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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 초월에 관한 연구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19.10.15|조회수369 목록 댓글 0

 

존재론적 초월에 관한 연구

 

 

손 영 삼

 

 

 

이 글에서 우리는 하이데거 철학에서 해명되고 있는 존재론적 초월에 관해 살펴 보고자 한다. 존재론적 초월이란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자인 현존재의 존재 자체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물음은 "존재이해는 어떻게 가능한가?"가 아니라, "존재론적 초월에 대한 해명은 철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이데거 철학의 철학사적 위치를 파악하고자 한다.

 

철학사에서 하이데거는 뛰어난 현대 철학자로 평가된다. 그런데 그가 왜 그런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하이데거 자신은 그의 주저 {존재와 시간}을 발표한 뒤, 이 글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해서 글을 쓰고 강의와 강연을 했다. 이런 사정에서 보자면,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평가는 보다 철저한 이해를 통해 하이데거 철학의 철학사적 위치가 밝혀질 때 그 정당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이데거 철학의 뛰어난 점을 존재론적 초월에 대한 해명으로부터 철학함의 선천성을 확인하는 데에서 찾고자 한다. 하이데거 철학은 기초 존재론으로서 그때까지 철학에서 탐문되지 않고 있던 존재를 탐문의 주제로 삼아 철학의 근거를 밝히려 한다. 존재에 관한 탐문이 철학의 근거를 드러내는 일이라면, 이 탐문에서 드러나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것을 우리는 선천성이라고 파악한다.

{존재와 시간}의 현존재 분석론에서 하이데거는 존재이해의 내적 가능성을 현존재의 존재론적 초월에 대한 해명으로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이해 자체를 존재론적 초월로 해석한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자인 현존재는 인간의 근원으로 파악되며, 존재이해는 인간의 모든 태도가 근거하고 있는 선천적 토대로서 철학함의 근원으로 해석되고 있다.

현존재의 존재론적 초월에 대한 해명은 인간과 인간에게 주어지는 세계의 의미를 밝힘으로써 근대철학이 남겨둔 선천성의 문제를 해결하여 철학적 탐문의 근거를 제시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 자유의 산물인 철학은 인간 그 자체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하이데거 철학은 근대철학에서 시도된 철학적 탐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완결하고 있으며, 아울러 철학함의 근거를 제시하여 철학이 근본학의 이념을 이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있다.

주제어 : 존재론적 초월, 존재이해, 현존재, 기초 존재론, 선천성

 

1. 들어가는 말

 

서양 철학사에서 근대철학은 인간을 철학적 탐문의 실마리로 삼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에 대해 우리는 한편으로는 수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의심을 품게 된다. 인간이 철학적 탐문의 실마리가 됨으로써 새롭게 열리는 사태가 바르게 파악되는 한에서 근대철학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있는가? 칸트 자신은 철학적 탐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로부터 비롯하는 사태를 바르게 파악하고 있었는가? 이와 같은 우리의 의심은 근대철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근거로 삼는다.

근세철학은 철학적 물음의 전면적인 방향전환을 수행하여, 주체로부터, 자아로부터 출발하였다. 자아에로 향한 물음의 이와 같은 근본적인 방향전환에 상응하여, 이제 중심에 서게 된 그 존재자가 그의 특수한 존재양식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추측이나 기대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제는 존재론이 주체를 범례적인 존재자로 받아들여 존재 개념을 주체의 존재양식의 관점에서 해석하게 되리라고 기대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근세철학이 일차적으로 주체에로 방향을 잡게 된 동기는 기초존재론적 동기가 아니다.

주체나 자아의 존재에 관한 물음을 묻지 않음으로써 근대철학은 주체의 주체성이나 자아의 자아성을 바르게 파악할 수 없었으며, 그래서 생득관념이나 a priori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밝혀내지 않은 채로 남겨 두었다. 이와 같은 근대철학의 경향은 그 새로운 출발과는 달리 여전히 고대철학으로부터 비롯하는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는 셈이다. 고대철학으로부터 비롯하는 전통은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존재자로부터 존재를 파악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고대철학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인간의 인간 자신에 대한 오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근대철학이 남겨 놓은 선천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철학적 탐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완성하는 것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하이데거는 선천성의 문제를 존재자에 대한 존재의 선천성으로부터 해명한다. 존재의 선천성이란, 존재에 의해 존재자가 존재자로 규정되는 한, 존재가 존재자보다 앞섬을 말한다. 존재자를 존재자로 대하는 한, 우리 인간은 존재자를 존재자로 규정하는 존재를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지 알고 있다. 이러한 현사실적 사태를 하이데거는 존재이해라 일컫는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를 분석하면서 존재이해의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이 일은 지금까지 대체로 존재 문제에만 한정되어 연구되어 왔지만, 우리는 이 글에서 존재이해의 가능성을 밝히는 일이 존재론적 초월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일이며, 이러한 해명으로부터 철학함의 선천성이 밝혀지고 있다는 것을 살펴 보고자 한다. '2. 초월이 왜 문제인가?'에서는 현존재 분석으로부터 존재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는 하이데거의 철학이 초월을 해명하려는 전술과 선천성을 확인하려는 전략에 의해 근거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3. 초월이 어떻게 해명되는가?'에서는 현존재의 존재이해로부터 초월이 어饽게 해명되고 선천성이 어떻게 확인되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4. 초월의 해명으로 무엇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서는 존재론적 초월이 해명되고 선천성이 확인됨으로써 철학 자체가 어떻게 규정되고, 이렇게 규정된 철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근대철학에 대한 긍적적 평가에서 바르게 파악되지 못한 사태를 지적하고,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평가를 다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2. 초월이 왜 문제인가?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초월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다.

