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5:9-17절) 과일의 비밀
예수님은 비유(比喩)의 천재(天才)이셨습니다. 예수님은“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포도나무가 있었고, 열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들은 모두 참 포도가 아니라, 들 포도이요, 독(毒)포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는 나쁜 포도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포도라고 할 때, 이스라엘 종교(宗敎)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宗敎)나, 신앙(信仰)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상쾌하게 하고, 새 힘을 내게 하고, 병든 것을 고쳐주는 역할을 해야지, 사람을 가렵게 하거나, 배가 아프게 하거나, 숨을 쉬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종교(宗敎)가 있었습니다. 그 중 유대교가 있었는데, 그 안에 바리새파도 있고, 사두개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나쁜 포도였습니다. 즉 헌금(獻金)을 강요하고, 사람을 괴롭게 하는 종교(宗敎)였던 것입니다.
만일 어떤 곳에 참 포도가 있어서 그것을 먹기만 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병이 낫고, 죽을 사람이 살게 되는 열매가 있다면,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려고 줄을 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포도야말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맛있고, 사람들을 행복(幸福)하게 하고, 가치 있게 하고, 영생(永生)하게 하는 열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포도는 줄을 서서 사 먹을 가치(價値)가 있을 뿐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사 먹을 가치(價値)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짜 영생(永生)할 수 있고 맨션(高級こうきゅうアパート)에 살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確信)만 있다면, 베츠 자동차가 문제겠으며, 돈이 문제겠으며, 박사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너희는 가지니까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붙어 있지 않고, 예수님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그 열매로 많은 사람을 행복(幸福)하게 하고, 좀비 영혼(靈魂)을 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계명(誡命)을 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열매를 맺는 제자들에게 어떤 계명(誡命)을 주겠습니까? 그 열매나 씨를 도둑맞지 않도록 하라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이상의 열매를 맺어서 수입을 많이 올리라든지, 혹은 포도주를 많이 만들 수 있게 하라는 계명(誡命)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中國)에 갔을 때, 중국 사람들은 조선(朝鮮)사람들이 절대로 의학서(醫學書)를 가져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비밀(祕密) 중의 비밀(祕密)이었습니다.
그래서 허준은 의학서(醫學書)를 가져오지 못하고, 우리나라 실정(實情)에 맞게<동의보감>을 집필을 하게 됩니다. 그것도 귀양(歸養)을 가서 집필하게 됩니다.
또 중국(中國)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절대로 목화(木花)씨를 가져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겨울에 따뜻한 솜옷을 입지 못해서 너무나 춥게 지내야했습니다.
그래서 문익점(文益漸)은 붓 뚜껑 안에 목화씨를 몰래 넣어 와서 우리나라 재배(栽培)에 성공합니다.
또 중국(中國)사람들은 서양(西洋)사람들에게 절대로 화약(火藥)을 가져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많은 희생(犧牲)을 치르고, 화약을 가져가서 개발(開發)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절대로 이 씨를 도둑맞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거나, 혹은 포도주를 많이 만들어서 이익(利益)을 남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직 딱 하나“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것을 계명(誡命)으로 주셨습니다.
15:9절)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우리는 지금 걱정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즉 청년(靑年)들은 취직(就職)의 문제로, 어른들은 정부(政府)문제나, 북한(北韓)과 미국(美國) 문제로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업(事業)하는 사람들은 임금(賃金)이나, 노조(勞組) 문제로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주부(主婦)들은 남편이나, 아이들이 직장(直腸)이나, 학교(學校)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말씀은 하나도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면 어떻게 될까?
15:11절)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Ⅰ.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요즘은 부자(富者)의 순위가 점점 달라져서“아마존”회장이 최고 부자(富者)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가 최고 부자(富者)였습니다.
