묶어주는 결합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형체가 순수한 정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의 힘은 약해지고 반대로 정으로 돌아가려는 복원력이 그다지 작용하지 않으면 기의 힘도 상대적으로 덜 쇠퇴하게 된다.

만일 기~ 또는 기화~ 가 강하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주어지게 된다. 강한 기를 이용하여 형화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거나, 역으로 이 강한 기로써 정과 기를 분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수련은 바로 후자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강력한 기를 육체를 연장하는데 복무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형形을 끊어버리는데 복무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기화의 길인 것이다.

기화를 다른 표현으로 하면 내 안으로 들어가는 내화內化 작용이기도 하다. 또한 스스로 인간의 본심인 인신人神으로 다가가는 신화神化의 과정이요, 질료를 떠난 순수추상으로서의 하늘로 다가가는 천화天化의 과정이기도 하다.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우리가 현상적으로 살고 있는 방식을 뒤집는 역행逆行의 공부이기도 하다.

형화는 이에 비해서 밖으로 치닫는 외화外化이고, 순수물질로 가는 육화肉化이고, 하늘에 반하는 지화地化이며 생로병사와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에 순행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기화는 닦음의 길에 선 자가 한 시도 잊을 수 없는 것이며 단좌를 포함한 모든 수행론에서 중요한 척도가 된다.

기화와 좌법

신법은 오정도법五正道法으로 말한다면 정행正行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 발끝에서 머리까지의 몸뚱아리를 어떻게 둘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기화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살펴본다.

먼저 가부좌를 틀게 되는데, 땅으로부터 지나치게 영향을 받게 되면 형화의 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영향을 피하기 위해서 다리의 모양새는 열십자로 또아리를 튼 모습으로, 그리고 양 족장을 하늘을 향하게 함으로써 천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화는 하늘의 기운에 의지하고(氣化依天) 형화는 땅의 기운에 의지하게(形化依地) 된다. 다리와 족장심을 조절함으로써 지기가 들어오는 것을 봉쇄하고 형화의 삶에 역행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허리를 곧추세우게 되는데, 사람이 기화의 삶을 살지 못하고 형화의 삶을 사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삼궁下三宮인 관원, 석문, 기해가 펴지지 않아서이다. 이 하삼궁을 최대한 열어주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허리를 활처럼 세움으로써 관원, 석문, 기해가 열리게 되고 형화에 반대하는 생활습성도 길러지게 된다.

등은 자연스럽게 두라고 하였다. 이 때 허리와는 반대 방향의 활을 세우게 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중이궁中二宮인 영대(흉추 6~7번 사이)와 선소(흉추 7~8번 사이)를 열어둘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형화에 반함은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로 머리를 바로 두라고 하였다. 머리는 크게 보면 대뇌와 소뇌, 간뇌로 구성되어 있다. 이 때 간뇌를 중심으로 머리의 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머리를 바로 하는 것이다. 머리의 균형 상실, 시소현상 이 또한 형화의 한 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평평히 바르게 하라는 문제는 머리를 바로 두는 문제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면 된다. 왜냐하면 눈과 두뇌 사이에는 일정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간뇌를 축으로 한 뇌의 시소현상에서 소뇌가 무거워지면 눈이 올라가고, 대뇌가 무거워지면 눈이 내려간다.

손 또한 합수合手를 함으로써 외단전을 봉쇄한다. 이 또한 형화의 기를 폐쇄하자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방법으로써 체體를 바르게 둔다. 지나치게 내려보거나 올려보지 않고,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게 한다. 보충하자면 먼저 양 무릎과 꼬리뼈를 잇는 선분의 각도가 각각 60°가 될 수 있도록 한다.

또 얼굴로 올라오면 목과 가슴이 갈라지는 부분에 천돌혈(하라바)이 있고 눈 밑양쪽으로 옥혈(널심), 그리고 상단전 바로 위에 웃슬이 있다. 이 천돌, 양 옥혈, 웃슬을 연결하면 마름모 모양이 되는데 이를 정사각형이 되는 느낌으로 계속 유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상악골과 하악골을 붙여서 인중(살가바)을 열어둘 수 있도록 하며 혀뿌리를 말아서 기의 통로를 일원화시킨다.

위에서 열거한 방편들이 형화가 아닌 기화를 위한 신법이 된다.



‘안대비백’, ‘비대제륜

이렇게 단아하게 앉았다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즉 자신의 신광身光을 보게 되는데, 우선 몸을 움직이는 기운 가운데 두 가지 상반되는 기운(陰陽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사람의 몸에서 음·양의 기운을 대표하는 장기는 각각 폐와 간이다. 이를 얼굴에서 살펴본다면 폐의 상징은 코이고 간의 상징은 눈이다. 그래서 《용호결》에서는 첩족단좌, 수렴하시 다음으로 안대비백眼對鼻白(눈은 코의 흰빛을 대하라)을 말했던 것이다. 단좌시 고요하게 앉아 가만히 코끝을 바라보고 있으면 객관적인 조명의 위치나 유·무와는 관계없이 코의 왼편에서 나는 흰빛을 보게 된다. 이렇게 눈과 코로써 간기와 폐기의 조화를 이루게 되면 그 조화된 기운은 배꼽까지 이를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다음으로 《용호결》에서는 비대제륜鼻對臍輪(코는 배꼽의 수레바퀴를 대하라)을 말하고 있다.