"초월의 문제"는 어떻게 한 주체가 [자신의] 밖으로 나가 한 객체에 이르는가 ― 이때에 객체의 총체성이 세계의 이념과 동일시된다 ― 하는 물음이 될 수 없다.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존재자가 세계내부적으로 만나게 되고 만나게 되는 것으로서 객관화될 수 있는 것을 존재론적으로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탈자적-지평적으로 기초지어진 세계의 초월로 소급해감으로써 우리는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인식론적 초월의 문제라는 것이 주체-객체 연관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한 탓으로 그 물음의 설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이데거는 지적하고 있다. 주체-객체의 연관은, 주체와 객체가 존재자인 한, 존재자가 존재자일 수 있는 가능성에서부터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철학은 존재자인 주체와 객체의 존재에 관해 묻지 않음으로써 초월의 문제라는 걸림돌에 부딪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근대철학의 사정은 존재의 문제에서부터 비롯한다.

가. 존재의 문제

{존재와 시간}에서 주된 물음은 '현존재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이다. 이 물음은 우선 존재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존재의 문제란 존재를 존재자로부터 파악하는 사태에서 비롯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존재는 존재자로부터 파악될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로 규정하는 것으로 존재자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존재자에 대한 태도를 취하기 위해서는 이 태도에 앞서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하며, 우리 인간의 삶이 존재자에 대한 태도로 이루어지는 한,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 인간은 존재자에 대한 태도에 앞서 그때마다 이미 존재를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의 모든 태도는 존재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현사실을 깨닫지 못한 탓으로 우리 인간은 대체로 존재자로부터 존재를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파악된 존재는 존재자가 우리 인간에게 자명한 만큼이나 자명하며, 그래서 우리 인간은 존재에 관해 더 이상 물음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자로부터 파악되는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로 규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에 의해 규정된 존재자의 존재성(Seiendheit) 또는 실재성(Realität)일 뿐이다. 이와 같이 존재가 아닌 것이 존재로 간주되고, 그래서 존재에 관한 물음이 물어지지 않는 사태가 존재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이데거는 먼저 존재이해의 가능성을 해석하여 존재와 존재자의 구별, 곧 존재론적 차이를 밝히려 한다. 이 일이 현존재 분석론이다.

 

그런데 존재의 문제는 존재에 관한 물음을 묻지 않는 것만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존재에 관한 물음을 묻지 않는 우리 인간의 경향은 철학적 탐문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를테면 근대철학이 존재자인 주체와 객체의 존재에 관해 묻지 않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존재의 문제는 철학적 탐문에서 근거의 문제로 곧바로 이어진다. 물론 이러한 사정은 우리 인간의 모든 태도에 해당된다. 존재에 관한 물음을 묻지 않음으로써 적어도 철학적 탐문을 포함한 우리 인간의 모든 태도는 그 근거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인간의 모든 태도가 존재이해에 근거하고 있는 한, 존재이해에서 이해된 존재는, 비록 우리 인간이 깨닫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인간의 모든 태도가 근거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존재에 관한 물음을 묻지 않은 근대철학은 탐구 대상의 근거에 관한 물음을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탐구 자체의 근거에 관한 물음도 묻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비록 존재에 관한 물음을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의 모든 태도의 밑바탕에는 어김 없이 존재이해가 자리하고 있는 현사실은 우리 인간과 존재 사이에 어떤 수수께끼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사유로 하여금 존재의 진리가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갖는 관련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사유로 하여금 존재 자신을 그 진리에 있어서 알맞게 사유하도록 하나의 작은 길을 열어 주는 것 ― 《존재와 시간》에서 시도된 사유는 바로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도상에 있다. 이러한 길 위에서는, 달리 말해 존재의 진리에 대한 물음을 돕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인간과 존재 사이에 놓인 수수께끼를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분석론에서 존재이해의 가능성에 관한 물음을 물으면서 풀어내고 있다. 현존재 분석론의 근본의도는 존재이해의 내적 가능성을 밝혀내는 것, 곧 초월의 내적 가능성을 밝혀내는 것이다.

