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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은 문학 강의

토지(土地) /박경리

작성자한라짱|작성시간06.09.13|조회수360 목록 댓글 0
 

토지(土地)


작가 소개

박경리(朴景利 1926- ) 소설가. 경남 충무 출생. 1945년 진주 고등 여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했으나, 한국전쟁 중 부군이 납북된 후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음.

1955년과 그 이듬해에 걸쳐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과 “흑흑백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장한 이래 “불신 시대”, “암흑 시대”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1957년 부정과 악에 강렬한 고발 의식을 보여 준 “불신 시대”를 발표하여 제3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여류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건히 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대체로 한국 전쟁 때 남편을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거나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전쟁 미망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아들 작품에서는 전쟁 미망인들의 삵, 또는 그들의 눈을 통해 사회 현실의 훼손된 국면들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1959년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고독한 여인의 심적 방황을 그린 장편 소설 “표류도”를 발표하여 제3회 내성 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장편 소설의 집필에 주력하였다. 이후 “내 마음은 호수”, “은하”, “푸른 은하” 등의 신문 연재 소설을 발표하는 한편, 1962년에는 전작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발표하였다. “김약국의 딸들”은 이전의 전쟁 미망인을 즐겨 등장시킨 자전적 사건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였고, 공간적 배경도 전쟁터가 아닌 통영으로 바뀌었으며, 제재와 기법 면에서 다양한 변모를 보인 전환기적 작품이다. 1964년에는 한국 전쟁이라는 민족사의 비극을 생활인으로서의 시각과 전쟁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의 시각을 통해 예리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담은 전작 장편 “시장과 전장”을 간행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에 제2회 한국 여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어 “가을에 온 여인”, “늑지대”, “타인들”, “환상의 시기” 등을 연재하였다.

1969년 이후부터는 대하 소설 “토지”에 몰두하였다. 하동의 대지주 최 참판네 일가를 중심으로 한말에서부터 식민지 시대를 거쳐 조국 광복에 이르는 민족사의 변천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광대한 스케일과 한국 근대사의 전개에 관한 작가의 독특한 시각은 우리 소설사에서 매우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72년에는 “토지” 제1부로 제7회 월탄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줄거리

<토지>는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문을 연다. 최씨 집안의 안주인인 윤씨부인(최치수의 모친)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후에 동학 접주가 되어 처형당하는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김환(일명 구천이)을 잉태한다. 그 후 김환은 최씨 가문으로 잠입하여 하인이 되지만, 최치수의 아내인 별당아씨와 사랑에 빠져 둘은 지리산으로 도망친다. 최씨 가문의 재산은 탐낸 귀녀와 몰락 양반 김평산의 음모로 최치수는 교살당하고 음모를 꾸민 두 사람은 윤씨부인에게 발각되어 사형당한다. 최씨 집안의 외가 쪽 먼 친척인 조준구는 윤씨부인이 마을을 휩쓴 호열자(콜레라)로 죽자 최씨 집안의 재산을 강탈하려고 한다. 그는 한편으로 최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치수의 딸 서희를 몰아내고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면서 일본인들의 힘을 빌려 모든 재산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서희와 자신의 아들 병수를 결혼시키려는 음모를 꾸미자 서희는 충직한 하인 김길상 등과 함께 용정으로 탈출한다. 서희는 용정에서 윤씨부인이 남긴 금은괴를 자본으로 장사에 성공하여 거부가 되고 하인이었던 길상과 혼인한다. 여기까지가 “토지” 1.2부의 개괄적인 내용인데, 국권 상실, 봉건 가부장 체제와 신분 질서의 붕괴, 농업 경제로부터 화폐 경제로의 변환 등 1900년대와 1910년대 한국 사회의 변화가 소설의 밑그림으로 담겨 있다.

