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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6월 밀양 마이크로기행(역사/자연탐방:수산제역사공원~사명대사유적지~위양지)

작성자천하태평|작성시간26.06.16|조회수56 목록 댓글 0

꽤 더운 날씨지만 이번에 탐방하는 밀양의 숨은 명소들은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불편한 장소들이라서 아는

지인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즐거운 마음으로 Go Go!!

 

[탐방코스]

수산제역사공원~(20km)~사명대사유적지(생가지-유적공원)~(24km)~위양지

 

1.수산제역사공원(守山堤歷史公園 : 경남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 927)  :  2019년 개장

삼한시대 3대 수리시설은 전북 김제 벽골제, 충북 제천 의림지와 함께 경남 밀양 수산제가 있습니다.

지난 1986년 수문을 비롯한 여러 흔적이 발견되었고 그후 복원추진을논의했으나 오랫동안 중단되어

있다가 2017년부터 밀양시가 본격적으로 정비복원사업을 시작해 2019년 '수산제역사공원'이라는 이름

으로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힐링공간이자 탐방공간으로 조성되었고 다양한 식물과 함께 농업의 이해를

돕는 체험공간도 있어서 어린이들의 자연탐구교실로도 손색없습니다.

(2023년부터 매년 11월 이곳에서 "수산제 농경문화축제"가 열립니다) 

1)공원안내도

2)수산제역사공원 표지석

3)수산제역사공원 홍보관

밀양과 수산제의 역사를 전시한 공간으로 홍보관은 1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홍보관 전경

*수산제(守山堤) :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963(경상남도 기념물)

삼한시대의 농사용 저수지로 김제의 벽골제(碧骨堤), 제천의 의림지(義林池)와 더불어 고대에 만들어진 3대

저수지중 하나로, 제방의 전체길이는 약 4km로 이는 조선 세조13년(1467) 제방을 증축한 후 이를 기념하여

지은 점필재(김종직)의 '수산회축'내용과 일치하고 있으며 현재의 하남읍 수산리,귀명리 지역과 인근 초동면의

금암리,금포리에 걸쳐 있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 20리이며 고려시대 여몽연합군이 일본정벌을 

위한 식량확보 목적으로 김방경이 제방을 쌓은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밀주구지'에는 신라왕이 이곳에서 배를

띄우고 놀았다는 기록이 나오고 주변에는 삼한.삼국시대의 각종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전

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일제강점기의 도면과 기록에는 황토로 된 제방이 약 1km정도 남아 있었으나 지금

대부분 없어졌고 저수지는 논으로 바뀌었으며 제방은 낙동강의 지류인 용진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고 이를 이용

하기위해 쌓은 것이며 물을 조절하기 위해 자연암반을 굴착하여 수문을 내었습니다.

 

(옛모습과 현재모습)

#밀양의 역사

-삼한시대 : 미리미동국이라는 부족국가로 추정되는 변한땅에 위치 

-삼국시대 : 신라 지증왕6년(505) 가락정변후 신라영역으로 추화군을 둠

                  신라 경덕왕16년(757) 밀성군으로 개칭

-고려시대 : 성종14년(995) 밀주군으로 개칭  /  현종9년(1018) 밀성군사로 칭함

                  충렬왕1년(1275) 조천의 반란으로 귀화부곡으로 강등후 계림부에 속했다 충렬왕11년(1285)

                      밀성군으로 승격

-조선시대 : 태조1년(1392) 밀성군으로 칭했다 태조3년(1394) 밀성부로 다시 환원

                  태종1년(1401) 밀성군으로 칭했다 태종15년(1415) 밀양도호부로 승격

                  고종32년(1895) 대구부 밀양면으로 개칭후 고종33년(1896) 경상남도 밀양군으로 개칭

 

#수산제의 역사

-고려시대 : 1274년경 김방경이 일본정벌을 위해 제방을 증축했으나 이후 모래가 무너져 기능상실

-조선시대 : 단종2년(1454) 수산현에 수산제가 있는데 길이 728보이며 지금은 무너짐(세종실록지리지)

                  세조9년(1463) 호조의 의결을 받아들여 제방을 쌓아 국농소를 두었으나 강물에 침수된 후

                      재상 조석문이 왕명을 받들어 제방구축후 수문안쪽과 바깥쪽에 산대나무,버드나무 식재

                   세조13년(1467) 수산제관리 논의후 밀양부 양동역앞에 제방을 쌓고 둔전조성(세조실록)

