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힌두교
종교 분쟁, 그리고 현대 인도의 현상과 문제점
목 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힌두교의 문화, 사회적 특징
◆ 힌두교의 특성
1) 힌두교는 다신교이다.
2) 힌두교는 범신론적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3) 힌두교의 특정 신에는 여러 화신이 있다.
4) 힌두교의 신은 인간적인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5) 힌두교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6) 힌두교는 다양성 가운데 통합성이 있다.
7) 힌두교에는 다양한 종파(Sect)가 있다.
8) 힌두교는 사상적으로 포용적이다.
9) 힌두교는 신앙 행위에 있어서 관용적이다.
10) 힌두교는 출생 종교이며, 그런 면에서 배타성이 강하다.
11) 힌두교의 이론적 바탕이 인도 철학이고, 인도 철학의 실천이 곧 힌두교이다.
12) 힌두교는 점진적이고 온건한 변화를 추구한다.
13) 힌두교의 신들은 다양한 신화 속에서 발전해 왔다.
14) 힌도교는 종교상의 교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 인도 사회와 힌두교
1) 인도의 가족제도
2) 카스트 제도
① 족내혼을 엄격하게 준수.
② 전통적인 직업 세습
③ 음식물에 관한 금기
◆ 힌두교인의 종교생활
1) 힌두교에서 다르마와 인생의 덕목
① 아르타
② 카마
③ 다르마
④ 모크샤
2) 생활의 네 가지 주기
① 학생기
② 가주기
③ 임주기
④ 유행기
3) 가정에서 종교생활
4) 통과 의례
2. 종교 속의 종교 - 힌두교의 여러 종파
1) 비슈누 파
(1)비쉬누의 형상
(2)비쉬누의 권화(權化)
2) 쉬바 파
(1)쉬바의 형상
(2)쉬바의 가족
3) 탄트라교와 샤크티교
4) 민속 힌두교
5) 스므리티 파와 기타 종파
① 힌두교의 개혁파
② 구루 나나크와 산트의 교리
③ 시크교의 신관
④ 시크교의 세계관
⑤ 시크교의 핵심
⑥ 독특한 규칙과 의식들
3. 세계 속의 힌두교 - 종교 분쟁, 그리고 현대 인도의 현상과 문제점
1) 종교의 차이에 따른 인도의 분리
◉ 카슈미르 분쟁
◉스리랑카 분쟁
◇ 타밀엘람해방호랑이
◇ 실패로 돌아간 인도의 개입
◇ 다시 불붙는 내전
◉ 힌두교와 기독교의 대립
◉ 힌두인의 불교로의 개종 증가
2) 현대인도 힌두교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문제점
(1) 종교 간의 충돌(이슬람과 시크교의 영향)
(2) 종교사회개혁운동
① 브라모 협회(유일신 종교운동)
② 아리아협회(인도 전통에 대한 강조)
③ 라마크리슈나 운동(전통의 재해석)
④ 신지회
(3) 세속화에 따른 현대 인도의 종교분쟁
◉ 불가촉 천민의 개종과 인도의 개종 금지법 제정
Ⅳ. 결 론
<< 참 고 문 헌 >>
Ⅰ. 서 론
힌두교란 말은 일반적으로 Hinduism(영어), Hinduismus(독일어), Hindouisme(프랑스어)를 번역한 말이다. 근대 유럽의 언어 hindu는 그리스어 Indos, Indus를 기원으로 하고, 다시 이 말은 산스크리트 sindhu의 페르시아 어형 sindu 에 바탕하고 있다. 고대의 페르시아인들은 인더스강을 신두라고 불렀다. 고대 페르시아어에서는 'S' 를 'H'로 읽었다. 'India'라는 명칭은 그리스인들이 'H'의 발음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Sindhu' 또는 'Hindu'에서 'H'를 제거하여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힌두라는 단어가 의미했던 것은 인더스강 유역의 아리아인들이었고 그들의 종교가 힌두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리아인들의 인도아대륙에서의 세력 확장이 이루어짐에 의해서 힌두화(Hinduisation) 작업과 아리아문화와 비 아리아 문화의 결합이 병행하면서 진행되었다. 이 결과, 힌두라는 단어는 본래의 지역적, 인종적 한계성을 초월하여 힌두교의 신자와 그것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권의 구성요소들을 총칭하는 의미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 종교에는 특정한 개조(開祖)가 없다. 교리 내용도 베다와 우파니샤드 등 아리아 계통의 것에다 선주민의 토착적인 요소, 샤크티 신앙이나 링가 숭배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사회생활과 일상생활의 측면에서도 해당 카스트에 따라서 많은 차이를 보이며, 종교적 의무 의례 풍속 습관도 다양하다. 힌두교는 분명히 종교이긴 하지만 매우 복잡한 성격을 띠며 단순한 종교 영역에서 벗어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루이 루누는 ‘사람은 힌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힌두로서 살아간다’고 한다. 이런 뜻에서 힌두교는 인도의 문화, 사회제도, 풍속, 습관 등을 모두 포함하며, 실제로 인도자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힌두교는 신(神)관념 및 교리, 신앙 내용에서도 여러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성격에서 중요한 점을 몇가지 들어보자면 신 관념에서는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다신교이다. 일반적으로 힌두교는 그 집단의 특정한 신을 믿도록 강요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자신이 태어난 가정의 전통적인 ‘가정의 신’, 그 마을의‘촌락의 신’을 믿고, ‘다시 자신이 믿는 신이 있다. 이 세신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으나 어떻든 상관없다. 이렇게 다신교적이나 여러 신의 배후에 ‘최고신’의 존재를 예상한다. 이것이 브라흐만 비슈누 쉬바 신의 세 신으로 나타난다고 하여 삼신일체설을 전개했다. 사실은 다신교적 형태 안에 늘 일신교적인 경향이 잠재 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슈누 신이 신격, 인격, 동물등 다양한 모습으로 이 세계에 나타나는 것인 화신(化身)이라는 관념과 관련된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이 여러 지방, 부족, 카스트의 신들을 비슈누 신이나 쉬바 신으로 통일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신들을 이렇게 통일하는 방법은 그러한 신들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 지도 규정한다. 즉 힌두교에서는 이슬람교나 유대교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신을 두려워하는 경향은 비교적 적으며 신과의 계약이라는 관념도 없다. 이러한 일신교와 근본적으로 다른면을 가지고 있지만 이 때문에 일반적인 이단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단이란 원래 정통적으로 확립된 교리에 대해 비판받음으로써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통과 이단의 대립은 힌두교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중세의 차이탄야파와 이슬람교에서 영향을 받은 개혁파 카비르, 그리고 시크교를 개창한 나나나크도 사회적으로 이단으로 취급받은 적이 없다. 이같이 힌두교에 이단이 없는 것은 힌두교가 다른 종교 사상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관용의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힌두교는 대립하는 종교와 사상에 대해 정면으로 대결하기 보다는 자신의 울타리 안에 틀어박혀 이에 대항하지 않거나 또는 그들을 자기 안으로 흡수 동화시켰다. 예컨데 사회적인 신분제도에 저항했던 불교도 실제로는 힌두교의 한 파로 간주함으로써 붓다는 비슈누신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힌두교의 신화 속에서 융화된다. 힌두교의 특징적인 사상은 윤회(輪廻)와 업(業), 해탈(解脫)의 길, 도덕적 행위의 중시, 경건한 신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인도인의 도덕관념을 키웠지만, 한편으로는 숙명론을 심어줌으로써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인간의 사후 운명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이 있었다. 신들도 업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그러한 속박에서 해탈하는 방법으로서, 출가 유행(遊行)의 생활과 고행 또는 요가가 교설되었다. 고행은 주로 육체의 수련이며, 요가는 정신의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상 힌두교의 핵심 개념과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힌두교는 신자수로는 세계3위권에 들어가지만 인도인의 종교임으로 그 영향력 등에 비추어 불교에게 3대종교의 지위를 내주고 있다. 그것은 힌두교만의 독특한 폐쇄성에 기인한 것이다. 힌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의 카스트를 물려받아야 하며,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에 내세에서라도 힌두로 태어나기를 갈망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힌두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인도에 사는 인도인뿐이라 할 수 있고 힌두교는 문자 그대로 민족 종교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우리에게 힌두교가 잘 알려지지 않고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본 연구에서 힌두교를 주제로 체택한 이유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종교인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 불교의 시대는 없었다는 사실에 다만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왕 통치시절 왕실의 지원을 받았던 적은 있지만 대중적 지지를 얻은 시절은 없었다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왜 유독 인도사회에서는 불교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힌두교가 번성했는지, 또한 이슬람교나 기독교 등의 외래종교의 침입에도 힌두교로서의 주체성을 잃지 않았던 요인은 무엇인지를 밝혀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에서 간단히 언급한 힌두교의 기본 개념과 교리적 특징들은 이러한 질문의 기본 배경이 된다. 본문에서는 힌두교의 문화적, 사회적 특징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러면 위의 주제 선정 배경에 근접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현대 인도사회에서 힌두교의 모습 즉 힌두교안의 여러 종파들을 조사해보고, 세계 속에서 힌두교가 가지는 의미 등을 조사하고자 한다.
Ⅱ. 본 론
1. 힌두교의 문화, 사회적 특징
인도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Jainism), 시크교(Sikhism) 등 4개 종교의 발생지이며 회교, 기독교, 배화교, 유태교 등 외래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이다. 인도 국민의 생활에 있어서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종교 없는 인간생활은 생각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종교는 인도인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지배적 요소이며 이러한 인도의 최대 종교인 힌두교는 종교가 아닌 삶이라고 할 정도로 인도인에게 있어서 종교는 엄청난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도인으로 하여금 힌두교의 무엇이 그토록 그들에게 절실한 믿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인가? 지금부터 힌두교의 대표적인 특성과 사회, 문화적 성격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 힌두교의 특성
1) 힌두교는 다신교이다.
신관념에 있어서 베다의 종교적인 전통을 이어온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다신교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힌두교는 그 집단의 특정한 신을 믿도록 강요받지도 강요되지도 않는다.
인도에서 힌두들이 신봉하는 신들은 매우 다양하다. 힌두교에는 시바신, 비슈누신과 같이 전 인도에서 신봉되는 신이 있는가 하면, 특정한 마을에서만 공양되는 마을의 신도 있다. 남신도 있으며, 사라스바티, 락슈미와 같은 아름다운 여신도 있다. 동시에 칼리 여신과 같이 인간의 해골을 목에 걸고 붉은 피로 물든 혀를 내밀고 있는 추악한 공포의 여신도 있다. 많은 신화적 전승에 따라 방위를 나타내는 방위의 신들로부터 귀령(鬼靈)에 이르기까지 힌두교의 신전은 매우 복잡다양하다.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신전이 잇으며, 갖가지 이름과 기능을 지닌 신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2) 힌두교는 범신론적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힌두교는 다신교적이지만, 여러 신의 배후에 ‘최고신’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창조의 신 브라흐마를 중심으로 비슈누신, 시바신이라고 하는 삼신관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다신교적 형태에서도 일신교적 경향이 언제나 잠재해 있다. 힌두교의 특성 1)에서 본 바대로 힌두교도는 많은 신들 가운데 어느 신을 신봉하여도 무방하다. 특정의 어느 신을 신봉하는 사람이 자신의 집안과 마을에서 거행되는 다른 신들에 대한 제례나 의식에 참여해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이러한 일들이 예서처럼 되어있다. 이처럼 힌두교가 다신교라고 하지만, 그 다양한 신들의 배후에는 절대 유일자의 존재가 상정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절대 유일자의 모습이나 성격 등을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는 없으며, 어떠한 언어적 표현도 초월한다. 모든 신들은 이 절대 유일자의 무한한 기능, 즉 활동의 다른 국면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이 위에서 말한 삼신관으로 이른바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 즉 우주창조는 브라흐마신이, 그 유지는 비슈누신이, 창조를 위한 파괴는 시바신이 담당한다. 이것은 다신교적 힌두교를 일신교적으로 통합하는 것으로 어떤 신을 신봉해도 결국은 하나의 절대자에 귀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힌두교가 다양하게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관념은 ‘진실은 하나’, ‘그 하나’라는 범신론적 사상으로 힌두교의 종교적 포용성을 동시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3) 힌두교의 특정 신에는 여러 화신이 있다.