빌게이츠는 기자 회견(會見)을 하면서 자기는“자녀에게 돈을 많이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주 조금밖에 물려주지 않을 텐데, 우리나라 돈으로 백억 원씩밖에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열불이 터졌을 것입니다.“백억 원이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니, 그것도 초등학생과 중학생 되는 아이에게 그것을 주다니, 도대체 말이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 부모(父母)는 너무나 돈이 많았기 때문에 그에게 백억 원은 정말 작은 돈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부모(父母)에게 무남독녀(無男獨女)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부자(富者)였습니다. 아버지는 이 딸을 위해서 인형(人形)도 많이 사주고, 애완견(愛玩犬)도 여러 마리 사주고, 말(馬)도 사주고, 책도 사주고, 딸이 원하는 것은 전부 사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딸이 큰 화상(火傷)을 입어서 오랫동안 집을 떠나 병원(病院)에 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딸이 없는 애완견(愛玩犬)이나, 말(馬), 딸이 없는 인형(人形)이나 책, 딸이 없는 옷, 딸이 없는 모든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딸을 위해서 사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딸이 없는 말(馬)이나, 애완견(愛玩犬)이나, 책과 구두는 모두 아버지에게는 슬픈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많이 치료(治療)가 되어서 드디어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딸이 집으로 돌아오니까 딸의 모든 것들이 활기(活氣)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애완견(愛玩犬)들도 반갑다고 소리를 지르고, 말(馬)들도 뛰어다니고, 인형(人形)들도 웃는 것 같고, 책들도 읽어줄 주인이 있으니까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 같았고, 딸의 방이 빛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오직 딸의 기쁨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사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저는 아들 두 명이 있지만, 딸 있는 아빠가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팬들 중, 믿음의 딸들과 전화통화 좀 하려고 해도 “개인정보 보호법”이라는 벽(壁)이 있어서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사랑한 것이 아니고, 아들을 위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만드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만들어달라는 것은 모두 다 만들어주셨습니다.
15:9절)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사랑 안에 거하라”
아버지는 아들을 위하여 우주(宇宙)도 만드시고, 천사(天使)들도 만드시고, 지구(地球)도 만드시고, 인간(人間)도 만드시고, 말(馬)도 만드시고, 새(鳥)도 만드시고, 물고기도 만드시고, 풍뎅이도 만드시고, 보석(寶石)도 만드시고, 모든 것을 다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서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인간(人間)이었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생각하고, 활동(活動)하는 로봇의 천 배 이상 되는 지능(知能)과 아름다움을 가진 인간(人間), 하나님의 최고의 피조물(被造物)이었습니다.
요즘 인공지능(人工知能), 인공지능(人工知能) 하지만, 계산(計算)만 잘 하는 것이지, 인간(人間)만한 피조물(被造物)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위하여 만드신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너무나도 아끼고, 좋아하던 인간(人間)이 고장(故障)이 나게 되어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 사람들이 좀 이상해요. 인간의 눈빛도 이상하게 되었고, 얼굴이나, 몸도 이상하게 변했고, 자꾸만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인간이 뱀의 독(毒)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먹으면, 인간의 모든 생각(生角)과 감정(感情)과 육체(肉體)가 영원히 썩어서 버리게 되는데, 바로 그 마귀(魔鬼)의 독(毒)을 먹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멸종시킬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인간을 다시 살려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내가 인간의 독을 도로 빨아내고 죽을 테니까 아버지께서 나를 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진짜 인간(人間)이 되어 이 세상에서 그 마귀(魔鬼)의 독(毒)을 도로 빨아 먹고,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우리를 위해서 죽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액(津液)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를 진짜 포도 열매를 맺는 가지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만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존재(存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사랑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잘 사는 것이나, 못사는 것이나, 멋있게 생긴 것이나, 못생긴 것이나, 장래 일이나, 현재 일이나, 죽음이나, 어떤 권세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딱 한 가지 예수님이 죽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만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Ⅱ.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계명(誡命)을 주셨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밖에 나가는 것은 무엇이며,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만으로 만족하지 못해서 다른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부인(婦人)이 있는데, 남편 사랑만으로 만족이 안 되어 밤거리를 나가 돌아다닌다면, 그것은 남편의 사랑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부인(婦人)이 남편의 사랑으로 만족해서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을 자기의 모든 것으로 알고, 의지해서 산다면, 남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의 사랑에 반대(反對)되는 것은 야망(野望)이고, 정욕(情慾)일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산(山)에 올라갔다가 절벽(絶壁)에서 떨어져서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는데, 구조대(救助袋)가 와서 그 사람을 절벽(絶壁)에서 끌어내어 살렸다면,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 생애(生涯)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벽(絶壁)에서 떨어져서 거의 죽었다는 것과 구조대(救助袋)가 목숨을 걸고, 그를 건져내 주어서 병원에서 뼈가 부러진 것을 치료받고, 지금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돈 벌 것도 없고, 공부할 것도 없고, 그냥 살아 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 본인(本人)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인가 자꾸만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살아 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동기(動機)가 반드시 예수님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내 이름을 내고, 내 야망(野望)을 위해서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자기를 나타내고, 공명(功名)을 세우려는 동기(動機)로 하지 않고,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을 위해서 일을 한다면, 기쁨이 충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5:11절)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고, 진정으로 사랑의 동기(動機)로 행할 때,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그 기쁨은 마귀(魔鬼)를 이기고, 죄(罪)를 이기고, 사망(死亡)을 이기고, 악(惡)을 이긴 기쁨입니다.
