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과 심리철학
형이상학과 심리철학의 관계에 대한 답은 형이상학을 어떤 학문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20세기 영미 철학권에서 많은 책들이 형이상학(metaphysics)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책에 따라서 주제나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특히 심신문제와 관련지어 생각하면, 어떤 책은 심신문제를 굉장히 비중있게 다루지만(가령, Taylor의 형이상학, 엄정식역), 어떤 책들에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시야를 유럽쪽이나, 고대, 중세, 근대등으로 넓힌다면 그 차이는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띄리라 생각합니다.
형이상학 책들이 심신문제 (혹은 심리철학의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떠나서, 형이상학을 존재에 대한 학문이라고 한다면, 심신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형이상학적인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심신문제는 결국 '이 세계에 무엇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가령 오늘날 주류라 할 수 있는 물리주의는, 이 세계는 오직 물리주의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갖게되는 형이상학적 부담은, 그렇다면 소위 우리가 심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존재론적 성격은 어떤 것인가를 해명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심적인 것은 물리적인 것과는 전혀 구분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졌기에, 우리가 물리주의적인 입장을 지지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먼저 심적인 것은 사실 물리주의적인 것과 동일한 것이거나(동일론), 아니면 실제로는 심리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가령, 신화적인 대상들처럼) 우리의 비과학적 언어사용에 기인한 오해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주장 (제거주의), 혹은 심적인 것은 물리적인 대상이 갖는 어떤 비물리적 속성을 가리킨다는 주장 (비 환원주의, 기능주의, 개별자 동일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은,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주장으로 정리되기도 하지만, 분석철학적 전통에서는 이런 논쟁들이 우리가 존재하는 대상을 기술하는 방식, 범주에 관한 논의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전개됩니다. 가령 물리적인 기술방식과 독립적으로 물리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논의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과거의 많은 철학자들은 심리철학적 문제를 심리적 언어와 물리적 언의의 관계에 관한 문제로 보기도 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심리철학에 결부된 언어의 문제를 보다 첨예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이 물리적인 것인가라고 물어 봅시다. 많은 철학자들은 오늘날 (혹은 미래의) 물리이론과 독립적으로 물리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문제가 이론과 대상간의 관계문제입니다. 대상은 이론 독립적인 것일까 아니면 이론의존적인 것일까요. 여기서 전통적인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문제가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나타납니다. (이런 점에서 심리철학은 언어철학, 과학철학과 독립적으로 논의 될 수 없습니다.)
물론, 현대의 심리철학적 문제들이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전부를 망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세적 전통에서는 형이상학을 일반 형이상학과 특수 형이상학으로 나누는데, 특수 형이상학 중의 영혼론에 관한 부분이 오늘날의 심리철학과 가장 맞닿아 있는 분야이겠지요. 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존재, 대상 혹은 범주등에 관한 일반 형이상학적 문제들도 여전히 심리철학 내에서 새로운 탈을 쓰고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굳이 정리하자면, 형이상학은 심리철학보다는 훨씬 더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철학분과 (혹은 분과의 이름)입니다. 이런 점에서 심리철학은 이러한 형이상학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철학의 문제의식을 좀더 확대하여 과장하자면, 심리철학은 현대의 철학자들이 오늘날의 관심과 관점에서,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적인 문제라 볼 수 있는 것들을, 오늘날의 언어로 탐구하고 논구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의 한 형태라 불러도 저는 거의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부르는 가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가지고 어떠한 방식으로 탐구하고 논의하고 있는가 이겠지요.
형이상학 책들이 심신문제 (혹은 심리철학의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떠나서, 형이상학을 존재에 대한 학문이라고 한다면, 심신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형이상학적인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심신문제는 결국 '이 세계에 무엇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가령 오늘날 주류라 할 수 있는 물리주의는, 이 세계는 오직 물리주의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갖게되는 형이상학적 부담은, 그렇다면 소위 우리가 심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존재론적 성격은 어떤 것인가를 해명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심적인 것은 물리적인 것과는 전혀 구분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졌기에, 우리가 물리주의적인 입장을 지지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먼저 심적인 것은 사실 물리주의적인 것과 동일한 것이거나(동일론), 아니면 실제로는 심리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가령, 신화적인 대상들처럼) 우리의 비과학적 언어사용에 기인한 오해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주장 (제거주의), 혹은 심적인 것은 물리적인 대상이 갖는 어떤 비물리적 속성을 가리킨다는 주장 (비 환원주의, 기능주의, 개별자 동일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은,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주장으로 정리되기도 하지만, 분석철학적 전통에서는 이런 논쟁들이 우리가 존재하는 대상을 기술하는 방식, 범주에 관한 논의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전개됩니다. 가령 물리적인 기술방식과 독립적으로 물리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논의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과거의 많은 철학자들은 심리철학적 문제를 심리적 언어와 물리적 언의의 관계에 관한 문제로 보기도 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심리철학에 결부된 언어의 문제를 보다 첨예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이 물리적인 것인가라고 물어 봅시다. 많은 철학자들은 오늘날 (혹은 미래의) 물리이론과 독립적으로 물리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문제가 이론과 대상간의 관계문제입니다. 대상은 이론 독립적인 것일까 아니면 이론의존적인 것일까요. 여기서 전통적인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문제가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나타납니다. (이런 점에서 심리철학은 언어철학, 과학철학과 독립적으로 논의 될 수 없습니다.)
물론, 현대의 심리철학적 문제들이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전부를 망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세적 전통에서는 형이상학을 일반 형이상학과 특수 형이상학으로 나누는데, 특수 형이상학 중의 영혼론에 관한 부분이 오늘날의 심리철학과 가장 맞닿아 있는 분야이겠지요. 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존재, 대상 혹은 범주등에 관한 일반 형이상학적 문제들도 여전히 심리철학 내에서 새로운 탈을 쓰고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굳이 정리하자면, 형이상학은 심리철학보다는 훨씬 더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철학분과 (혹은 분과의 이름)입니다. 이런 점에서 심리철학은 이러한 형이상학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철학의 문제의식을 좀더 확대하여 과장하자면, 심리철학은 현대의 철학자들이 오늘날의 관심과 관점에서,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적인 문제라 볼 수 있는 것들을, 오늘날의 언어로 탐구하고 논구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의 한 형태라 불러도 저는 거의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부르는 가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가지고 어떠한 방식으로 탐구하고 논의하고 있는가 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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