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철학
번역 강신익
요약
<프로타고라스>와 <고대의학에 대한 논문>에서 보이는 의학과 철학의 일치와 조화, 그리고 에릭시마추스와 디오티마 사이의 변증법으로 상징되는 의학과 철학의 긴장관계는 앞으로도 항상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는 두 학문의 조화와 긴장은 인간의 복지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의학과 철학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서로 다른 학문의 보편성 주장을 중화시킬 수 있다. 두 학문이 수렴되면, 인간 존재의 가장 중요한 물음들을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제 1장은 우리 시대에 의학과 철학이 접근할 수 있는 세 가지 방식--의학과 철학, 의학에서의 철학, 그리고 의학의 철학--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성사적으로 보아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의학과 철학이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가장 생산적인 형태는 <의학의 철학>인 것으로 생각된다. 명백한 지적 위험성만 피할 수 있다면, 의학을 실천하는 사람,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의학에 의한 보살핌을 받는 사람 모두 이 학문으로부터 의학의 본성과 목적에 대한, 그리고 전문직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 2장과 3장에서는 철학과 의학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는 의학을 철학적으로 검토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방법론과, 다른 예술이나 과학 분야와 구별되는 학문으로서의 의학의 본성 등을 살펴볼 것이다. 이 두 장은 제 4장, 5장, 6장에 대한 예비적 고찰이다. 제 4장과 5장은 의학의 존재론에 대한 것이고, 제 6장은 임상적 판단에 관한 고찰이다. 이 장들은 의철학이 다루는 내용을 예시하는 것이지 의철학 자체에 대한 논의는 아니다. 우리는 의학을 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것으로, 그리고 임상에 뿌리를 둔 학문으로 보며, "지혜와 과학이 교차하는 매개물"로 생각한다.
파에드루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몸의 본성은 전체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렇소 친구, 그가 옳았소. 하지만, 우리가 히포크라테스의 이름에만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오. 우리는 그의 말이 그 자신의 자연에 대한 개념과 일치하는지를 조사하여 보아야 할 것이오.
파에드루스, 270
의학과 철학은 복잡한 이중나선을 이루면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의학과 철학은 둘 다 인간 존재에 깊이 관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때로는 그 각각이 전제하는 존재에 대한 기본 가정이 다름으로 해서 서로 멀어지기도 한다. 보편성에 대한 그들의 주장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특별히 둘 사이의 긴장을 유발한다. 의학은 우리의 몸과 개별적인 존재를 중히 여기지만, 철학은 지성과 추상을 중히 여긴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에서 우리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이 의학과 어떠한 관계를 가졌는가를 살펴볼 것이며, 그러한 관계로 인한 이익과 손실, 역사적 선례로 인해 주어지는 문제, 의철학이라는 학문에 가해지는 공격, 철학이 의학에 관여하는 가능한 기본적 양식, 의철학이 해결하여야 할 긴급한 주제들의 목록, 피해야할 의철학의 존재양식, 결론의 순서로 진행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제목들은, 철학과 의학의 관계라는 것이 문화에 의해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것들이다. 의학과 철학이 서로 접근할 때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합된 이미지를 찾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만, 그 둘이 서로 멀어질 때는 그러한 이미지가 분절화하고 모호하게 되며, 인간은 정체성을 잃게 된다. 오늘날 의학과 철학의 교차는 매우 긴박한 흔치않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러한 교차의 문제는 우리의 문화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 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문화가 과학적 세계관과 전통적인 인문학적 세계관으로 분절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세계에 대한 인간의 깊은 경험이 과학과 인문학의 공통의 뿌리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그렇게 분명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과학의 발전과 이에 따라 나타난 과학주의에 의해 촉발된 문화적 위기는 후설 (Husserl)로부터 헉슬리 (Huxley)에 이르는 다양한 사상가들을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심각한 사유로 이끌었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반응은, 과학적 유토피아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자는 제안에서부터 과학과 기술을 완전히 거부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양한 것이었다. 문화적 분절에 대해 고민했던 뛰어난 사상가들 중에서 반 렌슬러 포터 (Van Rensselaer Potter)만이, 생명윤리가 이 두 문화를 연결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화적 분절화의 긴박성은 우리에게 <과학>과 <인간에 대한 연구> 사이에 보다 근원적인 연결을 요구하고 있으며 의학이 이 연결에 일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학은 인간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깊이 뿌리박은 <인간적 가치>를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추상과 구상, 과학과 인문학, 지식에 대한 추구와 행복에 대한 추구 사이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 준다. 우리의 문화적 위기상황에서 의철학이 요청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끄로드 베르나르 (Claude Bernard)가 오래 전에 지적했듯이, 실제적인 과학적 정보에서 멀어진 철학만큼이나 비생산적이고 무익한 것도 없다. <의학에서의 이론과 실천>이라는 현실과 결별한 의철학은 철학과 의학 모두를 해롭게 하는 것만큼 우리의 문화에도 무익한 것이다.
의학 자체도 <치료의 목표>와 질병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사이에 존재하는 끊임없는 긴장을 그 본성으로 한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설명, 다시 말해 의학의 이론적 측면은 생리학적, 병리학적 과학의 선상에서 형성되는 반면, 동시에 치유의 실천을 그 최종 목표로 한다. 치료와 예방에 대한 관심은 과학적이고 추상적인 용어로 설명되며 이는 의학이 과학적 설명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론과 실천, 추상과 구상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으로 인해 의학은 질병에 대한 대중적 이론과 신화, 그리고 인간에 대한 현금의 철학적 주장들의 도전을 받게 된다. 우리는 <의학의 임상적 경험>을 의학에 대한 모든 이론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간주한다. 임상적 경험은 추상화의 가장 중요한 기준 점으로 기능 한다.
모호성과 긴장
의학과 철학 사이에 존재하는 본래적인 긴장과 모호성은 고대로부터 있어왔으며,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어 왔다.
플라톤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이러한 모호성을 드러내 주었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그리고 다른 책에서 그는 좋은 삶을 위한 실천적 학문으로서의 의학과 철학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한 바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의학과 철학은 규범을 제시하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의학은 신체의 올바른 관리를 지시 처방하며 철학은 사회적 정치적 삶 뿐 아니라 영혼의 올바른 운영에 관여한다. 제 4장에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행복>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의학과 철학에 침투해 들어갔는가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향연>에서는 의학과 철학에 대한 대조적인 주장을 강조한다. 의사인 에릭시마추스 (Eryximachus)는 기술주의의 상징으로서 그는 육체의 수련이 인생의 진정한 목표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의사가 해야만 할 일이며, 여기에 의학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의학은 육체의 사랑과 욕망에 대한 지식, 그리고 그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지식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의사들이 육체를 중요하게 여긴 반면, 철학자들은 그 육체를 초월한 인식의 형태를 꿈꾸는 경향이 있었다. 예컨대 대화의 후반부에서 디오티마는 에로스의 고차원적 형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진정한 그리고 신성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수하고 깨끗하며 다른 것과 섞이지도 않은,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지도 않고, 인생의 온갖 덧없음과 화려함에도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움 말입니다". <파에도 (Phaedo)>에서 소크라테스는 시미아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육체는 언제나 우리를 방해한다. 그래서 우리의 철학적 탐구에 온갖 소동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위와 같은 논쟁을 통해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론과 인생의 올바른 목표가 의학과 철학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좋은 인생이라는 문제는 의학과 그 속에서의 사색의 역할로 직접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히포크라테스는 실지로 일어난 일에 근거하며 현상에 상응하는 결론을 연역하는 경우 의학에서의 이론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사색적인 형이상학이 의학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의학은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철학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시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인다. 바로 이 점으로 인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과 과학적 이론의 문제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게 된 것 같다.
