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중 시기의 시작과 하느님의 사랑
대축일들이 지나고 본격적인 연중 주간이 시작되는 이 시기의 첫 번째 주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삶 속에서 진정으로 그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2. 제1독서 탈출기: 지도자 모세의 진정한 덕목
인간적인 능력의 한계: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 광야에 진을 치며 십계명을 받게 됩니다. 흔히 모세를 뛰어난 군사 전략가나 지도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 속 모세는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 한계를 지닌 인간이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순종:
아말렉과의 전투: 모세가 한 일은 그저 지치도록 손을 위로 드는 것이었습니다. 팔이 아플 때 옆에서 받쳐주어 결국 승리했습니다.
므리바의 물과 마라의 쓴물: 백성들이 목말라 원망할 때, 모세는 합리적인 대책을 세운 것이 아니라 "바위를 치라", "나뭇가지를 물에 넣으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조건 없이 순종했습니다.
선택의 이유: 신명기 7장 7절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작고 보잘것없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유일한 능력은 하느님께 묻고, 하라는 대로 순종한 것뿐이었습니다.
3. 독수리 날개로 보호하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독수리 날개에 태워" 데려왔다고 하십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날리기 위해 둥지를 부수고 벼랑 끝으로 밀어 떨어뜨리지만, 새끼가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 큰 날개를 펴서 받아냅니다.
인생의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이 나를 결국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4. 복음과 제2독서: 죄인과 약자를 부르시는 사랑
예수님이 뽑으신 12제자: 예수님이 뽑으신 제자들은 엘리트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로마에 대항하는 독립투사(열혈당원)와 친일파 같은 이(세리)가 섞여 있었고, 의심 많은 이와 배신자도 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사명: 예수님은 이 부족한 이들에게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잘난 사람들을 앞세우는 곳이 아니라, 거꾸러진 이들과 약자들을 먼저 일으켜 세우는 곳입니다.
사랑의 증명: 로마서 5장 8절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결론: 이번 한 주간 내 의견과 내 생각을 앞세우기보다, 주님께 묻고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따름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강론을 바탕으로 한 묵상
"내 생각의 지팡이를 내려놓고 바위를 치는 믿음"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합리적인 대책과 눈에 보이는 계산을 먼저 따지곤 합니다. 인생의 목마름(마라의 쓴물, 므리바의 광야)을 만났을 때, "어디를 파야 물이 나올까?"라며 인간적인 참모 회의를 소집하느라 분주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신부님의 강론은 뼈아프면서도 큰 위로를 줍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쓰신 이유는 그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도저히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바위를 치라", "손을 들고 서 있으라", "쓴물에 나뭇가지를 던지라"는 말씀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부족함과 똑똑한 척하는 물리학적·인간적 관점은 때로 하느님의 기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벼랑 끝에서 만나는 독수리의 날개"
삶의 시련이 찾아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집니다.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지만 어미 독수리가 새끼의 날개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둥지를 부수고 벼랑 밑으로 밀어 떨어뜨리듯, 주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한 당신의 백성으로 키워내기 위해 때로 삶의 안락함을 흔드십니다.
중요한 것은 떨어지는 순간의 두려움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땅에 닿기 직전 나를 어마어마한 날개로 받아내실 하느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나서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작고, 여전히 죄인이며, 제자들처럼 서로 어울리기 힘들 만큼 모나고 부족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내 것"이라 부르시며 십자가로 그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오늘의 다짐: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며, 내 삶의 자리에 찾아오는 크고 작은 전쟁(아말렉)과 목마름 앞에서 내 경험과 지식을 먼저 내세우지 않기를 청합니다. 주님께 먼저 묻고, 주님이 원하시는 곳을 향해 순박하게 손을 들어 올리는 '단순한 순종의 한 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