나. 존재론적 초월

지금까지 초월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주로 논의되어 왔다. 인식론적 관심에서 초월은 인식 주체와 인식 객체 사이의 관계에서 정신이라는 내면적 영역에 있는 주체가 어떻게 외면적 영역의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으로부터 문제거리가 된다. 신학적인 관심에서 초월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에서 창조주인 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라는 물음으로부터 문제거리가 된다. 그리고 인식론적 초월 개념과 신학적 초월 개념이 연결되어 초월적 객체인 무제약자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부터 초월문제가 논의되었다. 이와 같은 초월의 문제는 철학적 탐문을 밑받침하는 주춧돌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철학적 탐문을 주춤거리게 하는 걸림돌이었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해명하고자 하는 초월은 철저하게 존재론적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하이데거의 철학은 존재론,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초 존재론이다. 하이데거의 기초 존재론은 현존재의 분석론에서 출발하여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로 하이데거는 이전의 철학이 존재의 문제 때문에 남겨 놓은 근거의 문제를 해결하여 철학이 근본학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근거의 문제는 철학이 인간 자유의 산물인 한, 더 이상 상상의 날개를 펴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철학적 탐문활동은 스스로가 떠맡은 근거의 문제에 그때마다 걸려 넘어지곤 했다. 그 원인을 때로는 인간의 능력에서, 때로는 탐문활동의 대상이나 방법에서 찾아 그 대안들이 제시되거나, 마침내는 근거의 문제를 허깨비로 몰아 부치기도 해보지만, 그때마다 근거의 문제는 어김없이 불거지고 만다. 이러한 사정은 어떠한 까닭으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근거가 남아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철학에서 근거의 문제를 해결하려던 시도와는 달리 하이데거는 철학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존재를 문제거리로 삼아 근거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근거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고찰하기 위한 발판은 존재문제 일반에 놓여 있다. 그런데 존재문제 일반은 현존재의 분석론을 통해 준비되며, 현존재의 분석론은 초월을 근본현상으로 열어밝힌다.

말하자면 현존재 분석론에서 열어밝혀지는 초월은 근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근본현상이다. 근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철학의 시도는 초월이라는 걸림돌에 번번이 걸려 넘어지곤 했다. 그래서 때로는 초월을 배제하는 방안이 강구되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남겨진 여백 때문에 근거의 문제 자체가 해결되지 않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데거 철학에서 초월은 오히려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서 적극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철학에서 문제가 되었던 초월은 인간이라는 존재자와 인간이 아닌 존재자 사이의 관계로서 초월의 영역은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하이데거는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함으로써 초월을 존재 관계로 파악하여 존재론적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초월의 문제는 존재자인 현존재가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라는 물음으로 제기된다.

존재와 존재구조는 모든 존재자를 넘어서 있으며 한 존재자가 가지는 존재하는 모든 가능한 규정성을 넘어서 있다. 존재는 단적으로 초월이다.

우리 인간들 각자가 그것인 현존재는 그 존재에 있어 존재자를 존재자로 대하는 한에서 나름대로 존재를 이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존재자를 넘어서 있는 존재를 존재자인 현존재가 이해하고 있는 한, 현존재는 존재자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러한 현존재의 존재이해 자체를 하이데거는 초월로 파악한다.

철학에서 대개 사물들, 말하자면 대상들이 초월자라고들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초월적인 것, 다시 말해 초월하는 것은 현존재와 마주 서 있는 사물이 아니다. 오히려 엄밀한 의미의 초월자는 현존재 자체이다. 초월은 현존재의 존재론적 구조에 대한 한 규정이다.

이러한 초월은 지금까지 알려진 초월 개념에 비추어 본다면 거꾸로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초월의 문제에 대한 하이데거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보게 된다. 칸트가 자신의 철학을 초월론적 철학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초월이 그에게 철학적 문제의 중심 속으로 움직여 들어갔을 때, 그가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던 그것에 대한 이해가 비로소 처음으로 올바르게 이해된 존재론적 초월 개념에서부터 밝혀진다.

초월의 참된 존재론적 의미에 따르면, "존재론적으로 바르게 이해된 현존재라는 의미의 <주체들>이 초월하는 것, 말하자면, 자신을 관통하면서 넘어서고 있는 것"이어서 인식 주체와 인식 객체 사이의 관계에서 논의된 초월의 문제는 새로운 차원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해결된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논의되는 초월은 현존재의 초월이다. 다시 말해 우리들 인간 각자가 그것인 현존재가 초월한다. 이와 같은 초월은 존재론적으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하며, 그래서 하이데거는 그 이전의 철학에서 논의되던 초월과 구별하여 존재론적 초월이라고 부른다. 존재론적 초월의 형식적 구조는 현존재가 존재자를 넘어서 세계로 초월한다. 현존재는 초월함으로써 존재를 이해하며, 비로소 존재자에 대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따라서 현존재에게 있어서 초월은 이따금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태도에 앞서 일어나는 근본구성"으로서 현존재의 존재사건, 곧 현존재의 존재 자체이다.