고대로부터 있어왔던 이러한 이분 현상은 현대에 와서는 방법론의 대립, <사색과 이해> 그리고 <사실과 관찰>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으로 발전했다. 끄로드 베르나르는 지금까지도 의학의 주도적 견해이기도 한 관점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 철학은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철학은 실험도 하지 않고 관찰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것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다". 스콧 뷰하난 (Scott Buchanan)은 의철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학은 자연과학의 가장 앞에 서 있으면서도 어디로 갈지를 모르고 있다. 지식의 양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의학은 분명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과학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의학은 이제 학문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들 사이의 지적인 불균형을 경험하고 있다".
의학에서 <관찰>과 <선험적 이론> 사이에 있어왔던 대립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되면, 추상화에 대해 히포크라테스가 주위를 환기했던 점이 의철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플라톤은 그의 말년 기에 신체의 모든 기능을 기하학에 기초시키려고 하였다. 말년에 의학에 매료되었던 데카르트 (Descartes)는 자신의 선험적 철학에 기초하여 자기가 150살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이 빗나감으로 해서 생기 (生氣; vital spirit)라는 개념에 근거한 갈렌을 방법론적으로 극복한 데카르트의 명성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였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이론과 같은 <환원주의 (reductionism)>는 확증되지 않은 가정들을 배격하기 때문에 의학에서 가정의 결핍을 초래하고 복잡한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암의 단일 원인을 발견해 내려는 노력이 그런 예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문화에서 철학과 의학의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각각의 학문은 각자의 영역에서 특별한 지적 오만을 키워왔으며 이 점으로 인해 양자간의 관계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오늘날 의학이 경험하고 있는 기술주의 (technicism)에의 유혹은 그들이 실지로 가지고 있는 기술적 능력과 효능으로 인해 더욱 증폭되고 있으며, 현실로부터 멀어지려는 철학의 경향은 최근의 분석철학과 언어철학의 유행으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의학이 이해와 지혜를 긴박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는 지적은 역설적이게도 기술주의의 성공 그 자체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이것은 철학이 이제 다시 현실과 실천의 영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그들이 신봉하던 분석철학에서 한계를 발견한 때문이라는 사실과 같은 맥락을 가진다.
그러므로 지금의 의학과 철학은 내적인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지성사적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의학과 철학의 새로운 관계의 맥락과 성격, 그리고 그 요소에 관한 것이다.
의학과 철학이 접목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과 걸림돌들
의학은, 그 사조와 윤리 그리고 이념뿐만 아니라 방법과 실천에 이르는 모든 면에서, 문화의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의사와 환자 그리고 사회의 행동과 기대치를 정당화하는 사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의학에서 형성된 인간에 대한 사상이나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전체 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오늘날처럼 의학의 개념적 근거가 인류에게 광범위한 충격을 준 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그 문제를 비판적이고 변증법적으로 그리고 사색적으로, 다시 말해서 철학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었던 적도 일찍이 없었다.
그렇다면 철학은, 뷰하난이 강조한 바와 같이, 지적인 덕목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지 못한 의학을 도와주어야 할 특별한 문화적 사회적 책임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철학은 의학의 모든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지적인 도구--전통적이고 현세적인 모든 테크네 (tekne)--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테크네라 함은, 어떤 활동과, 그 활동이 어떻게 적용되며 왜 유용한지에 대한 지식을 아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플라톤이 사용한 이 말의 의미와 일치한다. 철학을 테크네라고 볼 수 있다면, 지금의 의학이 점차 경도해 가고 있는 기술주의의 유혹을 앞질러갈 수 있는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의학지식의 인간적 이용만큼이나 인간의 행복에 근본적인 이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학의 목표와 수단, 그리고 이로부터 유래하는 인간에 대한 모델은 의학의 범위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해 의학이 사용하는 방법론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닌 것이다. 의학은 자신의 목표와 가치를 비판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방법론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일은 철학과 같은 외부적 학문에게 맡겨져야만 하는 것이다.
철학은 의학에서 제기된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도 커다란 이익을 얻는다. 영미 철학은 대륙철학보다도 더 심한 정도로 인간 존재의 문제와 일상생활의 문제를 회피해왔다. 철학이 그러한 이슈들에 다시 관계하게 됨으로 해서 철학은 그 동안 의학이 축적해 온 사람의 몸, 세계, 그리고 인간의 정신에 관한 지식을 새로이 공급받게 될 것이다. 의학에는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측정 가능한 인간 생활에 대한 데이터들이 풍부하며, 이것들로부터 새로운 사고와 탐구의 근거를 삼을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근거로부터 철학자들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가져왔던 인간의 존재, 사고, 지식, 가치에 대한 탐구에 있어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게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와르토프스키 (Wartofsky)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철학은 철학의 한계를 뛰어넘음으로써 더욱 철학적일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의학과 철학의 대화가 서로에게 유익하기 위해서는 각 학문이,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에 있어 표준화된 것으로 보편화하려는 유혹을 극복해야만 한다. 삶이란 철학에 의해서건 의학에 의해서건 완벽히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들은 의학에서 직면하고 있는 즉각적이면서도 심각한 이슈들을 철학적으로 적합한 주제로 볼 수 있어야 하며, 의학처럼 실천적인 학문에 대해 철학보다 덜한 존경심을 보여서도 안될 것이다. 분석적이고 언어학적인 복잡한 방법 속에 침잠하거나 단순히 형이상학적 체계 속에 안주하려는 태도 모두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의학에 도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을 하기 위해, 또는 철학의 관심사였던 주제들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철학은 의학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철학의 일신된 면모를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의학자들은 반철학적 편견을 극복해야 하며, 의학에 대해서는 자신들만이 예외적으로 성직자적 특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걷어들여야 한다. 이처럼 의학의 개념적 구조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의사들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의학의 사회적 목적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진행되는 등 이미 의학은 다른 학문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의학이 자신에 대한 새롭고 현실적인 이미지를 재창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철학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반성을 통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반성을 통해 의학의 과학적 근거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학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재평가를 통해 과학적 활동의 유효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에릭시마추스 (Eryzimachus)와 디오티마 (Diotima)사이의 대화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보편성에 대한 의학과 철학의 경쟁적인 주장들은 이제 그 각각이 다른 방법으로 섬기고 있던 <인류의 행복>이라는 대전제를 중심으로 타협을 이루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의학과 철학--역사적 선례들
의학은 종교와 신화의 지배를 받는 학문으로 시작되었다. 서구 세계에서 의학은 소크라테스 이전 시기에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에 포함됨으로 해서 종교와 신화의 영향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자연철학으로부터 의학은, <원인과 결과 그리고 변화>라는 관념을 배웠을 뿐 아니라 자연 세계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사고방식을 흡수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의사와 철학자는 잘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둘 사이의 관계는 밀접했던 것 같다. 물론 의학, 과학, 철학 사이의 구분도 그렇게 뚜렷했던 것이 아니다.
의학은 기원전 5세기에 히포크라테스 학파가 출현함과 더불어 독립적인 전문직이 되었다. 에델스타인 (Edelstein)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의학은 두 가지 구별되는 양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개별 환자에 대한 관찰에 근거하여 의술을 펼칠 것을 강조한 점과, 이러한 의술이 윤리적 틀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한 점이다.
의학과 철학은 서로 독립적인 매우 강력한 학문이 되었다. 이로 인해, 히포크라테스 의학과 아테네 철학은, 그 이후 한번도 재현된 적이 없는 가장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의학과 철학은 서로에게 개념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의학과 철학의 일치와 협동은, 워너 재거 (Warner Jaeger)가 잘 표현하고 있듯이 그리스 문화의 이상이라는 파이데이아 (Paideia)로 수렴된다. 히포크라테스가, 철학자이며 의사인 사람을 반신반인으로 추앙한 것은 이러한 교묘한 결합의 정신에 기인한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은 의학에서 끝난다고 했고 갈렌 (Galen)은 최고의 의사는 철학자라고 했다.
