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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철학

영혼과 육체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19.09.24|조회수200 목록 댓글 0

 

영혼과 육체


신  창  석(대구 가톨릭대)



주제분야 : 중세철학, 심신이론, 토마스 아퀴나스

 

주 제 어 : 영혼, 토마스 아퀴나스

 

 

1. 문제제기

 

물질성과 정신성의 상호작용에 대한 문제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난제일 뿐만 아니라 오직 인간에게만 문제시되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20세기의 컴퓨터 혁명과 유전공학 및 심리학의 극단적 발전은 인간이 가진 기계적 육체와 정신적 영혼의 상호작용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문제는 심리학적 문제영역과 이념적 문제 영역을 벗어나 형이상학적 문제로 소급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은 영혼과 육체의 문제에 대한 20세기의 다양한 접근과 상이한 결론들이다. 20세기 철학자들은 영혼과 육체의 문제에 대해 주로 인식론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대체로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예를 들어 관념론적이고 선험적 인식론은 정신적 인식을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정신적 의식은 그 존재에 따라 물질적 세계와 육체에 선행하는 동시에 그 세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본다. 버클리, 칸트, 후설 계열의 철학자들이 주로 이런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감각주의, 경험주의 그리고 논리실증주의는 영혼과 육체의 문제를 가상적 문제로 치부하거나 가정적 물질주의로 치닫는다. 현대에서는 흄(D.Hume), 카르납(Carnap), 파이겔(Feigel), 파이어아벤트(Feierabend)등이 이러한 노선을 추구한다. 또한 그 중에서도 논리실증주의를 기초로 하는 비엔나학파의 슐리크(Schilck), 파이겔, 파이어아벤트는 심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이 단지 우리에게만 상이한 것으로 대두될 뿐, 사실은 동일하다고 가정한다. 결국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렇게 상이한 결론들의 근간에는 육체가 속하는 물질성과 영혼이 속하는 정신성의 본질규정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점이 은폐되어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일찍이 서양 철학의 고전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라는 “anima-forma-corporis” 형이상학적 원론을 개발한다. 이 학설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영혼론󰡕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주해서󰡕와 󰡔영혼론주해서󰡕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신학대전󰡕에 주제화되어 요약되어 있다. 그리고 20세기의 역량있는 토미스트들은 이 학설을 따라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첫째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원전에서 제시되는 “anima-forma-corporis”를 󰡔신학대전󰡕의 요약을 중심으로 해설하고자 한다. 이들의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는 질료형상주의(Hyle-Morphism)이므로, 주로 플라톤적 이원론과 대결하는 가운데 정립된다. 따라서 본 논문도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일원론과 이원론의 대결과정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둘째로, “anima-forma-corporis”에 대한 20세기의 연구는 배제하되, 토마스의 원문에 충실하게 진행할 것이다. 현대의 연구 역시 주로 토마스트들에 의해서 수행되어 왔으며, 그레트(Gredt), 파브로(Fabro), 드 프리에스(De Vries), 페기스(Pegis), 라너(Rahner), 코레트(Coreth), 피퍼(Pieper)등을 거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원문을 소개함으로써 현대 영혼론자들과의 대화를 준비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셋째로, 이러한 원문에 대한 연구 결과로 다음의 물음에 대해 최소한의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즉 “anima-forma-corporis”에 나타난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형이상학적 실마리는 어디서 발견될 수 있는가? 나아가 여타 학문이 인간과 인간적 행위를 고찰하는데 필요한 형이상학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2. 󰡔신학대전󰡕의 원문 해설을 위한 전제


1) 󰡔신학대전󰡕 제1부, 76 문제의 문헌적 윤곽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을 통일성이라는 단어로 일축하면서 영혼과 육체의 주요 문제를 시작한다.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다루던 문제를 제1부 76문제에서 “영혼과 육체의 통일성에 대하여”(de unione animae ad corpus) 라고 주제화하면서 본격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한다. 즉 영혼과 육체의 “통일성”이라는 개념 속에는 영혼이 어떤 종류의 상호작용을 하며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라는 현실적 사태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은 “통일성”이라는 개념 속에 근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토마스는 이러한 통일성을 다음과 같이 8개의 논항으로 나뉘어 고찰하고자 한다.

