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육백스물다섯 번째
그때 한탕 해야 했는데
즐거웠던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오래전, 이 노래를 즐겨 부르던 분이 있었습니다. <과거는 흘러갔다>. 그분은 지방 대도시에서 잘 나가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앙 무대에서 뛰어볼 생각 없느냐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한때는 여전히 잘 나갔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안주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퇴보했던 겁니다. 그러고는 늘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블레틴」 지의 주간이던 플랫 풀러 셰드가 어느 대학 졸업반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톱으로 나무를 켜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그러자 많은 학생이 손을 들었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톱으로 톱밥을 켜본 적이 있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이번에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답니다. 학생들을 가만히 쳐다보던 프렛 세드가 그랬답니다. “물론, 톱으로 톱밥을 켜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톱으로 나무를 켠 결과 생겨난 톱밥을 다시 켜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또 부질없는 짓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과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가지고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톱으로 톱밥을 켜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입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과거에 매달려 사는 것은 톱밥을 켜겠다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겠지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화려했던 과거를 아쉬워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럽니다. “그때 한탕 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