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가장 단순한 방법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온다는 뜻이다.
짧은 여섯 글자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얻고 세상을 움직이는 깊은 이치가 담겨 있다.
이 말은 『논어』 자로편에 나온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에는 ‘섭공’이라는 제후가 있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큰 고민이 있었다.
백성들이 하나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날이 갈수록 인구는 줄고, 세금도 줄어들었다.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초조해진 섭공은 공자를 찾아가 물었다.
“선생님, 백성들이 자꾸 떠나니 성을 높이 쌓아 막아야겠습니까?”
그 질문에는 두려움이 담겨 있었고, 동시에 힘으로라도 붙잡고 싶다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공자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여섯 글자를 남겼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그리고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 말은 간단했지만, 해답은 분명했다.
사람을 막는 데 힘을 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떠나지 않게 만드는 데 마음을 쓰라는 뜻이었다.
백성이 떠나는 이유는 성벽이 낮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떠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 종종 오해한다.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낯선 이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공자가 말한 순서는 다르다.
먼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다.
부모, 배우자, 자녀, 동료, 친구…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여기기 쉬운 사람들.
말을 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마음을 덜 쓰게 되는 바로 그 사람들.
사실 가장 먼저 마음을 써야 할 대상은 바로 그들이다.
가까운 사람이 기뻐야 관계가 살아나고,
관계가 살아나야 신뢰가 쌓이며,
신뢰가 쌓여야 사람이 모인다.
억지로 붙잡은 사람은 언젠가 떠나지만, 마음으로 붙잡힌 사람은 스스로 남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 곁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여든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미 곁에 있는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큰 일이다.
가까운 사람을 놓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소홀했던 말 한마디, 조금만 더 따뜻했으면 좋았을 표정 하나가
뒤늦은 후회로 남기도 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이 말은 조금도 낡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너무 멀리 있는 것에 마음을 쓰느라 정작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오늘 하루, 멀리 있는 누군가를 위해 애쓰기 전에 가까운 사람 한 명의 마음을 먼저 기쁘게 해보자.
그 한 사람이 웃으면, 우리의 세상도 조금은 따뜻해진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생각보다 멀리까지 번져나간다.
○내는 손가락이다.
- 성철 스님 말씀
왜 종교를 믿는데도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요?
성철스님이 항상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불교를 믿든지,
기독교를 믿든지
자기 신념대로 하는데,
예수교를 믿으려면 예수를 믿어야지
신부나 목사 같은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부처님 말씀을 믿어야지
승려를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천당도 극락도 아닌 지옥입니다.
성철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중간에서 소개하는 것이지,
내 말이라고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마치 밤하늘의 달을 가리키며
"저기 달이 있다"라고 할 때,
달을 봐야지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깨우침을 위한 가이드 역할을 하는 이 손가락을 '방편가설'이라고 합니다.
방편이란, 수단, 도구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합니다.
스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거나,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절대적이라고 여기죠.
하지만, 그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정작 중요한 건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
즉, 진리 자체입니다.
오늘 누군가의 말에 의존하고 계신가요?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보세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시기 바랍니다.
손가락이 열개인 이유
혹시 손가락이 왜 열 개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어느 시인이 쓴 한 짧은 시에는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이나 은혜를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때문인지 모른다"라고.
그 시를 읽고 난 뒤로는 손을 내려다볼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리게 됩니다.
잊고 지낼 때가 더 많은 어머니를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된 것이 고맙고 다행스럽습니다.
대자연 같은 사랑을(慈悲자비)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요,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며,
가슴에 그리면 사랑이랍니다.
오늘도 대자연 같은 사랑을 하세요.
대자연은 사랑을 베풀고
보답을 원하지 않아요.
참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사랑처럼 주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