 

제1논항, 지성적 원리는 형상으로서 육체와 통일되는가?

제2논항, 지성적 원리는 육체가 증가하는 수만큼 다수화되는가?

제3논항, 지성적 원리를 형상으로 삼는 육체 속에는 또 다른 영혼이 존재하는가?

제4논항, 육체 속에는 또 다른 실체적 형상이 존재하는가?

제5논항, 지성적 원리를 형상으로 삼는 육체는 어떻게 존재해야만 하는가?

제6논항, 영혼은 그러한 육체와 우유적으로 통일하는가?1)

제7논항, 영혼은 다른 어떤 물체를 매개로 하여 육체와 통일되는가?

제8논항, 영혼은 육체의 모든 부분에 걸쳐 온전히 존재하는가?2)

 

이러한 8개의 물음을 던지고 있는 󰡔신학대전 I󰡕 제76문제는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해 당시에 제기되던 반대론자들의 견해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철학사에서 그리스 철학적 전통과 그리스도교 철학적 전통이 충돌하는 결정적 문제가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이러한 문제의 충돌을 어떤 관점에서 진술하고 또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가? 여기서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가 발견될 것이다.

 

제1논항은 플라톤적 견해와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로 대표되는 아라비아 철학자 아베로에스를 반박하는 방법으로 육체에 대한 영혼의 형상성을 전개하고 있다. 제2논항은 에베로에스 주의 연장선에 있는 브라방의 시제와 다찌안의 보에씨우스를 겨냥하고 있다.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로 불리는 이들은 물론 모든 사람을 위한 유일한 지성이 있을 뿐이고, 여기에 각각의 인간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이에 토마스는 육체의 수와 동일한 지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증해 낸다. 제3논항은 다시 플라톤의 견해를 겨냥하고 있다. 그는 개개의 인간에게는 식물적 성장혼[植魂], 동물적 감각혼[覺魂] 그리고 지성적 혼[靈魂]의 세가지 혼이 있다고 피력하지만, 토마스는 이를 강력히 논박하는 가운데 영혼의 단일성을 제시한다. 제4논항은 그리스도교철학 내의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학파들을 겨냥한다.

 

들은 인간에게 지성적 영혼 이외에도 또 하나의 실체적 형상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지만, 토마스는 이를 강력히 반박한다. 제5논항에서 토마스는 논박할 사람들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자만, 이면적으로는 플라톤주의자를 비롯하여 토마스 이후에 등장한 데카르트적 주장을 논박한다. 그들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두 종류의 온전한 실체임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후대에 속하는 말브랑쉬(Malebranche)는 영혼과 육체의 결합을 기회원인론(Okkassionalismus) 적으로 해명하면서, 신에 의한 결합을 주장한다. 그 후 라이프니쯔는 자신의 단자론에 따라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신에 의해 “예정된 조화”라고 해명한다. 토마스는 여기서 이러한 견해들과 달리 논증하므로 이들을 논박하는 셈이다. 그리고 제6논항과 제7논항에서는 영혼과 육체의 통일을 위해 제 3의 존재를 설정하는 모든 견해들을 논박한다. 끝으로 제8논항에서는 영혼과 육체의 통일성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이 대론에 등장되며, 대답에서 그 문장들의 진의가 밝혀진다.


2) “지성적 영혼”과 “지성”의 개념적 난제

 

영혼과 육체의 통일성을 나타내는 토마스의 문장 형식은 유일한 형식으로 서술되지도 않을 뿐더러 일의적으로 사용되지도 않는다. 토마스는 한편 “지성적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다”(anima intellectiva est forma corporis)는 유형을 사용하면서도, 다른 한편 “지성은 육체의 형상이다”(intellectus est forma corporis)는 유형을 사용한다. 일관성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는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주해하는 과정에서 사용되고, 후자는 아베로에스의 지성론을 논박하는 과정에서 사용된다.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지성적 영혼과 지성은 동의어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를 가지는가? 이 문제는 이미 한국에서도 특별하게 다루어진 바 있다.3)4)5)



3.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

 