힌두교의 신관념 가운에 화신이라는 관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비슈누신이 신격, 인격, 동물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이 세계에 현현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화신이라는 신관념을 통해 토속적인 성격의 여러 신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시바신의 경우에는 여러 개의 별칭으로 불려지며,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비슈누신의 화신 개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러한 화신 개념은 여러 지방, 부족, 카스트의 신들을 비슈누신과 시바신으로 통합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4) 힌두교의 신은 인간적인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힌두교의 신이 모두 시바나 비슈누처럼 ‘위대한 신’인 것은 아니다. 이들보다 힘도 약하고 기능도 제한되어 있지만, 인간적인 친근감을 주는 신들이 많이 있다. 파괴의 신으로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인 시바신도 자비를 베푸는 자혜로운 신이기도 하다. 비슈누신의 화신인 크리슈나는 어린아이로서의 크리슈나, 소치는 여칭과 즐기는 크리슈나, 인드라신과 싸워서 소를 지키는 목동으로서의 크리슈나, 등으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그 신에게 절대적인 신앙을 바치면 어떠한 사람도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5) 힌두교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힌두교에서는 일신교적 신관념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이단의 문제는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가령 브라만교의 전통에서 새로운 사상적 운동을 전개한 불교나 자이나교는 이단시되어 배척되기는커녕 오히려 힌두교라는 위대한 흐름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중세에 일어난 체이탄여(Chaitanya) 파나 이슬람교의 영행을 받은 카비르(Kabir)의 개혁종파, 그리고 나나크(Nanak)의 시크교 등은 분명히 이단적인 종교 개혁 운동이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이단 취급을 받은 적이 없었다.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혁신적인 사상을 주창하고 나온 자이나교나 불교도 힌두교라는 도도한 큰 흐름에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6) 힌두교는 다양성 가운데 통합성이 있다.
힌두교는 실로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힌두교의 세계에는 다양한 현상이 혼재한다. 그래서 힌두교도들에게는 신념과 행위에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대단히 넓다. 서구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범신론자도 있고, 다신론자도 있다. 유일신론자, 불가지론자, 심지어 무신론자일 수도 있는가 하면, 이원론자도 있고 다원론자, 일원론자도 있다. 생활의 도덕적인 면에서도 엄격한 행위 규범을 지키려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자들도 있다. 또는 도덕을 초월하여 신비주의적인 행법을 택하는 자들도 있다. 적극적인 행위(Karma)를 통해 종교 생활을 하는 자들도 있고, 명상이나 요가 등 정적인 수행에만 몰두하는 자들도 있다. 가정의 종교 의식에 철저한 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자도 있다. 정기적으로 사원에 가서 예배하는 자도 있고, 전혀 가지 않는 자도 있다. 인종과 언어의 계통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문화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불살생을 존중해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닭이나 양의 희생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것이 올바른 힌두교도인가를 문제삼을 만한 확정적인 종교적 준거 내지는 규범이 없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이전에 이들은 모두다 힌두교도이다. 그렇다고 인도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힌두교도인 것은 아니다. 어떤 기준에 따라 결과적으로 힌두교도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즉 다양한 가운데서도 힌두교도임을 확증하는 하나의 근거내지는 기준이 있다. 그 매커니즘은 주로 카스트 제도(Caste system)와 업(Karma), 윤회(Samsara) 사상과 같은 다르마(Dharma;의무, 法)라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이와 같은 온갖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에게는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하나의 의무는 각자의 카스트에 따른 규칙과 의식을 충실하게 준수하려는 것이다. 또 그렇게 행위 함으로써 좋은 내생을 기대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결국 사상적인 면에서의 다르마의 가치관과 카르마 사상, 그리고 사회적인 면에서는 이에 따라 형성, 유지되어 온 카스트 제도, 그리고 신앙적인 면에서는 신과 신화의 공유라는 점이 인도 대륙에서 그 다양한 문화를 하나로 통일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7) 힌두교에는 다양한 종파(Sect)가 있다.
힌두교는 수 천년 동안 계속 되면서 여러 종파적 교리를 모두 받아들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힌두교는 인도에서 생겨나고 성장한 여러 가지 교리나 학성 등을 포함하는 매우 방대하고 복잡한 종교적, 문화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힌두교에는 사상이 서로 다른 종파는 물론이고, 거대한 신도가 있는가 하면, 극소수의 신도가 있는 종파, 예로부터 그 전통을 이어 온 종파가 있는가 하면 최근의 성자들에 의하여 새로이 성립된 종파 등 다양한 종류의 종단이 있다. 그 중 어떤 종단은 뚜렷한 교의나 교설도 없고, 어떤 종교적 사유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여러 신을 동시에 숭배하는 종파도 있고, 한 신만을 믿는 종파도 있으며, 어느 신도 믿지 않는 종파도 있다. 그리고 같은 종파 내에서도 각자 서로 다른 신을 믿는 경우가 있다. 힌두교는 그 모든 종파들의 교리나 학설들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힌두교를 어느 한 종파적인 입장에서 파악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가지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힌두교에서 공통적으로 숭배하는 신은 비슈누와 시바이다. 그러므로 비슈누를 주신으로 하는 비슈누 파와 시바를 주신으로 하는 시바 파로 대별할 수 있다.
8) 힌두교는 사상적으로 포용적이다.
힌두교 내의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사상들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힌두교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힌두교는 자기의 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타종교를 박해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공존을 시도해 왔다.
힌두교에서는 5)에서 본 바와 같이 이단이라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힌두교 스스로가 사상적으로 관용적이었고, 다른 종교나 사상에 대해서도 관용의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힌두교와 대립관계에 있거나 이에 반발했던 자이나교, 불교, 이슬람교, 그리고 근래에 와서 기독교와 서구의 근대 사상 등과 정면으로 대립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항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틀과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것을 고수하며 그들을 자기 안으로 흡수, 동화시켰다.
9) 힌두교는 신앙 행위에 있어서 관용적이다.
힌두교에서 공통적으로 숭배되는 신은 대개 시바와 비슈누라고 알고 있지만, 실로 인도 전역에서는 이들 두 신 외에도 수많은 남신과 여신들에 대한 숭배가 행해지고 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신관념에 대한 관용적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힌두교도에게는 하나의 신을 믿는 것이 반드시 다른 신을 부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유일신으로 비슈누신 다음으로 중요한 신이란 의미를 갖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범신론적인 사유 방식이다. 인도에는 많은 신이 있지만 모든 신들은 사실상 그 모습이나 형태조차 알 수 없는 절대 유일신 브라흐마의 다른 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 신을 믿든지 결국에는 브라흐마에게로 귀착되게 된다. 따라서 시바신자와 비슈누 신자가 서로 싸울 이유가 없다. 서로가 배타적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힌두교가 갖고 있는 신앙 행위의 관용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10) 힌두교는 출생 종교이며, 그런 면에서 배타성이 강하다.
힌두교도의 부모에게서 출생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힌두교의 구성원이 된다는 점에서 힌두교는 엄격한 출생종교이다. 그리고 힌두교는 한번 추방된 자를 영원히 공동체와의 모든 관계로부터 배척해 버리는 종교모독죄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타적이기도 하다. 힌두교도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자는 최소한 원칙적으로 힌두교의 신성한 여러 가치에 접근하는 것이 거부된 자로 남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힌두교는 다른 종교 사상에서 보여주는 평등한 사랑과 자혜와 같은 정신으로 인류를 포용하려는 의지가 비교적 약한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11) 힌두교의 이론적 바탕이 인도 철학이고, 인도 철학의 실천이 곧 힌두교이다.
인도 철학은 깨달음과 해탈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인도 철학은 종교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점에 있어서는 길희성 교수의 글이 이를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인도 철학을 연구하는 거의 모든 학자들은 인도 철학의 지배적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해탈의 추구에 있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즉, 어떻게 보면 인간이 고통스럽고 유한하고 속박된 삶을 초월하여 절대적이고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인도인의 철학적 사유의 배후에 깔려있는 최대의 관심사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도 철학은 강한 종교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여기서 종교적이라고 하는 말은, 서양의 전통에서처럼 어떤 초월적인 신에 의하여 주어지는 초이성적인 계시에 근거한 신앙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활동을 하는 궁극적 목표가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양에 있어서는 철학은 희랍의 문화 전통에 유래하였으며, 종교는 히브리적, 성서적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철학과 종교 사이에 항시 긴장관계가 존속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 전통의 근본적 이중성을 지니지 않는 인도에서는 철학과 종교 사이에 그러한 대립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종교는 그 근본 성격상 어떤 호이성적 신의 계시에 근거를 둔 신앙의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지혜와 신비적 체험에 바탕을 둔 경향이 강하므로, 서양에서 말하는 소위 신앙과 이성의 대립이라는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할 것 같으면 인도의 종교는 철학적 종교요, 인도의 철학은 종교적 철학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2) 힌두교는 점진적이고 온건한 변화를 추구한다.
힌두교는 수천 년에 걸친 과정을 통해 급진적인 개혁과 변화를 용납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이나 사상도 거대한 힌두교의 테두리 안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부다 같은 위대한 인물이 나와 사유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을 때도 일반 대중으로부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대중의 생활 습관이나 종교관습에 변화가 일어났다 해도 급속도로 전파되지는 못했다. 대중은 옛날부터 그들에게 익숙해 온 종교적 의례를 오랫동안 지켜왔다. 오늘날 까지도 방법이나 형태는 조금 변했을지 몰라도 거의 그대로 고수해 오고 있다.
13) 힌두교의 신들은 다양한 신화 속에서 발전해 왔다.
