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심리학.철학

과학과 철학 - 추측과 반박의 방법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19.07.19|조회수165 목록 댓글 0

 

과학과 철학 - 추측과 반박의 방법

 

 

김보현(울산대 철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작년 언제인가 본교 철학과 교수들과 울산지역 고등학교 철학관련 교사들의 회동이 있었다. 본교 철학과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철학교실 운영에 관한 정기적인 모임이었다. 이 자리에서 고등학교에 계신 선생님들로부터 고교생들의 과학철학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는 전언과 함께 청소년 철학교실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달라는 요구를 듣고, 과학방법론 강의를 연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연재할 강의 제목을 '과학과 철학'으로 정하고, 그 첫 번째 것으로 귀납주의적 과학관을 강의했다. 지난 학기에 열렸던 제3기 청소년 철학교실에서의 일이다.

귀납주의자들은 과학에서는 귀납의 방법이 사용된다고 믿는다. 과학자들은 개별적인 사례를 가능한 한 많이 관찰하고 귀납추론으로 그것을 일반화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이론, 법칙, 원리 등으로 불리는 과학적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획득 방법은 과학에서 그리고 과학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어떤 것이 과학인가 아닌가는 그것이 이 방법을 사용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개별적인 관찰의 결과를 귀납 추론을 통해 이론이나 법칙으로 일반화하는 과정을 거친 지식만이 과학적인 지식이다. 이 과정은 관찰의 확실성을 손상 없이 이론이나 법칙으로 전이시켜주기 때문에 과학의 지식은 철학이나 역사 예술 등과 같은 여타 영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생성되는 '견해'들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우월하다.

그러나 귀납의 원리는 논리적으로 부당한 원리이기 때문에 과학의 방법을 귀납적 방법으로 설명하려는 귀납주의의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만약 과학에서 귀납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그 방법에 의해 생성된 이론이나 법칙 등은 순수 관찰에서 결과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따라서 관찰이 지닌 확실성도 물려받지 못할 것이다. 과학적 지식을 여타의 지식보다 확실한 것으로 만들려던 귀납주의 본래의 의도가 이렇게 좌절되자, 과학성을 확실성이 아닌 반증가능성으로 보려는 반증주의가 대두했다. 오늘은 반증주의의 성립배경과 그것의 방법론 그리고 문제점을 살펴본다.

 

2. 과학적 지식의 성립

 

우리는 어떤 판단이나 주장은 지식이라고 존중하고 다른 것은 단순한 견해에 불과하다고 소홀하게 취급하는데 그 기준은 틀릴 가능성이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주장은 증명된 것으로 틀릴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지식이지만, 4이상의 자연수는 예컨대 4=2+2처럼, 2개의 소수의 합으로 표시될 수 있다는 주장은 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견해 또는 추측에 불과하다. 머리가 좋은지 여부가 뇌회(腦回)에 달려있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확인된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것의 진술은 지식이다. 그러나 두개골이 클수록 머리가 좋다는 어느 이발사의 신념은 그 개인의 견해일 뿐이다.

 

틀림없는 확실성이 참된 지식의 요건이기 때문에 확실성의 확보는 고래로 많은 철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감각(感覺)을 지식의 확실한 근원으로 보는 귀납주의자들은 감각 지(感覺知)로부터의 빈틈없는 귀납추론이 참된 지식의 성립을 보장한다고 여겼다. 지식을 건물에 비유하여 말하자면, 튼튼한 지반 위에 견고한 벽돌로 지어져야 건물이 안전한 것처럼, 주장이나 판단도 감각 지라는 확실한 토대 위에 정초한 것이라야 확실한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귀납주의자들은 건물을 지을 때 지반을 튼튼하게 다지고 그렇게 다져진 지반 위에 벽돌을 하나 하나 꼼꼼하게 쌓아 올리는 것처럼, 지식을 얻을 때도 의심할 수 없는 감각 지로부터 귀납적인 방식으로 지식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이론이나 법칙은 실제로 이렇게(관찰자료들을 귀납추론을 통해 일반화함으로써) 생성된 지식이다.  