이미 살펴본 대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문헌이 가지고 있는 내적 특징은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을 논리적 질서에 따라 해명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기보다는 시대적 논쟁 상대의 견해를 반박하는 논쟁적 구조를 띠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원문을 충실하게 선별하여 번역하고 소개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1) 육체의 형상으로서 지성적 원리(STh. I, q.76, a.1)

 

76문제의 제1논항은 󰡔신학대전󰡕 전체에 걸쳐서 가장 긴 논항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는 논제의 중요성과 함께 논쟁적 대상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 문헌에서 아주 특이한 점은 육체의 형상이 대론에서는 지성적 원리 내지는 지성으로 명명되면서 부정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러므로 지성은 형상으로서 육체와 통일되는 것이 아니다”는 형식을 취한다.6)

 

토마스는 제1 대론에서 다른 모든 논쟁 상대자들의 견해를 제쳐두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 III」을 인용한다.7)8)

 

토마스는 이러한 방법에 따라 본론을 구성한다. 첫째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을 추적하는 가운데 생명의 제일 원리로서의 인간적 영혼(anima humana)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사유행위들을 실행하도록 하는 제일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필연적으로 이렇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성적 활동의 원리인 바의 지성은 인간적 육체의 형상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제일 처음 활동하도록 하는 것[방법]은 그 활동이 귀속되는 바로 그것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육체로 하여금 제일 처음 치료되도록 하는 바로 그것은 건강이며, 영혼으로 하여금 알도록 하는 제일의 것은 지식인 바와 같다. 따라서 건강은 육체의 형상이며, 지식은 영혼의 형상이다.9)

 

둘째로 토마스는 영혼이 사유행위를 일으키는 제일의 것이라는 근거를 찾는다. 즉 본질적 형상이야말로 어떤 사물로 하여금 현실적으로 본질과 현존을 가지고 존재하도록 하고 활동하도록 하는 제일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 근거는, 어떤 것이든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한, 전혀 활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어떤 것으로 하여금 현실적으로 존재하도록 하는 바로 그 어떤 것을 통해서 그것이 활동한다. 그런데 육체로 하여금 살아있도록 하는 제일의 것이 영혼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생명은 생물의 다양한 단계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구체화되므로,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개개의 생명활동을 제일 처음으로 실행하도록 하는 것은 영혼[魂]이다.”10)

 

셋째로 토마스는 영혼이 지성적 활동의 원리인 한, 영혼이야말로 형상으로서 육체와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을 공고히 한다.


왜냐하면 영혼은 우리로 하여금 섭생[성장]하게 하고, 감각적으로 지각하게 하고, 공간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제일의 것이요, 이와 똑같이 우리로 하여금 인식[사유]하도록 하는 제일의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처음으로 사유하도록 하는 이 원리는 - 지성이라 불리든 지성적 영혼이라 불리든 간에 - 육체의 형상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 2권 2장에 나오는 논증이다.11)


이상의 논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삼단논법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며, 다음과 같이 기술될 수 있다.


제일 처음 활동하도록 하는 것은 그 활동이 속하는 것의 형상이다.

인간의 [사유]활동을 제일 처음 실행하도록 하는 것은 영혼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다.

 

이제 토마스의 본론은 이 삼단논법을 바탕으로 논적을 겨냥하기 시작한다. 즉 지성의 원리가 형상으로서 육체와 통일되지 않는다면, 사유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개별적 인간의 활동으로 규정될 수 있겠는가? 개인은 육체에 기초하고 또한 모든 개개인은 그 자신이 바로 사유하는 주체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의 전체로 사유하지는 않으므로, 결국 지성적 원리는 인간의 일부이며, 다른 부분인 육체와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물론 토마스는 여기서 아베로에스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그 부당성을 장황하게 해명한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 통일성 그 자체이다. 결국 영혼이라는 본질성과 육체라는 본질성에 걸쳐있는 이 통일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토마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반론에서 도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또 다시 해결의 실마리로 삼는다. “이 인간이 사유한다는 것은 지성적 원리가 바로 그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성의 활동 그 자체로부터 지성적 원리야말로 형상으로서 육체와 통일성을 이룬다는 사실이 밝혀진다.”12)13)

 