힌두교의 신들은 매우 인간적이다.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여인을 사랑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화가 나면 저주를 행하기도 한다. 온갖 종류의 다양한 신들이 각각의 특성을 갖게 된 것은 신들이 다양한 신화의 전승 속에서 인간 생활의 모든 면과 관련해 발전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현재에 이르기 까지 신들의 모습과 행동과 특성은 신화적 전승을 통해서 힌두교도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신들이 다양성을 보이는 만큼 신화의 내용도 풍서하고 다채롭다. 신들이 다양성을 보이는 만큼 신화의 내용도 풍성하고 다채롭다. 힌두교의 세계에는 사회, 언어, 인종, 그리고 생활 문화까지에도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 이처럼 놀랄 만한 다양성 속에서도 신을 바탕으로 하는 힌두 신화는 힌두교도로서의 일체감을 갖게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4) 힌도교는 종교상의 교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앞의 8)에서 본 바와 같이 힌두교는 다른 종교를 박해한 적도 없고, 자신의 종교를 믿도록 강요한 적도 없다. 그것은 아마도 종교적 진리를 하나의 교리로 받아들여 언어적으로 정의하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힌두교에서도 윤회나 업, 그리고 재생 등에 관한 교리가 있으나 그것은 계시된 교리라기보다는 존재에 대한 탐구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 인도 사회와 힌두교
1) 인도의 가족제도
인도 가족 제도의 특징은 부부 또는 자식을 단위로 하지 않고 그들이 몇 명 모여 가족 집단을 이루는 데 있다. 이 같은 가족 형태는 일반적으로 ‘공동 가족(共同家族;gotra)’이라 부른다. 이 공동 가족에서는 자식이 결혼하더라도 부모와 세대를 따로 구성하지 않고 부모집에서 형제 가족과 함께 생활한다. 공동 가족에서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을 통제하지만 여기서는 가족회의가 가장 권위를 가지며, 식량, 재산, 가옥은 가족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한다. 이 공동 가족 제도는 고대에 토지를 함께 소유하고 경작해야 했던 필요성에 기원하며, 노동의 성과인 수확물을 공동으로 누리는 가족 집단이 먼저 성립했다고 할 수 있다. 공동으로 경작하고 공동으로 경작하는 토지는 자손에게 물려주어 많은 가족 구성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했다. 이 점은 고대 인도인에게 조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했으며, 베다 제사 의식의 하나로서 피트리 메다(pitr-medha)라 부르는 조상의 혼령에 대한 제사를 성립시켰다. 이 공동 가족은 여러 법전에서 고정된 카스트 개념과 함께 힌두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공동 가족은 경제적인 유대임과 아울러 종교적, 사회적인 유대로서 시대가 흐름에 따라 이 제도를 성립시킨 경제적인 요인은 소멸했더라도 인도 농촌에서 기반으로 존속해 있다. 무슬림 침입이나 영구 지배 아래서도 인도 사회에 확고히 뿌리 내렸던 이 제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강인함을 보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 같은 공동 가족 제도가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다. 다만 이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농촌 사회는 급속하게 변하게 않아 오늘날에도 이 제도가 존속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2) 카스트 제도
인도사회를 특징짓는 것 가운에 하나가 카스트 제도이다. 카스트라는 말은 포르투갈 어의 카스타(casta, 種別)에서 비롯되었다. 16세기에 인도에 들어온 포르투갈 인은 인도인이 분명하게 종성(種姓, vama)으로 나뉘어 신분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것에 주목하여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 뒤 인도의 종성 제도가 카스트 제도로 유럽에 소개되어 오늘날 일반적으로 카스트 제도라고 하면 인도의 사회 계급 제도를 통틀어 일컫게 되었다. 인도의 고대 문헌에는 카스트가 바르나로 기록되었다. ‘색깔’을 의미하는 바르나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로 들어온 필부가 더 흰 인도 아리아인과 피부가 더 검은 선주민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다. 검은 피부를 가진 선주민은 다사(dasa,악마 또는 야만인)라 불렀고, 나중에 노예를 뜻하게 된다. 카스트가 성립하는데에 인종적인 것, 곧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가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대 문헌에서는 바르나로서 브라흐마나(brahmana, 브라흐만 사제 계급), 크샤트리야(Lsatriya, 왕족과 무사 계급), 바이샤(Vaisya, 상공업과 농민 계급), 슈드라(Sudra, 노예 계급)의 넷을 들고 있다. 이것이 유형화 되어《마누법전 Manu smrti》등에서 볼 수 있는 네가지 카스트로 자리를 잡았다. 카스트 제도는 실제로는 바르나와 섞여서 발전한 것이다. 거기에는 민족적 차별이나 잡혼뿐만이 아니라 직업에서 차별, 깨끗함, 더러움이라는 종교적 관념이 덧붙여져 카스트를 분화시켰다. 카스트 제도의 특질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① 족내혼을 엄격하게 준수.
카스트는 폐쇄적 집단이다. 자신이 속한 카스트 이외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카스트 안에서도 같은 공동 가족끼리 결혼은 금지되며, 사핀다(sapinda ; 아버지 쪽으로 7촌 어머니 쪽으로 5촌 이내의 친족)라 부르는 친족 사이에도 결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고대에는 정당한 배우자를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인도 특유의 조혼, 곧 유아혼 풍습은 바로 이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② 전통적인 직업 세습
각 카스트에는 조상 대대로 세습하는 직업이 있고, 그것을 세습할 의무를 가지게 된다. 이 경우 단순히 직업의 높고 낮음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에 따른 ‘깨끗함’과 ‘더러움’의 관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더러움으로 간주되는 것으로는 생물을 죽이는 일, 죽은 시체를 치우는 일, 인간의 배설물을 치우는 일, 동물 가죽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 알코올을 만드는 일, 음료를 만드는 일 등에 종사하는 직업이 된다. 이것과 관련된 직업에 있는 사람들은 더러운 것으로 간주된다. 더러움의 정도는 다양하고 그 정도에 따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③ 음식물에 관한 금기
각 카스트에 음식물 등에 대한 엄격한 금기 사항이 있었다. 이 경우에도 깨끗함과 더러움의 관념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전통적인 직업의 세습이나 음식물의 금기 등이 지켜지지 않는 데에도 이 깨끗함과 더러움의 관념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힌두에게 ‘더러움’의 관념은 모든 일상생활과 종교 행위의 가치 기준이 된다. 이는 특히 ‘불가촉천민’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힌두의 사고방식 속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고, 오늘날에도 힌두교의 최대 문제다.
◆ 힌두교인의 종교생활
1) 힌두교에서 다르마와 인생의 덕목
인도에서는 인생의 목적에 세 가지, 또는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곧 다르마(dharma, 法), 아르타(artha, 경제적 이윤 추구), 카마(kama, 성적인 욕구), 모크샤(maksa, 정신적 자유로움)이다. 이 가운데 세 가지를 가리킬 때는 맨 마지막 모크샤를 뺀 앞의 세 가지를 말한다.
① 아르타
인간의 소유 본능에 바탕을 둔 ‘재물’, ‘재산의 향유’, ‘이득’ 등을 뜻한다. 이것은 인생에서 부의 추구가 인간의 정당한 행위임을 주장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재산의 취득과 축적을 임무로 하는 상인이 카스트 안에서 정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고대의 법전 예컨대 《마누법전》에서는 강업이 목축이나 농경과 마찬가지로 바이샤 계급의 생활 방편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상업만이 바이샤 계급의 직업이 되었고, 목축이나 농경 등은 슈드라 계급의 임무가 된다. 또 각 카스트가 직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하고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를 정당하게 평가하여 재산의 축적도 천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② 카마
카마는 특히 ‘성애(性愛, 성적욕망)’를 뜻하며, 정서적이고 심미적인 생활을 나타낸다. 힌두에게 결혼의 목적은 ‘의무(aharma)’를 실천하고 ‘자식(praja)’을 낳으며 ‘쾌락(rati)’을 즐기는 데에 있다. 가정에서 카마의 의의는 다르마나 아르타와 같은 것으로 인정한다.
③ 다르마
이런 까닭에 인생의 세 가지 목적으로서 다르마, 아르타, 카마를 말하고 있는데 힌두의 다르마 관념에서 보면 아르타라든지 카마는 수단일 뿐 참된 목적이 아니다. 힌두에게는 인간 생활을 본능에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 본능적 욕구는 흔히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소유 본능과 정서적인 충동에 방향을 잡아주고 인간을 정신적인 자각으로 인도하는 것, 곧 다르마가 필요하게 된다. 법의 규제에 따라 수렴을 실천함으로써 인간의 일상적인 세속적 관심과 자유가 조화를 이루게 된다.
④ 모크샤
이는 ‘구원’ 또는 ‘해탈’을 뜻한다. 이것은 버림의 길이라고도 하겠다. 이것은 인도인들에게 있어 유일하고 진실된 인생의 최고 목표이다. 영적 절대성을 실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우와 완정성인 것이다. 이는 계속되는 윤회라고 하는 인간실존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하며, 나아가서는 열반에 들어 완전한 존재로서 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생활의 네 가지 주기
인간의 목적에 대한 사고방식은 모두 힌두 생활에서 기본이다. 이것은 ‘생활단계’ 또는 ‘생활주기’를 뜻하는 아슈마라에서 구체화된다. 이 아슈라마에 따르면 인간의 일생은 네시기, 곧 학생기(學生期, vanaprastha), 가주기(家住期, grhastha), 임주기(林住期, vanaprastha), 유행기(遊行期, sannyasa)로 나뉘어 진다고 한다. 이들 네 가지 생활 단계에는 각 시기에 따라 의무와 기능이 규정되어 있어 그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생활을 자제하도록 하여 해탈로 인도한다고 생각해왔다.
① 학생기
이 시기는 입문식에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네 카스트 가운데 브라흐마나, 크샤트리야, 바이샤의 상위 세 계급을 재생족(齋生族, dvija)이라 한다. 재생족이란 말 그대로 두 번 태어난다는 뜻이다. 첫 번째 태어남은 어머니로부터 육체적인 태어남이다. 두 번째 태어남은 인생의 통과의례 가운데 하나의 입문식을 거쳐 사회적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자신의 부모가 어떤 사회 계급에 속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계급을 자리 매김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브라흐만 계급이면 자신도 브라흐만 계급이고, 부모가 크샤트리야 계급이면 자신도 크샤트리야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참된 의미에서 재생족이 되는 것은 이 입문식을 거쳐 인생의 첫 단계로 들어가 새 생명을 얻을 때부터 시작된다. 입문식을 마침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수행 생활은 시작된다. 이 의식은 보통 브라흐만 계급은 8세, 크샤트리야 계급은 11세, 바이샤 계급은 12세 때에 행해진다. 이 의식을 마치면 스승의 집에 머물며 스승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스승으로부터 베다의 가르침을 배우게 될 때를 기다린다. 이윽고 스승이 그의 열의를 인정해 주면 비로소 인도 전통파의 고전인 베다(Veda)를 학습하기 시작한다. 이 가간의 학생 생활은《다르마 수트라》나《스므리티》에 규정된 지적 수련을 하며 인격적 윤리적인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② 가주기
학생기를 마치고 20세쯤에 집으로 돌아와 결혼하여 가업에 열중하는 시기이다. 인도인들에게는 결혼도 종교적 사회적인 의무에 바탕을 두고 한다. 이 시기의 의무는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고 제사로써 신들에게 보답하며, 배운 것을 전승함으로써 스승에게 보답하는 시기이다.《마누법전》에 따르면 결혼한 남자는 주어진 다르마는 다섯 가지의 큰 제사이다. 곧 브라흐만, 조상, 신, 귀신, 인간의 다섯 가지에 대한 제사를 지낸다.
브라흐만에 대해서는 베다를 독송하여 만족하게 하고, 조상에 대해서 슈랏다라고 하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신들에게는 호마제를 행하고, 귀신에게는 발리 희생제를 행하며, 마지막으로 인간에게는 자기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손님으로서 깍듯하게 향응을 베풀어 줌으로써 만족하게 한다. 힌두의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은 이 같은 제사에 대한 사고방식에 바탕을 두고 영위한다.
③ 임주기
재가자의 삶을 마치고 숲 속으로 들어가 은거하면서 명상과 금욕 생활을 한다. 즉 세속을 떠나 청정한 종교 생활을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가정이나 사회적 관계를 버리기 위한 준비 단계이며, 여기서 그를 위한 수행 생활이 중심이 된다. 부인은 아들에게 맡기거나 동반한다. 임주기에 들어간 자는 숲 속에서 구할 수 있는 풀뿌리나 과일로 배를 채우고 동물이나 나무껍질을 몸에 두르며, 여름에는 드거운 태양열에 몸을 태우고 우기에는 노천에서 생활해야 한다.
