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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이

작성자현우당 법오|작성시간17.07.02|조회수42 목록 댓글 0

선가귀감  열여덟 번째 게송


工夫는 如調絃之法하야 緊緩에 得其中이니 

공부    여조현지법       긴완     득기중       

勤則近執着하고 忘則落無明하리니 

근즉근집착        망즉낙무명            

惺惺歷歷하고 密密綿綿이니라.

성성역력       밀밀면면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이 하여 팽팽하고 늦춤이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진다.

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이 공부, 참선 공부하는 하나의 또 방법을 여기서 설하고 있죠.

그 주해에 보며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거문고 타는 사람이 말하기를, 그 줄의 늦추고 팽팽함이 알맞아야 아름다운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 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조급하게 하면 혈기를 올릴 것이고, 잊어버리면 흐리멍텅해서 귀신의 굴에 들어가게 된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으면 오묘한 이치가 그 속에 있을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 소냐라고 하는 비구 스님이 있었죠.

이 스님은 출가하자마자 죽어라 하고 공부를 했어요.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죠. 밤에도 자지 않고 막 정진 하고, 열심히 했는데 깨치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비관하게 되죠. 

‘야~ 이렇게 죽어라~하고 공부하는데도 한 소식이 안 오고 그러는데, 이럴 바엔 차라리 다시 환속해서 복이나 짓고 사는게 낫지 않을까?’

이런 회의감이 들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하는 것 자체는 뭐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지만,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문제라는 게 바로 이거예요.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빤짝하고 말게 되는 거죠.

마치 인생을 백 미터 달리기 뛰듯이 그렇게 뛰는 사람은 나가떨어지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마라톤이죠. 금생이 지나면 또 다음 생이 있고. 이런 식으로 가야 되는데, 이 소냐라는 비구는 막 백 미터 달리기 하듯이 단번에 결판을 낼라고 하다 보니까, 안 되는 거죠. 왜냐?
그런 마음 자체가 쉬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비관하고 차라리 이럴 바에야 환속을 해서 복이나 짓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그의 심중을 살피시고 불렀죠.

“네가 세속에 있을 때 거문고를 타본 일이 있느냐? ”

그때 인제“네, 제가 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럼 줄을 너무 죄면 소리가 어떻더냐?”

"소리가 끊어집니다.”너무 바싹 죄며는.

“너무 늦추면 어떻게 되느냐?”

“그때는 소리가 나질 않습니다. 줄을 적당히 알맞게 골라야 소리가 제대로 나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죠.

“맞아, 정진도 그렇게 해야 하느니라. 너무 조급하게 하면 들떠서 병이 나기 쉽고, 너무 또 게으르게 하면 게으름에 떨어져서 진도가 안 나간다. 그러니까, 너무 집착하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며, 꾸준히 닦도록 하여라.”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날부터 거문고 줄을 고르듯이 적당히 정진을 해서 마침내 깨쳤다는 이야기가 경전에 나옵니다.

부처님의 최초 설법도 바로 중도법이었죠.

자신을 비난하며 떠나간 다섯 비구, 오 비구들에게 최초의 한 설법도 중도법입니다.

“너희는 고행에도 빠지지 말고, 그렇다고 해서 쾌락에도 떨어지지 말라. 중도 수행을 행하거라.”

바로 이겁니다. 수행을 무슨 뭐 고시 공부하듯이 내가 3년 안에 결판을 내고, 3개월 안에 내가 결판을 낸다. 이런 식으로 공부하며는 공부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이 생깁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분들 많이 봤어요. 그래가지고 결국 남는 건 뭐냐 병만 남아요. 육신이 병들고, 또 마음이 병이 듭니다. 왜냐? 이 소냐처럼, 아,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뭐가 이게 소득이 없다. 이거죠. 그러니까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니냐?자신이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죠.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꾸준~히 하는 겁니다.

꾸준히! 낙숫물 떨어지듯이 꾸준~히 해야지, 커~다란 바위 돌을 막 단단한 바위 돌을 깨뜨린다고 막 해머 들고 막 설쳐봐야 자칫하며는 해머가 튕겨서 자기 머리를 맞추고, 다리를 맞추고,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나기 쉽다. 이거죠.

그래서 하루에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뭐 열 시간이든 이렇게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마치 물방울 떨어지듯이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요령으로 이렇게 꾸준~히 하다 보며는 반드시 성과가 있죠.

근데 이것도 막 그냥 공부도 뭐 한번에 해 마치겠다고 하다보면 그 자체가 엄청난 욕심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 했죠.“도를 일러주십시오. 한~마디로 저한테 도를 일러주십시오.”

이 얼마나 큰 욕심입니까? 수많은 세월동안 공부를 해도 일러 줄까 말까한, 또 알아들을까 말까한 도를 한~마디로 나에게 가르쳐달라. 이런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가르쳐 주죠. 

“한강물을 한입에 마시고 오너라. 그럼 내가 가르쳐 주리라.”