                   성종1년(1470) 수산제의 둔전 혁파했다가 성종3년(1472) 다시 둔전으로 회귀(성종실록)

                    고종초기에 국둔전이었다가 고종31년(1894) 갑오개혁후 관유지로 귀속(밀주지)

 

#수산제가 우리나라의 대표 수리시설이 된 이유

수산제의 제방이 원활한 배수와 범람방지를 위해 낙동강수위와 수문 그리고 제내지 유수지의 수위를

조절한 것은 토목건축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판단되며 제방길이가 길고 제내지면적도 넓은 점과

특히 자연암반을 굴착해 수문이 조성된 경우가 적기 때문에 희소성의 가치도 높이 평가됩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둔전 운영과 축조방법에 대해 많은 기록이 남아있어 학술가치가 어느 제방

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수산제에 대한 발굴조사와 학술조사가 진행된 후 수산제의 성격과 축조시기가

명확히 규명되면 우리나라 토목건축사뿐만 아니라 농업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수산제 수문 소개(구조/특징/역할)

현재 남아있는 수산제의 수문은,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지방기념물 제102호(1990.12.20 지정)

-축조시기 : 고대 삼한시대(기원전 BC100)

-소재지 : 경남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963

-수문크기 ; 높이 181cm,넓이 152~110cm,길이 25m,연결수로 7m,제방길이 약1,040m 

4)중앙광장

과거 창대했던 밀양의 농경지를 상상하며 수산제 수문을 모티브로 한 상징조형물을 설치했습니다.

5)숲속놀이터 

나무로 들러싸인 숲속놀이터는 도심을 벗어나 숲과 더 가까워질수 있으며 새,곤충,바람개비를 통해 수믄을

칮이오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더욱 가까이 느낄수 있도록 해 줍니다.

6)수문(水門)

7)연못 풍경

8)수산제 수문둘레로 조성된 나무데크 탐방로

9)새터서낭기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 새터마을에 전해오는 서낭기는 청룡,황룡,여의주를 감싸고있는 그림과 함께 연혁에

해당되는 기록이 있는데, 그 기록에 의하면 대청순치원년(1644) 에 제작되어 30년~50년간격으로 7차례

중개수되었고 현재의 것은 1936년에 만든 것으로 되어 있으며, 전설에 의하면 옛날 큰 홍수가 났을때 상자

하나가 떠내려와 마을입구 바위에 닿았기에 열어보니 갑옷,칼,서낭기가 있으며 이것을 서낭으로 모시라는

글귀가 있어 마을에서 수호신으로 삼아 서낭당을 짓고 오늘날까지 모셔왔다고 하며 이후 마을에서는 정월과

10월에 서낭당에 고사를 지내고 즐겁게 노는 풍습이 전해져 왔고 이것이 오늘날 "새터 가을굿놀이"로 전승

되고 있습니다.     새터서낭기(청룡 황룡기)는 해마다 마을의 길흉을 점쳐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등 많은 영험

한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다른 지역과 경기행사(줄다리기 등)가 있을때는 청룡 황룡기를 모시고 가는데 땀을

흘리며 동민을 후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10)이야기정원

농업과 관련있는 24절기를 만나볼수 있는데, 24절기란 태양이 지구를 도는 시간을 상정하고 15도씩 옮겨

갈때마다 절기 한개씩을 넣은 것을 말하며 인간이 월력(月曆)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계절의 변화를 기록

하기 위해서인데 농경사회에서는 계절변화에 민감하며 농사를 짓기위해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11)결실수원

쌀알형태의 광장속에 파고라와 포토존 공간을 마련하여 수문을 찾아오는 이용객들에게 각종 행사를 제공

하는 공간이며 추수가 끝난후 남겨진 볏짚으로 다양한 형상의 조형물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 공간

12)추억마당

*수박서리

전통시대 풍습들중 하나로 주로 여름철에 여러 명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밭에 있는 수박을 주인몰래

훔쳐다 먹는 장난입니다.

*잠자리잡기

잠자리채를 이용해서 잠자리를 잡는 여름철놀이로 잠자리채를 이용하기 전에는 맨손으로 잡거나 빗자루를

이용해서 잡기도 했습니다.

13)솟대원

솟대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솟대는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위에 앉혀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는 상징물로 주로 마을입구에 세워지며 마을의 불행을 막고 풍년을 기원합니다.

14)허수아비정원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새와 짐승으로부터 농작물의 피해를 막기 위해 논과 밭에 사람의 형상을 한

허수아비를 세웠는데 이곳에서 각양각색의 허수아비를 만나볼수 있습니다.