④ 유행기
숲 속에서 수행이 끝난 뒤 촌락이나 읍내를 탁발 걸식하며 돌아다니는 시기이다. 이 때에는 일체의 사회적 유대 관계를 끊고 현세의 삶을 포기한 채 오로지 해탈의 세계만을 추구한다. 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지혜를 통해 이룰 수 있는 마지막 목적에 도달하고자 한다. 즉 절대자와의 초월적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체험은 깊은 명상 중에 이루어진다. 이 같은 종교적 관점에서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는 구상은 분명히 브라흐만의 입장에 입각한 것이어서 사실 모든 인도 민중의 생활을 규제하고자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인 이상으로 이 이론이 형성된 이래 이 이론을 정통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아슈라마 카스트 제도는 오랫동안 인도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의 기준이 되어왔다.
3) 가정에서 종교생활
힌두교에서 가정은 생활의 장이며, 또 종교 생활의 기초 단위이기도 하다. 인생의 네 단계 생활 가운데 두 번째 가주기에 가정에서 담당해야 할 가정의 제사는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이다. 힌두교는 어느 가정이나 카스트에 속하며 같은 카스트에 속한 자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일상의 관습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관습도 같이 한다. 예배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상생활과 단절된 숲 등에서 개인적으로 묵상하면서 예배하는 것, 가정에서 신을 헌신적으로 부르는 것, 사원에 가서 꽃과 과일 등을 바치며 예배하는 것 등이 있다. 특히 가정에서의 예배의 전통은 인도 시골의 일상생활 속에서 더욱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인도 전역의 가정에는 최소한 한 곳 이상의 예배장소를 마련해 놓고 대부분 여성들이 정성껏 예배를 드린다.
4) 통과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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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태식 : 결혼 뒤 나흘 째 되는 날에 행해진다. 첫 수태는 결혼식 뒤 나흘 때라고 되어있다. 2) 생남식 : 3개월 뒤에 행해지는 의식으로서 남아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가장의 의무 가운데 하나는 결혼하여 남아를 낳아 조상에 대한 제사를 계승한다. 3) 분발식 : 4개월째에 임산부 머리의 가르마를 만드는 의식이다. 4) 탄생식 : 자식의 탄생 의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의식으로는 갓난아이의 입에 꿀과 버터기름으로 만든 경단을 넣는 의식과 수호 여신 샤크티에게 자식을 바치는 의식이다. 5) 명명식 : 태어난 지 10일째 또는 12일째에 행해지며 아기의 이름을 짓는 의식이다. 6) 초유식 : 태어난 지 4개월째 행해지며 아침에 예배하는 의식이다. 7) 식초식 : 태어난 지 6개월째 행해지는 ‘처음으로 음식을 먹는 의식’이다. 이 때 비로소 굳고 딱딱한 음식물을 먹인다. 8) 결발식 : 3년째애 향해지며 머리를 묶는 의식이다. 9) 입문식 : 이것은 힌두에게 있어 일생동안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이 입문식을 끝마침으로써 비로서 ‘재생족’으로 자격을 얻게 된다. 이것은 종교적 탄생으로 제 2의 탄생이라 한다. 이의식을 각 카스트에 따라 8~12세에 행해진다. 이 때 보통 읜 실 세 가닥으로 꼰 신성한 끈을 왼쪽 어때 위에 오른쪽 어깨 아래로 두른다. 10) 삭발식 : 머리카락 일부를 남기고 깎는 의식이다. 11) 귀가식 : 학생기를 마치고 집으로 되돌아와서 가주기의 생활을 시작할 때의 의식이다. 12) 결혼식 : 결혼식에서는 복잡한 의식이 행해진다. 주요한 것은 성스러운 불의 희생제사, 신부의 손을 잡는 의식, 일곱 걸음을 걷는 의식 등이다. 이런 의식을 브라흐만 사제에 의해 신성한 불 앞에서 베다의 만트라를 읊는 동안 행해진다. 이 점에서 힌두교의 결혼식은 완전한 종교 결혼이다. 13) 장례 의식과 제사 : 보통 화장을 하지만 어린아이나 고행자 또는 몇 종파의 경우에는 땅에 묻는 토장을 한다. 장례 의식에는 몇 가지 정화 의식이 이어진다. 화장을 하고 난 뒤 며칠 뒤에 유골 줍기가 있고, 흙으로 만든 관에 넣어 매장하거나 강으로 가서 물에 뿌린다. 장례 의식이 있는 뒤 10일부터 31일 사이에 제사를 지낸다. 이것도 힌두에게 있어 중요한 의식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존재 곧 ‘조령(祖靈)’이 되기 위한 의식이다. |
2. 종교 속의 종교 - 힌두교의 여러 종파
앞서 살펴본 힌두교의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힌두교는 여러 종파를 가지며 다양성의 특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잘 알고 있듯이 힌두교는 여러 신을 모시는 다종교이다. 일반적으로 힌두교는 비슈누를 최고신으로 숭배하는 비슈누 파, 쉬바를 최고신으로 하는 쉬바 파, 여성적 원리인 샤크티를 숭배하는 샥티 파 그리고 스므리티 파와 기타 종파로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여러 종파들의 대표적인 특징들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1) 비슈누 파
비슈누 신과 그의 화신, 주로 라마와 크리슈나를 숭배하는 종파로서 시바신을 숭배하는 시바파와 시바신의 성력(性力)을 숭배하는 샥티파와 함께 현대 힌두교의 주요 종파중의 하나이다. 세 걸음으로 우주를 왕래한다는 리그베다의 비슈누신은 베다시대에는 미약한 존재였으나 라마와 크리슈나 등 신화속의 영웅 또는 민속적 신과 결합되어 대중적 숭앙의 대상이 되었다. 비슈누교도들은 비슈누 또는 크리슈나를 바가바트, 즉 지고자(至高者)로 숭배한다. 비슈누파의 신도들의 궁극적 목표는 윤회에서 벗어나 비슈누신의 존재를 향유하는 것인데, 이것은 신의 은총을 통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베다에서 비쉬누는 태양의 신으로 등장하는 것 이외에는 그렇게 중요한 신은 아니었다. 『브라흐마나』에 실려 있는 이야기는, 비쉬누가 마왕을 속여 발걸음을 세 번 내딛는 곳에 있는 모든 공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된 방법을 보여 준다. 난쟁이 거지로 변신한 비쉬누는 무력한 자처럼 보였다. 그래서 마왕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을 때, 비쉬누는 자신의 무한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세 번의 발걸음으로 지구와 하늘과 우주를 내딛었고, 그것들에 대한 통치권을 쥐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베다에서는 비쉬누가 헌신이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학자들에 의하면, 인도의 2대 민족 서사시중 하나인 『마하바라타』안에서만 비쉬누가 사트바타 족의 숭배를 받는 우주의 최고신으로 나타나 있다고 한다.
(1)비쉬누의 형상
비쉬누는 인간을 돕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점을 제시하는 네 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그의 손에는 능력과 순결을 상징하는 철퇴, 원반, 소라 고동, 그리고 망우수(- 그 열매를 먹으면 황홀경에 들어간다는 식물)등이 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표식이 있는데 그는 머리에 관을 쓰고 있고, 그의 얼굴은 둥그렇게 크고 온화하게 생겼으며 그의 옷은 노랗고 발은 파랗다. 다른 모든 신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탈 것과 배우자가 있다. 거대한 새 가루다는 그를 원하는 곳까지 태워주고, 행운과 미의 여신 락쉬미(Lakshmi)는 종종 그의 곁에 있다.
(2)비쉬누의 권화(權化)
비쉬누의 중요한 특징은 동물이나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능력이다. “권화”(avatar: 불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여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가리킴)이란 용어는 비쉬누의 여러 가지 모습을 표현하며, 중요한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간혹 기독교의 성육신 개념에 비교되기도 했다. 비쉬누의 권화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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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Matsya): 큰 홍수가 났을 때 최초의 인간 마누를 구해냈다. 거북이(Kurma): 신들에게 불멸하는 넥타를 공급했다. 멧돼지(Varaha) 바다 깊이 빠진 땅을 건져냈다. 반은 사람이요 반은 사자의 모습(Narashimha): 핍박에서 한 신봉자를 구했다. 난쟁이(Vamana): 발리라는 악마로부터 세상을 되찾았다. 도끼를 든 라마(Parasurama): 크샤트리아들을 멸망시키고 브라흐민들의 권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크리쉬나(Krishna): 악한 왕 캄사를 멸망시키고 세상을 구했다. 붓다(Buddha):최상의 진리를 알기에 적합지 못한 자들이 포용하도록 거짓 체계를 내놓음으로써 베다 종교를 수호했다. 칼키(Kalki): 악을 멸하고 진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말세에 올 것이다. |
라마, 크리쉬나, 그리고 붓다는 과거의 신들이다. 비쉬누의 권세를 넓힘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자들이 그 신들을 비쉬누의 권화라는 교리 속에 혼합시켰다. 권화로서의 라마와 붓다에 대한 개념을 어떤 이들은 받아들였지만 강력히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크리쉬나를 비쉬누의 권화로서 생각하는 것도 크리쉬나를 최고의 신으로 여기는 자들은 철저히 거부했다.
2) 쉬바 파
시바는 위대한 요가수행자, 가축의 주, 풍요의 신등으로 불리는데 원래 베다에는 시바 신이 없으며 폭풍의 신 루드라가 쉬바의 전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도의 신화인 `마하바라타`와 `푸라나`에는 시바의 양면적 성격이 보여지는데, 그는 화장터를 좋아하며 해골과 범을 두르고 고행자의 상투머리에 삼지창을 들고 또 경솔한 자를 태워 죽이는 제3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죽음과 시간의 신이며 동시에 우주에 율동을 주는 `춤의 주`(나타라자)이다. 시바는 링가(linga,남근)로 표상되며 흔히 요니(yoni,여근)와 결합된다. 반대로 시바는 엄격한 고행과 금욕의 신이기도 하다. 시바는 최고신으로서 다른 신들은 그의 의지의 표현이며 그는 창조자, 유지자, 은폐자, 구원자, 파괴자로 작용하며 우주의 내재자이며 초월자라고 믿어지고 있다. 이 파의 모든 교도는 링가를 소지하며, 신상이나 베다, 브라흐만의 권위, 제사와 순례를 거부하고 만민평등을 주장한다. 이들은 물질에 속박된 영혼은 요가수행과 신의 은총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지만, 시바를 일컫는 명칭으로는 마하데바( Mahadeva:"위대한 신“ ), 나타나라 (- 우주적인 춤의 주인), 그리고 아르다나리스바라 등이 있다. 『리그 베다』문헌에서는 폭풍의 신 루드라의 잔인하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루드라를 쉬바(상서로운) 존재라고 부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후기 박티 문헌에서 쉬바는 인생의 어려움들을 동정하고 이애하는 자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의 본성적인 어두운 면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그는 따뜻한 동반자라는 느낌보다는 두려움과 존경심을 더욱 자아낸다. 후기 『우파니샤드』에서 그는 윤회와 업의 주인으로서 등장한다. 이 복잡한 존재의 중심에는 창조적인 풍요루움과 위대한 파괴력이라는 두 가지 특성이 자리잡고 있다.