하지만, 가장 건전한 관계에 있을 때조차 둘 사이에는 부조화가 있었다. <고대 의학에 대하여>라는 논문의 프로타고라스 항목에는 의학과 철학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지만, 같은 논문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명백히 공리 공론을 논박하고 직접적 관찰을 중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자체적인 철학적 속성을 제시하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철학과 의학이 밀월관계에 있던 때조차도 플라톤이 <향연>에서 상징화한 긴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역사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는 의학과 철학 사이 관계의 일반적인 양상은, 의학이 주어진 시기를 풍미하던 철학 사조의 영향을 간헐적으로 받아왔다는 것이다. 의학이 지나친 공리 공론과 철학에 의한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역시 현대 과학의 강력한 방법론이 대두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제는, 1973년 11월 8일 열린 <건강과 인간가치 협회 (the Society for Health and Human Values)> 연례 회의에서 저자 중 한 사람이 "의학과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여기에 이것을 요약해 본다.
헬레니즘 시대와 그리스 시대에는 전체 의학 체계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피타고라스 그리고 제논 철학의 부분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독단주의 (Dogmatism), 방법주의 (Methodism), 절충주의 (Eclecticism)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중세에는 스콜라 철학과 기독교 신학이 의학 이론과 실천을 지배하였다. 이후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생물학의 엄청난 영향을 받아--이러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그 위력을 잃지 않고 있다--17세기와 18세기에는 의기계론자 (iatromechanists), 의화학자 (iatrochemists), 의물리학자 (iatrophysicists) 등이 등장하게 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좀 더 최근에는 독일의 이상주의 철학이 호프만 (Hoffman), 슈탈 (Stahl), 존 브라운 (John Brown), 윌리엄 큘렌 (William Cullen) 등 18세기와 19세기 의학 계통주의자들에 미친 영향을 들 수 있다. 리세 (Risse)와 갈드스톤 (Galdston)은 신경 에테르, 물활론 (animism), 생기론 (vitalism) 등의 의학 개념이 헤겔, 칸트, 셀링, 피히테 등의 철학에서 그 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경험과 과학적 관찰에 제한 받지 않는 진단과 치료의 체계는 낭만주의시기에 크게 번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과학적 의학의 성장은 한동안 크게 늦추어졌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철학적 모델이 의학에 침투한 사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현대의학은 철학이 의학에 침투하는 것을 몹시 꺼리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수 백년동안이나 의학이 철학적 체계의 전횡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지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데 기인한다. 사실에 의해 통제 받지 않는 생각과 사고를 반박하기는 무척 어려웠다는 말이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 베르나르의 실험주의가 성공하고, 화학과 생물학에서 이루어진 성과들이 임상 의학에 접목됨으로써 이러한 생각만에 의한 체계가 의학을 지배하는 현상은 많이 없어지게 되었다. 오늘날 의학에 대한 철학의 위협은, 지나치고 통제되지 않은 사고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환원적이고 실증적인 사고방식과 설명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은 이제 다시 그리스 시대에서처럼 충분히 독립적이고 충분히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으며, 철학을 동등한 반려자로 삼을 수는 있을지언정 재배를 받지는 않을 만큼 성장하였다.
철학은 한 세기 이상동안 이상주의와 낭만주의 철학의 지나친 공리 공론에 대응해 왔다. 논리실증주의라는 수단과 비엔나 서클의 위력, 그리고 영미철학의 분석적 언어학적 방법론에 의해 사색적인 미국의 형이상학은 크게 억제되었다. 철학은 사회과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방법론과 논리라고 하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곳에 그 근거를 마련하려 하였다. 철학의 위기는 분석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부터 유래하는데, 분석적 방법론의 한계는 과학철학자 자신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맥뮬린 (McMullin)이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을 더욱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관심으로 이끌고 있다.
지금의 의학과 철학은, 체계를 구축하려는 이상주의자의 지나친 정열을 극복하려는 자신들의 노력이 도를 넘어섰다는 점을 점차 깨달아 가고 있다. 가치, 목적, 존재론적 의미,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중심적 문제 등 근본적 주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의 의학은 환원주의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으며, 철학은 지나치게 분석에만 의존하고 있다. 의학이 실증주의적 편견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면, 의학의 궁극적 대상인 인간의 실체를 전체적으로 파악하지도 못할 것이며, 그 지식을 어떻게 도덕적이고 인간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올바른 기준을 제시하지도 못할 것이다. 실증주의는 철학에서 그 위력을 잃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편 철학도, 비엔나 서클의 검증 기준이나 지나치게 협소한 언어적 용법인 메타 이슈의 법칙에만 집착한다면, 인간적 주제에 대한 새로운 문제들을 다룰 수 없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의학 윤리에서 드러나는 심각한 규범적 주제들은 분석적 의미의 메타 윤리학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주제들이 철학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임상적 위기 상황 속에서 또는 개별 의사들이 스스로 체득한 나름대로의 방법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은 의학의 내부에서 뿐 아니라 외부로부터도 심각한 비판적 반성을 거쳐서 결정되어야 할만큼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인 것이다. 철학은 그 관심을 인생의 가치와 목적, 그리고 전문직업을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문제 등에 다시 초점을 맞추어야만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제 9장에서 다시 논의하게 될 것이다. 분석철학과 실증주의 철학의 철학사적 의의를 과소 평가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의학의 발전에 의해 야기된 문제들은 지금의 영미 철학보다는 전통적 철학의 관심 영역에 보다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유럽의 철학은, 현상학적이고 실존적인 문제에 주로 관심을 가짐으로 해서, 인간 존재의 비과학적인 차원에 주력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의학이 다루고 있는 문제의 일부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이러한 노력을 보인 철학자를 생각할 때 우리는 쉽게 마르셀 (Marcel), 메를로 퐁티 (Merleau-Ponty), 라인 엔드랄고 (Lain-Entralgo), 푸코 (Foucault), 스트라우스 (E. Straus) 등의 이름을 떠올린다. 이러한 사상가들은 존재론적 문제에 대한 의식의 다의성(多義性)을 관찰했으며, 일반적으로 줄기차게 되물어 온 그러나 대답이 여전히 불가능한 문제에 직면하려는 고대의 제1 철학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체적으로 유럽의 철학은 이제는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지만, 이러한 질문은 다시 한번 인간의 조건, 그 의미,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중심적 주제를 향하는 것이었다. 마르셀, 까뮤 (Camus), 싸르트르 (Satre) 등은 복잡성과 불합리성의 문제와 씨름하였으며 최소한 그러한 물음에 맞서고자 하였다. 물론 그러한 해결법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20세기말에 이르기까지도 영어권에서는 의철학이라는 이름의 학문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법철학, 교육철학, 과학철학, 종교철학, 그리고 역사철학 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철학백과사전에 조차도 의철학이란 용어는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의학 윤리에 관한 논문도 전혀 게재되어 있지 않다. 그 책에서 의학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것은 히포크라테스에 관한 것뿐이다.
유럽 대륙에서는 의철학이 영국이나 미국에서보다는 좀 더 뚜렷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19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의철학과 관련된 많은 수의 연구들이 독일, 프랑스, 폴란드, 이태리, 러시아 등에서 행해졌다고 스모프스키 (Szumowski)의 값진 논문이 전하고 있다. 의학의 논리와 인식론, 건강과 질병의 개념, 의학 윤리, 의학에서의 인과성, 몸과 마음의 문제, 기계론, 생기론 등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졌다. 1920년대에는 폴란드의 몇몇 대학에 의철학 전담 교수가 채용되기까지 했다.