3.4부는 1.2부와 연속선상에 놓이면서도 시대, 배경, 인물의 변화와 변천에 따라 이야기의 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3.4부의 시간적 배경은 2,30년대인데, 이 시기 한국 사회의 격변이 소설의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음이 확인되고 일제의 총독 정치가 가혹해지기 시작한 1920년대 식민지 상황의 암울한 분위기가 무겁게 소설을 누르고 있다.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들은 굳건히 발붙이고 살 정착지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소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소설의 무대가 다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1부에서는 평사리, 2부에서는 용정으로 거의 국한되어 있다시피 한 소설의 무대가 3,4부에 와서는 서울, 부산, 진주, 평사리, 그리고 국외로는 간도 일대와 일본까지 확대된다. 여기에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독립 운동의 여러 노선이 제시되며, 지식인들의 사상적 경향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시도된다. 이런 가운데 1,2부의 주역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용이와 그의 아내 임이네는 병으로 죽고, 기생으로 전락한 끝에 이상현의 씨를 낳고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만 기화(봉순)는 끝내 서희의 비호와 정석의 애끓는 연정을 뿌리치고 투신 자살한다. 동학 잔당이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 운동을 벌이려던 김환은 고문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용정 공노인의 부인과 조준구의 악착 같은 부인 홍씨도 세상을 뜬다. 이들의 죽음과 함께 “토지”에서는 이들의 후손들이 점차 주역의 자리를 차지한다. 서희의 두 아들 윤국과 환국, 용이의 아들 홍이, 조준구의 아들 꼽추 조병수 등이 소설의 전면으로 나온다. 이와 함께 3,4부에 오면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인텔리 계층으로 작가는 이들을 통해 희망 없는 식민지 상황의 암울함을 드러낸다. 임역관의 딸 명빈과 명희를 비롯해 귀족층의 조용하,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가 서의돈, 극작가 권오송, 성악가 홍성숙, 조선에 대해 동정적인 일본인 오가다 지로, 유인실, 강선혜, 황태수 등과 진주 쪽의 박효영, 허정윤 등이 그러하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해방의 감격까지를 다루고 있는 5부는 “토지” 대단원의 장이다. 송관수의 죽음,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립 운동 단체의 해체, 길상의 관음탱화 완성, 오가다와 유인실의 해후, 태평양 전쟁의 발발, 예비 검속에 의한 길상의 구속, 양현 · 영광 · 윤국의 어긋난 사랑 등이 이어지면서 대하소설 “토지”는 거대한 마침표를 향하여 달려간다.


<토지>와 한국 근대사

1부의 시간적 배경은 1897년 8월 한가위에서부터 1908년 5월까지이다. 이 시기에 러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귀결되어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고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격랑은 밑그림으로 “토지”는 최참판가의 몰락과 조준구의 재산 탈취 과정을 다룬다.

2부는 1911년 5월 간도 용정촌의 대화재로 시작되어 1917년 여름까지이다. 여기서는 지리산 동학 잔당의 모임을 제외하고는, 국내 정세나 사건보다 간도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정세가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중국에 미칠 영향이라든지, 1917년 러시아 혁명 전 케레스키 내각에 대한 독립 운동가들의 견해 등이 자주 소설의 전면에 등장한다. 이야기는 서희의 복수, 곧 최씨가의 귀환을 향해 집중되어 있다.

3부는 1919년 3.1운동 이후에서부터 1929년의 원산총파업, 광주학생사건 무렵까지가 시간적 배경이고, 소설 안에서는 사회주의 성향의 독서 단체인 계명회 사건이 1929년에 일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복수 후 허무에 부딪친 최서희가 지어미의 삶을 살게 되고, 김환이 죽음에 이르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송관수 등의 민중적 삶과 서울의 임명희를 둘러싼 지식인과 신여성들의 삶으로 이동한다.

4부는 1930년부터 1937년 중일전쟁과 1938년 남경학살에 이르는 시기가 그 배경이다. 무대는 서울, 동경, 만주에서 하동, 진주, 지리산까지 더욱 확대되고 이야기의 중심은 더욱 다원화된다. 길상의 출옥과 군자금 강탈 사건, 유인실과 오가다의 사랑이 그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5부는 1940년 8월부터 1945년 8월 15일의 해방까지가 그 배경이다. 역시 확대된 공간과 더욱 복잡해진 인물 속에서 해방의 날을 기다리는 민족의 삶들이 펼쳐진다. 양현과 영광의 사랑이 중요한 갈등을 이루면서 소설의 대단원을 향해 달려간다.


<토지> 제1부의 가계의 주요 인물 계보


■ 보기    × 부부 관계,     ∞ 형제 또는 남매 관계,   : 정인(情人) 불륜 관계 ■


(1) 최참판 댁 일가

                                   조준구

                  조현갑   →        ×     →  조병수

                    ↓              홍씨


최참판 → 최모 → 최모 →  최모 → 최치수

   ×       ×      ×       ×       ×    →  최서희

  모씨     모씨    모씨   윤씨부인  별당아씨

                            :   ↘  :

                          김개주    김환(구천)

                            ∞

                         우관 스님   →     김길상


(2) 최 참판 댁 노비

  바우 할아범                         박수동

      ×

   간난 할매                          삼월이

    봉순네   →  봉순                 삼수

    김 서방        ┏   남이          순이     

       ×     →   ┃    ∞           연이네

   김 서방 댁      ┗  개똥이         돌이

      귀녀                            복이 등

       :     →  강두메(두매)