(1)쉬바의 형상
쉬바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는, 금욕의 삶을 중요시하기 위해 쉬바가 자신의 청색과 회색의 몸에 재를 뿌린 존재로 묘사한다. 머리카락 끝에서 올라오는 것은 분수이다. 이 분수는 그가 어떻게 거대한 갠지스강과 히말라야 산에 있는 그 강의 4개 상류를 창조했는가를 말하는 전설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마 중간에 세로로 놓인 세 번째 눈이 그의 전지함을 상징하고 , 그의 몸을 휘감고 있거나 그의 앉은자리 밑에 놓은 것은 호랑이 가죽이다. 그는 “짐승의 주(主)”라고 알려져 있다. 그의 목을 감고 있는 뱀들은 이 점을 강조하고 공포감을 일으킨다. 그는 고행자들의 후원자로서 좌정한 채 발가벗고 명상에 잠긴 모습을 하기도 한다. 봄베이 항구의 고대 엘리판다 동굴들은 그에게 바쳐진 것으로서, 그의 본질과 특징의 복잡성을 합체시키기 위해 세 개의 얼굴을 가진 그의 모습을 보여 준다.
(2)쉬바의 가족
쉬바와 연관된 신들은 비쉬누의 경우처럼 그저 단순히 권화라기 보다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네샤는 쉬바 부부의 아들로서 코끼리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가 그런 모습이 된 것은 쉬바가 그를 다른 사람으로 오인하여 성을 내며 목을 쳤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그를 따르는 자들의 숫자는 미미했다. 그러나 중부 인도에서 영국의 식민 통치 하에 일어난 마하라쉬트라의 난리는 가네샤를 단합의 상징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을 규합했다. 정치적인 집회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가네샤의 축제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행했던 것이다. 장마철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 지방과 다른 곳에서도 열리는 가네샤의 축제는 널리 지켜지며 가네샤의 생에에 있었던 사건들을 재연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대중성은 사회적, 경제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상징으로서 하층 카스트에서 상승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남인도에서 가장 크고 흥미로운 사원들 가운데 하나는 마듀라이에 있는데, 그것은 쉬바 가족의 일원인 미낙시 여신을 위한 것이다. 이 여신의 기원은 그녀를 쉬바의 배후자로 묘사하던 판디안 정치 역사와 관련된다. 일 주일 동안의 대단한 축제는 매년 4월이나 5월에 열린다. 그 축제는 그녀와 쉬바의 결혼을 재현하는데, 쉬바보다는 미낙시를 더 중요시 여긴다. 축제의 일부로서 여신을 신전의 제단에서 가져와서 지름이 약 3.7미터 정도 되는 나무 바퀴가 달린 고층의 수레에 놓고 수백 명의 신봉자들이 동앗줄로 그 수레를 거리로 끌고 나가 신자들과 관심있는 자들의 흥미를 자아내다. 쉬바는 수레에 실려 미낙시 여신상이 실린 수레의 뒤를 따라간다.
3) 탄트라교와 샤크티교
탄트라는 본질적으로 요가적 수단에 의해 초월적 힘을 획득하고 최고의 원리와 합일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좌도 탄트라교는 감각적 향수를 중시하며, 자연적 기능과 성을 통해 영적 목적을 추구한다. 이 교파에서는 의식 상태를 에로틱한 용어로, 그리고 생리적 과정을 우주적 용어로 기술한다. 우주 자체의 구조와 조화가 만트라에 의존한다고 믿으며, 따라서 만트라는 일상적 세속적 생존을 초탈하는 불가결한 수단이다. 우도 탄트라는 주문을 통한 수련인 만트라 요가와 육체적 통제를 통해 영적 목적을 추구하는 하타 요가를 통해 지고자(至高者)와의 결합을 희구한다. 또 일부 탄트라교도는 라자 요가를 구사하는데, 이 요가는 수련에 따라서 꽈리를 튼 뱀의 형태로 잠재된 여성적 자연력(샤크티)이 각성되어 신체의 중추를 따라 위치한 6곳의 차크라(중심점)를 통해 정수리에 있는 1,000개의 연꽃에 이르러서 남성적 최고 존재인 푸루샤와 합일한다. 샤크티와 푸루샤의 합일이 영구적이 되면, 경이로운 힘이 수련자에게 일어나며, 수련자는 곧 해탈하게 된다. 현재의 한국에서도 이 탄트라 요가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은 실정이다. 탄트라교는 흔히 샤크티교와 불가분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샤크티교는 신(특히 시바신) 이 가진 창조력(샤크티)을 중심원리로 삼는 교설과 실천체계다. 신은 오직 샤크티를 통해서만 행동하기 때문에 샤크티는 우주의 과정과 개인의 구원에 있어서 결정적 요소로 간주된다. 그리고 샤크티는 그의 배우자인 여신으로 인격화된다.
여러 형태의 샤크티교가 있지만, 한 여신(보통 두르가)을 브라흐만과 동일화하여 우주의 통치자로 숭배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그녀는 세계를 생성시키고 유지하고 재흡수하며, 시바신조차 그녀로 인해 존재한다. 벵골의 칼리 파(派)에서는 그녀의 창조력이 소멸되지 않도록 피 흘리는 희생제를 지낸다.
4) 민속 힌두교
보통의 힌두인에게 종교란 일차적으로 사적인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신체와 입으로의 의식 수행을 의미한다. 우리의 무속신앙과 같이 토테미즘 단계의 원시신앙의 형태로 인간의 일상적 사건과 관련하여 악과 불행을 야기시키는 갖가지 정령들을 위로하는데 데 주된 관심을 쏟고있다. 즉, 우물과 나무, 돌, 물 그리고 땅에 거주하는 정령을 조종하여 저주와 마법 및 재앙과 질병에 대항하며, 비나 풍성한 수확을 주는 마을신들을 숭앙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당연히 이들은 점성술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점, 불길하거나 상서로운 징조의 효력을 믿고있다. 상층 카스트의 힌두인들이 개인적으로 신성에 접근하고자 하는 반면 보통의 힌두인들에게는 가족구성원, 마을, 교파간의 협동적 숭배가 더욱 일반적이다. 대가족의 구성원으로서 가정의 신앙활동에 참여하여 죽음이나 결혼과 같은 중대한 시점에 집단적 의례를 치름으로써 가족의 유대를 공고히 하며 마을 공동체의 종교행위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각 카스트는 같은 카스트 안에 공유하는 의식을 갖는다.
5) 스므리티 파와 기타 종파
스마르타란 스므리티(傳承 ․ 聖傳), 특히 《가정경 家庭經》에 규정된 간단한 제사의식의 의례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통 브라흐만에서는 베다의 성전에 바탕을 두고 제작된 《천계경 天啓經》에 따른 것을 쉬라우타라 부른다. 이에 대해 전승문학(스므리티)인 《가정경》의 규정을 따르는 것을 스므리티 파라고 했다. 복잡한 《천계경》의 규정이 변하여 여러 신들이 가정에서 숭배대상이 됐는데 여기서 스므리티 파가 시작됐다. 따라서 스므리티 파는 베다의 제사의식을 신봉하는 교양 있는 재생족(再生族, 브라흐만․크샤트리야․바이샤)의 종파라 할 수 있다. 이 파를 조직한 자는 베단타 학파의 위대한 철학자인 샹카라 또는 미망사 학파의 쿠마릴라라고도 하지만 분명치 않다. 《가루다 푸라나》와 《아그니 푸라나》에서는 이 파의 종교의례로서 비슈누, 쉬바, 두르가, 수르야, 가네샤의 다섯 신에 대한 예배를 들고 있다. 이 파에서는 샹카라를 중시하며, 오늘날에도 남 인도와 구자라트 지방에서는 스므리티 파에 속한 사람이란 샹카라의 입장에서 다섯 신을 공양하고 베다의 규정을 지키는 사람을 말한다. 예부터 아리아인 사이에 행해진 태양숭배는 인도에서도 유행해 서사시 시대에 하나의 파를 형성했다. 다시 1세기 무렵에 페르시아에서 태양신 미스라(mithra)를 숭배하는 신앙이 들어와 후대에 일어난 사우라 파에 큰 영향을 줬다. 이 파에서는 《사우라 상히타》등 몇 개의 성전이 제작됐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의 종파로서 성립했다는 것은 아니다. 또 가네샤(별명은 가나파티)를 신봉하는 파를 가나파티야 파라 한다. 그 성립은 6,7세기경으로 보며, 《가네샤 푸라나》등의 문헌도 제작됐다. 현재 종파로서 존속하지는 않지만 거의 모든 종파의 의식에서 가네샤에 대한 예배를 행하고 있다.
① 힌두교의 개혁파
이슬람이 침입하여 북인도에 무슬림 정권이 세워지면서 힌두교도 직․간접으로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를 개혁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은 15세기 무렵에 등장한 라마난다의 운동이다. 그의 제자 카비르는 이슬람교의 수피 신비주의에서 영향을 받아 카비르 파를 열었다. 또 나나크는 시크교의 개조가 됐다. 이 밖에 카비르로부터 영향을 받아 일어난 개혁파로는 다두(1544~1603)에 의한 다두 파, 라르 다스 (1648년 죽음)에 의한 라르 다스 파, 사트나미 파, 바바 라르 파, 사드 파, 차람 다스 파, 쉬바 나라야나 파, 갈리브 다스 파, 람 사네히 파 등이 있다. 19세기 초부터 근대 유럽 사상에서 자극을 받아 힌두교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다야난다 사라스바티의 아리아 사마즈, 람 모한 로이의 브라흐모 사마즈 등의 운동이 있다. 특히 카비르의 힌두교에 바탕을 둔 사상과 이슬람의 수피 신비주의에 강한 영향을 받아 개혁적인 종교인 시크교를 만든 나나크는 펀잡 주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그는 북인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힌디 어와 펀잡 어의 혼합 어로 교리를 이야기를 한 결과 시트교는 펀잡을 중심으로 북인도로 널리 퍼져 나갔다. 시크교에서는 교주가(구루)가 중요시됐다. 개조 난나크가 죽은 뒤 후대의 법왕(法王)도 나나크로 일컬으며, 초대 교주의 설을 충실히 계승했다. 제2대 앙가드(1504~1552), 제3대 아마르 다스(1509~1554), 제4대 람 다스(1534~1581)로 계속 계승된 뒤 제5대 아르잔(1563~1606)부터 교주 제도는 세습화됐다. 제6대 교주 하르 고빈드 때부터 이슬람교의 왕후와 다투어 교단을 군사단체 조직으로 고친 뒤 왕권에 대항하기 위해 펀잡 주를 중심으로 종교왕국을 건설했다. 이 왕국은 1849년, 영국이 합병할 때까지 존속했다. 10대 교주 고빈드 싱은 시크교의 신자들에게 5K를 몸에 지닐 것을 주장 했는데, 5K란 긴 머리(kes), 빗(kangha), 짧은 바지(kaccha), 쇠팔찌(kara), 칼(kripan)을 말한다. 이 뒤부터 시크교는 힌두교의 한 파라기보다도 독립된 종교양상을 띠게 됐다. 그 신도의 이름을 싱(singh, 사자)이라는 글자를 끝에 붙이도록하고 머리는 깎지 못하게 하며 남자는 머리에 터번을 감도록 했다. 이 풍습은 오늘날에도 계속되어 시크교도는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시크교도는 진취적인 기백이 풍부하여 중노동에 잘 견디며, ‘걸식하려거든 차라리 굶어 죽어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시크교도로서 걸식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시크교에서는 형식적인 의례, 우상숭배, 고행, 카스트의 구별 따위는 모두 부정된다. 어느 카스트든지 같이 식사를 하도록 권장하고 술, 담배, 마약을 엄격히 금하여 성실하게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해야 함을 강조한다. 여기서 시크교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다.