 

존재론적 초월에서 초월하는 자는 현존재이다. 그런데 현존재도 하나의 존재자라는 점에서 보면, 존재론적 초월도 공간적인 이동이라는 문제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존재자인 현존재가 마주 서 있는 다른 존재자 쪽으로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어떤 경계 또는 틈을 어떻게 넘어 서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존재자에 대한, 보다 정확하게는 존재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하는 것일 뿐이다. 초월하는 자인 현존재는 존재자이기는 하나, 존재자에 대한 존재의 보다 이름(선천성)이라는 원리에 따르면, 존재를 이해하는 한에서 비로소 현존재에게 그 자신도 하나의 존재자로 드러나게 된다. 이와 같이 현존재의 초월은 현존재가 다른 존재자에 대해 취하는 가능한 태도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현존재의 존재의 근본구성이며, 이 근본구성을 바탕으로 비로소 존재자에 대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현존재의 초월이 존재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한, 주체-객체의 연관에서 비롯하는 공간적인 이동이라는 문제는 제기될 수 없다. 오히려 현존재의 초월에 의해 주체-객체의 연관이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 "초월은 주체의 주체성의 근원적인 구성이다." 현존재의 초월에 의해 주체는 비로소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현존재의 초월은 주체-객체의 연관에서 논의될 수 없다.

초월은 주체를 어떤 내적 공간에 당분간 가두어 두었던 경계를 넘어 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넘어 서게 되는 것은 특히나 주체의 초월을 근거로 주체에 개방될 수 있는 존재자 자체이다.

지금까지 주체는 정신이라는 내면적 영역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현존재의 초월이 주체성의 근원적인 구성인 한, 주체가 그 안에 존재하는 정신이라는 내면적 영역도 초월에 의해서야 비로소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존재가 그 자신도 그 가운데 하나인 존재자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재자를 넘어서 존재자 이전의 존재로 초월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초월하는 자인 현존재는 자연을 넘어서 존재한다. 비록 현존재가 현사실적으로는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고 하더라도.

현존재의 초월이 존재자를 넘어서는 것인 한, 현존재가 그쪽으로 초월하는 그것은 객체가 아니다. "주체가 그쪽으로 초월하는 그것은 우리가 세계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현존재가 그쪽으로 초월하는 그것인 세계는 우리가 자연이라 부르기도 하는, 말하자면 객체의 총체성으로 알고 있는 그것이 아니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논의되는 초월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풀어야 한다. "현존재의 초월이라는 근본 현상을 우리는 세계-내-존재라는 표현으로 표시한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초월이 근본현상으로 드러나게 되는 까닭은 현존재의 근본구성이 세계-내-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존재는 그때마다 세계 내에 존재하며, 세계 내에 존재하기 위해서 초월한다.

 

이와 같은 현존재의 초월인 존재론적 초월에서 우리는 현존재의 선천성을 확인할 수 있다. 현존재의 선천성이란, 존재이해가 존재의 근원인 한,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자인 현존재는 인간과 세계에 앞서는 근원이면서 동시에 근거라는 현사실을 말한다. 존재의 문제를 제기하고, 현존재 분석론에서 존재이해의 가능성을 탐문하는 하이데거의 의도는 존재론적 초월을 해명하는 전술과 선천성을 확인하는 전략에 의해 근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표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형식적인 구조에서 살펴 본 현존재의 초월을 현상학적이면서 해석학적으로 밝혀 드러내는 일이 현존재의 분석론이다. 이제 현존재의 분석론을 따라 가면서 그때마다 드러나는 현존재의 초월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살펴 보기로 한다.

 

3. 초월이 어떻게 해명되는가?

{존재와 시간}의 현존재 분석론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라는 물음을 묻고 있다. 이 물음에 대한 잠정적인 답은 다음과 같다. "오직 현존재가 시간성으로서 규정되어 있는 한에서만, 자기 자신에게 앞질러 달려가보는 결단성이라는 특징지은 본래적 전체존재가능을 가능케 한다. 시간성이 본래적인 염려의 의미로서 밝혀진다." 다시 말해 "현존재전체성의 실존론적-존재론적 구성틀은 시간성에 근거하고 있다." 현존재의 존재인 관심의 존재론적 의미가 시간성으로 밝혀짐으로써 비로소 초월에 대한 적극적 해명이 가능하게 된다.