     강 포수


(3) 평사리 작인


     월선네

       ×     →  공월선                         김영팔                  

      공모          :  ················                정한조

       ∞           :          :               강봉기

     공 노인       이용         :               서금돌

                    ×          : → 이흥       막딸네

                   강청댁       :               야무네

                                :               윤보(목수)

                    칠성 ...............:               영산댁(주모)

                     ×

                   임이네

                   김이평        ┏ 선이

                     ×    →    ┣ 두만

                   두만네        ┗ 영만

  

핵심 정리

갈래 : 장편 대하소설, 가족사 소설(전 5부 16권)

배경 : 시간(1897년 한가위부터 1945년 8․15 광복까지). 공간(중국과 한국)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 격동기 민족의 한과 강인한 생명력. 한국 근대사의 인물들이 겪는 식민지적 고통과 운명을 통한, 민족의 한과 의지.

'토지'의 상징성 : 삶의 터전으로서의 토지는 농경 사회에서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토지에 대한 믿음과 이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외부 세계의 대립 속에서 각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등장 인물

최서희 : 최씨 가문을 이어가는, 굳은 의지를 지닌 인물. 최치수와 별당아씨의 외동딸. 최씨 집안의 마지막 핏줄. 조준구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용정으로 가서 부(富)를 이룩함. 공노인과 임역관의 중개로 빼앗긴 토지의 대부분을 회수, 길상과 헤어져 귀국을 감행, 진주에 자리잡음. 몰락한 조준구로부터 집문서를 넘겨 받아 가문의 재건과 복수를 마감한다. 양현이를 윤국과 짝을 맺어 며느리를 맞이하고자 하는 집착이 양현의 거부로 좌절되고 길상의 재수감, 윤국의 학병지원으로 또 다른 한의 그림자가 생긴다. 이런 고통은 그 동안 방어적이고 폐쇄적이던 서희의 가슴을 열어 놓는 계기가 되어 자기 주장이 강하고 기상이 센 성격의 여인상에서 정감 있는 어머니 상으로 변한다.

김길상 : 신분이 다른 서희와 결혼한 독립 운동가. 고아 출신으로 연곡사 우관 스님의 보호로 자라다가 최씨 집안으로 심부름꾼으로 들어가게 된다. 침모의 딸 봉순의 은근한 사모를 받지만 서희에 대한 동정과 연모의 정을 가진다. 서희의 몰락 과정에서 그녀를 끝까지 보호한다. 용정으로 함께 이주하여 서희가 부를 축적하는 데 크게 기여, 드디어 둘은 결혼한다. 서희의 귀국에 동행하지 않고 간도에 잔류, 독립 운동에 투신한다. 2년의 감옥 신세를 지고 진주에 은둔. 동학당 조직을 재건하려 하나 좌절, 원력(願力)을 모아 관음탱화를 완성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구천 : 최참판 댁의 머슴. 출생의 비밀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인물

최치수 : 최참판 댁의 당주. 병약하고 냉소적이며 신경질적인 인물

조준구 : 최치수의 이종형으로 최참판 댁의 재물을 탐내는 욕심 많은 인물.

상현 : 이동진의 아들로서 서희를 사랑하나 실패하여 방황하는 지식인.


이해와 감상

박경리의 “토지”는 모두 5부 16권으로 되어 있는 대하소설이다. 동학농민전쟁과 갑오개혁, 을미의병 등이 차례로 역사의 연표를 채우고 지나간 1897년 한가위에서부터 해방의 감격을 맞는 1945년 8.15까지 격동의 한국근대사가 “토지”의 시간적 배경을 이룬다. 여기에 경남 하동의 평사리를 비롯하여 지리산, 서울, 진주, 간도, 러시아, 일본에 걸치는 방대한 공간 위로 무수한 인간들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완간까지 26년간의 집필 기간과 원고지 30.000매가 넘는 분량도 기록적이지만 “토지”는 진정 그 문학적 성과에서 한국 현대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동학농민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뒤, 조선의 식민지화는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을 타게 되었다. 러시아와 일본은 각기 아관파천과 명성황후 살해를 통해 조선의 식민지배를 꾀했다. 일본 낭인들의 국모 시해라는 전대미문의 치욕을 맛본 유생들은 단발령을 계기로 수하들과 농민군 잔여세력을 규합하여 전국적인 의병투쟁을 전개하지만,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농민군의 분발에 당황하고 일본의 이른바 내정개혁 강요에 몰린 정부는 갑오개혁을 단행한다. 왕권 제한, 조세의 금납화, 도량형 통일, 문벌 타파, 과거제 폐지, 노비법 폐지, 과부의 재혼 허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갑오개혁은 농민전쟁에서 집약적으로 분출된 봉건체제의 내부모순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였음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이 일본의 조선 내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박경리(70)씨의 대하소설 “토지”는 농민전쟁과 갑오개혁, 을미의병 등이 차례로 근대사의 연표를 채우고 지나간 1897년 한가위로부터 문을 연다. 이후 일제의 본격적인 식민지배와 민중의 끈질긴 독립 투쟁, 그리고 2차 대전에 이은 해방까지의 긴박한 역사를 큰 호흡으로 훑어 내려갈 소설의 첫 장면은 뜻밖에도 평화롭고 풍요롭다.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 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그렇기로서니 수상한 세월 힘없는 나라에서 맞이하는 박복한 백성들의 명절이 어찌 평화와 풍요의 겉보기에만 그칠 것인가. 과연 작가는 곧 이어서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라며 시의 경지를 방불케 하는 문장을 내밀고 있다. 더구나 그 비애의 속내인즉, 산문적 사실성과 치열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고 많은 이별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 준다.”