결국 지성적 원리는 형상으로서 육체와 통일성을 이룬다. 그렇다면 통일의 방식을 진술하는 “형상”이란 어떤 방식으로 진술될 수 있는가? 토마스는 이를 “탁월성”(nobilitas)로 해명한다. “형상은 탁월할수록 물체적 질료를 고도로 지배하며, 그런 만큼 질료에 덜 제한되며 그 힘으로 더욱 더 질료를 초월한다. 따라서 우리는 혼합된 물체[육체]의 형상이 근본적 성질로부터 야기되지 않는 어떤 행위[활동]를 갖고 있는 것을 보곤 한다. 나아가 형상의 탁월성 속에서 올라가면 갈수록, 형상의 힘이 질료를 초월하는 것을 더 많이 발견한다. 그래서 성장혼은 금속의 형상보다 더 질료를 초월하고, 감각혼은 성장혼 보다 더 질료를 초월한다. 그런데 인간적 혼[영혼]은 형상의 탁월성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것이다. 따라서 영혼은 그 힘에 있어서 육체적 물질이 어떤 식으로도 교류하지 못하는 그런 행위와 힘을 소유할 정도로 육체적 물질을 초월한다. 이 힘이 바로 지성이라 불린다.”14)

 

영혼이 육체를 초월하는 힘 그 자체에 바로 토마스 언어사용법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즉 토마스는 대론에서는 논적의 언어사용법에 맞추어 주로 지성적 원리(principium intellectivum) 내지는 지성(intellectus)을 사용하고 있으며, 본론과 대답에서는 주로 “인간적 영혼”(anima humana) 내지는 “지성적 영혼”(anima intellectiva)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의 긴장 사이에는 지성이야말로 영혼으로 하여금 육체적 물질성을 초월하도록 하는 힘이라는 사실이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토마스는 대체로 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을 해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적 근거는 어디서 발견될 수 있는가?


2) 실체적 형상의 유일성(STh. I, q.76, a.4)

 

지성적 영혼은 인간의 유일무이한 실체적 형상이다. 실체적 형상의 유일성은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또한 어떤 형이상학적 근거를 마련하는가? 토마스는 이 명제를 통하여 영혼과 육체의 결합에 가정될 수 있는 실체적 형상의 다수성을 배제한다. 먼저 대론(對論)을 살펴보면, 그 중에서도 형이상학적 중요성을 띠고 있는 것은 제일질료(materia prima)의 현실성을 주장하거나 육체성의 고유한 형상을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로, 인간과 모든 생물은 그 스스로 움직인다. 그런데 󰡔자연학󰡕 8권[5장]에서 증명되는 바와 같이, 스스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한 편은 움직이게 하는 부분이요 다른 편은 움직여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움직이게 하는 부분은 영혼이다. 그러므로 다른 한 편은 움직여질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연학󰡕 제5권[1장]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제일질료는 가능성 속에 있는 것이므로, 움직여질 수 없다. 오히려 움직여질 수 있는 것은 육체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모든 생물에는 육체를 구성되도록 하는 [혼 이외의] 다른 어떤 실체적 형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15)

 

이 대론은 영혼 이외에 제일질료를 하나의 육체로 구성시키는 또 하나의 형상을 전제하고 있다.


넷째로, 인간적 육체는 혼합된 물체이다. 그런데 혼합은 질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오직 소멸[분열]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본요소들의 형상들은 혼합된 육체 속에 남아있지 않으면 안되며, 이들은 실체적 형상들이다. 그러므로 인간적 육체에는 지성적 영혼 이외의 다른 실체적 형상들이 있다.16)

 

이 대론은 결국 “육체성의 형상”(forma corporalitatis)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론은 13세기의 학문이 대체로 주장하던 바이다. 즉 13세기의 철학과 신학은 영혼과 육체의 실체적 통일성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유일한 육체에 다수의 형상들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토마스는 여기서 13세기의 일반적 지식과 대결하게 되었다. 그런 만큼 토마스의 반론은 장엄하게 전개될 뿐만 아니라 그 만큼 유명한 명제로 철학사에 기록된다. 즉 “인간에게 지성적 영혼 이외에 다른 어떤 실체적 형상이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17)