 

현존재 분석론은 현존재에 대한 예비적 기초분석과 근원적인 실존론적 해석, 그리고 존재이해의 지평인 시간에 대한 근원적 해명으로 이루어진다. 현존재에 대한 예비적 기초분석에서는 현존재의 존재가 관심으로 밝혀지고, 이 관심에 대한 근원적인 실존론적 해석에서는 관심의 존재론적 의미가 시간성으로 밝혀진다. 시간에 대한 근원적 해명에서는 존재 일반을 이해하는 지평이 존재-시간성으로 밝혀질 예정이었다. 이와 같은 형식적 구조에서 보자면, 현존재 분석론은 초월을 적극적으로 해명할 문제거리로 삼지는 않는 듯하다.

 

그러나 예비적 기초분석에서 주체-객체-연관과 주체의 초월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언급되는 초월은 인식과 관련된 전통적인 초월 개념으로서 하이데거가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존재론적 초월은 아니다. 존재론적 초월은 아직은 세계-내 존재라는 현존재의 근본구성으로 논의되고 있을 뿐이지만, 현존재 분석론이 전개되는 방법에 따르면, 차츰 그 밑그림이 그려지면서 중심문제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현존재의 존재가 그 평균적 일상성에서 분석되고 있는 예비적 기초분석에서 존재론적 초월은 사실문제로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비적 기초분석을 존재론적 초월에 대한 소극적 해명으로 파악한다. 예비적 기초분석에서 현존재의 존재로 밝혀진 관심에 대한 근원적인 실존론적 해석에서 존재론적 초월의 가능성이 현존재의 존재의미인 시간성에 의해 밝혀진다. 사실문제로 확인된 존재론적 초월의 권리문제에 관해 논의하는 근원적인 실존론적 해석을 우리는 존재론적 초월에 대한 적극적 해명으로 파악한다.

가. 초월에 대한 소극적 해명

예비적 기초분석에서는 현존재의 근본구성인 세계-내-존재가 그 평균적 일상성에서 분석된다. 현존재의 평균적 일상성은 우리 인간의 이론적 또는 실천적 태도로부터 비롯하는 무차별적인 일상적 삶이다. 인간의 무차별적인 일상적 삶의 밑바탕에 현존재의 근본구성인 세계-내-존재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현존재의 존재가 관심이라는 것이 예비적 기초분석에서 밝혀진다.

현존재의 평균적 일상성은 빠져 있으며 열어밝혀져 있는, 내던져져 있으며 기획투사하는 세계-내-존재로서 규정될 수 있으며, 이때 이 세계-내-존재에게는 "세계" 곁에 있음과 타인들과 더불어 있음에서 바로 그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다.

"현존재의 존재는 (세계내부적으로 만나게 되는 존재자) 곁에 있음으로서 자기를-앞질러-이미-(세계)-안에 있음을 말한다."

이와 같이 현존재의 평균적 일상성이 세계-내-존재로부터 바르게 파악될 때, 인식론적 초월이라는 문제거리도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인식함에 있어서 주체-객체-연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어떻게 인식하는 주체가 그의 내면의 '영역'에서 나와 '다른 외부의' 영역으로 가는가, 어떻게 도대체 인식함이 하나의 대상을 가질 수 있는가, 결국에 가서 주체가 다른 영역으로 뛰어들 필요가 없이 대상을 인식할 수 있기 위해서는 대상 자체가 어떻게 생각되어야 하는가?" 그러나 인식하는 주체의 존재양식이 세계-내-존재에 근거하는 한, '내면'과 '다른 외부'라는 영역구분이나 그에 따른 영역이동으로서의 초월은 일종의 오해일 뿐이다.

 

자신의 존재에서 바로 이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는 그러한 존재자인 현존재는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을 향해 자신을 기획투사하면서 존재하며, 그래서 그때마다 자기 자신을 앞질러,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넘어서 이미 하나의 세계 내에 있다. 따라서 인식함에서 주체는 ― 그 근원에서 보자면 현존재는 ― 비로소 그의 내면영역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이미 '바깥에', 곧 그때마다 이미 발견된 세계에서 만나는 존재자 곁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의 모든 태도는 이미 하나의 세계를 전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식론적 초월의 문제는, 인식하는 주체의 존재양식이 세계-내-존재라는 근본구성에서부터 바르게 파악될 때, 더 이상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현존재의 초월이다. 현존재는 그 자신의 존재인 (세계내부적으로 만나게 되는 존재자) 곁에 있음으로서 자기를-앞질러-이미-(세계)-안에 있음에서 초월한다. 현존재의 평균적 일상성에서 사실의 문제로 확인된 존재론적 초월의 가능성이 밝혀져야 인식론적 초월의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될 것이다.