15)물레방아

 

2.사명대사 생가지(四溟大師 生家址) : 경남 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42(경상남도 기념물)

임진왜란때 승병을 이끌고 왜군을 크게 물리친 사명대사 유정(惟政 : 1544~1610)이 태어난 곳으로,

사명대사는 부모가 죽자 15세에 경북 김천 직지사에서 출가했으며 묘향산 보현사에서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가 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강산 유점사에서 승병을 모은 뒤 평안도 순안으로 가서

서산대사와 합세해 왜군과 싸웠으며 평양성탈환 전투 등에서도 공을 세웠을뿐 아니라 왜군진영에 들어가

휴전협상을 벌이기도 하였고 전쟁이 끝난 뒤인 1604년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포로 3,000여명을 데리고

오는 등 큰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으며 일본에서 돌아온 뒤 모든 공직을 버리고 묘향산으로 돌라갔고

1610년 해인사에서 설법하던 중 입적했으며 그와 친분이 깊었던 허균은 '자통흥제존자'라는 사시를 올렸다.

(*사시(私諡) : 나라에서 시호를 내리지 않을때 제자나 지인이 죽은 이를 칭송하여 붙이는 이름)            

생가터에는 사랑채,안채,대문채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1)대문채(송운대사 구택)

2)사랑채(사명당) : 사명대사가 거처하던 곳

3)안채(육영당) : 사명대사가 태어나서 자란 곳

 

4)사명대사 사당(祠堂)인 숙청사(肅淸祠)  :  사명대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공간

*사당의 정문(奮忠紓難門 : 분충서난문)  : '충성을 분발하여 국난을 해결했다'는 뜻입니다.

*사당(肅淸祠 : 숙청사)

 

3.사명대사 유적공원(경남 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81)

사명대사의 호국정신과 애민애족의 숭고한 얼을 기리기위해 지난 1999~2006년까지 부지면적 49,146m2에

사명대사 동상,사명대사 기념관,추모공원,기념비 등을 조성하여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응규마당,유정마당,사명마당,추모광장,송운마당,종봉마당,야생화원,외삼문,선친묘로 구성되어 있고 사명대사

와 관련된 역사이야기를 담아낸 기념관,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연꽃타워 놀이터도 있으며 기념관 뒤편으로는

사명대사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동상앞에 향을 태울수 있도록 제단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1)안내도

#사명대사 응규마당(사명대사의 어린시절을 느낄수 있습니다)

사명대사는 조선중기의 고승으로 속명은 응규, 법명은 유정, 당호는 사명(또는 송운), 별호는 종봉입니다.

사명대사는 조선 중종39년(1544) 10월17일 밀양시 무안면 삼강동에서 아버지 임수성과 어머니 달성서씨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고 풍천임씨 가문으로 증조할아버지인 효곤은 문과에 급제하여 장악원정의

관직을 지냈으며 대구의 수령을 지낸 이후 밀양으로 내려왔고, 할아버지인 종원은 아들 수성을 낳았으며

수성은 달성서씨와 결혼하여 맏아들 응기, 둘째아들 응규를 낳았는데 응기는 나중에 진사가 되었고 아들인

재존을 낳아 임씨가문을 이었고 응규는 출가하니 곧 사명대사입니다.

[사명대사의 어린시절 일화]

하루는 아이들과 함께 밤을 주워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고기잡는 사람이 큰 자라를 잡은 것을 보고 어린 응규는

몹시 측은한 생각이 들어 자신이 가진 밤을 주고 자라를 사서 못에 도로 놓아주었는데 이를 본 아이들이 감동

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밤을 모아 응규에게 가지라고 주었으나 응규는 밤들을 다시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고 자신은 빈손으로 돌아가니 동네어른들이 보통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합니다.