“토지”는 만석꾼 대지주 최참판 댁의 마지막 당주인 최치수와 그의 고명딸 서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토지의 상실과 회복을 둘러싼 대하 드라마를 전개한다. 치수의 어머니 윤씨 부인이 동학 접주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낳은 자식 김환이 의붓형수인 별당아씨와 밤도망을 치는 사건은 장강처럼 흘러갈 소설의 초입에 물살 급한 여울목을 마련해 놓는다. 상피 붙은 남녀를 쫓는 긴박한 추격전이 벌어지는 한편에서는 치수의 고임을 받아 그의 만석지기 농토를 차지하고자 하는 하녀 귀녀의 음모, 치수가 비명횡사한 뒤 최참판 댁 재산과 토지를 노리는 그의 재종형 조준구의 행보, 마을 남정네 용이와 무당 딸 월선이의 비련 등 인간사의 오욕칠정이 쉬임없이 피었다 진다. 거기에 동학군 출신인 대목수 윤보, 의병에 가담하는 김훈장,

독립군으로 변신하는 길상과 그 아들, 조준구가 대표하는 상업영농과 서희의 곡물무역의 자리바꿈에서 볼 수 있는 경제의 단계적 발전 등 사회․역사적 변모가 포개진다.


<참고> “토지”의 두 인물

“토지”의 인물들은 그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 그들이 품은 지향과 목표에 입각해서,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되는 쓰라린 좌절을 통해, 그리고 애정과 믿음, 혹은 탐욕과 배신과 복수의 드라마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일궈나가면서 이를 통해 일제하 현실의 전체상을 그려 낸다. 이들이 각기 몸담고 있는 현실의 여러 층위의 얽힘에 의해 <토지>는 이념에서 풍속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체를 망라해낸다. 그 무수한 인물들의 다양한 운명을 통해 개화기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비추는 거대한 파노라마가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 파노라마의 중심에 서 있는 두 인물, 최서희와 김길상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본다.

최서희 - 최치수가 별당아씨의 소생이자 최씨 집안의 마지막 핏줄. 어린 나이에 육친을 잃고 고아가 된 후, 조준구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길상 등과 함께 용정으로 이주한다. 윤씨부인이 비밀리에 남긴 금괴를 처분한 돈을 밑천으로 하고, 용정 대화재와 전쟁을 계기로 막대한 부를 이룩한다. 대상인으로 용정에 자리를 잡아가면서도 몰락한 가문의 부흥과 귀향을 유일한 삶의 목표로 삼는다. 조준구에게 복수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준비하기 위해 이동진의 독립 운동 자금 요청을 거절하고, 일본인이 지은 절에 시주하기도 하는 등 일본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상현과의 은밀한 사랑을 냉정히 정리하고 하인 출신의 길상과 결혼하여 환국, 윤국 두 아들을 낳는다. 공노인과 임역관의 중개로 빼앗긴 토지의 대부분을 회수한 뒤, 길상과 헤어져 귀국을 감행하고 진주에 자리잡는다. 몰락한 조준구에게서 집문서를 넘겨받음으로써 가문의 재건과 복수를 마무리한다. 양현이를 윤국과 짝을 맺어 며느리로 맞이하고자 하는 집착이 양현의 거부로 좌절되고 길상의 재수감과 윤국의 학병 지원으로 서희의 한(恨)에는 또 다른 그늘이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좌절은 그 동안 방어적이고 폐쇄적이던 서희의 가슴을 열어 놓는 계기가 되어 강한 성격의 여인상에서 부드럽고 정감 있는 어머니 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김길상 - 고아 출신으로 연곡사 우관 스님에게 거두어져 자라다가 최씨 집안의 심부름꾼으로 들어가게 된다. 침모의 딸 봉순의 은근한 사모를 받지만 서희에 대한 동정과 연모의 정으로, 최씨 집안의 몰락 과정 속에서 끝까지 서희를 지키고 보호한다. 서희와 함께 용정으로 이주해서 역할을 수행하며 서희와 결혼한다. 서희의 귀국에 동행하지 않고 간도에 남아 독립 운동에 투신하며, 이를 통해 신분적인 질곡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견뎌내고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 계명회 사건에 연루되어 피검, 서울에서 옥살이를 한다. 이 년의 옥살이 끝에 석방된 뒤 진주에 은둔한다. 그러면서 친일 자산가의 집을 습격하는 독립 운동 자금 강탈 사건을 배후에서 지휘하며 동학당 조직의 재건을 꾀하지만, 이 사건은 오히려 이후의 조직 활동에 족쇄로 작용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활동의 침체와 점점 더 각박해지는 정세 속에서 동학당 모임을 해체하기에 이른 길상은 원력(願力)을 모아 관음탱화를 완성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그러나 일제의 폭압은 예비 검속이라는 형식으로 길상을 다시 구금(拘禁), 길상은 기약 없는 영어(囹圄)의 삶과 마주한다.