유럽인들의 노력을 결코 과소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 광범위한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의철학이라고 규정될 수 없는 주제들도 포함하였고 따라서 상당히 산만한 감이 있다. 이러한 것들이, 대부분의 의사들이 철학적 접근을 좋아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현실 속에 보이는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물론 의학과 철학 두 분야의 사상가들은 계속해서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벽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철학은 시험 불가능한 이념에 대해 사색하는 학문이라는 고정관념, 그리고 의학은 실천적이고 기술적인 곳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고정관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2장과 3장에서 그런 고정관념의 타파를 시도해볼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입장이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매우 인위적이라는 점은, 지금의 의학이 제기하는 문제와 철학이 스스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성격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의 관심이 말초적인 교류의 수준을 벗어나게 되면 진정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대화를 통해 과거의 잘못된 전통과 편견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 사이에 진정한 변증법이 필요하다는 점이 점차 명백해지고 있다. 철학자는, 인간 존재에 관한 진술 중 가장 정확한 진술인 의학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를 명확히 밝힐 수 없다. 인간 존재에 관한 진술 중 많은 부분은 의학만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에 의사는, 자신의 객관적 연구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론적 개념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일은 철학의 영역이다. 과학과 철학 사이의 존재론적 만남은 의학과 철학의 만남 속에서 그 전형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만남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최근 들어 점점 더 많은 철학자들이 의학과 연관성이 아주 많은 주제 혹은 의학적 맥락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몇 가지만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마르셀, 메를로-퐁티, 듀이 (Dewey), 그리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인 시피커 (Spicker) 와 재너 (Zaner)등이 보이는 <몸 철학>에 대한 깊은 관심; 스트라우스 (Straus), 나탄슨 (Natanson), 아이 (Ey), 그렌 (Grene) 등의 저작에 보이는 정신의학, 심리학, 인지(認知) 작용 등에 대한 철학적 기초; 건강과 질병 개념 및 의학 윤리의 철학적 기초에 대한 엥겔하르트 (Engelhardt)의 관심; 부이텐디엑 (Buytendijck)에 의한 생리학과 인류학의 결합; 라인 엔트랄고의 환자-의사 관계에 대한 분석; 인간 존재론과 의료시술에 대한 와르토프스키 (Wartofsky)의 탐구; 인간 자아의 성격, 인간 상호간의 유대감, 그리고 의학 교육에서 <권능 부여하기 (enabling)>를 강조하는 재너의 일련의 논문들 등등이다. 또한 프라이스 (Price), 테일러 (Taylor), 파브레가 (Fabrega), 파인스타인 (Feinstein), 머피 (Murphy)등은 질병 분류와 임상적 판단 등의 논리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들의 연구는 의료 시술에 수반하는 공식적 결정 과정에 대한 탐구이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많은 의학적 주제들이 정말로 철학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례들이다. 이들은 논리 이전의 가정들에서부터 방법과 사고방식, 그리고 그것을 인간과 사회에 적용하는 방식에 이르는 의학적 사항들에 체계를 세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철학자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철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이러한 총체성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의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잦아지고 그 깊이도 커감에 따라, 철학의 다른 분과와는 구별되는 의철학을 하나의 공식적인 학문체계로 세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학문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에 있다. 엥겔하르트와 스피커가 <철학과 의학> 시리즈를 발간하기 시작하고,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두 학문간의 경계심은 이제 극복되고 있으며, 공통의 기반이 점차 마련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대화의 새로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대화는 그리스의 의학과 철학이 나누었던 대화만큼이나 생산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있어왔던 둘 사이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이 새로운 관계는 매우 미묘한 것이 될 것이다.
의철학: 학문인가 잡동사니인가?
유럽 철학자들에 의한 의학에 대한 논의와 최근 미국에서 고조되고 있는 의학에 대한 철학적 관심이 <의철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견해는 전적인 부정에서부터 전적인 수용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양하다. 제롬 새퍼 (Jerome Shaffer)는 그 가능성을 단정적으로 부인하고, 톨민 (Toulmin)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스모프스키 (Szumowski)는 이 개념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 영역을 조심스럽게 정의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먼저 이러한 견해들을 검토하고, <의철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잡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요구조건들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의철학>을 부정하는 새퍼의 견해는 매우 솔직하며 직선적이다. 그는 의학과 철학 사이에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둘 사이의 접점에 존재한다고 주장된 문제들은 잘못 분류된 것이거나 또는 전혀 철학적 문제가 아니다. 그는 의학적 맥락에 대한 모든 철학적 논의들을 과학철학, 심리철학, 또는 도덕철학의 영역으로 환원한다. 새퍼는 그 문제들이 철학적 중요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의학을 생물학과 심리학을 합한 것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톨민은, 의학과 생리학 사이에는 어떤 진정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새퍼의 견해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생리학은 물리학과 화학에서 유래한 것이다. 생리학은 삶의 특별한 장(場)"을 다루는데, 그 삶의 장에 적용되는 법칙은 화학이나 물리학으로부터 독립된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과 완전히 동일하지도 않다. 따라서 의과학 (medical science)의 신체적 요소들은 과학철학이나 생물철학의 영역이 된다. 그러나 톨민은 의료 행위에는 심리-사회학적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과학으로서의 의학이라는 개념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치와 선택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의철학>의 가능성을 인정한다.
유럽에서의 의철학의 역사를 추적한 스모프스키는 의철학의 가능성에 대해 가장 허용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그것을 다음과 같이 광범위하게 정의하기도 했다.
의철학은 의학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의철학은 인간 관계 속에서의 의학의 위치, 사회와 국가, 그리고 의과대학에서의 의학의 역할과 지위 등을 연구한다. 의철학은 의학사의 전체를 일견하며 그것을 포용한다. 의철학은 철학과 생물학의 가장 일반적 문제들을 밝힌다. 의철학은 의학적 사고(思考)의 방법론적 형태를 분석하며, 의학에서 저질러지는 논리적 오류를 언급하고 설명한다. 의철학은 심리학과 형이상학에서 발전된 당시의 지식과 개념을 빌어와 의학에 적용한다. 의철학은 의학에서의 인간행동을 다룬다. 의철학은 의학에서의 주요 가치에 대해 논의한다. 의철학은 윤리의 원칙과 의학에서의 의무론에 대해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의철학은 의학에서의 미학적 문제를 다룬다. (저자의 번역)
위의 세 가지 견해들 중 어느 것도 정말로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다. 새퍼는 너무나 많은 것을 무시해 버린다. 스모프스키는 너무 많은 것을 포용하려고 한다. 톨민은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이를 좀 더 분석해 보면, 새퍼의 견해에 동조하거나, 스모프스키의 정의처럼 그렇게 포용적이지는 않더라도 그의 견해에 동조하여 의철학을 인정하거나 양자 택일을 했어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학에만 독특한 어떤 문제가 있고 이 문제는 오로지 철학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할 것이다.
최근에 철학은 여러 분과 학문들의 의미와 그 본질, 그들이 사용하는 설명 방식, 근거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가정, 그리고 그들이 다루는 실재를 아우르는 통합이론의 가능성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이렇게 해서 역사학자, 법률가, 과학자들이 하는 일에 대한 논리적,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연구와 그 연구의 의미는 역사철학, 법철학, 과학철학을 형성했다. 우리는 철학 자체에 대해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렇다면 <철학의 철학>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오르테가 (Ortega), 하이데거 (Heidegger), 후설 (Husserl), 메를로 퐁티 (Merleau-Ponty) 등 대사상가들이 집착한 것도 바로 이러한 문제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의철학을 이러한 목록에 추가하려고 할 때 특별한 어려움이 있다. 의학이 사용하는 방법과 논리, 그리고 그 이론은 거의 대부분 물리과학과 생물과학에서 유래한 것이며, 따라서 어느 정도 이러한 과학들의 분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학은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볼 때 실천 (praxis)이기도 하다. 즉, 인간적 목적을 위해 적용되는 지식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학은 기술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의학은 또한 개인과 사회의 행동을 변화시키기도 하므로 행동과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의학은 인간을 <도와> 더 나은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는 학문이므로 인간적이며 윤리적인 관계이다. 의학은 윤리와 인간애에 바탕을 둔 가치 지향적 활동이다.
언뜻 보면, 의학은 완전히 다른 과학에서 유래한 학문이므로 새퍼의 주장이 올바른 것처럼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의학은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주제를 가지지도 않았고 따라서 의학의 철학도 생물학, 심리학, 도덕 과학의 철학을 종합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먼저 의학을 과학과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그런 다음 사회과학이나 인문학과 구별되는 것인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그래야만 우리는 의철학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의철학의 필요성과 여러 차원에 대해서만 간단히 논의하기로 한다. 의학과 그 학문으로서의 독특한 성격에 대해서는 제 3장에서 논의할 것이다.