즉 사랑의 동기(動機)로 행할 때, 하나님의 능력(能力)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탄(詐誕)을 모두 쫓아내고, 승리(勝利)하기 때문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Ⅲ.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주 어렸을 때는 자꾸만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먹을 것만 주면, 만족합니다. 잠언에는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자꾸만 달라. 달라 한다고 했습니다(잠30:15). 거머리는 피를 빨아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제자들을 사셨으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종이었습니다. 종은 자기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종은 주인(主人)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自動車)나 기계(器械)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운전(運轉)하는 기술자(技術者)가 조작(造作)하는 대로 가기도 하고, 서기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기계(器械)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데, 기계(器械)가 생각해서 가기도 하고, 서기도 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자동차(自動車)나, 비행기(飛行機)는 인공지능(人工知能)을 이용하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즉 자동차(自動車)는 운전(運轉)자가 있지만, 차(車)가 스스로 판단해서 어떤 때는 경고(警告)음을 내기도 하고, 속도(速度)를 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때는“기계가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被造物)은 하나님의 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인공지능(人工知能)보다는 훨씬 더 뛰어나게 만들어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人間)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拒逆)한 순간부터 인간은 미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인간(人間)은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은 살인(殺人)을 하고, 동성애(同姓愛)를 하고, 성 폭행(暴行)을 하고, 병(病)으로 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사탄(詐誕)의 독(毒)을 빨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동기(動機)로 살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能力)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망(亡)하게 하거나, 나를 나타낼 동기(動機)로 어떤 말이나, 행동(行動)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는 못할지언정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다 이해가 됩니다.
그때 우리는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친구(親舊)의 자리로 올라가게 됩니다.
15:15절)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종은 주인(主人)에게 “왜 이것을 하라”고 하는지, 물어 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종은 기계(器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일 매일 엄청난“생명의 말씀”을 들었고, 스스로 판단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몸으로 때우는 사람들은 낮은 직급(職級)의 사람들이고, 높은 사람일수록 고급 정보(情報)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최고급 정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조언(助言)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협상(協商)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안 된다고 하면서 “의인이 오십 명이 있으면 멸망시키겠습니까? 로 시작해서 나중에 열 명까지 낮추어 놓습니다.
우리는 신앙이 어릴 때는 거머리같이 자꾸만 하나님에게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고 나면, 우리나라에 대하여 하나님께 협상하게 됩니다.
즉“하나님! 우리나라에 대한 전도 계획이 있는데 멸망시키시겠습니까? 그 계획은 몇 년에 걸리겠느냐?”“오년은 주셔야 겠습니다”“알겠다. 한번 해봐라. 그동안 내가 도와줄 테니까 한번 열심히 해 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도 우리 책임(責任)이 아니고, 하나님의 책임(責任)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을 택(擇)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택(擇)하셨기 때문입니다.
15:16절)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우리는 책임(責任)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토공에게 재산(財産)을 모두 빼앗기고, 거지 모양으로 사랑하는 팬들에게 후원금 부담을 주는 것은 팬들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所望)하기 위함이지,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인정(認定)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다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년 초에 주신 기도 제목을 컴퓨터 책상위에 붙여 놓고 기도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시고, 남을 미워하지 마시고, 사랑으로 행(行)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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