 

『토지』작가 박경리 선생 별세

 

 08년 5월 5일 세상을 떠난 박경리 선생은 한국 문단의 큰 별이었다. 한국 문학은 그의 소설 『토지』로 한 정점을 이루었다. 1897년 경남 하동 평사리의 명절날 놀이 소리에서 시작해 1945년 광복의 만세소리로 끝나는 이 소설은 50여 년의 민족수난기를 생생하게 담은 웅대한 서사다. 작가는 역사책이 주목하지 않은 민초들의 역사를, 그 시대의 사회·경제적 변동의 역사와 함께 생생하게 살려냈다.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여주인공 서희를 비롯한 700여 명의 인물은 소설뿐 아니라 TV 드라마 ‘토지’를 통해 국민 전체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출판인이 뽑은 우리나라 대표 소설가, 네티즌이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여성’인 선생만큼 국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은 이는 없었다. 누구보다 이땅의 사람과 자연을 사랑했던 그는 자신이 사는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지어 후배 문인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해 문단의 ‘어른’ 역할에도 충실했다. 서울 청계천을 문화와 생태가 숨쉬는 곳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 제기한 것도 선생이었다. 선생의 치열한 창작혼, 생명과 땅에 대한 사랑은 이땅에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세상에 남긴 작품과 토지문화관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에 가득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통해, 문학 사랑을 통해 평생을 바쳤다.

 

박완서가 회고한 고 박경리 선생의 추억 

[추모사 전문] `신원(伸寃)의 문학` 박완서

선생님 정녕 가셨습니까. 선생님이 하루를 못 넘길 정도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 비록 의식은 없으셨지만 손은 말랑하고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평소 유난히 손이 찬 저는 그날은 마음까지 시려서 차갑게 경직된 두 손으로 선생님의 따슨 손을 마냥 조몰락거렸습니다. 제 언 손을 녹이고자였습니다. 그리고 따님에게 위로랍시고 한다는 소리가 이렇게 손이 더운데 쉬 돌아가실 리가 없다고 장담을 했지요. 실은 두려워서 떨리는 제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 후 다시는 선생님의 따슨 손을 만질 수 없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선생님을 뵐 때마다 뭔가를 얻어가져 버릇해서, 빈손으로 고독하게 이 세상과 하직할 준비를 하고 계신, 그 절체절명의 엄혹한 순간에도 선생님의 마지막 체온이라도 탐하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참람한 마음이 듭니다.

선생님은 제가 원주에 갈 적마다 뭔가를 먹이지 못해 하셨고 돌아올 때는 선생님이 손수 가꾸신 걸 아낌없이 구메구메 싸주셨습니다. 김장이나 된장은 선생님을 믿고 아예 담그지 않았고, 일부러 감자 캘 때나 옥수수 익어갈 때를 맞춰 가서 바리바리 얻어다가 자식들하고 나누기도 했지요.

단구동 댁 마당에서 해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던 여러 그루의 대추나무와 그 틈에 뱀이 산다는 돌무더기들, 문화관이 있는 매지리 댁의 잘 생긴 간장 된장독이 즐비한 장독대는 언제 꺼내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그리운 고향집의 흑백사진입니다.

