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 분석심리학의 개별화(individualization)
칼 융 (Carl Jung)은 성인발달에 있어서 특히 중년기의 성격발달을 중시하여 40세를 인생의 정오에 비유하였다.
청년기에 어느 일방으로 편향되었던 삶의 태도가 중년기에 와서 자기원형(self archetype)의 힘에 의해 균형을 이루게 되고, 이를 통해서 자기실현, 또는 개별화(indivisualization)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개별화에 첫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던 자신(self)의 부분을 인식하는 것이다.이 일은 중년까지는 일어날 수 없다. 융은 개별화 과정을 독특한 개인, 하나의 동일체적 존재(homogeneous being)가 되어가는 것으로 규정지었는데 그것 역시 자기 자신이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별화를 '자신답게 되는 것(coming to selfhood)' 혹은 '자아인식(自我認識, self-realization)'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별화는 본능적인 것으로서 노력을 한다 해도 거의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다(융은 완전히 개별화된 성격으로서 예수와 석가를 예로 들었다). 개별화를 위한 노력으로서 우리는 생애 전반기에 지침이 되었던 행동, 가치, 사고 방식을 버리고 무의식부(無意識部)에 도달해야 한다. 우리는 융이 했던 것처럼 보류나 억제 없이 대담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 무의식과 대결해야 한다.
무의식의 소리를 인식 속으로 끌어들여 그것이 말하는 것을 듣고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 촉각을 세워 꿈과 환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무의식부의 자발적인 흐름대로 맡김으로써, 그림, 글짓기 혹은 다른 형태의 표현방식 속에서 융이 말한 "창조적 상(creative imagination)"을 연습해야 한다. 무의식은 진정한 자신을 우리에게 표출해준다.
그러나 이 무의식의 힘이 우리 삶에 유입되도록 하는 것이 그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표현을 받아들여 무의식적 과정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의식과 무의식의 힘은 동등한 협력자가 된다.
개별화된 인간에게는 성격의 어느 영역도 의식부나 무의식부에 의해서, 특정한 기능이나 태도에 의해서 혹은 원형(原型)의 어느 것에 의해서도 한 측면만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모두가 조화로운 균형상태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성격의 의식적 측면에 대한 강조가 약화되었다는 것이 건강한 사람의 삶은 이성적 요소의 지시를 덜 받는다는 뜻인가?
융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인 것 같고 그럴 필요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성(理性)에 입각한 원칙에 따라서만 생활하는 것은 우리가 완전한 인간성을 획득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융은 "인간은 이성만으로 된 창조물이 아니며, 또 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를
이성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무의식의 비이성적 힘은 계속 무시당하기에는(생의 전반기에 성공하려고 노력할 때 그러하듯), 너무나 중요한 인간 본성의 일부이다.
개별화에 두번째로 요구되는 것으로는, 성인 초기의 물질적 목표와 그것을 가능케 했던 성격 특성들을 포기하는 것이 포함된다. 인생 전반기의 목표가 후반기에는 무의미해지며, 태도와 기능도 마찬가지이다. 성인 초기에는 한가지 태도(외향성 혹은 내향성)와 한가지 기능(감각, 직관, 사유 혹은 감정)이 지배하고 있었고 다른 것들은 부수적이었던 것을 상기해보라. 인생 전반기에는 그렇게 필수 불가결했던 성격의 편중성이 후반기에는 전혀 적절하지 않게 된다. 개별화되면 어느 하나의 기능이나 태도가 우세하지 않다. 모든 것이 표현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래야 한다. 성격의 이러한 측면들이 모여 균형을 이룬다.
예를 들어 이십대에 외향적이었다면 중년기에는 내향적인 특징도 의식하게 된다. 행동이 사유(思惟) 기능에 의해 지배되었었다면 감각, 직관, 감정기능 역시 의식하게 될 것이다. 전에는 상반되게 존재하던 특성이나 특질이 이젠 모두 표현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