 

과학적 지식인 이론, 법칙, 원리 등은 모두 보편명제로 표현된다. 예를 들면, '시간과 공간은 각각 관측자에 대하여 상대적으로만 의미를 갖는다'(상대성 이론), '외부로부터의 힘의 작용이 없으면 물체의 운동상태는 변하지 않는다'(관성의 법칙), 그리고 '물 속에 잠긴 물체는 잠긴 부분의 부피의 물 무게만큼의 부력을 받는다'(아르키메데스의 원리)는 모두 보편명제이다. 이제 논의의 편의상,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이론, 법칙, 원리 등의 과학적 지식을 표현하는 명제의 전형으로 삼는다면, 귀납주의자들의 생각은 이렇게 분석된다. 과학적 지식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까마귀 R1, R2, R3...Rk 등에 대한 관찰명제들('R1은 검다'&'R2는 검다'&'R3는 검다'&...&'Rk는 검다')로부터 (귀납적으로 추론되어) 나온 명제이기 때문에, 이 관찰명제들이 확실한 한,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3. 검증과 반증

 

귀납주의자들은 과학이론은 확실한 직접지(관찰)로부터 (귀납되어) 나왔기 때문에 참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관찰 또는 경험이 이론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것의 정당성을 경험을 통해 증명하는 것을 검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귀납주의자들은 과학적 지식이 검증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귀납추론을 논리적으로 부당하게 보는 많은 철학자들은 귀납주의자들의 이런 주장을 비판했다. 귀납의 과정을 통해 단칭명제들로부터 일반화된 전칭명제는 그 단칭명제들이 모두 참이라 하더라도 결코 참일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단칭명제들에 근거하여 그 전칭명제를 증명하는 것(검증)은 불가능하다. 이 비판을 위에서 든 까마귀의 예를 통해 구체화하면 이렇게 된다. 단칭명제들 'R1은 검다', 'R2는 검다', 'R3는 검다', ...'Rk는 검다'는 그것들로부터 일반화된 전칭명제 '모든 까마귀는 검다'의 정당성을 보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전칭 명제에서 언급되는 모든 까마귀 속에는 그 단칭명제들에서 언급되지 않는 까마귀들(Rl, Rm, Rn,...)이 무수히 많고 그것들 가운데는 검지 않은 까마귀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찰한 개별적인 사례는 아무리 많더라도 결국 유한하며 따라서 그것의 기록인 단칭 관찰명제는 보편적 사실을 남김없이 말하지 못한다.

 

어떤 것이 옳다는 것을 경험에 의해 증명하는 것은 검증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그르다는 것을 경험으로 증명하는 것은 반증이라고 한다. 바로 위에서 논의한 것처럼 전칭명제를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반증하는 것은 가능하다. 검은 까마귀를 아무리 많이 관찰했더라도 그로써 '모든 까마귀는 검다'가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단 한 마리의 검지 않은 까마귀의 경험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반증의 원리는 후건부정식이라는 논리적인 원리이다. 모든 까마귀가 검다고 했으니 내가 지금 발견한 까마귀도 검은 것이라야 한다(p→q). 그런데 나는 지금 검지 않은 까마귀를 발견했다(∼q). 그러므로 모든 까마귀가 검다고 할 수는 없다(∼p): (p→q) & ∼q ├ ∼p.