나. 초월에 대한 적극적 해명
예비적인 기초분석에서 인식론적 초월이 존재론적 초월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 존재론적 초월이 현존재의 관심에서 현사실로 드러났다. 이제 문제는 현사실인 존재론적 초월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다. 현존재에 대한 예비적 기초분석에서 현존재의 존재로 밝혀진 관심의 존재론적 의미가 근원적인 실존론적 해석에서 시간성으로 밝혀진다.

도래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면서 결단성은 자신을 현재화하면서 상황으로 데려온다. 기재는 도래에서 발원하며, 그래서 존재해온 (더 적합하게는, 존재해오고 있는) 도래가 현재를 자기 자신에서부터 내보낸다. 이런 식으로 존재해오며-현재화하는 도래로서 통일적인 현상을 우리는 시간성이라고 이름한다.

시간성은 그 자체에 있어 그 자체에 대해서 근원적인 "자기 밖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격지은 도래, 기재, 현재라는 현상들을 시간성의 탈자태들이라고 이름한다.

현존재의 존재의미인 시간성이 근원적인 자기 밖에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현존재의 초월이 적극적으로 해명된다. 현존재의 초월에 대한 해명에서 문제거리는 현존재가 거기로 초월하고 있는 세계이다.

세계와 같은 것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세계는 어떤 의미로 있는가, 세계는 무엇을 어떻게 초월하는가, "비의존적인" 세계내부적 존재자가 어떻게 초월하는 세계와 "함께" 연관되어 있는가?

이 세계를 우리가 세계라고 알고 있는 그것으로 받아 들이게 될 경우, 우리는 다시금 초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주체의 초월이 현존재의 초월에 근거하고 있는 한, 현존재가 거기로 초월하고 있는 세계는 우리가 세계라고 알고 있는 그것의 근거로 밝혀져야 한다. 현존재에게 하나의 세계가 열어밝혀져 있어야 한다. 세계는, 현존재가 본질상 세계-내-존재로서 실존한다면, 현존재의 현사실적 실존과 더불어 열어밝혀져 있다. 그리고 더구나 현존재의 존재가 시간성에 근거한다면, 이 시간성은 세계-내-존재를 그리고 그로써 현존재의 초월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어떻게 세계와 같은 것이 현존재와의 통일성 안에서 존재론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가? 현존재가 세계-내-존재로서 실존할 수 있으려면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현존재는 자기 자신의 존재가능 때문에 실존하며, 이러한 실존은 현존재의 자기이해이다. 실존하는 현존재가 그 내에서 자기를 이해하고 있는 세계는 현사실적 실존과 더불어 거기에(da) 존재한다(sein).

세계의 실존론적-시간적 가능조건은 시간성이 탈자적 통일성으로서 지평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거기에 놓여 있다.

시간성의 탈자태에는 지평적 도식인 거기에로가 속하고, 이 지평적 도식의 통일성이 시간성의 탈자적 통일성에 근거하고 있다.

현존재가 시간화되는 한, 또한 하나의 세계도 있다. 시간성으로서의 자신의 존재의 관점에서 자신을 시간화하면서 현존재는 시간성의 탈자적-지평적 구성틀에 근거해서 본질적으로 "하나의 세계 안에" 존재한다. 세계는 눈앞에 있는 것도 손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시간성 안에서 시간화된다. 세계는 탈자태의 '자기-밖에'와 더불어 "거기에" "있다". 현존재가 실존하지 않는다면, 세계도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 이전의 것이면서 우리가 세계라고 알고 있는 것의 근원이며 근거이다. 오직 탈자적-지평적 시간성의 근거 위에서만 현존재의 공간에로의 침입이 가능하다.

이러한 탈자적-지평적으로 기초지어진 세계의 초월에서 우리는 인식론적 초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존재가 주관 또는 주체의 근원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럴 경우 세계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마는 낭패가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적-초월적 세계는 어떠한 객체보다도 더 객관적이다.

왜냐하면 객체는 시간적-초월적 세계 안에서 비로소 객체일 수 있으며, 이런 한에서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객체들이 우리와 만날 때, 세계가 미리 앞서 이해되어 있으며,"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 모든 객체들보다 더 멀리 밖에 있다."