② 구루 나나크와 산트의 교리
구루 나나크의 교리는 15,16세기 북인도에 유행했던 산트전통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전통의 특징은 신의 무형의 본질(Nirguna)과 개인의 구원은 카스트 제도와 아무 상관없다는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남데브와 카비르, 라비다스 등이 모두 이런 산트전통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산트 운동은 주로 영적수행과 사회개혁의 형태로 표출되었는데, 이들 산트 법문들은 구체적인 수행방법이나 약속하는 해탈의 범위만 달랐을 뿐 해탈이라는 목표는 모두 동일했다. 이들 산트, 즉 성자들은 신의 화신, 신상숭배, 성스러운 경전들, 사원과 순례, 그 외 외적인 측면보다는 영적이해와 수행을 강조했다. 이들은 내면에 있는 신성한 말씀, 즉 샤바드를 명상함으로써 절대자와 화합하고 윤회전생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주장했다. 산트들은 신의 육체적 화신이나 신을 상징하는 형상물에 반대하고, 신의 무형의 본질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산트 철학과 구루 나나크의 가르침은 매우 유사하다. 그는 힌두교나 회교의 용어를 빌려 힌두교를 믿든 회교를 믿든 진리의 내적인 실상을 이해한 사람만이 참된 힌두교도, 참된 회교도로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 강조했다. 그 외 종교의 외적인 측면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짓된 신자라고 했다. 그는 이처럼 산트 전통의 범주와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내용을 정리, 통합해 독창적이면서 참신한 시크교 전통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③ 시크교의 신관
시크교는 일신론적인 종교이며, 시크교의 신은 만물에 내재하는 동시에 편재하는 유일신이다. 시크교인들은 모든 개체령이 근원적인 성령과 본질적으로 똑같다고 보지만 범신론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신상이나 사물을 예배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보고 배척한다. 시크교인들은 신을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씀이란 샤바드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힌두교에서의 ‘옴(om)'이나 기독교의 로고스(logos)'와 상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통 시크교도들이 생각하는 샤바드는 ’신의 표현체‘로써 주로『그란트 사히브』의 내용을 뜻한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시크교인들 역시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궁극적인 실재를 믿고 있다. 그들은 절대자를 가리켜 ‘오앙카르(유일한 절대자)’, ‘아칼 푸루크(시간을 초월한 절대자), ’니란카르(형상이 없는 신)‘ 등이라고 하지만 이 모든 명칭을 언급하는 말로 보통 신(GOD)라는 말을 쓴다. 시크교 구루들은 신의 본질을 표현하는 말로써 ‘남(nam)', 즉 성스러운 이름’이란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 보통 신과 동일시됐고, 샤바드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더 엄격히 말하면 말씀(word)는 신과 교통하는 수단이며, 성스러운 이름은 목적이었다. 그들이 믿는 절대자의 형상은 없으며, 아무런 속성도 갖지 않았다. 절대자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분이다. 그래서 신은 스스로 신성한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맡았다. 신은 매시대마다 사람들에게 신성한 메시지를 전해줬는데, 시크교의 스승들이 신의 메신저라 할 수 있다. 그 신성한 메시지의 목적은 인간을 윤회의 주기로부터 해방시키는데 있다.
④ 시크교의 세계관
시크교인들은 일원론적인 시각에서 영(令)과 육(肉)의 이원성을 부정하며, 현상계는 본질적으로 우주령의 일부분으로써 법계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우주가 신의 신성한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현재의 세상이 최고․최선의 세계라 믿었다. 따라서 인간은 현실을 허상으로 여기고 잊거나 초월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현상계, 즉 현실 속에서 진화를 위한 신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은 다음과 같은 측면으로 인해 신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첫째, 인간은 선악을 구별하며,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둘째,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똑같은 돈이지만 사람에 따라 도박할 수도 있고, 집을 고칠 수도 있다.
셋째, 인간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 신과 의식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⑤ 시크교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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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은 한 분뿐이며 그는 창조자, 유지자, 파괴자다. 2, 신은 인간의 형상을 취하지 않는다. 3, 인생의 목적은 윤회사상의 주기를 끊고 신과 하나 되는 것이다. 구루의 가르침을 따르고, 성스러운 이름을 명상하며 봉사와 자선을 행함으로써 이 목적을 이룰 수 있다. 4, 다섯 가지 주요한 악덕은 욕정, 분노, 탐욕, 세속적인 집착, 자만심이다. 이것들을 극복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5, 날마다 신을 기억하는 수행이 중요하다. 6, 금식, 종교적 채식주의, 순례, 미신, 요가, 그 외 우상숭배와 같은 맹목적인 의식들을 배척해야한다. 7, 일반적인 가정생활이 바람직하며, 세상을 포기하거나 독신으로 사는 생활은 구원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헌신자는 세상 속에 살면서 마음을 순수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는 전사이며 학자이고 성자여야 한다. 8, 시크교의 경전(『그란트 사히브』)은 영원한 구루이며, 오늘날 시크교인에게 살아있는 구루는 필요없다. 9, 신분계급, 교리, 인종, 성과 관련한 차별을 배격한다. 10, 영아살해를 배격하고, 남녀평등을 강조하며 과부의 재혼을 허용한다. 11, 구걸이나 부정직한 수단이 아닌 정직한 노동이야말로 고귀한 생활 방식이다. 12, 다른 가람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것은 당연한 사회적 책임이다. 자선을 통해 베풀어야 한다. 13, 시크교 공동체에서의 봉사활동도 시크교인이 되는데 필수적인 요건이다. |
⑥ 독특한 규칙과 의식들
모든 교인들은 날마다 특정한 신애가들을 의무적으로 읽어야 한다. 정통(칼사) 시크교인이라면 아침3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 목욕을 하고, “자프지”를 비롯한 아침 신애가를 읽어야 한다. 아침 신애가나 초저녁 신애가를 읽을 때는 마지막에 공식기도문인 ‘아르다스’를 외어야 한다. 아침 신애가를 읽기 전에는 목욕을 하는 것이 필수고, 다른 시간대에 신애가를 읽을 때도 손발을 씻는 것이 원칙이다. 신애가를 읽을 때는 항상 신발을 벗어야 한다.
- 결혼식
시크교 구루들은 가정생활이 매우 중요하며, 결혼이 가정생활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라 여겼다. 대다수 시크교인들은 중매결혼을 하지만 결혼은 신랑, 신부가 모두 동의 했을 때 성사된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구루 람 다스의 결혼식 신애가인 ‘라반’에 맞춰 『그란트 사히브』를 시계방향으로 돌게 되는데 네 번 돈 뒤에 정식으로 부부가 된다.
- 장례식
보통 시체를 화장하며,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강물이나 바다에 버릴 수 있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는 열흘 동안에 걸쳐 『그란트 사히브』를 끝가지 읽는 의식을 행하는데(중간에 쉴 수 있는 독송임)독송의 종결과 더불어 애도의 기간도 끝나게 된다.
3. 세계 속의 힌두교 - 종교 분쟁, 그리고 현대 인도의 현상과 문제점
앞서 말 한 것처럼 힌두교는 인도의 대표적 종교이다. 하지만 극단 힌두주의자들에 의하여 힌두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도에서의 힌두교는 과연 어떠한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에 따른 세계의 시선은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스리랑카, 파키스탄의 독립운동과 같이 종교분쟁이 국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이에 따른 현대 인도 힌두교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과 현상들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1) 종교의 차이에 따른 인도의 분리
◉ 카슈미르 분쟁
1980년대 들어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인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외치는 잠무 카슈미르 해방전선(JKLF)이 결성되면서, 인도 정부군과의 무력충돌이 본격화됐다. 잠무 카슈미르는 이슬람교도의 비율이 64%에 달한다. 이들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지원을 받으며 인도군에 대한 테러전을 벌였고, 인도군은 민간인 탄압과 무자비한 보복을 가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12월 인도 국회의사당 폭탄테러와 지난 5월 인도병영 테러도 이 과정에서 발생, 양국 간 군사충돌 위기로 발전했다. 이슬람 무장세력은 주민들의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 잠무 카슈미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을 인도에 요구한다. 이에 대해 인도는 이들의 분리 독립 대신 자치 정도는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파키스탄은 이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지지하지만 분리 독립 대신 파키스탄으로의 편입을 원한다. 55년에 걸친 카슈미르 분쟁은 종교 갈등에서 출발, 지금은 인도․파키스탄의 영토분쟁, 인도․중국 간의 지역 패권 갈등, 테러와의 전쟁 등과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최근 인․파 분쟁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21세기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비극의 땅 카슈미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등 강대국들이 방관의 자세를 버리고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카슈미르 분쟁의 가장 큰 문제는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물론 양국의 국내 정치와도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이다. 동․서 파키스탄간의 정치적 내분에서 시작되어 동파키스탄이 독립국가 방글라데시로 분리되는 벵갈전쟁(3차 인-파 전쟁)이 1971년 12월에 발발되었다. 이 전쟁에서도 카슈미르 지역은 주요 전장이 되었다. 이처럼 카슈미르 분쟁은 기본적으로 종교적 갈등을 배경으로 한 분쟁으로서, 인도-파키스탄 및 인도-중국 간의 국경분쟁 성격을 지녀왔다. 그리고 인도 측을 지원하는 러시아(소련), 파키스탄을 지원하는 미국과 중국 등 개입세력의 국제관계 역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제분쟁이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는 내전의 성격이 가미되었다. 인도령 잠무-카슈미르 주에서 분리 독립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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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교전…2백여 명 사망 스리랑카 북부에서 어제 교전이 발생해 타밀 반군 200명과 스리랑카 정부군 43명이 숨졌다고 스리랑카 정부가 주장했습니다. 스리랑카 관리는 타밀반군과 정부군이 자프나 반도 북부에서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한 교전을 벌여 243명이 숨지고 224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말했습니다. 반군측은 그러나 어제 교전에서 정부군 75명이 숨지고 반군 10명이 숨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반군과 정부군은 그동안 교전으로 인한 적군의 사망자를 늘려 과장해 발표해왔습니다. [YTN 2006-10-12 16:34 - 신현준 기자] |
공식명칭이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인 스리랑카는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이다. 인도 대륙 남부에 마치 막 떨어진 물방울처럼 떠 있는 스리랑카는 신대륙 개척기 아프리카 대륙 남단을 도는 장기 항해에 지친 선원들이 인도양으로 접어들어 처음 만나는 큰 섬으로 선원들은 반가움과 상륙에 대한 기대로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스리랑카도 서구 열강들의 식민쟁탈전 과정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두어 차례 손바뀜 끝에 인도와 마찬가지로 영국 식민지로 들어갔고, 영국의 교묘한 분할통치 정책의 결과 종족갈등이 증폭되면서 결국 삶의 터전을 공유하던 이들끼리 서로 피를 흘리는 격렬한 증오가 온 땅에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종교 갈등에 종족 간 증오, 인도 남부와의 지정학적 연계성 때문에 좀처럼 출구를 찾기 어려운 내전의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
◇ 식민통치의 유산 - 싱할리와 타밀족의 갈등
스리랑카는 싱할리족이 전체인구 1천990만 명 중 74%를 차지하는 다수종족이다. 스리랑카 토착 타밀족 및 영국 식민통치시절 인도 남부에서 차농장 노동자로 대거 유입된 인도 타밀족(18%),스리랑카 무어족(7%)에 비해 압도적이다. 종교분포도 종족을 넘나드는 복잡성을 띠고 있지 않아 싱할리족은 대부분 불교도(70%)이고, 타밀족은 힌두교도(15%)다. 싱할리족은 기원전 6세기 무렵 인도에서 넘어와 이 지역을 장악하고 불교왕국을 세웠으나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영국 식민지를 거치면서 오히려 차별받는 계층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영국이 민족과 종족을 갈라놓는 분할통치 정책을 전개하면서 소수족인 타밀족을 상대적으로 우대하는 여러 수단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통적으로는 농업과 어업 등으로 구분됐던 계층간 갈등이 종족 간 갈등으로 전이되고, 그 양상도 심화되는 경향이 전개됐다. 영국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한 후 다수의 힘으로 정권을 장악한 싱할리족은 보수주의 정파가 교대로 집권하면서 싱할리족 위주의 정책을 전개해나갔다. 불교우대 정책을 펴고, 싱할리어를 유일 공용어로 지정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소수파인 타밀족은 당연히 반발했다. 특히 1970년대 초반 타밀족 거주지역에 싱할리족을 이주시키는 정책은 타밀족의 저항에 불을 댕겼다. 타밀족이 몰려 사는 자프나 등 북부와 동부 일원에서 여러 차례 폭동이 일어났고, 결국엔 급진 무장투쟁조직 타밀엘람해방호랑이가 타밀족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싱할리 정부와 타밀 반군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됐다. 1983년 자프나 폭동을 계기로 타밀엘람해방호랑이의 게릴라전이 본격화된 이래 2002년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휴전이 이뤄지기 전까지 스리랑카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어림잡아 6만5천여 명에 이른다.