 

4. 추측과 반박의 방법

 

단 하나의 반대사례만으로 보편 사실의 부정이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불가능한 검증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반증을 통한 진리에의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을 반증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과학적 진리(이론, 법칙, 원리)는 귀납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관찰 사례들로부터 일거에 완성된 형태로 도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론, 법칙, 원리 등은 관찰사례들 이상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론, 법칙, 원리 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반증주의자들은 그것이 과학자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번득이는 영감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알아낸 것은 물체들을 물 속에 담그는 실험을 수 없이 되풀이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욕조에 담그던 단 한번의 경험에서 촉발된 영감에 의해서였으며, 뉴턴이 만류인력의 법칙을 착상한 것 역시 수많은 낙하실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이처럼 과학적 지식은 감각 지가 엄밀한 추론의 철저한 통제로 확실성을 보존하면서 일반화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 지와 별 상관없이 자유로운 상상력의 산물로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반증주의자들은 이론을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학자의 추측으로 본다. 과학에는 언제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아르키메데스와 뉴턴 모두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 부력의 원리와 만유인력의 법칙을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추측해 냈다. 이 원리와 법칙은 절대적인 근거에서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 자유로운 추측의 산물이고 따라서 당연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반증주의에 따르면 자유롭게 생성된 가설들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반박됨으로써 경험의 사후 통제를 받는다. 과학자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유롭게 많은 가설들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그 가설들을 가능한 한 철저하게 반증하려고 노력한다. 그것들로 하여금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테스트(반증실험)를 거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론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 이론은 폐기되고, 통과하면 살아 남는다. 과거의 테스트를 모두 견디어 낸 이론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테스트를 견디지 못하면 폐기되고 새로운 이론이 고안된다. 그러니까 대한 반증주의자들이 설명하는 과학의 과정은 이러하다. 과학자들은 어떤 문제(P1)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론(T1)을 세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 이론의 결함을 찾아내기 위하여 그것을 가혹에게 테스트한다. 그 이론의 결함이 드러나 그것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P2)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다른 이론(T2)을 생각해낸다. 새로운 이론(T2)은 처음의 문제(P1)는 물론이고 새로운 문제(P2)까지도 해결하는 이론이기 때문에 처음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과거 이론(T1)보다 그만큼 좋은 이론이다. 과학은 문제가 발생하고 그 해결을 위해 이론을 세우고 테스트와 반증을 통해 문제를 다시 찾아내고 다시 새로운 이론을 세우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진리를 향해서 발전해 간다.

 

5. 맺는 말

 

귀납주의자들이 경험적 확실성을 과학적 지식과 비과학적 견해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삼고, 귀납의 방법을 과학의 방법으로 규정했다면, 반증주의자들은 반증가능성을 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삼고, 추측과 반박(반증)의 방법을 과학의 유일한 방법으로 규정했다. 종교적 교리나, 독재권력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형이상학적 주장 등은 과학적 명제일 수 없는 이유는 그것들이 반증가능하지 않다는데 있다. 종교적 교리는 신의 권위 때문에,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권력의 힘이 두려워서 그리고 형이상학적 주장은 그것을 비추어 볼 사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틀린 곳을 지적할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그것들을 비과학으로 남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므로 비록 처음에는 과학적이던 명제들이라 할지라도 그 비판(반증)가능성이 봉쇄되면 비과학으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반증주의 역시 귀납주의와 마찬가지로 과학의 방법을 올바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반증주의에 대한 비판은 2가지인데 하나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이론적 비판이다. 첫 번째 비판은 반증주의가 그리는 과학상은 과학의 실제 역사와 다르다는 것이다. 과학사를 들여다보니, 과학자들은 추측과 반박의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두 번째 비판은 인식론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다. 반증은 관찰에 근거하여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으려면 관찰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야 하는데, 관찰 역시 이론 못지 않게 불확실한 것이라서 반증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반증론에 대한 인식론적 비판이고, 과학이론이 테스트되는 실제 상황은 반증주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에 반증의 논리적 원리인 후건부정식은 이론 반증에 사용될 수 없다는 논증은 반증론에 대한 논리적 비판이다.

반증주의에 대한 이상의 비판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것들인지, 반증주의는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스스로를 어떻게 방어할 수 있는지, 또 반증주의 이후의 과학방법론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등은 다음 강연에서 다루어질 문제들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