 

4. 초월의 해명으로 무엇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이데거 철학에서 존재론적 초월이 해명됨으로써 다음과 같은 성과가 확보된다. 첫째, 지금까지 철학적 탐문의 걸림돌이었던 초월의 문제가 해결된다. 둘째, 철학함의 선천성이 해명됨으로써 근거의 문제가 해결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초월의 문제와 근거의 문제는 하나의 뿌리인 존재의 문제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이 뿌리는 철학의 어떤 입장이나 어떤 이론에만 한정되지는 않고, 어쩌면 우리 인간 모두의 깊숙한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이 그때마다 어떤 존재자에 대한 태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이 태도가 그때마다 어떤 세계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고 있다. 그런데 존재자에 대한 태도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가? 이 가능성에 대한 물음은 앞서 말한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태 때문에 적극적으로 탐문되지 않은 채로 남겨져 있은 셈이다. 바로 여기에 존재의 문제가 놓여 있다. 어떻게 보면 존재는 그야말로 자명한 것일 수 있다. 내가 있고, 내 앞에 내가 아닌 어떤 것들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자명한 것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가 자명하다고 알고 있는 그것은 다만 '있는 나'와 '있는 내 앞에 있는 어떤 것들', 곧 존재자들일 뿐이다. 그러면 존재는 어떠한가? 존재자의 자명성으로부터 존재의 자명성을 우리는 어림잡고 있을 뿐이다. 물론 존재자가 우리에게 자명한 만큼 존재도 자명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대체로 존재자와 존재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으며, 그래서 철학에서도 그 사정은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철학적 탐문의 결과 때문에 우리가 존재자와 존재의 관계를 앞서 말한 것처럼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헤겔의 말처럼 철학은 일상을 거꾸로 본다고 자처하면서도, 무엇에 홀리기나 한 것처럼, 존재자와 존재의 관계만큼은 고집스럽게도 일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는 정반대이다.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이게 하는 것으로서 존재자를 규정한다. 그러므로 존재는 원리상 존재자보다 앞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존재자를 존재자로 대할 때, 우리는 이미 존재자보다 먼저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태를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를 거꾸로 알고 있다.

존재는 선험으로서 존재자보다 이르다. 이러한 선험의 의미, 다시 말해 [보다 이름]의 의미와 그 가능성은 오늘날까지 해명되지 않고 있다. 존재 규정들과 존재 자체가 왜 이러한 [보다 이름]의 특징을 지녀야만 하며, 또한 어떻게 그러한 [보다 이름]이 가능한지는 한번도 물어진 적이 없다.

"[거꾸로된 세계]에 속하는 [보다 이름]이 통속적인 지성에 의해서는 오히려 [보다 나중]으로 파악"되며, 이러한 사태가 그대로 철학적 탐문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존재의 문제이다.

 

그런데 존재의 문제는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철학에서는 초월의 문제와 근거의 문제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존재의 문제가 해명되지 않는 한, 철학은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고 알고 있는 인간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존재자라고 알고 있는 것과 우리가 이 존재자들의 총합이라고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해 탐구할 것이며, 이런 사정 아래에서 철학은 결코 거꾸로된 세계로 한 걸음도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은 인간을 철학적 탐문의 중심에 두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철학은, 그 자신 [주체]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그것을 철학적 탐구의 중심에 놓건, 존재론적 근본문제들을 해명할 때 영혼, 정신, 의식, 주체, 자아 등에 의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인간을 철학적 탐문의 중심에 두었다는 것만으로 근대철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마땅하지 못하다. 그런데 근대철학은 적어도 철학함의 근거를 인간에게서 발견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철학보다는 돋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철학은 철학함의 근거인 인간의 생득성 또는 선천성을 해명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생득성 또는 선천성으로부터 비롯하는 거꾸로된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있다.

[생득성]이라는 이 모호한 표현은 오직 데카르트 이래 헤겔에 이르기까지 주관적인 것과 동일시한 보다 이름, 선행, 선험만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칸트의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도 같은 사정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식 주관에 의한 인식 대상의 구성이라는 대담한 기획은, 주관주의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는 지극히 마땅한 조심스러움 때문인지, 그로부터 새롭게 열리는 사태 앞에서 멈추어 버린다. 주관의 주관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지 않은 채, 우리가 인간이라고 알고 있는 그것으로부터 주관을 이끌어 냄으로써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완결하지 못한 셈이다.

 

하이데거는 그 이전의 철학들이 놓여 있는 사정을 존재의 문제에서부터 비롯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존재에 관한 탐문을 시도했다. 이렇게 시도된 존재에 관한 탐문은 인간의 본질과 존재의 진리 사이의 원초적인 관련, 곧 초월의 문제를 존재론적으로 밝혀냄으로써 a priori에 대한 해명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통해 근거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있다. "실존이란 흡사 [이러한 [존재론적] 구별을 이해하는 가운데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별을 행할 수 있는 영혼만이 동물의 영혼을 뛰어넘어 인간의 영혼이 될 자격을 갖는다."