의학은 부분적으로는 진정한 과학적 학문이다. 의학은, 물리적 과정을 이해하려는 목적을 가진다는 점에서, 화학이나 물리학과 공통점을 가진다. 과학으로서의 의학은, 관찰과 측정, 가설 설정, 그리고 통제된 조건하에서의 실험 등을 통해 인간을 연구한다. 인간을 <대상>으로서 연구하고자 할 때는, 좋은 과학의 기준--적절한 실험 설계, 관찰과 방법의 유효성, 올바른 논리, 검증 가능한 결론 등--이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기초의학은 훨씬 더 복잡한 생물 시스템을 대상으로 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기준들이 기초의학이 추구하는 목표임에는 틀림이 없다. 톨민이 말한 <특별한 생명의 장 (special field of life)>이 화학과 물리학 법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하지만, 의학의 기초 과학은 분명히 생물 철학에 포섭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상 과학이나 의료 행위로서의 의학이 기초과학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임상 과학으로서의 의학은 인간의 실체에 대해 연구하여야 하며, 그 인간의 실체는 목적, 가치, 의식, 반성, 자기결정 등 인간적 요소에 의해 화학과 물리학의 법칙들이 일반적인 생명체의 미소 환경에서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다. 의학을 과학으로만 볼 경우에 있어서조차, <과학의 대상으로서의 인간>과 상호 작용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의학의 임상 과학과는 달리 생리학은 물리적 과정만을 연구하기 때문에, 실험 대상이 살아온 현실적 실체--살아온 삶의 과정에 대한 자기 의식, 유일성, 개별성--를 무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임상 과학으로 기능 할 때라 할지라도 의학은 물리 과학의 설명 양식을 사회적이고 행동적인 양식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기초과학이나 임상 과학 어느 것도, 특정한 임상적 상황에서, 특정한 개인에게, 건강을 달성하기 위한 특정한 목적 하에 사용되지 않는다면, 의학이라고 간주될 수 없다. 진정한 의학의 목적은 따라서 의과학 자체의 목적을 초월한다. 의과학의 목적은 주로 <아는>것에만 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초 의학이든 임상의학이든 의과학은 건강을 증진시키고 치유를 도모하는 한에 있어서만 의학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인간적 삶에 개입하여 그 인간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한에 있어서만 의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의학을 이렇게 생각하면, 의학을 구성하는 다른 과학들이 가지는 목적 (telos)과는 사뭇 다른 목적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의학을 구성하는 분과 과학의 목적은 가능한 한 일반적인 방법으로 물리적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 지식을 개별 인간의 삶 속에서 개별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진정한 의학은 일반적인 과학적 법칙들을 있는 그대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간과 장소 그리고 인간 속에 위치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제 3장에서 5장에 걸쳐 상술될 것이다.
요컨대 의학은 인간의 실체에 대한 실천적 이론이다. 의학은, 의사와 환자가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는--질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데 있어 공동으로 참여하는, 인간적 관계를 통한 활동이므로, 도덕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는 거기에 기술을 일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수동적 물체가 아니다. 환자는 도움과 충고를 청하고 의사의 충고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인간성과 가치에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는 두 사람이 각각의 사회적-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상호 작용한다. 의학, 과학, 그리고 사회의 가치와 더불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 교차로 인해 선택과 우선 순위의 관계가 형성된다. 의학의 본질은 바로 특정한 환자를 위해 지금 여기의 상황에서 그러한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종합은 물리과학, 사회과학, 도덕과학 등 그 해명에 기여하는 분과과학의 총합 이상의 것이다.
이러한 종합은 또한 의사와 환자 사이의 계약이라는 관계의 본성 상 의사에게 부과되는 신뢰의 의무에 의해 더욱 제약을 받게 된다. 의사는 언제 어디서나 환자에게 해를 가해서는 안되고, 환자를 도와주어야 하며, 환자의 이익에 봉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도덕적 신조가 전문직업주의 (professionalism)나 문화적으로 기대되는 그럴듯한 겉치레 이상이라는 점은 의학 윤리와 철학의 관계를 논한 제 8장에서 좀 더 자세히 밝히게 될 것이다. 환자는 인간성이 상처받은 상태로 의사를 찾게 된다. 환자는 의사를 찾는 순간부터 자유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다. 환자는 불편과 고통이 있을 때, 절대로 완전히 채워질 수 없는 정보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지시에 의한 치료에 동의해야만 한다. 따라서 의과학은 의사와 환자의 인간성에 의해 독특한 방법으로 변화되고 제약될 때만 의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의학의 목적 (telos)은 이론 (theoria)의 영역을 벗어나 실천 (prazis)의 영역에 머문다.
임상적 순간과 임상적 만남을 구성하는 것은 이와 같은 특이한 조합의 총합인 것이며, 그것 없이 진정한 의미의 의학은 존재할 수 없다. 신체의 과학에 산술적으로 마음의 과학을 더하고 이것들을 도덕의 과학으로 묶는 어떠한 종류의 신-데카르트주의적 환원도 이러한 종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이 단순한 생물학일 수도 없다. 식물이나 동물들도 병에 걸리기는 하지만, 주체인 동시에 객체인 환자처럼 치유자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치유 과정에 참여하지는 못한다.
기술의 목적은 특이한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므로, 의학도 어떤 의미에서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의학과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의학에서 기술이 사용되는 방법은 임상적 만남에 의해 결정되며, 기술 자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의학에서 이용될 때는 보다 광범위한 종합의 한 부분이 된다. 요나스 (Jonas)가 지적한 바와 같이, "무엇을 위한 유용성인가?"라는 물음은 의학과 기술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며, 오직 철학에 의해서만 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술로서의 의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의학은 예컨대 음악이 가지는 것과 같은 정도의 자율성을 가진다. 음악은 물리학, 음향학, 수학에 의존한다. 그러나 음악은 그것을 구성하는 분과과학의 용어로 정의할 수 없는 "음악"이라는 독립적 실체를 가진다.
똑같은 논리로 의학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에도 크게 의존하지만, 그것들과는 구분되는 독립적 실체를 가진다. 의학은 건강을 유지 증진하기 위해 몸을 통해 몸 안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정신의학과도 구분된다. 정신의학은 정신 (psyche)에 영향을 주기 위해--종교가 영혼 (spirit)에 영향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감각을 통해서만 작업한다. 의학은 가치와 인간 존재의 문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인문학과도 구분된다. 의학은 가치와 인간 존재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몸을 조정함으로써 건강에 영향을 주고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직접적 목적을 위해서만 그렇게 한다. 따라서 의철학은 인문철학이나 과학철학과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의학의 사회적 차원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의학의 사회적 차원이란 의학 지식을 개인이 아닌 인간의 집단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만남"은 개별 환자와의 임상적 만남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 둘을 자세히 비교해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학적 지식이 지역사회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의학은 사회적 "선(善)"에 연관된 가치, 선택, 우선 순위에 관심을 가진다. 보건서비스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 의학을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어떤 원리에 근거하여 사용할 것이며 이런 결정을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 등이 <의학의 사회철학>이 다루어야 할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의학은 본질적으로 <임상적 사건 (clinical event)>을 다루는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의학이 <임상적 사건>을 다루는 활동이라면, 이러한 <임상적 사건>을 다루는 과학적 지식과 그 밖의 지식들은 살아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특정한 인간을 위해 개별화되어야만 할 것이다. 의학은, <몸>의 변화를 초래하는 활동을 통해, 가치가 포함된 결정과정을 거쳐, 건강이나 질병의 치유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의학 이론이 과학 이론이기보다는 실천적 현실의 이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제 6장에서 보다 상세히 다루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의학"이라는 말의 의미를 세 가지 수준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a) 병들어 있거나 건강하거나 살아있는 존재에게 발생하는 물리적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기초과학적 요소>, (b) 몸과 마음이 어우러져 있고, 인식의 주체인 인간에게 발생하는 물리적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임상 과학적 요소>, (c) 임상적 순간에 임상 과학과 기초과학의 모든 요소가 위에서 논의한 모든 복잡한 과정을 통해 개별화하는 <의학 그 자체 (medicine per se)> 또는 <의학적 실천 (medical praxis)> 등이다. 본래적 의미의 의학에서 과학은 이해를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인간이나 사회의 삶에 관여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실천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의학적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의학의 기초과학 부분은 다른 과학에서 유도된 것이며 따라서 의학의 철학도 생물철학 또는 과학철학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새퍼의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임상과학은 마음과 정신의 영역을 포함하는 더 큰 의미의 총체적 현실을 이해하려고 한다. 현대의 데카르트 주의자들은, 임상과학도 물리과학과 심리학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의학의 철학은 생물철학과 심리철학을 배합한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임상과학을, 생물학과 심리학 등 개별 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종합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임상과학의 철학은 생물철학이나 심리철학과는 다른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임상적 만남으로 구성되는 본래적 의미의 의학은 기초과학도 아니고 임상과학도 아니다. 따라서 의철학은 생물철학에 심리철학과 도덕과학을 산술적으로 합한 것일 수 없다.