단구동 댁에서 선생님은 장장한 대하소설 토지를 완간하셨을 뿐 아니라 그 큰집의 살림과 손님대접, 채마밭 가꾸기, 고양이 밥 주기 등을 다 손수 하셨지요. 대작을 쓴 곳이라곤 믿어지지 않게 별 볼 것 없는 소박한 집필실보다는 이층 베란다 난간에 즐비하게 널려있던 황토 빛이 밴, 셀 수 없이 많은 면장갑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저렇게까지 하실 게 뭐 있나, 대충 사시지. 이런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단구동 댁의 으뜸 효자는 아마도 대추나무였을 겁니다. 사람 손이 덜 가고도 풍부한 열매를 맺어, 받는 것보다는 주는 걸 즐기시는 선생님을 흡족하게 해드렸으니까요. 가을이면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르던 지인 후배들은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계절인사처럼 잘 익은 대추를 한 보따리씩 선물로 받곤 했지요. 그 대추나무들이 돌림병으로 죽은 것과 ‘토지’ 완간 기념 잔치를 성대하게 연 것과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집에서는 어차피 큰일과, 작은 일, 기쁜 일과 언짢은 일이 번갈아 가며 일어나게 돼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지금도 단구동이 그리운 것은 대작의 산실이었다는 것을 비롯해서 우리 문단과 문학 애호가들이 공유하는 크고 작은 사건의 현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사적인 저 혼자만의 추억 때문입니다.

제가 죽을 것처럼 힘들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세상을 안 볼 것처럼 자신 안에 꼭꼭 칩거해 있을 때 저를 반강제로 밖으로 끌어낸 건 한국일보 장명수 사장이었을 겁니다. 그 최초의 외출이 단구동 선생님댁이었습니다. 김성우 논설위원도 같이였구요.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가 무작정 간 게 아니라 선생님이 그렇게 시키셨겠지요. 손수 지으신 점심상이 차려져 있었으니까요. 그때 선생님이 지으신 따슨 밥과 배추속대국을 눈물범벅으로 아귀아귀 먹게 하신 선생님의 사랑인지 우격다짐을 제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다. 잊어버리면 사람도 아니지요. 대범한 줄로만 알았던 선생님이 처음으로 내보이신 따뜻한 속 정에 저는 비로소 버림받고 헐벗은 채 친정으로 돌아온 딸처럼 마음 놓고 울었다 웃었다 술주정까지 했었지요. 그리고 다시 선생님이 제 등을 떠미시니 바깥세상으로 나가기가 한결 수월해지더이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의 외동딸은 아니었나 봅니다. 단구동 댁을 기념관으로 내주시고 더 큰 터전을 잡아 매지리로 거처를 옮기실 때 후배 작가들이 머물며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문화관을 따로 지으셨습니다. 사랑하는 후배에게 어떻게든 무공해 채소와 집 밥을 먹이고 싶어하신 모성애를 못 이겨 아예 하숙비 없는 하숙집을 차리셨습니다. 외딸인 줄 알았다가 졸지에 여러 동생을 보게 된 저는 한때는 속으로 은근히 삐치기도 했지요. 얻어올 수 있는 게 텃밭에서 나는 채소에다가 오봉산에서 나는 오가피나 두릅 취나물 등으로 늘어나긴 했어도 더는 선생님이 지으신 집 밥은 얻어먹을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아우들이 조롱조롱 생겼는데 맏이는 젖이 떨어질 수밖에요. 선생님의 그늘에서 문화관 밥과 무공해 채소라도 얻어먹어야만 힘이 날 것처럼 속이 비고 허전할 때면 저도 문화관 식구가 되어 선생님의 공짜 밥을 얻어먹어 버릇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대신 해주는 밥이지만 식탁에 선생님이 손수 가꾸신 채소가 떨어지지 않는 한 문화관 밥은 집 밥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제가 단골로 쓰던 문화관 삼 층 끝 방에서는 선생님의 텃밭이 빤히 내려다보였습니다. 아침 일찍 텃밭을 기다시피 엎드려 김매고 거두시는 선생님을 뵐 때마다 철이 난 것처럼 흙에서 나는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생명줄인지를 깨우쳐갔지요.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지요, 땅처럼 후한 인심은 없다고, 뿌린 것에다 백배 천배의 이자를 붙여서 갚아주는 게 땅의 마음이라고, 본전 까먹지 말고 이자로 먹고 살아야한다고. 그러니까 선생님은 밭에 엎드려 김을 매고 있는게 아니라 경배를 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땅에 대한 경배가 곧 농사일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은 입으로 하는 직업적인 환경운동가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천성의 농사꾼이셨습니다. 사실, 땅이 거저 이자를 붙여줍니까. 인간의 피땀과 등골을 있는 대로 빼먹어야 거기 합당한 이자를 붙여주는 게 땅 아니던가요. 그래서 사람들은 땅의 그런 느리고 인색한 보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까짓 땅 기운을 아예 시멘트로 틀어막고 아파트를 지어 큰 이익을 남기게 되지 않았을까요.

