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소리글자요, 한자는 뜻글지이다. 곧 한글은 표음문자(表音文字)이며 한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字)이다.
그러나 한글은 표음문자(表音文字)로 분류되지만 그 70%는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다 한글 음운현상에 따라 소리값이 바뀌므로 표음문자(表音文字)는 줄어지고 표의문자(表意文字)가 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떡 + 메> '떵메' 로 소리나지만(떡을 치는 메) 떡메로 소리나지 않고 자음접변(子音接變)에 의한 유성음화(有聲音化)로 울림소리로 발음되어 떡 + 메>가 '떵메' 로 소리가 난다.
중국인들이 한자의 원형이 고대 은(殷)나라에서 만든 갑골문(甲骨文)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때는 20세기 초였다. '맹자주소(孟子注疏)' 이루장구(離婁章句)에서 맹자는 '은(殷)나라 순임금은 동이족이다(東夷之人)'라고 말한다. 동이족의 은(殷)나라가 만든 글자가 한자(漢字)였기에 중국인들은 20세기 초까지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동이족이 한자를 만들었기에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를 한 문장 안에 자연스레 섞어 쓸 수 있게 되었다. 한 문장 안에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를 섞어 쓰게 된 유래는 오래되었다.
세종 11년(1429)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 서문에는 "태종(太宗)께서 일찍이 유신(儒臣)에게 명하시어 옛날 농서(農書)로서 절실히 쓰이는 말들을 뽑아서 향언(鄕言)으로 주(註)를 붙여 판각(板刻) 반포하게 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재위 28년(1446)보다 17년 전에 향언(鄕言)이란 표음글자가 있었던 것이다. '태종실록' 4년(1404) 10월조에는 "'대명률(大明律)'은…우리나라 사람이 밝게 알기가 쉽지 않으니, 마땅히 이언(俚言)으로 이를 번역하여 중외에 반포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언(俚言)과 향언(鄕言)은 같은 뜻이다.
세종 26년(1444)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崔萬理)의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유명한 상소에는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고 합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훈민정음이 옛 글자를 본떠서 만든 표음글자란 뜻이다. 최만리의 상소에는 "가령 언문이 전조(前朝) 때부터 있었다 하여도"라는 구절도 있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부터 우리는 음(音)을 적는 향언(鄕言)·이언(俚言) 등을 가지고 표의문자인 한자와 섞어 사용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저하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표의문자의 깊은 뜻을 생각하는 의(意)를 무시하고 무의미한 음(音)만 가르치니 어찌 실력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천자문의 첫 두 구절이다. 天地玄黃 宇宙洪荒 글자의 의미를 생각지 않고 그저 글자대로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 거칠다.'고만 안다면 올바른 깨달음이 아니다.
天(하늘 천) 地(땅 지) 玄(검다,아득하다, 그윽하다,가물가물하다.black이 아니고 dark 현) 黃(누르다 황), 宇(집 우) 宙(집 주) 洪(넓다 홍) 荒(거칠다 황)
天地玄黃 宇宙洪荒 "하늘은 그 빛이 아득하여 가물가물하며 땅은 그 빛이 누르스럼 즉 '넓은 땅 중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보다 쓸모없는 사막이 더 많다.' 고 하여, 하늘과 땅 사이는 너무 넓고 커서 가물가물하며, 그윽하기 끝이 없다." 는 뜻이다. 국어 교육 체제의 일대 전환이 요구되는 때이다.
한글은 표음문자(表音文字)로 분류되지만 그 70%는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인들이 한자의 원형이 고대 은(殷)나라에서 만든 갑골문(甲骨文)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때는 20세기 초였다. '맹자주소(孟子注疏)' 이루장구(離婁章句)에서 맹자는 '은(殷)나라 순임금은 동이족이다(東夷之人)'라고 말한다. 동이족의 은(殷)나라가 만든 글자가 한자(漢字)였기에 중국인들은 20세기 초까지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동이족이 한자를 만들었기에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를 한 문장 안에 자연스레 섞어 쓸 수 있게 되었다. 한 문장 안에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를 섞어 쓰게 된 유래는 오래되었다.
세종 11년(1429)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 서문에는 "태종(太宗)께서 일찍이 유신(儒臣)에게 명하시어 옛날 농서(農書)로서 절실히 쓰이는 말들을 뽑아서 향언(鄕言)으로 주(註)를 붙여 판각(板刻) 반포하게 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재위 28년(1446)보다 17년 전에 향언(鄕言)이란 표음글자가 있었던 것이다. '태종실록' 4년(1404) 10월조에는 "'대명률(大明律)'은…우리나라 사람이 밝게 알기가 쉽지 않으니, 마땅히 이언(俚言)으로 이를 번역하여 중외에 반포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언(俚言)과 향언(鄕言)은 같은 뜻이다.
세종 26년(1444)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崔萬理)의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유명한 상소에는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고 합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훈민정음이 옛 글자를 본떠서 만든 표음글자란 뜻이다. 최만리의 상소에는 "가령 언문이 전조(前朝) 때부터 있었다 하여도"라는 구절도 있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부터 우리는 음(音)을 적는 향언(鄕言)·이언(俚言) 등을 가지고 표의문자인 한자와 섞어 사용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저하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표의문자의 의(意)를 버리고 무의미한 음(音)만 가르치니 어찌 실력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국어 교육 체제의 일대 전환이 요구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