의학은 명백히 과학이나 예술 또는 실천으로 뚜렷하게 분리해서 개념화할 수 없는 활동의 영역에 속한다. 의학은 임상적 만남의 독특한 속성에서 유래한 철학적 논점들과 문제를 가진다. 의학을 과학과 구별하는, 그리고 의학적 실천의 논리, 인식론, 형이상학의 기초가 되는 하나의 질서를 가진 개념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임상적 만남>이 될 것이다. 의철학은 새퍼가 제안하는 것처럼 과학철학, 심리철학, 도덕철학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스모프스키의 정의처럼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도 아니다. 스모프스키의 정의는 임상적 상황을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학에 관계된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철학 뿐 아니라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교육, 미학 등 모든 분야가 의철학에 포함된다. 그는 철학이라는 말과 의학이라는 말을 너무 느슨하게 정의한다.
철학, 그리고 의학에 대한 철학의 개입 양상
의철학은 진정으로 철학적인 문제만을 다루어야 하며 다루어야 할 대상을 아주 조심스럽게 정의하여야 한다. 의철학이 다루는 문제들은 의학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며, 의학과 관련된 다른 과학적, 인문학적 학문에 의해서도 다루어지기 어려운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 "철학적"이라는 용어를 좀 더 세심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많은 저자들에 의해 잘못 사용되어 왔다. 템킨 (Temkin)이 지적한 바와 같이 윌리엄 오슬러 (William Osler)와 같이 존경받는 저자마저도 이 용어를 너무 지나치게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오슬러의 <인생의 길>은 저명한 의사에 의해 씌어진 의학에 대한 견해와 신념의 대표적인 예로서 매우 훌륭한 저작이지만, 이것을 "철학"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어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슬러의 저작을 철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대부분의 현대 철학자들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철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이런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의학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 철학의 어떤 방식이 다른 방식에 비해 더 적당하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의학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의 양이나 질로 볼 때, 모든 종류의 철학적 방법이 동원되어 마땅하다. 어떤 문제는 현상학적 접근이 가장 적절한가 하면, 다른 문제는 분석적 방법이나 사변적 방법이 더 적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철학적 개념을 아무런 구분 없이 짜 맞출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의철학이 태동하고 있는 초기 단계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문제의 정확한 본성은 다양한 탐구방법에 의해 더욱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한 다양한 방법에 의해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면 더욱 더 그 본성이 명확해질 것이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실재론(實在論)을 목표로 하면서도 실재(實在)의 요소들을 분류할 수 있도록 하는 철학적 방법론을 시도해 볼 것이다. 더 나은 용어가 없는 관계로 우리는 이러한 접근법을 <실천의 존재론 (ontology of practice)>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철학이 각 분과 학문에서 유리된 채 독자적으로 판단 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철학은 의학을 다루는 데 있어 이러한 경향을 보여왔다. 철학은, 의학이 실천을 위주로 한다는 점을 아주 고귀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것을 형편없이 비하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생명윤리 분야에 뛰어들었던 철학자들의 의도를 오해한 의학자들 사이에 생명윤리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했던 적이 있다.
필요한 것은 의학에서의 철학적 이슈들을 명확히 하고, 정의하며 드러내는 것이다. 철학자는 의사의 생각과 행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그들이 전제하고 있는 가정들을 변증법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의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여기서 의철학의 목표는 다른 어떤 인간적 행위에 대한 철학적 반성과 다를 것이 없다. 다시 말하면, 의학의 실체를 파악하고, 의학을 구성하는 것들이 가지는 가치를 규명하며, 임상적 만남과 의학적 행위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 일 등이다. 본질적인 것은 임상적 순간의 전체 국면에서 행해지는 철학함 (philosophizing)이지, 그러한 철학함의 특별한 양식이 아니다.
철학이 철학으로서 의학에 관계할 수 있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의학의 철학 (philosophy of medicine)--에 주의를 집중해 왔다. 왜냐하면 이것이 줄곧 문제가 되어왔고 그래서 이 문제를 밝히는 것이 긴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이 의학과 관계하는 길에는 이 밖에도 두 가지 방법이 더 있다. 하나는 <의학에서의 철학 (philosophy in medicine)>이고 다른 하나는 <의학과 철학 (medicine and philosophy)>이다. 그것들은 의학과 철학이 서로에 관계하는 양상과 다루는 이슈의 종류에 따라 분류된다.
이러한 구분은 로버트 스트라우스 (Robert Straus)가 의학과 사회학의 관계에 대해 말한 것을 다소 변형시킨 것이다. 그는 <의학에서의 사회학>과 <의학의 사회학>을 구분했다. 그는 <사회학과 의학>을 따로 분류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철학의 경우에 이 범주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이다.
<철학과 의학>은 두 학문에 공통되는 문제, 또는 의학에 존재하는 문제이면서 지금까지 논의한 의철학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한 상호간의 고찰이다. 여기서 두 학문은 상호 협력한다. 의학과 철학은 각각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각각은 상대방에서 연구의 재료를 구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 풍부해지며, 새로운 의학적 또는 철학적 개념을 만들어낸다. 몸-마음 논쟁과 같이 철학에서 오래 지속된 문제; 인식의 의미; 의식과 언어의 문제; 생명체에서의 화학적, 물리학적 법칙의 특별한 또는 일반적 성격 등은 이러한 협동적 노력에 의해 좀 더 명료해 질 수 있는 주제들이다. 예를 들면, 신경병리학, 신경외과학, 그리고 신경계의 생리학과 약리학 등에서 발견된 사실들은 마음과 정신의 철학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중요 자료이다. 메를로 퐁티가, 절단된 사지에서 통증을 느끼는 증상 (phantom limb syndrome)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자신의 <인식의 현상학>에 이르게 된 것이 이러한 예의 하나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이념과 이미지를 구성하는 일련의 해석의 일부는 의학과 철학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진정한 철학적 인간학은, 건강하거나 병이 든, 또는 죽음을 맞이한 개별 인간에 대해 의학이 관찰한 현상을 충분히 검토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의학에서의 철학>은 비판적 반성, 변증법적 추론, 가치와 목적의 규명, 제 1 원리에 대한 물음 등 전통적으로 철학이 이용해 왔던 방법들을 의학적으로 정의된 문제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문제들은 의학적 사고의 논리에서부터 의과학의 인식론, 인과성의 문제, 관찰과 실험의 한계, 그리고 생명윤리에서 제기되는 여러 이슈 등 무척이나 다양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다른 과학이나 전문직 또는 기술 분야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철학자는 의학에서 매우 귀중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의학적 상황에서 철학자들은 교육자로서, 그리고 훈련된 사상가로서 의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활동을 조명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미국에서--특히 공식적으로 의료윤리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의과대학과 병원에서--행해지고 있는 두 학문의 상호작용의 형태이다. 의학적 상황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철학자들은 의학 이론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도 훌륭히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과학으로서의 기초 임상 과학의 문제들은 대부분 이 분야에 속한다.