선생님은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걸 늘 못마땅해 하시면서 분개도 많이 하셨죠. 선생님은 자연 숭배자셨습니다. 어떤 권력자나 재력가 앞에서도 당당하고 거침없이 할 말 다하시던 선생님이셨으나 자연 앞에서는 한 없이 작고 겸손해지셨습니다. 댁에 늘 문화관식구들이 먹고 남을 만큼 먹을 것이 넘치는 게 다 오봉산 덕이라고 문화관을 품고 있는 산한테까지 그 공을 돌리고 두 손 모아 경배하는 걸 뵌 적도 있습니다. 어찌 산과 들에서 나는 것뿐이겠습니까. 선생님이 몇 년 전 고향 통영을 방문하고 돌아오신 후에는 통영시장을 비롯한 통영 시민들의 선생님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극진하여 늘 귀한 해산물도 보내오는 듯했습니다. 제가 원주에서 얻어올 수 있는 먹을 것도 다양해졌습니다. 내륙에서 자란 저는 생선이름도 몇 가지밖에 모르는데 특히 뽈락이라는 작은 생선은 여태까지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거였습니다. 뽈락 젖을 넣고 담근 김치 또한 생전 처음 먹어보는 별미였구요.

어느 핸가 명절을 앞두고 있어 우리도 뭔가 작은 선물을 사 가지고 갔는데 선생님댁 주방과 거실에는 과일 떡 등 먹을 것이 넘쳐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문화관 식구들을 잘 먹일 수 있어서 어떤 선물보다도 먹을 것이 제일 반갑다고 인사 치레를 하시고 나서 주방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쌀독을 가리키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난 저 쌀독만 있으면 돼. 저 많은 먹을 것들이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끼니때 쌀독에서 쌀을 한 줌씩 내다가 한 톨이라도 바닥에 떨어지면 엎드려서 손가락 끝으로 찍어 담아야 마음이 편해.”

어려서 집이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는데도 우리 엄마는 약간 맛이 간 쉰밥도 버리지 못하고 물에 씻어서 당신 혼자서 드셨습니다. 제가 질색을 하고 말리면 ‘밥이 아까워서 못 버리냐? 하늘이 무서워서 못 버리지’ 하시던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돈으로 치면 몇 푼 안 되는 푸성귀를 얻기 위해 땅을 기던 선생님, 쌀 한 톨을 위해 부엌바닥을 기던 선생님,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작년 선생님의 마지막 생신 때 생각이 납니다. 그때 우리는 (현대문학 양숙진 주간과 저) 그게 마지막 생신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했습니다. 따님을 통해 선생님은 치료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아무도 당신 병을 아는 걸 원치 않으신다는 걸 미리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건강한 척은 완벽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줄 담배까지 피우셨으니까요. 딴 생신 때와 달랐던 것은 우리가 원주로 가지 않고 선생님이 서울 오신 김에 생신을 핑계로 식사자리를 마련한 거였습니다. 남산의 힐튼호텔에서였습니다. 우리가 전해들은 선생님의 암은 오진일 거라는 확신이 들 만큼 선생님의 식욕은 평소와 다름이 없으셨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혜안도 여전하셨습니다. 누가 버릴 세상에 대해 그런 애정을 갖겠습니까. 그러나 그날 모임의 압권은 호텔 앞에서의 노느매기였습니다. 선생님은 당신 생신을 빙자한 저희의 식사대접 자리에 오시면서도 빈손으로 오시지를 않고 또 원주에서 난 것, 통영에서 부쳐온 것들을 구메구메 챙겨 오셨습니다. 우리 속물들은 국산차만 타고 들어가도, 소형차만 타고 들어가도 주눅이 들것처럼 럭셔리한 것으로는 서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특급호텔 현관에다가 온갖 촌스러운 것들을 풀어놓고 양 사장 몫과 제 몫으로 나누어 차에 실어주신 선생님 때문에 그날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고 통쾌하고 으쓱했는지요. 그 거침없으심은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을 만큼 자랑스러웠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갑자기 이 세상을 버리시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시니 불과 몇 달 전에 있었던 일도 이렇게 옛이야기하듯 하게 됩니다.