 

2)범종(梵鐘)  :응규마당에 위치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을 모을때 또는 의식을 행하고자 할때 사용하는 종으로 범종의 소리를 들으면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까지 구제받아 극락으로 갈수 있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있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불교의식 법구중 하나로, 외형은 위가 좁고 중간부분은 불룩하다가 종구부분으로 가면서 점차 오므라든 모양

인데 범종의 꼭대기부분은 한마리의 용이 목을 구부리고 입을 벌려 종을 물어 올리는듯한 모습을 보이며 이런

용뉴의 목뒷부분에는 우리나라 범종에서만 볼수있는 대롱형태의 기다란 관이 부착되어 있고 종의 윗부분부터

아랫부분까지 다양한 문양을 새겨넣어 한국의 전통미를 느낄수 있는데 아름다운 외형만큼이나 울림소리 역시

장엄하고 청명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며 마음을 깨끗이 참회토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3)수행중인 사명대사 조형물(응규마당에 위치)

4)충의문(忠義門)  : 유적공원으로 들어가는 정문

5)공원광장 사명마당에 조성된 상징조형물

6)추모광장

조선 선조25년(1592)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치러가니 길을 빌린다는 핑계로 조선을 침입하니 이에

사명대사는 백성들이 무참히 살육되고 왕이 한양을 버리고 피난가는 참혹한 현실을 외면할수 없어 "이토록

어렵고 위태로운 때를 만나 어찌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고만 있겠는가?"하고 승병과 명나라군대를 이끌고 

평양성을 탈환했으며 도망가는 왜군을 추격해 개성을 수복하고 한양으로 진격했으며 선조26년(1593) 3월

노원평과 우관동 일대에서 도원수 김명원의 군사와 함께 크게 승리를 거뒀으며 이후 승려신분에는 실로 파격

적인 당상관벼슬을 받았는데, 의병장 김덕령은 사명대사에 대해 "사방에 있는 의승들이 구름같이 모이고 

그림자처럼 따랐다. 관동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서쪽으로 달려 평양성에서 적들을 앞뒤로 몰아치는 태세를

취하여 요새지에 숨어 엎드려 있다가 적을 맞아 싸워서 무찌르기도 하고 첩자를 보내 염탐하여 적의 흉모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살펴서 적이 평양과 중화사이의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군사를 숨겨두어 대첩의 공을 거두

었다"하며 기묘한 전술과 용맹에 찬탄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은 계속해서 강화를 요청했고 이를

무마하고 적을 염탐키 위해 탐적사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사명대사가 그 적임자로 결정되어 가토오 기요마사

와의 회담이 일본에 널리 알려져 사명대사의 명성이 높다는 것이 이유중 하나여서 사명대사는 양국의 이해득실

을 간파하여 전란중 납치된 백성의 쇄환을 요구해 입적하기전까지 총 3,775명을 쇄환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역사가 도쿠토미 소호는 "승장군 유정 사명대사는 승려로서는 아까울 정도의 지혜와 용맹과 언변

력을 구비하고 대담함에 있어서도 적수가 없는 자였다. 같은 승려이면서 그는 일본의 겐소,쇼우타이 등과는 완전

그 소질을 달리한 자였다"하며 사명대사의 인품과 공을 칭송했습니다.기념관 전경

  

*사명대사 동상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그린 부조벽화

7)사명대사 기념관(2005.12.27 개관)

*기념관 전경

*기념관내부 안내도

*사명대사 유정 진영(眞影)

#불가의 과정(불교승려의 삶)

승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배우기위해 출가하여 수행하면서 그것을 널리 알려 불국정토 구현을 추구한다.

[발심(發心)]

깨달음의 경지를 구하고자 하는 지극한 마음을 말하며 불교에서 사문이 되겠다는 마음은 곧 깨달음(보리)에

이르고야 말겠다는 마음이라 하여 '발보리심' 또는 '발기보리심'이라고도 합니다.

사명대사는 13세때 유촌 황여헌에게 맹자를 배우다가 세속의 학문은 온갖 인연에 얽매여 있으니 어찌 번뇌가

없는 학문을 배우는 것과 같을 것인가 하고는 직지사로 들어가 신묵화상의 제자가 되었다.

[출가(出家)]

불가에서는 출가를 집과 세속의 인연에서 떠나 불문에 들어 수행생활을 하는 것을 말하며, 사명대사는 7세에

조부슬하에서 글을 익혔고 13세무렵부터 김천 황악산에 머물고 있는 유촌 황여헌선생에게서 3년넘게 가르침을

받다가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화상에게 선을 받고 유정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체발염의(剃髮染衣)]

깎아도 다시 자라는 머리카락은 번뇌의 상징으로 삭발은 불교에서 출가를 의미하고 출가자는 머리를 깎음으로

세상을 떠났음을 드러내며 모든 번뇌의 근본을 끊겠다는 기원의 뜻을 담고 있으며 출가자의 삭발의식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중요한 의식이기에 은사로 결정된 사람이 집도하는 것이 원칙이라 신묵화상이 집도했다.