 

본론에서 토마스는 더 이상 사유하는 자아의 경험적 사실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는 이 명제를 통하여 형이상학적 탐구를 시도하며, 이는 다른 여러 평행 문헌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된다.18)


이를 통찰하기 위해서는 실체적 형상과 우유적 형상의 차이는 우유적 형상이 절대적으로 존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존재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열(熱)은 그 [열의] 주체가 절대적 존재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열의 존재를 가지도록 한다. 이 때문에 어떤 것이 우유적 형상을 받을 경우에, 그것이 성립된다거나 생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되었다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하는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우유적 형상이 물러가면,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소멸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점에서 소멸되었다고 말한다.19)

 

토마스는 여기서 우유적 형상의 존재론적 특징을 공고히 하고 있다. 즉 우유적 형상은 우유적 존재자를 만들어낼 뿐이다. 이에 대립하여 절대적으로 존재자를 이끌어 내는 것이 실체적 형상이다.


반대로 실체적 형상은 절대적으로 존재를 부여한다. 이 때문에 실체적 형상의 등장을 통해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생겨났다고 말하고, 실체적 형상이 없어지면 그것이 절대적으로 소멸되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하여 제일질료를 불이나 공기 내지는 그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현실성 속의 존재자로 파악했던 고대의 자연철학자들도 결코 절대적으로 생성하거나 소멸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자연학󰡕 1권[4장]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무엇이] 되는 모든 것은 일종의 다른 것이 되는 것이라는 명제를 도출했다.20)

 

여기서 토마스는 실체적 형상과 우유적 형상이 가지고 있는 내적 특성으로부터 하나이고 동일한 사물에 다수의 실체적 형상이 존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즉 실체적 형상은 “절대적 존재”(esse simpliciter)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 사물의 존재 여부를 규정하는 반면에, 우유적 형상들은 항상 어떤 실체에 더불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다양한 우유적 존재를 부가한다. 결국 하나의 사물이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실체적 형상이요, 이렇게 있느냐 저렇게[어떻게] 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우유적 형상이다. 따라서 하나이고 동일한 주체 속에 있는 다수의 형상들은 제일 처음의 형상에 부가되는 것이므로, 결코 실체적일 수 없으며, 오직 우유적일 뿐이다. 이렇게 우유적 형상의 근거이자 출발점이 되는 실체적 형상의 유일성은 모든 자연적 질서에 타당하게 상정된다. 자연적 질서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하나이고 동일한 주체에 다수의 실체적 형상을 상정한다면, 어떤 종류의 출산이나 번식도 불가능하게 된다. 출산이나 번식은 실체적 변천으로서 실체적 비존재에서 존재에로의 과정이다. 그런데 이미 현실적 제일질료에 다수의 형상을 상정한다면, 출산되는 것이 이미 출산 이전에 하나의 실체로 현존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엄격한 의미의 출산은 불가능하게 되므로, 결국 어떤 생성이나 소멸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결과를 낳게된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논증 역시 자연적 질서 전체에 해당된다. 토마스는 이제 이러한 자연질서 전체의 논증을 인간의 실체적 형상에 적용시킨다.


만약 지성적 영혼 이외에 영혼의 근저[주체]를 현실성 속의 존재자이도록 하는 다른 어떤 실체적 형상이 질료 속에 있다고 가정된다면, 영혼이 절대적 존재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영혼은 실체적 형상도 아닐 것이요, 영혼의 등장에 의한 어떤 절대적 출산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요, 영혼의 물러남에 의한 절대적 소멸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런 일들은 특정의 관점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허위이다.21)

 