철학이 임상적 실천으로서의 의학의 의미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한 의학의 개념적 기초, 이데올로기, 사조, 그리고 의료윤리의 철학적 기초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러한 철학은 <의학의 철학>이 된다. <의학에서의 철학>이 검토하던 문제들은 이제 건강, 질병, 신경증, 정신병 등의 상태에 있는 인간과의 임상적 만남--여기서 그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개입이 이루어질 수 있는--이라는 독특한 영역으로 옮겨진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과학철학의 영역을 넘어서게 되며, 의학의 본성, 개념, 목적, 사회에 대한 가치 등 의학의 의미에 집착하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의학의 철학적 문제>라 부를 수 있다. 의학의 철학은 의학이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설명을, 의학이 근거하고 있는 가치론적 가정을 토대로 제공하고자 한다. 이것은 의학을 초월한 곳에 존재하는 의학의 의미의 영역에 속한다. 이 영역은 의학이나 다른 어떤 과학도 혼자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모든 과학에는 그 과학 자체만으로는 절대로 이르지 못할 숨겨진 측면이 있다. 그것은 그 분야의 기원과 본질적 속성, 그 과학이 탐구하는 지식 추구 방식의 본질적인 기원 등이다...."
철학의 의학에 대한 이 세 가지 개입 양식은 실제로는 거의 분리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이 세 가지 양식에 모두 관여할 수 있으며 실지로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의학의 철학>--<실천적 인간 활동으로서의 의학>의 이론에 내재된 철학적 이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것을 이렇게 분류해 본 것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철학과 의학>, 그리고 <의학에서의 철학>이 다루고 있는 이슈들 중 많은 것들은 <의학의 철학>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의학에서 유래하는 급박한 철학적 문제들
철학의 어떤 양식 또는 어떤 수준에서 바라보더라도 현재의 의학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그리고 진정한 철학적 문제들이 발생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적해 온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이 중 몇 가지만을 살펴볼 것이다.
첫째로, 의철학이 과학철학과 공유할 수 있는 일련의 문제들이 있다. 그것은 의학적 언어와 설명의 의미에 대한 분석, 의학 이론의 검증 가능한 기준에 관한 문제, 인과성의 개념, 발견과 실험 설계의 논리, 통계적이고 확률론적인 분석의 한계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의학에 적용될 때는 다소 변형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의학은 임상적 맥락에서 의식 있는 반성하는 주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환원주의와 생기론 (vitalism)의 주장이 극복되어야만 가능한 설명방식도 있다. 그렇다면 과학적 기획은 의학에서 어떻게 변형되는가?
과학철학의 영역에 속하지 않지만 철학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다른 종류의 문제들도 있다. 그것은 <마음과 몸의 통합으로서의 인간>이라는 특이한 존재양식에서 유래한다. 체화 (體化; embodiment)와 신체성(身體性; corporeality)이라는 현상의 의미, 주체에 의한 그러한 현상의 인식 등은 의학의 이론과 실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데카르트적 이원론과 일원론적 물질주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혀 만족스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대안도 제시된 바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의학의 이론적 발전에 있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사항이다. 몸과 마음의 이원론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과 질병을 기술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불완전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정황에 의한 것이다.
사회학, 심리학, 그리고 철학의 설명방식과 연구방법이,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얼마만큼 유효할 것인가? 예를 들어, 지능은 공학적 개념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그래서 컴퓨터에 의한 인공지능으로 완전히 재현할 수 있는 것인가? 또는 드레피스 (Dreyfus)가 말한 바와 같이, 그러한 주장이 근거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가정은 완전히 잘못된 것인가? 의학과 철학은 그러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 서로를 도와주어야 한다. 철학은 아직 의학이 축적하고 있는 신경생리학, 신경정신의학, 신경내분비학의 데이터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 의학은 아직 이러한 데이터들을 해석하고 명료화하는 데 있어 형이상학과 현상학적 분석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척 많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러한 두 학문의 결합은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미지와 상식적 이미지를 화해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의학과 철학의 화해는 인간의 이념을 철학적으로 규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다. 철학적 인간학은 최근에 시작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아주 폭넓은 접근법이다. 부버 (Buber), 셀러 (Scheler), 카시러 (Cassirer) 등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의 이미지는 심하게 분절화 되어 있으며 본래 상태로 회복되어야만 한다. 인간 존재에 관한 여러 갈래의 분리된 정보를 한데 묶어야 할 필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철학자이며 생물학자인 스텐트 (Stent)는 실증주의와 구조주의 어느 것도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데 있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과학과 철학의 결합 노력은 인간이 삶, 죽음, 건강, 질병에 관한 선택을 하려고 할 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근본 과제이다. 인간과 사회,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위하여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념이 먼저 규명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적 또는 사회적 수준에서의 생명윤리는 이와 같은 인간의 이념이라는 맥락 속에서 발생된 것이다.
건강과 질병, 치료, 장해를 정의하는 문제는 인간에 관한 철학적 개념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의사들이 이러한 개념들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이 의학의 이론과 실천의 내용을 결정한다. 건강이란 것이 의학 지식의 목표이며 목적이므로, 그 말을 명확히 정의할수록 의학 지식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지식을 사용하는 우선 순위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학적 만남을 규정하는 인간적, 사회적, 역사적 가치들의 상호작용의 문제는, 의사와 환자가 인간 존재의 목적에 대해 가지는 가정에 대해 서로를 이해하고 있을 때라야만 비로소 이성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이념은 현대의학의 기술적 위력으로부터 발생하는 인간적 이슈 전체의 전제가 된다. 이전에는 사변적이고 상상적인 지성의 영역이던 문제들이 이제는 기술적 현실의 문제로 바뀌었다. 의학은 목숨을 연장시킬 수도 있고 단축시킬 수도 있으며 수태를 조절할 수도 있다.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도 하고 근심과 고통을 완화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는 행위는, 인간적 삶과 가정의 가치와 존엄성, 고통과 죽음, 개인적 선(善)과 사회적 선에 관한 전통적인 가치와 의미에 도전하는 것이다. "좋은 것 (善)이란 무엇인가?" 라는 고대로부터의 형이상학적 물음이 이제 다시 급박하게 우리에게 물어지고 있다. 건강이나 "좋은 삶"이라는 목표는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기술적인 가능성의 관점에서 검토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러한 문제는 제 5장과 6장에서 다룰 것이다.
지금의 생의학과 전문가 윤리의 철학적 기초 역시도 인간의 이념, 개인으로서의 삶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 사이의 균형 등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사뮤엘 고로비츠 (Samuel Gorovitz)는 의학 윤리의 핵심부에 존재하는 철학적 이슈를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의학적 결정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철학적 물음에 관한 가정들을 주의 깊게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철학자들이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고로비츠는 이 문제를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과학이란 것은 결국 사회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에 철학자들은 쉽게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철학도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대중에 봉사하며 그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유지되는 사회적 활동이라는 점은 그렇게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주의적 물음을 던지고 답하는 데 있어 우리는 어떤 가치체계를 이용하여야 하는가? 오늘날 많은 의사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는 현대 과학의 이데올로기를 따를 것인가? 브로노브스키 (Bronowski)와 홀톤 (Holton)은 과학 자체를 고귀한 것으로 보며 과학에 대한 추구는 그 자체로 윤리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브로노브스키는, 반대를 관용하는 능력과 사고의 자유와 독립성을 고양하는 등, 과학이 신봉하는 가치체계를 찬양한다. 홀톤은, 과학자의 활동의 결과로 인간의 가치가 도전 받는 상황에서 이를 다루어나갈 적절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창조성과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것 이외의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한스 요나스 (Hans Jonas)는, 끊임없는 진보의 윤리와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한계와 신중, 그리고 제약의 윤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수록, 제약 없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과학자들의 자유는 더욱 적어진다. 이것은 과학의 윤리가 필수적인 것으로 요구하는 자유와 정면으로 모순되는 것이다. "각 학문이 스스로 문제를 선택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개념과 기술과 도구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는 사실은, 결국 사회가 요구하는 바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과학이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과 의학의 사조와 윤리는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의학이 스스로 발전시켜 온 이미지와, 사회가 기능의 관점에서 파악한 의학의 개념을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까? 과학의 이데올로기는 의학에 깊게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의학은 의학이 창조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과학적 방법만을 사용하여 제시할 수 있을까? 저자 중 한 사람이 다른 곳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의학은 모든 인문학과 재결합하여야 한다. 목적에서부터 분리된 기술은 결국 자가당착에 빠질 것이고, 이것이 지속된다면 의학의 인간적 이용이란 말은 구호에 그치게 될 것이다.