 

#선과(禪科)급제 : 승려들의 과거시험 승과(僧科)

승과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승려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과거시험으로 우리나라에 승과가 처음 생긴 것은 고려

광종때라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로, 고려시대의 승과에는 교종의 승려를 선발하는 '교종선'과 선종의 승려를 선발

하는 '선종선'의 2종류가 있었는데 승과합격자에게는 교종,선종 구별없이 대선이란 법계가 주어졌다.

조선중기 선과는 선종의 수사찰인 봉은사에서, 교과는 교종의 수사찰인 봉선사에서 각각 실시되었다.

사명대사는 출가 2년만인 조선 명종16년(1561) 18세에 봉은사에서 개최된 선과에 급제하였으며 당시 선과는

3년마다 실시했는데 선종에서는 전등록과 염송, 교종에서는 화엄경과 십지경론을 통해 각각 30인을 뽑았는데

당시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반야심경,금강경,살달타,법화경 등의 다양한 경전을 기본으로 습득해야 했다.     

 

#유학자들과의 교류 : 불가의 경계에서 유가의 경지를 배우다

사명대사는 불교를 만나기전 유학자를 스승으로 성현의 말씀을 배웠고 불법에서 다른 삶의 가치가 있음을 

알고 사문의 길로 들어선 대사는 선과에 급제한 후 수많은 불경을 섭렵하면서도 유학적 소양도 심화시켰다.

석장비문에는 소재 노수신에게 사자뿐 아니라 이백,두보의 시를 배웠는데 이로부터 문장이 날로 발전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사명대사는 많은 유학자들과 종교와 나이를 초월해 시문을 주고받으며 자유롭게 교류

했는데 주요인물로는 임제,최가운,허균,이산해,박순 등이며 사명대사가 젊은 날 저술한 것을 모아 엮은 

'사명집'에는 이;때에 오갔던 시 236편이 수록되어 있다.

 

#왜적참획의 공 : 억불시대의 공로(승장 유정은 특별히 논상하라)

1593년1월 평양성탈환에 성공한 후 3월 노원평과 우관동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사명대사가 이끈 승병군은

관군을 도와 승리를 이끌었고 그로 인해 선조는 사명대사에게 선교양종판사직을 제수했고 그 후에도 교지를

내려 당상직에 오르도록 했으니 이는 불교를 억압하던 시대에 승려에게 내린 파격적인 조치로 선조실록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사명대사가 사용하던 식사도구와 용구

-목재연엽형오합발우 : 승려들이 공양할때 사용하는 식기인 발우(鉢盂)

-수저 : 숟가락과 젓가락

-금강저 :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불교용구의 하나 

-염주 : 단주 및 108범주(불교에서 염불 등을 할때 손에 들고 횟수 등을 세는데 사용하는 법구)

*사명대사의 법복(금란가사)

가사는 승려들이 입던 법의로 장삼을 입고 그 위에 왼쪽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밑으로 걸쳐입던 옷이며

사명대사가 선조로부터 하사받은 예복으로 장삼과 함께 국가민속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밀양 표충사에 소장하고 있으며 비단바탕에 금사로 갖가지 문양들을 수놓았습니다.

#장삼

검은색이나 흰색으로 만든 길이가 길고 소매가 넓은 옷으로 승려가 가사와 함께 입던 법복중 하나입니다.

흰색 무명으로 만든 사명대사 장삼은 상의와 하의가 연결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훼손이 되었으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데 사명대사 금란가사와 장삼은 착용자를 알수 있는 유물로 16세기말에서 17세기초 승려들의

복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사명대사의 품속(원불과 원장)

*사명대사 석장비(石藏碑) : 겅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홍제암(보물 제1301호)

사명대사의 탄생에서 입적까지 평생의 자취와 업적을 기록한 것으로 1612년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고전

소설 홍길동전을 저술한 당대의 석학 허균이 지은 높이 3.1m의 비석입니다.

1943년 일본인 합천경찰서장 다케우라가 비문중에 왜장 가토오 기요마사가 "조선에 보배가 있는가?"하고

묻자 사명대사가 "우리나라에서는 네 머리를 보배로 보고 있으니 이는 일본에 있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는

내용 등은 한국인들의 민족혼을 불러 일으킬수 있다 하여 4등분으로 쪼개어 파손하였다 합니다.

그 중 한조각은 해인사안에 있는 경찰주재소 정문디딤돌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해인사 구광루와 명월당앞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58년 조각을 맞추어 원래 자리인 홍제암 동편에 다시 세웠습니다.  

