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투르크와 흉노(돌궐족)
돌궐은 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 동안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투르크계 민족이다. 오스만투르크는 셀죽투르크가 멸망하자 독립을 선언한 부족국가 중의 하나로 현재의 터어키로 이어졌다. 오스만제국은 유럽이 겁내는 강대한 국가였으나 서양 열강의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서서히 몰락했다.
터키민족은 터키어로 Türk라 합니다. 투르크(또는 튀르크)라는 말은 약 5세기경 중국 북방에 세워졌던 국가가 그들의 이름을 Gök Türk라고 한데서 비롯되었으며 이 투르크라는 말을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문자로 기록한 것이 '돌궐'이다. 세계사 시간에 '오르혼 비문'이라는 것이 생각나나요? 이것이 바로 돌궐의 유물이며, 이 비문에 바로 투르크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투르크(돌궐)족은 기원전 220년 이후 수많은 국가를 이룩하였는데 이중에는 그 영토가 1,800만㎢ 이상에 걸친 경우도 있었으며, 10∼11세기경 현재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하여 셀죽 제국을 건설하였다. 초기 투르크인들은 돌궐족, 흉노족이라고 하였으며, 지금의 오르혼강 하류인 바이칼호 주변에 있었다. 돌궐은 몽골계었으며, 돌궐의 수장인 토문은 '이리가한(伊利可汗)'이라고 자칭하며, 6세기경 유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으며 여기서 돌궐이 독립하였으므로 터키 공화국은 그 해를 건국의 해로 친다. 돌궐은 유목민족이으므로 말을 잘탔기 때문에 아주 빠른 기동성을 갖고 있었다. 중앙 아시아에 살던 그들은 알타이에서 카자키스탄지역으로 남하에 지중해까지 이르렀다. 다른 투르크족들은 우랄산맥을 거쳐서 핀-오굴족과 만나게 되며 또 다른 부족은 중국북서부에서 칸수지역으로 이동해 아시아 흉노국을 세운다. 다른 부족은 시베리아쪽으로 퍼져나갔고 인도의 인더스, 펀잡지역을 공격한 부족도 있다.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투르크족은 BC 17 세기 경에 국가를 세운 것으로 나오는데 훈(흉노)라는 국가는 바로 투르크족이 세운 국가인 것이다. 중국에 세워진 만리장성도 바로 이 튀르크족을 막기위해 세운 것인데 그렇게 강대했던 흉노도 BC36년 북, 남흉노로 갈라지면서 북흉노는 멸망하게 되고, 남흉노는 중국의 속국이 된다. 멸망한 흉노들은 점차 서쪽으로 이동해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일으키며 저항을 받지 않고 드디어 유럽의 트라키아에 들어서게 된다. 그들은 유럽에 훈제국을 건설해 동로마와 서로마로부터 조공을 받아낸 유명한 왕은 아틸라였는데 유럽 훈제국은 아틸라 이후 힘을 잃고 사라지게 된다. 사실 당시 유럽은 미개해서 아시아에게 적수가 되지 않았다. 고대 유라시아 북쪽의 초원지대에서 살았던 유목민들을 중국에서는 4세기 이전까지는 흉노, 6세기 이후에는 돌궐이라 불렀고 그리스에서는 스키타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3 ~ 4세기 경(춘추전국시대말기)부터 중국은 북방유목민의 침입을 막기위해 성벽을 쌓기 시작한 것이 만리장성의 출발이며, 진시황제의 진나라와 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 때는 더욱 중국을 괴롭혔는데 이때부터 이들 유목민을 흉노라고 불렀다.
거의 같은 시기 유라시아 대륙 서쪽의 유목민들은 그리스와 여러가지 접촉을 가졌고 그리스인들은 이들을 초원지대에 사는 사람이라 해서 스키타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의 이란계 종족이다. 이란계라면 아리아인(유럽인종과 같은 백인종)들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진, 한 시대에는 흉노, 수, 당시대에는 돌궐, 고대그리스(폴리스시대)에서는 스키타이, 로마(제정시대)에서는 훈(후니) 등으로 불렀다. 따라서 흉노가 인종학 적으로는 아시아제족에 속하는 황인종계열에 속하고 19세기 이후 발달한 언어학적인 민족계열로 분류하면 몽골어군에 속한다. 스키타이족은 기원 전 3세기 이후 정착 농경민에 흡수되어 사라졌고, 흉노(남흉노)는 기원 4세기 전반 5호 16국 시대까지 중국과 그 주변에서 활약하다가 그 후 중국에 동화되고 말았다. 항상 역사는 이기는 자에 의해 쓰여진다. 요즘 서양사가 세계사 처럼 비추어지지만 실제로 동양이나 중동 인도 등의 역사가 훨씬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했다.
서양이 중동의 아랍(사라센제국)에 막혀 인도를 육로로 갈 수 없자 바다를 통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가야 했고 이 과정에서 지리상의 발견을 한 것도 동양에 비해 서양이 이전까지는 다소 문명이 덜 발달됐다는 얘기다. 수천년동안 동양은 서양 보다 발달된 문명을 갖고 있었으나 최근 근현대사에서 서양이 지배한 역사다. 수천년 세계사에서 보면 몇백년에 불과한 시기다. 앞으로 미래 세계사는 다시 동양이 쓸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 인도의 비약적 성장을 보거나 현재 프랑스정부에서 중요 정책을 이끌고 있는 "쟈크 아탈리"가 말하기를 우리 '서울의 미래는 아시아의 초국가의 수도' 라고 말했다. 인도 시인 타고르가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 말한 의례적인 싯구도 아니다. 아시아 유럽이란 단어가 4500년전 지중해 근방에 있던 '아카트'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asia 즉 해가 뜬다는 asu에서, europe은 해가 진다는 erebu에서 해가 뜨고 지는 은유적으로 표현한 지구중심으로 붙인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아랍제국들이 있는 지역을 중동이라 부른다. 이것도 유럽인들이 본 지도 개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이 결국 세계를 지배하게 될것이다.