 

5. 맺는 말

 

하이데거 철학은 주로 존재 문제와 관련되어 연구되거나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와 이해에서 우리는 하이데거 철학의 두드러진 점을 그때까지 철학에서 묻지 않고 있었던 존재에 관해 묻는 것으로 알게 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 우리는 하이데거가 존재에 관한 물음으로 이룩하고자 했던 바를 초월과 관련지어 살펴 보았다. 존재론적 초월에 대한 해명이 과연 철학함의 선천성을 확인하는 일로 이어지는가 하는 문제는 좀더 깊은 연구를 통해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사에서 하이데거는 뛰어난 현대 철학자로 평가된다. 그런데 그가 왜 그런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하이데거 자신은 그의 주저 {존재와 시간}을 발표한 뒤, 이 글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해서 글을 쓰고 강의와 강연을 했다.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근거의 본질}, {라이프니쯔에서 비롯하는 논리학의 형이상학적 시원들},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 {시간과 존재} 등에서 때로는 무와 관련지어, 때로는 초월과 관련지어, 때로는 근거와 관련지어 {존재와 시간}에 대한 해명을 거듭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을 통해 하이데거가 일깨우고자 했던 바를 우리는 '거꾸로된 세계'로의 안내로 보고자 했다. 존재에 관한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존재와 존재자의 구별을 곧잘 놓쳐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현존재를 인간의 근원으로 본다면,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게 되며 그리고 이 존재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자는 무엇일까 하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의외로 거꾸로된 그러나 낯설지는 않은 세계를 만나게 되었으며, 이에 대해 우리는 현존재의 선천성으로 나름대로 해명하면서 하이데거 철학의 두드러진 점을 찾고자 했다.


참 고 문 헌

 

M. Heidegger, Sein und Zeit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글방, 서울 1998), 15. Aufl., Max Niemeyer Verlag, Tübingen 1979.

Ders., Die Grundprobleme der Phänomenologie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이기상 옮김, 문예출판사, 서울 1994), Vittorio Klostermann, Frankfurt am Main 1975.

Ders., 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Logik im Ausgang von Leibniz, Vittorio Klostermann, Frankfurt am Main 1978.

Ders., Vom Wesen des Grundes, 5. Aufl., Vittorio Klostermann, Frankfurt am Main 1965.

Ders., Was ist Metaphysik?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이기상 옮김, 서광사, 서울 1995), Vittorio Klostermann, Frankfurt am Main 1969.

[Zusammenfassung]

Ein Studium über die ontologische Transzendenz

Son, Young-sam (Pusan Univ. of Education)

In dieser Arbeit versuchen wir die ontologische Transzendenz in Heidegger- schenphilosophie zu verstehen. Unter der ontologischen Transzendenz versteht Heidegger das Seinsverständnis des Daseins. Aber wir fragen nicht, wie das Seinsverständnis möglich ist, sondern welchen Sinn in Geschichte der Philosophie die Klärung der ontologischen Transzendenz hat. Dadurch können wir den philo- sopiegeschichtlichen Ort der Heideggerschenphilosophie fassen.

Ohne Zögern schätzt man Heidegger als ausgezeichneten Philosoph in der Gegenwart. Unserer Meinung nach aber sagt niemand davon, warum Heidegger so geschätzt wird. Nach der Veröffentlichung von Sein und Zeit überdies bemüht Heidegger sich immer wieder darum, ein Mißverständnis von seinem Buch zu lösen. In diesen Ümständen gesehen, muß seine Philosophie noch einmal grund- sätzlich verstanden werden.

Wir versuchen eine Eigentümlichkeit der Heideggerschenphilosophie in der Klärung der ontologischen Transzendenz zu finden. Seine Philosophie als fundamentale Ontologie fragt nach dem Sein, das bis dahin in der Philosophie nicht gefragt wird. Was ist denn der Grund der Philosophie, wenn die Frage nach dem Sein eine Frage nach dem Grund der Philosophie ist? Wir fassen Apriorität als diesen Grund.

In der Daseinsanalytik aufweist Heidegger die innere Möglichkeit des Seins- verständnis durch die Klärung der ontologischen Transzendenz. Mit andern Worten interpretiert Heidegger das Seinsverständnis des Daseins selbst als die ontologische Transzendenz. In der Philosophie Heideggers wird das Dasein, das das Sein versteht, als Ursprung des Menschen gefaßt, und das Seinsverständnis wird als das apriorische Fundament, an dem alle menschliche Verhaltungen ihren Grund haben, denn Ursprung des Philosophieren ausgelegt.

Diese Klärung der ontologischen Transzendenz schließt den Sinn des Menschen und der Welt auf, die dem Menschen gegeben wird, und dann erörtet das Problem der Apriorität, das die neuzeitliche Philosophie hinterließ. Und dann wir finden, fundamentale Ontologie vollendet kopernikanische Wendung der Philosophie, die neuzeitliche Philosophie versuchte, und legt zugleich den Grund zu der Philosophie.

Schlagwörter : ontologische Transzendenz, Seinsverständnis, Dasein,

Fundamentalontologie, Aprioritä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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