실체 또는 실체적으로 “있음”, 살아 “있음”, 감각적으로 “있음”, 인간으로 “있음”이라는 서술에서 “있음”이 지칭하는 “존재”는 결국 하나이고 동일한 개별자에 대해서만 서술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구체적으로 현실적인 “홍길동”에 대해서만 서술되어야 한다. 하나이고 동일한 주체 속에 있는 각각의 “존재” 차원이 서로 다른 다수의 실체적 형상에 결부된다면, 동일자에 대한 본질적이고 그 자체로 필연적인(per se necessario) 서술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제 토마스는 경험적 논증과 형이상학적 논증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 때문에 인간에게는 오직 지성적 영혼 이외에 다른 어떤 실체적 형상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혼은 감각혼과 성장혼을 포괄하는 바로 그 힘으로 다른 모든 하위의 형상들을 포괄하며, 다른 것들 속에 있는 불완전한 형상들이 움직이게 하는 것을 영혼 그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 동물에게 있는 감각혼에 대해서도, 식물에게 있는 성장혼에 대해서도 그리고 불완전한 형상에 마주하고 있는 일체의 완전한 형상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22)

 

결국 토마스는 인간으로 까지 이끌어 온 실체적 형상의 유일성을 다시금 모든 존재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시킨다. 바로 여기에 지성적 영혼이 실체적 형상으로서 육체와 통일성을 이루는 형이상학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는 지성적 영혼의 실체적 형상이요, 그것도 하나이고 동일한 실체적 형상이라는 사실이다. 지성적 영혼은 보다 높은 형상으로서 제일질료와 직접적 통일을 이루면서 가능적으로는 다른 모든 것들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지성적 영혼은 실체적 형상으로서 바로 그 인간적 개인에게 현실적 존재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을 바로 그 인간이게끔 한다. 나아가 여기서 인간을 바로 그 인간이게끔 한다는 것은 인간이 되는 바로 그 개인으로 하여금 육체적으로 “있게” 하고, 살아 “있게” 하고, 감각적으로 “있게” 하고 결국 바로 그러한 한에서의 인간으로 “있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도 이제 토마스의 형이상학적 근거에 따라 새롭게 그러나 정확하게 이해된다. 이는 토마스의 대답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히 영혼은 ‘육체의 현실성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 속에 삶을 가진 본성적이고 분류된 육체의 현실성‘이라고 말한다. 영혼은 그러한 가능성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지 않다. 영혼을 현실성으로 삼는 것 속에는 영혼 역시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는 마치 열(熱)은 뜨거운 것의 현실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빛은 빛나는 것의 현실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 이는 마치 빛나는 것이 빛 없이도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그것은 빛을 통하여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혼은 육체의 현실성이라고들 말한다. 왜냐하면 육체는 영혼을 통하여 육체를 가질 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으로] 분류되어 있으면서 또한 가능성 속에 삶을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일 현실성은 둘째 현실성, 즉 행위[작용, 활동]의 관점에서는 가능성 속에 있다. 따라서 영혼은 그러한 가능성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영혼은 그런 가능성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지 않다.23)



4. 결어

 

지금까지 영혼은 물리적이고 생체적인 육체의 현실적 형상이라는 토마스의 논증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던 바이다. 문제는 영혼이 육체와 상호작용을 하는 형이상학적 근거이다. 토마스는 논증을 진행하는 동안 영혼이 형상으로서 육체와 통일성을 이룬다는 것과 인간의 실체적 형상이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공고히 한다. 이러한 논증은 독단적 탐구가 아니라 당대의 논적을 극도로 의식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작업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형이상학적 단서는 무엇인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은 동시에 현실적으로 유일하면서 다수적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실체적 존재자에 타당하게 서술된다. 따라서 토마스는 여기서 형상의 다수성을 형이상학 내적인 모순으로 드러낸다. 하나이고 유일한 것은 동시에 현실적으로 유일하면서 다수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유일성과 다수성은 내적 형식에 따라 서로를 배제한다. 이에 대한 문헌적 근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이미 연구되어 있다.24)

 

토마스는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 따라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를 찾고 있다. 그러나 당대는 똑같은 아리스토텔레스 문헌을 토마스와는 달리 해석하고 있었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를 충실하게 추적하는 가운데 영혼에 대한 당대의 오류를 오류로 드러내면서, 실체적 형상의 유일성을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로 공고히 한 것이다. 따라서 토마스가 󰡔신학대전󰡕에서 전개하는 논증은 결국 세계의 다양성이 유일성 속에서 조화한다는 거대한 형이상학적 주제의 일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조화 속에서 존재와 비존재, 실존과 허무, 고통과 기쁨 그리고 인간의 영혼과 육체에 관한 논의도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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