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귀감의 열네번째 게송
참선(參禪)엔 수구삼요(須具三要)니
일(一)은 유대신근(有大信根)이요
이(二)는 유대분지(有大憤志)요
삼(三)은 유대의정(有大疑情)이니
구궐기일(苟闕其一)하면 여절족지정(如折足之鼎)하야
종성폐기(終成廢器)하니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다.
만약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진다면
마치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쓸모없는 물건이 되리라.
참선의 삼요(三要), 세 가지 요긴한 점, 이것은 무엇이냐?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심(大疑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심이나 분심, 분심이라는 것은 분발심이죠.
분노하는 마음. 의심. 이런 것들이 있지만, 여기서 앞에 대자를 해 놓은 것을 잘 유념 하셔야 돼요.
큰 신심, 큰 분심, 큰 의심.
그 주해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성불하는 데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신심이 근본이 된다, 말씀하셨고.영가스님께서는“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된다.”입지, 분발심을 일으켜야 된다는 거죠.
또 몽산스님은“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였다.
이렇게 돼서 부처님과 조사스님들께서 큰 신심과 큰 분발심과 큰 의심을 강조했습니다.
이 세 가지,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은 마치 세 발 달린 솥과 같아서 하나라도 결여 되며는 솥단지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은 자세히 살펴보자면, 결국은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삼독을 전환 시킨 것에 다름 아닙니다.
탐욕은 대신심으로, 성냄은 대분심으로, 어리석음은 대의심으로 이렇게 전환시키는거죠.
누구나 중생들이 삼독을 갖고 있다고 하죠. 탐진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것을 사실 없앤다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왜냐? 이것은 습기이기 때문에. 습기라는 것은 습관적인 기운입니다. 금생에만 쌓여온 게 아니라, 전생 전생부터 연습해 온 결과물이죠.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어요. 걸핏하면 화를 내고, 시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유난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유난히 뜨문뜨문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 금생에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과거 생부터 몇 생을 거듭해서 연습해서 이런 그 해빗 에너지, 습관적인 기운이 형성된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없앤다는 것은 참 정말 그 환골탈태 하기 전에는 어렵죠. 그러므로 이러한 삼독 에너지를 완전히 없애고자 노력하는 것보다, 차라리 방향을 전환시켜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드는 비결, 이게 바로 여기 있는 거죠.
다시 말해서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 혹은 가족을 위한 욕심이 많아요. 잘 먹고, 잘 살고, 명예롭고 장수하기를 추구하죠. 하지만 초점을 돌이켜 놓으면 큰 신심으로 바뀝니다. 어떠한 욕심을 갖느냐? 큰 욕심을 갖는 거죠.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욕심, 머무는 바 없이 베풀리라는 욕심, 불보살님을, 뭐 누구는 기도해서 관세음보살님을 만났다는데 나도 한번 만나보겠다는 욕심. 이게 바로 욕심이지만, 큰 욕심은 바로 서원으로 통하는 겁니다. 법륜을 굴리고자하는 욕심, 이렇게 전환시킬 때 그것은 더 이상 욕심이 아니고 큰 신심으로 바뀌는 거죠.
성내는 것도 마찬가지죠. 대체로 남의 허물을 잘 보기 때문에 성을 자주 내게 되죠.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런데 너는 왜 이런 태도를 취하느냐? 이렇게 순간적인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 성을 잘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발력이 있기 때문에 남의 허물을 순간적으로 꿰뚫어 보고, 속사포처럼 퍼부어대는 거죠. 하지만 그런 성냄의 대상을 전환해서 자신의 허물을 보는 쪽으로 터닝을 시키게 되며는 허물을 보는 에너지는 발달해 있기 때문에 자신의 허물을 보는 쪽으로 터닝을 시키면 분발심으로 바뀐 겁니다. 큰 분발.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도 되고, 보살도 되고, 조사스님도 되는데, 나는 왜 안 됐을까? 좋다. 나도 한번 해보리라. 이렇게 분발하게 되는 거죠.
뜨문뜨문한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성을 자주 내지 않죠. 왜냐? 남에게 퍼부어대려고 해도 순발력이 따라와 주지를 않는 거예요. 한참 언쟁하던 자리를 떠나서 집에 도착하거나, 하루 밤 자고 나야, 비로소 앞서의 상황에서‘야, 내가 화를 냈어야 되는데’이런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서 이런 분들은 큰 욕심도 없어요. 그렇지만 이런 분들은 꾸준함을 갖추고 있죠. 뚝심 있는 소처럼. 뚜벅뚜벅 자신만의 길을 갑니다. 화두 하나 붙잡으면,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서 결국 일을 성취해 내죠. 큰 의심은 확고히 모르는 데서 나오는 것이죠.
이렇게 삼독을 삼요로 전환시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