◇ 타밀엘람해방호랑이
타밀엘람해방호랑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력으로 타밀족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대표적인 반군조직이다. `엘람'은 타밀어로 스리랑카를 의미하며 `호랑이'는 스리랑카 국기에도 등장하는 싱할리족의 상징 `사자'에 대응되는 개념이자 타밀족 옛 왕조의 전통문양이기도 하다. LTTE는 1983년 7월 자프나에서 발생했던 스리랑카 정부군 피살사건을 계기로 타밀족 1천여 명이 스리랑카 전역에서 보복 살해됐던 당시 결성됐다. LTTE는 온건파였던 ‘타밀통일해방전선(TULF)’을 제치고 대 스리랑카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한 뒤 무장봉기에 의한 독립 쟁취를 목표로 활동해왔다. 마오쩌둥주의를 표방하는 LTTE는 옛 소련으로부터 무장과 훈련을 지원받았으나 동구권 붕괴 이후에는 인도 남부와 해외 타밀족의 재정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LTTE는 자체 치안조직도 두고 있으며 전차와 대포, 소형고속정 등 중무장한 1만여 명의 병력을 자랑하고 있다. LTTE는 특히 비밀자살특공대격인 `검은 호랑이' 조직이 유명하다. 이들은 임산부를 이용한 자살폭탄 공격은 물론 노인이나 부녀자 등 상대를 가리지 않는 잔인한 테러로 스리랑카 싱할리족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와의 평화협상 대상도 타밀족 대표조직임을 자임하는 LTTE이다. 그러나 2002년 2월 22일 노르웨이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LTTE가 테러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는 LTTE를 테러조직으로 선언해 자산동결 등의 조치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 실패로 돌아간 인도의 개입
인도정부는 스리랑카와 접한 타밀나두 지역에는 스리랑카 타밀족과 유대감을 갖고 있는 타밀족 인구가 5천만 명이나 되는 데다 내전의 참화를 피해 좁은 해협을 건너 인도로 유입되는 스리랑카 타밀족의 숫자가 늘어나자 스리랑카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스리랑카 내전이 스리랑카 내부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입장에서는 동족이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는 논리에서였다. 스리랑카 정부로서도 엄청난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 남부의 타밀족과 국내 타밀족의 유대가 긴밀해질 경우 싱할리족이 오히려 소수로 몰리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런 사정으로 1987년 스리랑카 정부군-타밀반군의 전면충돌을 계기로 인도가 개입해 스리랑카는 북. 동부의 타밀족의 자치를 허용하는 대신 인도가 타밀반군 무장해제를 맡기로 협정이 체결됐다. 그러나 인도가 막상 7만 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스리랑카 타밀반군 지역에 파견해 무장해제에 나서자 반군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도군과 타밀반군이 충돌하게 됐다. 결국 인도군은 1990년 철수했지만 타밀반군 조직은 인도에 대한 보복으로 이듬해 라지브 간디가 유세차 타밀나두 지역을 방문하자 LTTE ‘검은 호랑이’ 소속인 여성 자살폭탄 요원을 보내 그를 암살하였다.
◇ 다시 불붙는 내전
스리랑카 내전은 2002년 평화협정 체결로 일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했다. 양측이 타협한 골자는 타밀반군이 독립국가 건설노선을 버리는 대신 스리랑카 동부와 북부지역을 자치 지구화한다는 일종의 연방제 채택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사라지지 않다가 작년 8월 타밀족 출신이면서 국제적으로 LTTE 불법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던 라크시만 카디르가마르 스리랑카 외무 장관의 피격사망사건을 계기로 스리랑카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무게중심이 다시 내전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다. 올 들어서도 지난 4월 스리랑카 육군본부 임산부 폭탄테러 사건, 6월 140여 명이 사상한 버스 폭탄테러 사건 등으로 양측의 충돌 수위가 점차 높아지면서 사망자수가 이미 700여 명을 훌쩍 넘어선 상태다. 이에 따라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 6월 국가 비상사태를 거듭 연장했고, 유럽연합(EU)은 LTTE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해 재정압박을 통한 무력화에 동참했다. 이로써 타밀반군에 대한 자금동결과 자금모금 불법화 등에 이미 나선 미국, 영국, 인도, 캐나다 등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압박강도는 한층 높아지게 됐다. 또 스리랑카 정부와 LTTE가 주도하는 타밀반군은 국제 휴전감시단의 중재 아래 다시 평화협상에 나섰지만 타밀반군 측이 북. 동부 임시자치정부 수립을 먼저 허용해줄 것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해 협상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다.
◉ 힌두교와 기독교의 대립
[국민일보] 인도 기독인 박해 심각하다… 힌두교 극단주의자들 폭행 일삼아
2006년 8월 31일 함태경 기자
한국오픈도어선교회가 30일 “인도 중부의 마디아 프라데시주 등에서 기독인들이 개종금지법을 어겼다고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모진 박해를 받고 있다”고 밝히고 한국 교회가 인도 기독인들을 위해 중보기도해주도록 요청했다. 선교회에 따르면 최근 마디아 프라데시주에서 힌두교도들이 세프르성경친교(SBF) 교회에 난입,자왈리 담임목사 등 기독인들에게 하키 스틱을 휘두르고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은 교회에서 500m쯤 떨어져 있는 경찰서로 기독인들을 끌고가면서 구타를 그치지 않았다. 경찰은 개종금지법을 적용,기독인들을 즉시 체포했다. 기독인들은 경찰서장의 갖은 폭언도 참아내야 했다. 다행히 현지 법원이 이들의 보석 신청을 받아들여 석방됐지만 언제 유사한 폭력 행위가 일어날지 모를 상황이다. 이달 중순에도 마디아 프라데시주의 자발푸르 지역에서 하나님의성회 소힌두교속 뷔노트 카살 목사가 개종금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처럼 인도 기독인들은 개종을 강요했다고 거짓 고소를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힌두교도들의 습격도 자주 받고 있다. 이는 마디아 프라데시주가 힌두교 민족주의 정당인 바라티야 자나타(BJP)당의 영향권에 있고 개종금지법을 강력하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종금지법은 특정인의 개종을 부추기거나 강요했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마디아 프라데시주를 비롯해 구자라트와 타밀나두,오리사주 등에서 적용되고 있다. 선교 전문가들은 “개종금지법이 기독교를 포함한 인도 소수종교들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 인도에서 종교분쟁은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일어났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교회와 선교사들에 대한 힌두교 강경세력의 공격이 급증하고 있다.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은 선교사와 교회 사역자들이 회유나 협박,부당한 뇌물 제공 등을 동원해 최하층 카스트에 속한 힌두교인 수백명을 매월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 인도 정부와 로마교황청이 갈등을 빚고 있다.
2006년 5월 25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19일, 인도 라자스탄주의회가 지난 3월 통과시킨 ‘반(反)개종법’을 ‘종교적 비관용’ 사례로 거론하며 개종 금지법안은 위헌이며 거부되어야 한다고 비판한 게 발단이다. 그러나 인도 외교부는 23일 뉴델리 주재 교황청 대리대사를 불러 불쾌함을 전하고 교황이 아마도 적절하게 보고받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아난드 샤르마 외교차관이 하원에 보고했다. 이에 교황청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뭄바이 대주교 출신으로 교황청 서열 3위인 이반 디아스 대주교는 성명을 통해 교황의 우려를 다시 강조했다고 인도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인디아가 24일 전했다. 라자스탄의 기독교 인사와 이슬람 관계자들은 교황의 19일 언급을 환영하며, 주 하원의 입법은 소수 종교를 위협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라자스탄의 5600만 인구 중 기독교신자는 0.11%, 무슬림 8%, 힌두 89%다.
인도의 개종금지법의 통과로 인하여 인도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카스트 제도의 명맥이라고 할 수 있는 힌두교가 아닌 다른 종교로의 개종은 대부분 카스트 제도의 하위 층민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자신들의 지위 억압을 벗어나기 위하여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인도의 입장에서 이는 그리 달가운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종교 개종 금지법이라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라서 기독교와의 대립은 더욱 심화 되었다. 극단 힌두주의자들로 인한 기독교의 박해 또한 힌두교와 기독교의 대립을 더욱 심화 시키고 있다.
◉ 힌두인의 불교로의 개종 증가
카스트제도 따른 차별과 냉대 벗어나는 탈출구 (뉴델리=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연합뉴스 2006년 10월 13일
최근 인도에서 10만여명의 힌두교도가 불교로 개종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13일 보도했다. 이들의 대부분은 힌두교도 가운데 최하위 계급인 불가족천민. 개종하는 이유는 수천년이 지나도록 근절되지 않고 있는 사회적인 차별과 냉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인도에서는 이달 들어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초대 법무장관에 올랐던 B.R. 암베드카르의 불교도 개종 50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개종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오는 14일 동북부 지역의 나구푸르에서 열리는 `세계 종교 자유의 날' 행사에도 수십만명의 불가촉천민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인도에서 개종 문제는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힌두 민족주의 정당으로 제1야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올해 초에 자신들이 집권하고 있는 라자스탄과 마드야 프라데시주에서 개종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부 허가를 받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사실상의 개종 금지령을 내린 셈이다. 하지만 불가촉 천민들이 힌두 사회에서 여전히 직면하고 있는 억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개종 뿐이다. 인도 헌법은 카스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카스트에 따른 차별과 냉대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실민들이 마을 우물을 함께 사용할 수 없고 별도의 그릇을 사용하는 음식점도 쉽게 볼 수제로 농촌에서는 천 있다. 많은 사람들이 천민들과 그릇을 함께 쓰면 "오염된다"고 생각하기 때문. 지난 2004년 12월 쓰나미에 난타당했던 타밀나두주의 난민촌에서조차 천민들은 식수를 따로 사용했을 정도였다. 대학에서는 자신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이유로 상위 카스트가 천민들을 폭행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인도의 개종율이 높아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카스트 제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힌두교는 카스트제도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법으로 존재해 왔으므로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를 바꿈으로써 지위 상승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도에서 천민 출신으로 국가 지도자가 된 대표적인 인물로는 암베드 카르와 지난 1997년부터 5년간 대통령을 지낸 코체릴 라만 나라야난 등이 있다. 하지만 이 2명 모두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사실은 인도에서 카스트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 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 현대인도 힌두교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문제점
(1) 종교 간의 충돌(이슬람과 시크교의 영향)
① 이슬람: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생겨난 이슬람은 16세기 인도의 무굴제국을 건설하고 마침내 인도 대륙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슬람은 알라의 절대적인 유일성을 강조하고 알라의 표상을 일체 금지하며 소를 희생 제물로 바칠 뿐 아니라 알라 앞에서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는 주장을 내세워 힌두교와의 현격한 차이를 드러냈다. 이러한 차이를 힌두교는 타 종교의 대한 관용성으로 자신의 근본체제 유지아래 이슬람의 많은 요소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이슬람의 인도전파는 파키스탄과 인도와의 분리와 무슬림과 힌두교간의 심각한 충돌문제를 나타내고 있다.