오스만투르크 약사
오스만 투르크 제국(Osman Turk :1299∼1922)
1296년 오스만1세에 의해 오스만 투르크 제국 건국
1362년 무라드 1세 아드리아노폴리 함락. 부르사에서 아드리아노폴리로 천도.
1389년 무라드 1세 코소보전투에서 세르비아가 주축이 된 발칸 여러나라의 동맹군을 격파
1396년 십자군 격파
1430년 무라드 2세 살로니카(테살로니키)를 침입하여 헝가리의 영웅 후냐디에게 패배
1444년 무라드 2세 불가리아의 바르나에서 후냐디가 지휘하는 헝가리·폴란드군을 물리침.
1448년 무라드 2세 코소보전투에서 후냐디를 격파
1453년 메메드 2세 콘스탄티노플 함락. 동로마 제국 멸망
1514년 사파비왕조 이란에 진공하여 샤이스마일의 군단을 격퇴
1517년 이집트에 원정. 아바스왕조 칼리프의 말예(末裔) 알 무타와킬을 콘스탄티노플로 납 치하여 칼리프 칭호를 양도받아 사실상 술탄 칼리프제를 수립
1520~1566년 술레이만 대제의 치세
1529년 오스트리아 비인 근교까지 군대 접근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해전에서 대패
1639년 카스리시린 조약으로 아제르바이잔은 이란투르크에 바그다드는 오스만투르크로
1683년 2차 비인 포위 공격 실패
1699년 카를로비츠조약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얻은 투르크점령지의 태반을 포기
1829년 러시아와 아드리아노플화약을 맺고 그리스의 독립을 인정
1839년 아브뒬메지드 1세 무스타파 등의 도움으로 ‘귈하네 헌장’을 발포
1856년 아브뒬메지드 1세 크림전쟁에서 러시아에 승리하여 파리 강화 조약을 체결
1876년 아브뒬메지드 2세 미트하트 파샤가 기초한 헌법에 술탄의 거부권을 추가하여 공포
1877년 러,터 전쟁
1908년 아브뒬메지드 2세 청년투르크당이 술탄에게 헌법·의회정치의 부활에 동의하게 함
1912년 발칸동맹국에 의한 제1차 발칸 전쟁
1920년 1차 대전 패배로 세브르 조약에 조인
1922년 11월 1일 케말 아타튀르크(케말파샤)의 국민 의회에 의해 술탄제 폐지 선언
오스만투르크는 셀죽 시대에 세워져 셀죽 투르크가 없어지자 독립을 선언한 부족국가 중의 하나이다.셀죽 투르크 멸망으로 많은 이재가 몰려왔고, 또한 많은 부족들이 경쟁하는 중부 아나톨리아로부터 떨어져 부르사, 이즈닉 지역에 정착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견제를 덜 받았고, 이미 비잔틴제국은 약해질때로 약해진 상태였다. 오스만이 1299년 국가를 세워 1324년 죽을 때까지 차근차근 영토를 확장해서 말마라해의 아나톨리아지역을 석권한다. 그후. 티무르에 의해 몰락. 무라트 2세 때 힘을 다시 회복해1422년 헝가리, 폴란드 왕은 성경에, 무라트 2세는 코란에 맹세하며 협정을 맺고 무라트2세는 왕권을 아들 메흐메트 2세에게 물려준다. 그러나 헝가리와 폴란드는 이 서명을 어기고 투르크의 영토로 쳐들어온다. 이에 메흐메트2세는 아버지의 도움을 요청하나, 무라트2세는 아들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기위해 이 청을 거절한다. 그러자 메흐메트 2세는 아버지 무라트에게 "내가 왕이라면 와서 군대를 지휘하고, 당신이 왕이라면 당신의 나라를 구하소서" 라는 말을 한다. 이에 무라트2세는 달려와 적군을 물리친다. 아버지 무라트가 죽고 나서 왕위에 오른 메흐메트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 점령하는데 그때가 1453년이다.
학자들은 이 때를 기준으로 유럽의 중세가 막을 내렸다고 한다. 술탄 셀림은 카이로를 점령해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를 무너뜨리고 칼리프를 이스탄불로 데려와 칼리프직을 양도받아 오스만 투르크는 명실상부한 이슬람의 종주국이 된다. 술탄 슐레이만 은 오스만투르크를 최전성기로 이끄는 사람인데, 그 당시의 영토는 북부 아프리카 전체, 동부 유럽 전체, 중동지역 전체를 확장한 로마 이후 최대의 영토를 지니게 된다.
그 후로 점점 오스만 터키는 기울기 시작하고 점점 전쟁에서 지는 횟수가 많아지게 되는데, 그래도 오스만 투르크는 당시에는 최강 중의 하나였다. 그러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편에 선 오스만 투르크는 전쟁에서 져서 패전국으로 전락하고, 그 많던 영토는 이미 다 상실하고 아나톨리아마저 점령된 상태가 돼버렸다. 이 와중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터키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다.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은 터키인의 국부라는 말로 국회로부터 받은 칭호이다. 아타튀르크에 의한 독립운동은 성공해서 1923년 공화정이 들어서게 되고 왕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