너의 그 한~마디에, 단숨에, 뭐 삼 개월 안에, 삼 년 안에, 해 마치겠다는 바로 그런 생각이,  한강물을 단숨에 마셔버려야 한다는 그런 욕심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그 욕심, 그것을 놓아야 돼요.도를 공부하는 것도 역시 거문고 줄을 고르듯이 해서 적당히. 원래 적당하다는 말은 굉장히 좋은 말입니다. 적합하고 당연하다 이런 뜻이죠. 그것을 요새 좀 안 좋은 쪽으로 써서 무슨 뭐 적당주의다. 이런 식으로 안 좋게 쓰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본래 적당하다는 말은 굉장히 좋은 말이죠.

적합하고 당연하게 알맞게. 이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알맞게 공부도 해 나가야 점점점점 진도를 나가게 되고, 부작용이 없게 된다고 하는 것이죠. 공부를 무리해서 짓다 보며는, 특히 인제 화두, 참선을 이렇게 억지로 막 무리해서 짓다 보며는 상기병이 와요. 상기라는게 길이, 자기 기운이 자꾸 올라가서 머리 쪽으로.머리가 아파집니다. 또 막 머리에 막 또들또들 뭐 뽀드락지 같은 게 나오고, 아주 그냥 막 얼굴이 벌~게지고. 머리도 막 투통도 느끼고. 그래서 약이 없어요. 상기병에 걸리면 약이 없어요.

그냥 놓고 쉬어라. 당분간이라도. 이렇게 인제 가르쳐주시죠. 그러고 뭐 차선책은호흡법으로 조정을 하는 그런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그래서 복식호흡을 권장하기도 하고, 이렇게 되는데, 그것도 뭐 하나의 방편일 뿐이지, 그 자체로써 어떤 도의 근원을 삼는 것은 아니죠. 그것은 왜냐? 너무 무리했기 때문에. 우리 몸이나 마음은 적절하게 움직여주고, 적절하게 사고를 해야 되게끔 되어 있어요. 근데 그것을 지나치게 움직인다든가, 지나치게 분별 망상을 한다든가, 또는 너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잠만 잔다든가 이렇게 되며는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지혜가 밝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집착하지도 말고, 너무 애를 쓰지도 말고, 또 너무 놓아버리지도 말고. 화두를 들어야 된다. 이거죠.

그래서 성성하고 역력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성성하게 깨어있으면서도 역력하게 뚜렷뚜렷하게 차근차근하게 꾸준히 해야 된다.

면면, 밀밀면면(密密綿綿)이라고 되어있어요. 원문에 보면.

면면이라는 건 뭡니까? 실이 이어지듯이 꾸준~히 이어져야 된다. 이거죠.

너무 막 억지로 부지런을 떨면서 하지 말고 면면하게 꾸준~히 이어져야 된다.

이 화두를 드는 방법과 보디가드가 자기 경호원을 보디가드 하는 방법이 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디가드가 자기의 그 경호원을 경호할 때, 경호 대상을 경호할 때 삼 원칙이 있어요. 

첫째, 시선을 떼지 마라.

둘째, 방심하지 마라.

셋째, 사랑에 빠지지 말라.

이것이 바로 간화선, 화두를 간하는 요령과 상통하는데요.
화두에서 시선을 떼면 안 되는 면에서 첫 번째하고 통하죠. 시선을 떼지 마라. 화두에서

항상, 앉으나 서나, 오나 가나, 자나 깨나, 죽으나 사나, 화두를 바라보고 있어야 돼요.

그게 간화죠. 그래서 볼간(看)자.

그 다음에는 두 번째는 방심하지 말라. 그 경호하는 사람이 자기 경호할 사람을 바라봐야되겠지만, 그렇다고 그 주변상황, 자신의 주변상황 이런 거에 대해서도 방심할 수는 없는 거죠. 역시 그 사람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되고, 주변상황을 다 관찰하고 또 자기할 일을 해 나가면서 있어야 됩니다. 그게 바로 두 번째 원칙, 방심하지 말라.

세 번째 사랑에 빠지지 말라.

화두를 든다고 해서 화두를 막 머리로 사량분별로 이렇게 들게 되며는 상기병이 옵니다.

열이 나요. 그러기 때문에 화두를 든다는 것은 마치 간호사가 환자를 간호하듯이 그렇게

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간호사의 간자와 간화선의 간자가 같은 간자예요. 볼 간(看)자. 

간호사가 환자를 간호할 때 어떡합니까? 하루 24시간 환자 옆에 앉아서 가만히 있습니까? 그게 아니죠. 자기할 일을 하고 다 합니다. 밥도 먹고, 나가서. 그러면서도 항상 염두해 두고 있는 거예요. 

그 환자를. 염두 해 두고 있다가 주사 놓아줄 시간이 되면 가서 주사 놓아 주고, 체온을 체크할 시간이 되면 가서 체온 체크해 주고. 약 먹을 시간이 되면 가서 약 먹이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간호사가 환자를 간호하듯이 그렇게 화두를 간해야 된다. 바로 이것이 삼 원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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