② 시크교: 나나크의 의해 창시된 시크교는 수세기 걸쳐 나타난 이슬람과 힌두교의 갈등사이에서 나타나게 된다. 시크교는 이슬람과 힌두교에 여러 개념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신 개념, 이론, 인간의 반응 이렇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신은 인간과 세상을 창조한 초월적이면서 내재적인 유일한 주재신이다.(이슬람) 둘째, 이들은 힌두교의 마야이론 그리고 업과 윤회개념을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시크교는 신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무슬림의 절대적인 복종보다는 신에 대한 찬양과 봉사의 박티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크교는 여러 구루들을 거쳐 호전적인 성격(ex)싱)을 띄게 되어 무슬림들에게는 적대감을 야기하게 되었고 오늘날 힌두교도들과의 유혈사태는 인도의 심각한 종교, 사회, 정치문제가 되고 있다.
(2) 종교사회개혁운동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게 됨에 따라 인도는 서구와 만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도는 기독교와 서구교육을 통한 과학지식과 만나게 되고 이러한 새로운 가치 도입은 인도 전통적 가치들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러한 서구사상에 도전에 대해 19세기 인도에 나타난 대표적인 종교사회 운동 네 가지를 종교적, 사회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① 브라모 협회(유일신 종교운동)
기독교와 서구사상 도전의 진보적 입장을 취한 브라모 협회는 람모한 로이에 의해 창설됐다. 종교적으로 이 협회의 가장 큰 특징은 <우파니샤드>의 일원론을 유일신적으로 해석하여 힌두교의 다신교적 성격과 우상숭배를 제거하려 하고 사회적으로는 인도의 비인간적 악습이라 비난받는 여러 관습들을 개혁하려 노력했다.(ex)수띠) 이러한 브라마 협회는 무슬림,기독교, 힌두교를 모두 수용하려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힌두의 유실론자들에게 국한되어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으나 힌두교 발전사로 볼 때 합리주의, 민족주의 성장 등 인도 종교 및 사회개혁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② 아리아협회(인도 전통에 대한 강조)
사라스바티에 의해 창설된 아리아 협회는 인도의 고대 전통, 즉 <리그베다>에 모든 진리(전통+과학진리)들과 해결책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ex)희생제의) 또 타 종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재개종하는 슛디 운동을 전개해 선교운동의 성격을 나타냈다. 사회적으로는 학교, 병원 설립 등에 활발한 사업을 벌여 교육과 사회사업 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 역시 힌두교 집단 내에서 큰 집단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③ 라마크리슈나 운동(전통의 재해석)
힌두 혁신운동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고 널리 전파된 라마크리슈나 운동은 스승인 라마크리슈나의 사상과 제자 스와미 비베카난다의 실질적인 전개로 이루어졌다. 스승 라마크리슈나는 칼리여신상에 신비경험 이후 느낀 다양한 여러 종교의 신비체험과 인도 여행을 통하여 두 가지의 사상적 이념을 주장했다. 먼저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동일 헌신을 추구한다는 종교보편주의와 인도 빈곤경험에서 느끼게 된 인간에 대한 봉사가 곧 신에 대한 봉사라는 사회봉사운동개념이다. 이러한 사상을 서구식 교육을 받은 비베카난다의 실질적인 전파(세계 종교회, 라마크리슈나 미션)활동으로 인도 내, 외부에서 가장 활발한 사회 봉사단체로 남아있게 하였다.
< 인도 힌두종교사회운동의 일반적 성격>
1. 종교적 사회적 측면 포함
2. 탈속적인 힌두교 사상을 새로운 상황, 현실 삶에 적합하고 참여하도록 전통 재해석
3. 개혁에 있어서 종교가 중요한 도구
→ 힌두교의 새로운 종합화
④ 신지회
신지회는 본래 힌두교의 형태가 아니라 러시아인에 의해 창설된 단체로 인도의 도입된 전 세계적으로 활동한 단체이다. ‘지혜’라 불리는 잃어버린 지식을 추구로 출발한 이 단체는 보편적인 인류애의 토대의 형성과 설명되지 않는 자연의 법칙과 인간 내에 잠재해 있는 신성한 힘들 발견하여 전 인류의 선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3) 세속화에 따른 현대 인도의 종교분쟁
20세기 후반 인도에는 종교분쟁, 카스트, 인구 등의 여러 심각한 문제점을 나타내게 된다. 이 중 인도사회 안에 종교분쟁문제는 다양성 속에서도 통합성을 유지해온 인도사회를 정치, 사회 여러 면에서 위태롭게 하고 있다. 더욱 이는 유혈사태로 나타나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궁극적 실재의 다양한 나타남과 최고의 종교적 가치에 이르는 많은 길이 있다는 믿음’으로 타 종교를 바라보는 힌두교의 관용성은 비교적 여러 시간동안 힌두교와 이슬람, 기독교, 시크교 등의 종교가 서로 침범하지 않으며 공존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힌두교의 이러한 관용성은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인도의 J.네루는 이러한 현상은 종교적 차이가 아니라 종교문제가 정치 문제화되면서 나타났다고 주장하였다.(ex)신정권 붕괴) 즉 현대에 들어 세속국가로 바뀐 오늘날의 인도사회가 힌두의 관용성 이론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사회의 힌두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의 새로운 것에 대한 유연한 반응은 여전히 대다수의 인도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살아있는 종교로 남게 했다. 즉 힌두교는 내, 외적 여러 변화를 성공적으로 대처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종교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 불가촉 천민의 개종과 인도의 개종 금지법 제정
인도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가촉 천민의 개종이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개종의 증가와 함께 힌두교 신자의 수는 감소하고 타 종교의 유입과 신자의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인도 정부는 개종 금지법을 제정하여 인도인의 개종을 반대하며 타 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현대 인도에서는 타 종교인에 대한 박해 또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과연 불가촉 천민의 개종을 막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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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의 신분제도와 달리트들의 탈 힌두교 바람 - 라비 투르카네는 인도의 젊은 엔지니어이다. 그는 지금 신을 벗고 두 손을 모으고 땡볕 아래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도하며 진정한 불교도가 되기 위하여 정진하고 있다. "나는 오늘부터 힌두교 신자가 아니다. 더 이상 힌두 우상에게 기도하러 사원에 갈 필요가 없다. 오늘부터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이다." 투르카네는 이렇게 되뇌이고 있다. 그가 사는 지방에서도 이와 같이 하층 카스트에 속한 인도인들이 힌두교를 이탈하여 다른 종교, 특히 불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많다. 전국적으로 수백만의 최하층 천민들이 이렇게 개종을 하고 있는데 그 개종의 근본 원인을 들여다보면 영적인 문제가 아닌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개종을 해야만 3천년간 그들을 짓눌러왔던 지긋지긋한 카스트제도에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것이다. 카스트제도는 최상계급인 소수의 브라만들 이외에는 존중받지 못하는 제도이고, 그들은 더 이상 이 제도의 영향력 아래 머물러 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 인도소식 중에서 - |
앞서 인도에서 불교로의 개종이 많아지고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개종을 요구하는 대부분의 계층은 달리트(=불가촉천민)들이다. 이들은 7천년 억압의 역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힌두국가인 인도에서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법적으로 카스트제도가 사라지긴 하였지만 아직도 그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 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는 이들의 개종을 반대하고 나섰으며 개종 금지법까지 제정하여 다른 종교로의 개종에 대한 법적 제제를 가하고 있다. 과연 인도의 이런 처사가 당연한 것이라 말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런 인도의 현실에 대하여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Ⅳ. 결 론
힌두교는 서구적인 관점, 특히 기독교나 이슬람과 같은 유일신교의 관점에서 볼 때 종교의 주요형성요소가 되는 특정 창시자나 공통된 교리체계와 관행 또는 체계화된 종교조직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공유하는 특정 경전 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힌두교는 오히려 단일한 신앙이나 행위체계가 아닌 '힌두인들이 믿는 다양한 종교형태들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놀라운 점은 그러한 다양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앞서 지적한 다양성과 더불어 힌두교의 또 다른 특성인 통합성과 관용성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이 통합성 속의 다양성 또는 다양성 속의 통합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관용성의 특성은 배제하기보다는 수용하려는 경향을 지닌 인도인의 속성에서 비롯된 듯하다. 힌두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사다나(Sadhana)'로 이해한다. 이 말은 목표에 이르다, 목표를 달성하다를 뜻하는 어근 사다(Sadha)에서 나온 말로 목표와 목표에 이르는 수단, 그리고 진리와 진리에 이르는 길 모두를 의미한다. 즉 사다나는 '삶의 최고의 목표에 이르는 길' 또는 '그것을 달성하는(실현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곧바로 힌두교에 대한 이해의 핵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목표란 바로 윤회(輪廻, Samsara)로부터의 해탈(解脫, Mukti 또는 Moksa)이다. 인도인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재상황과 세계를 고통스러운 것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그 고(苦)인 삶이 되풀이되어 윤회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재생(再生)의 되풀이인 윤회의 원인은 인간의 무지(無知)와 욕망 또는 집착 등으로 해서 하게 되는 행위, 즉 업(業, Karma)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이와 같이 윤회가 고로 파악되기 때문에 그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탈이 삶의 최고의 목표로 제시되게 된다. 따라서 힌두교는 '윤회로부터 해탈에 이르는 길 또는 진리'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힌두교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리고 그것의 조화로운 공존을 하나의 통합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종교형태의 다양성은 동일한 목표 즉 윤회로부터 해탈에 이르게 하는 여러 가지 다른 길들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얼핏 보아 전혀 연관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현상들 즉 소에 대한 숭배, 많은 신들에게 바쳐지는 다양한 의례, 요가 수행, 고도의 사상체계 등등은 그들이 인간의 궁극적인 추구점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란 점에서 일치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인도인들로 하여금 힌두교를 믿게 만드는 추진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힌두교는 그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다른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힌두교의 뿌리 깊은 역사와 카스트 제도의 밀접한 연관성은 ‘차별’이라는 악습을 낳아 현대에 들어와 인도의 발전을 저해 시키는 요소로 지적되어 오고 있지만 힌두교 자체를 부정만 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힌두교의 여러 특성들과 성격, 그리고 종류를 비롯한 세계 종교인 힌두교의 여러 현상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상의 정리를 통하여 우리가 조금 더 힌두교와 가까워 질 수 있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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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인도문화』,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 로버트 찰스 제너, 『힌두이즘』, 여래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두산출판사
■ 인터넷 - 다음, NAVER 백과사전
(출처/김진경의 카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