현대화의 과정은 관료화 그리고 기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그것 자체가 하나의 가치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는 우리 문화와 현대 의학에서 사물을 인식하는 양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러한 것들이 푸코 (Foucault)가 에피스테메 (episteme)--주어진 문화 속에서 특정한 공간을 차지하고자 하는 인간적 노력의 누적적 역사--라고 부른 것의 일부이다. 의학의 관료화로부터 유래한 의학의 에피스테메는 이미 사회가 의학에서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았는가? 그래서 뚜렷이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인간을 멀어지게 하는 그러한 순환이 시작된 것인가? 이렇게 왜곡된 견해는 인간의 철학적 허약함을 더욱 악화시킬 것인가?
이러한 것들이 공식적인 지적 작업으로서의 의철학이 다루어야 할 물음 중 일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형학 (topography)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의학이 자신의 연구방법에만 의존하려고 한다면 결코 명확하게 제시하거나 비판적으로 논의할 수 없는 몇 가지 진정으로 철학적인 물음이 있다는 점을 말해줄 뿐이다. 이러한 물음들은 고대 철학과 현대철학의 방법론을 이용하여 더 깊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철학자가 어떤 물음을 선택하고 강조하는가 하는 것은, 그 주제와 철학 하는 행위에 대해 철학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념에 크게 의존한다. 이 책과 같은 분량의 논문에서는 이 물음들 중 일부만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의철학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사상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의철학이 되어서는 안될 것들
비판적이고 사변적인 지성을 사용하여 의학적 문제에 접근하려는 노력에는 몇 가지 위험이 뒤따른다. 리세 (Risse)와 갈드스톤 (Galdston)은, 위헤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학 이론이 실험적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결국 의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사변적인 논변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들은, 생명, 건강, 질병의 "궁극적" 원인을 찾으려고 했던 18세기 독일 의사들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사변적 영역에서 진실을 발견하려는 의사와 침상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환자의 충돌은 격렬한 것이었으며 그런 경향은 오늘날에까지 이어진다. 의학의 철학으로의 전향이라는 이러한 경향의 해악은 의학사가 증명한다. 그러한 오류를 다시 반복한다면 현대의학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의학을 나쁜 철학으로 전환시켜서도 안되고, 철학을 나쁜 의학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매킨다이어 (MacIntyre)는, 대중과 의사가 철학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비현실적인 기대의 해악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철학자, 특히 의학에 관계하는 윤리학자가, 현대의학의 모든 도덕적 문제에 대해 준비된 대답이나 처방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윤리학자만이 보건관계 전문가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몇몇 의사들은, 철학자나 윤리학자가 도덕적 기준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며 기꺼이 거기에 따르고자 하지만, 다른 의사들은 의학의 전문가가 아닌 누구와도 그러한 윤리적 문제를 상의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면에 철학자들은 "위임된 지성"으로서의 책무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자기들이 자신 있어하는 방법의 한계를 벗어나는 문제에 개입하여 거만을 떨거나 주의를 끌려는 유혹에 빠져서도 안되며,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해서도 안 된다. 철학자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특별한 연구방법이 진리에 이르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다른 인문학 전문가와 함께 하는 것이다. 역사학자, 신학자, 문학 전문가 등이 의학적 상황에 참여할 수 있으며 철학자와 그들과의 상호작용은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다.
의철학이 의학에 대한 단순한 반추(反芻; medical musing)--의학의 상태, 전문직업, 건강, 또는 이와 연관된 주제에 대한 의사의 사색--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직관적 행위는 교육과 실천에 있어 영감을 주고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으로 중요한 권고사항일 수는 있어도 의철학 자체일 수는 없다. 의철학에서 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의철학 자체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의철학이, 모든 인간적이고 생물학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통일 이론에 대한 추구이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의학의 본질적 부분에서 발생하는 중대한 철학적 문제를 계속해서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지, 모든 물음에 최종적 해답을 제시할 의학의 완전한 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의철학적 구조를 이론적으로 만들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적 구조는 경험과 변증법적 추론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되어야만 한다. 의학에 관한 일련의 명제인 하나의 의철학은, 실험과학에서 가설이 유효한 정도로만 유효한 것이다.
의학을 생각하는 철학자는 의학에 지나치게 침잠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의학과 동떨어져서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몇몇 사회학자들이 지나치게 의학에 침잠한 결과 의학적 상황에서 사회과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신뢰를 잃고 별반 기여도 하지 못했던 사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철학자는 명실상부한 철학자로 남아 있을 때에만 의학을 도울 수도 있고 철학자로서의 정체성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몇 가지 교육적 의미
의철학의 필요성과 본성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가 설득력이 있는 것이라면, 이 학문을 발전시켜야 할 역할은 학자들 뿐 아니라 교육자와 임상가들은 몫이 될 것이다. 질병의 개념과 임상적 실천의 개념이 형성되는 데 있어 인간 존재론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와르토프스키의 최근의 분석은, 학술적인 논의가 어떻게 실제 세계에 투영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위에서 말한, 철학이 의학에 관여하는 세 가지 양상에 함축되어 있는 문제들은 의사나 보건 관계 종사자들에게 다양한 자극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임상가들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체계와 인간에 대한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의학을 가르치는 교육자는 의과학과 임상적 실천에서 발생하는 신학적 물음과 인식론적 물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의학의 사회적 윤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의학자는 더욱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탐구하고자 할 것이다.
모든 의사를 갈렌이나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은 의미의 철학자로 만드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모든 의사는 가치, 개념, 그리고 의학의 이념에 관계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철학적 감각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 모든 의과대학생은 여기에 논의한 이슈들, 특히 의료윤리와 전문직업 윤리에 관계된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토론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의과대학들은 의료현장에서 인간의 가치라는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7년까지 약 80개의 의과대학이 윤리학, 철학, 인문학을 교과과정에 포함시켰다. 임상의사를 대상으로 한 비슷한 프로그램도 시작되었다.
보건 관계 전문직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 가치가 가지는 의미와 실제를 자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매일 매일 내리는 결정과 환자에게 주는 지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철학적 탐구의 엄밀함을 경험하다 보면 의학교육이 본래 가지고 있던 반-철학적 편견에도 변화가 초래되어 균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좀 더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연구의 기회가 제공되고, 의학과 철학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의학이 인간의 목적을 위해 어떻게 이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의사들이 늘어날 것이다.
필요한 것은 보건의료의 현장에서 우리가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만큼 인문학과 철학에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임상가들에게 있어 인간적 연구의 유용성과 중요성은 임상과학과 기초과학의 중요성과 비교하여 결코 덜하지 않다. 챨스 프라이드 (Charles Fried)는 철학적, 법적, 경제적 가치와 원리가, 인간을 상대로 한 실험에서 뿐 아니라, 개인을 상대로 한 보건활동과 의학의 사회적 윤리에 있어 실제적인 결정과정에 어떻게 중첩되어 나타나는지를 보여주었다. 단순한 기술자이기를 원하지 않는 의사라면, 이러한 실제적이며 일상적인 선택--그것이 바로 그들이 전문인으로서 가지는 권위의 근거이다--의 철학적 기초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