흔히들 이 문장을 물질적인 코의 방향이 배꼽을 향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그렇게 수행하고 있는데 이는 임의적인 해석이고 이처럼 수행했을 때 그 부작용은 심각하게 드러날 수 있다.

비대제륜의 본 뜻은 수렴하시, 안대비백까지 해서 조화된 간부肝部의 기운과 폐부肺部의 기운을 배꼽으로 내려보내라는 뜻이다. 이 때 기운은 내외가 같이 가게 되는데 밖(體外)으로는 막힌 곳이 없으므로 별 무리 없이 갈 수 있지만, 문제는 안(體內)으로 가는 길이다. 바로 인중人中이 안으로 가는, 즉 단중丹中으로 가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배꼽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배꼽은 아니고 속의 뭉치를 포함하여 배꼽이 된다. 속의 뭉치 그 둘레가 여기서 말하는 륜輪이 되는데 배꼽을 중심으로 하는 륜輪을 보는 것이 주된 공부거리가 된다. 이 륜輪들을 본다는 것은 인중에서 시작된 기운의 길이 하단에 이르렀다는 몸의 신호가 되는 것이다.

좌법과 의법

이제 내·외의 신법을 확인했다면 뜻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의意를 바로잡는 것을 일러서 유학에서는 성의誠意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오정도법으로 말한다면 정신正身에 해당하는 공부라 할 수 있다. 의를 바르게 두는 것은 마음과 처신處身에서 안으로 들어갈 것이냐 밖으로 치달을 것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의가 밖으로 달리면 형화가 되고, 의가 안으로 이르면 기화가 된다. 그럼, 의를 어떻게 둘 것인가?

하나, 시야를 철회하고 듣는 것을 뒤집어버려라!

우리에게 보이는 눈만이 눈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육체의 눈은 형화를 진행시킨다. 이에 비해 천안天眼은 기화의 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상호모순, 반비례 관계에 있다. 육안을 줄이는 만큼 천안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밖에 있는 사물을 향해 눈이 달려나가지 말며, 철시撤視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관계는 귀에도 마찬가지여서 밖의 소리에 내 귀가 향하지 말도록 반청反聽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은 늘 도道를 지향하고 있어야 한다. 외부의 어느 것에도 진실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내 눈에 보이는, 내 귀에 들리는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육체의 눈과 귀가 나를 어지럽히지 않게 된다.

, 내 안에서 일어난 생각이 밖으로 치닫지 말게 할 것이며, 설령 바깥의 어떤 것이 나를 비쳐올지라도 이끌리지 말라!

흔히 생각이라고 말하는 사思는 상想과 염念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때 상은 내 밖으로부터 무언가가 내 안에 들어와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염은 이와는 반대로 내가 외부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을 일컫는다. 의意는 안으로 치닫되, 염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럼 상이 내 안으로 들어올 때는 어떻게 하는가? 상이 빚어내는 모든 관계에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바깥으로부터 나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다. 이것이 참된 바름이요, 그러면 마음이 만들어낸 뜻이 마음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마음과 마음이 만들어낸 생산물인 의意 사이에 모순이 없다면, 즉 거리낌없이 잘 붙들어 공존할 수 있다면 신神이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하여 신과 기가 서로 응어리져, 자신의 고유함을 버리고 완전한 일체를 이루게 되면 스스로가 원신元神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 뜻은 늘 신과 심으로 관련 맺게 하라.

의가 안으로 다다르면 기화가 된다고 했는데 바로 그런 이야기의 연장이다. ()이란 마음이 만들어낸 생산물. 이 생산물이 마음으로 되돌아가면 마음과 뜻이 일체를 이루고 순환이 된다. 또한 뜻이 머무는 곳에 원신도 모인다. 따라서 뜻이 마음에 머문다면 신 또한 내 안에 머물게 되어 신과 기가 서로 아울러 감싸면서 머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폐기를 위한 전제

《중용》에 희로애락이 발현되지 않는 것을 일러 중中이라 한다. 그러니 그 중中을 꼭 잡아라는 말이 있다. 이 중을 잡는 것을 수많은 고금古今의 철학서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떠한 현학적인 설명 이전에 中이라는 것은 우리 몸의 실제 중심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중을 잡는 방법이 폐기閉氣(氣라는 기관을 닫는 것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이고, 지금까지 설명한 신법과 의법이 폐기의 전제가 된다.

그러나 공구님께서 말씀 하셨다. 빨리 가려 하면 도달하지 못한다. 오히려 의연하게 원칙을 지키고 있으면 바로 도착할 것이다. 그러니 올바른 방법론을 찾았다면 달구어야 할 것이다. 달구고 있다는 생각조차 잊고서 말이다.

모울도뷔 제2(200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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