생전에 소원하신 대로 선생님은 원주를 거쳐 고향 통영의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원주까지만 선생님을 배웅하고 통영까지는 모시지 못했습니다. 원주에서 통영까지 차로 간다는 건 제 몸에 너무 눈치 보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어디까지나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이승이니까요. 건강상의 이유 말고도 선생님은 원주에 계셔야할 것 같은, 육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영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거라면 원주에 더 많이 계실 것 같은 미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원주에서는 단구동 기념관에서 원주시민들의 진정 어린 애도의 자리를 거쳐 마지막으로 매지리 문화관에서 노제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영영 원주를 떠나셨습니다. 선생님을 배웅하고 나니 노제 지낸 제상만 뎅그머니 남아 있더군요. 누군가가 큰 병에 반 넘어 남아있는 백세주를 따라 마시고 있기에 저도 한잔 달라고 했지요. 한두 잔 얻어 마시고 나서 안주를 집으려고 보니 먼저 메밀 부침개가 눈에 들어오지 뭡니까. 당장 입에 침이 고여 얌전하게 네모로 접어 괴놓은 부침개 한 자락을 맨손으로 찢어서 입에 넣었습니다. 딱 그 맛이었습니다. 선생님하고 자주 가던 고사리 식당이던가요, 개 건너 집이던가요, 아니면 이름은 잊었지만 부부가 다 착하고 진국이라고 선생님이 좋아하시던 길가 식당이던가요. 그런데서 먹어보고 집에 싸 가지고 오기까지 하던 딱 그 메밀부침 맛이었습니다. 거의 투명할 정도로 얇게 부쳐 도리어 메밀의 깊은 맛을 극대화한 부침개 맛은 술을 더 먹고 싶은, 술 허기증 같은 걸 걷잡을 수 없게 했습니다. 그것도 술은 꼭 소주여야 할 것 같은. 그 자리에 소주는 없었으므로 우선 먹던 부침개라도 싸 가지고 올 요량으로 주춤대다가 제 주접떠는 모습을 이혜경 작가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이 작가가 부침개는 자기가 얻어 가지고 갈 테니 저더러는 그 아래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데였지만 문화관에서 가장 가까운 데였습니다. 문화관에 묵고 있던 작가들을 비롯해서 통영까지 못 간 몇몇 작가들이 노제 후 거기서 만나기로 미리 약속이 돼있었던 듯, 오정희 작가 이강숙 총장을 비롯해서 젊은 작가들이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나중에 나타난 이혜경 작가는 메밀부침을 얻어오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집에서 안주로 그걸 시켰지만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상관없었습니다. 소주가 있었으니까요. 작은 식당이라 맥주는 곧 떨어졌지만 소주는 넉넉했습니다. 다른 작가들은 맥주에 소주를 타 마셨지만 저는 순전한 소주를 고집했습니다. 소주 기운이 돌자 여태까지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한 번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의 한이 제 한이었던 곡절까지 매듭이 풀리듯이 허술해졌습니다. 선생님은 마침내 자유로워지셨구나.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맺힌 슬픔, 의지가지없이 허전한 마음이 헐렁해지자 우리는 찍찍 허튼 수작까지 날리며 희희덕댈 정도로 편안해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선생님과는 한 번도 허튼 수작을 해본 적이 없네요. 농담 한번 안 하고 이 풍진세상 그 힘든 세월을 어떻게 살아내셨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선생님이 가여워졌습니다. 이런 걸 선생님의 표현을 빌어 연민이라 한다면 너무 외람될까요.

선생님 가신 후에도 문화관은 이어지겠지만 손수 가꾸신 채소를 다시 얻어먹을 수는 없겠지요. 왜 이렇게 선생님이 거두신 건 야금야금 거저 얻어먹고 싶은지, 그걸 못하게 된 게 왜 이렇게 서러운지 전 참 염치도 없지요. 선생님은 후배들이 평생, 그리고 대를 이뤄 자자손손 파먹어도 파먹어도 바닥나지 않을 거대하고 장엄한 문학유산을 남기셨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선생님이 필생의 업적으로 남기신 토지에는 우리의 파란만장한 근세사의 모든 국면과 모든 직업, 고귀한 인간성으로부터 바닥 상것의 비천함까지 천태만상의 인간군상이 총망라되어있습니다. 그것도 박제를 만들어 모자이크 한 게 아니라, 그 많은 사건과 인생들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면서 비천한 것들이 존엄해지기도 하고 잘난 것들이 본색을 드러내면서 비천해지기고 하는 게, 마치 지류(支流)의 맑고 탁함을 가리지 않고 받아드린 큰 강이 도도히 흐르면서 그 안에 온갖 생명들을 생육하는 것과 같은 장관입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그런 큰 강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문학이니까 가능한 축복이요 기적입니다.

선생님, 우린 오래오래 두고두고 그 큰 강가에서 목도 축이고 필요한 양분도 취하면서 번성할 테니 천상에서 지켜봐 주시고, 저것들이 내 하숙 밥 없이도 잘만 크네, 흐뭇하게 미소지어주시길. 문화관의 맏이 박완서 두 손 모아 빌며 선생님을 전송합니다.

- 이 글은 박경리 선생님 영결식에 받친 조사에다가 그때 시간상 못 다한 이야기를 보탠 글임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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