*양국대장사령깃발(兩國大將使令-)

임진왜란때 선조가 사명대사에게 하사한 사령기(司令旗)

 

4.위양지(位良池) :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4(1987.5.19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면적 62,700m2로 통일신라와 고려이래로 농사를 짓기위해 이용되었던 인위적인 저수지로, 

매년 5월이면 못가운데 있는 정자와 눈이 내려앉은듯 활짝 활짝 핀 이팝나무꽃이 어우러 지면서 절경을

이루고 저수지물로 아래쪽 들판에 농사를 짓고 제방에는 각종 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는데, 위양은

양민 곧 백성을 위한다는 뜻입니다(위양못,양아제로도 불립니다)

못가운데 5개섬이 있고 둘레도 1km가 넘었으나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다고 하며 임진왜란때 훼손된 이후

1634년 밀양부사 이유달이 다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못가운데 있는 완재정은 안동권씨집안 정자입니다.

이팝나무는 꽃이 필때 이밥(쌀밥)처럼 보인다하여 이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뒤에 이팝나무로 변했다고

하며 꽃이 여름길목인 입하(入夏)에 핀다고 입하목으로 불리다가 '이파나무'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설도 있음.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이팝나무는 경이로운 장면으로 밀양8경에 선정되어 있고 5월 전국 단체출사지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이준기,아이유 주연의 SBS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려"촬영지로 유명합니다.

한국관광공사가 "가을단풍시기 베스트 전국커플여행지"로 선정하여 오늘날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수지라는

명성을 얻기에 이르렀습니다.

 

#밀양8경

1경 : 영남루 야경            2경 : 시례 호박소          3경 : 표충사 사계          4경 : 월연정 풍경     

5경 : 위양못 이팝나무     6경 : 만어사 운해          7경 : 종남산 진달래       8경 : 재약산 억새

 

1)위양지 전경

#위양지에 살고있는 거북이들

-토종민물거북 '남생이' : 등갑융기선 3줄/머리,목 노란색무늬/연못,호수 서식/멸종위기종 2급(천연기념물)

-외래거북 '붉은귀 거북' : 밋밋한 녹색등갑/머리주위 붉은색 점/강가,호수 서식/생태교란종 

 

2)완재정(宛在亭)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안동권씨 위양종중의 입향조인 학산 권삼변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900년 위양못에 세운 정자로,

권삼변은 위양못 가운데 있는 섬에 정자를 세우고 싶어 완재라는 이름까지 지어놓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뜻을 받든 후손들이 250여년이 지난 뒤 비로소 완재정을 지었고 처음에는 배로 출입

했으나 후대에 다리를 놓아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완재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크기에 팔작

지붕 건물로 온돌방과 대청을 두었는데 방은 필요에 따라 문을 여닫아 공간을 다양하게 연출할수 있도록

하였고 5월엔 이팝나무꽃이 파란하늘과 어우러져 완재정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완재정으로 들어가는 다리

*완재정 전경

오른쪽이 완재정 현판이 걸려있는 정면이고 왼쪽은 완재정 후면인데 위양못을 감상할수 있는 작은문이 있음.

*학산선생 권공 유허비

3)위양지 둘레길 풍경(길이 1km로 천천히 산책해도 30분정도면 한바퀴 돌아볼수 있음)

*연리지나무 오솔길구간

#위양못 이팝나무숲 : 면적 약 5,000m2(위양지 62,700m2) 

이곳은 2016년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위양이란 양민을 위한다는 뜻으로 임금이 백성을 위해 쌓은 저수지 주변에 소나무,이팝나무,팽나무,느티나무

등을 심었다고 전해지며 이른 봄 위양못 이팝나무숲의 하얀 꽃으로 뒤덮인 절경과 크고 작은 나무들로 어우러

진 숲의 장관은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며 사람과 숲의 조화로운 공존을 통해 이 아름다운 숲이 다음세대

까지 변함없이 보존되기를 기원합니다. 

 

#이팝꽃이야기

신라의 호국불교   화랑의 오계정신   고려의 통치이념   귀족의 탐욕되어   

토호에 시달린 백성   가렴주구할 즈음에   탐관지주 논밭거둬   소작에 나누어서

춘궁기 쌀밥먹는   새세상 꿈을 꾸고   민심을 어루만지며   다시 세운 후조선

단군이 세운 조선   그 영광 찾으려고   새로운 이념으로   개혁한 농지정책

이 왕이 먹을수 있게 해준   쌀밥같다 이팝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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