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귀감. 그 스물두 번째 게송
大抵參禪者 還知四恩 深厚麽
대저참선자 환지사은 심후마
還知四大醜身 念念衰朽麽
환지사대추신 념념쇠후마
還知人命 在呼吸麽
환지인명 재호흡마
生來値遇佛祖麽
생래치우불조마
及聞無上法 生希有心麽
급문무상법 생희유심마
참선하는 이는 항상 이렇게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높은 것을 알고 있는가?
네 요소로 구성된 더러운 이 육신이 순간순간 썩어 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또 거룩한 무상 법문을 듣고서도 기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不離僧堂 守節麽
불리승당 수절마
不與隣單 雜話麽
불여인단 잡화마
切忌鼓扇是非麽
절기고선시비마
話頭 十二時中 明明不昧麽
화두 십이시중 명명불매마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 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지내지 않는가?
분주하게 시비나 일삼고 있지나 않은가?
화두가 십이시중 어느 때나 똑똑히 들리고 있는가?
對人接話時 無間斷麽
대인접화시 무간단마
見聞覺知時 打成一片麽
견문각지시 타성일편마
返觀自己 捉敗佛祖麽
반관자기 착패불조마
今生 決定續佛慧命麽
금생 결정속불혜명마
起坐便宜時 還思地獄苦麽
기좌편의시 환사지옥고마
此一報身 定脫輪廻麽
차일보신 정탈윤회마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에도 한 조각을 이루고 있는가?
자기의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님과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 부처님의 지혜를 이을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此是參禪人 日用中點檢底道理
차시참선인 일용중점검저도리
古人云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고인운 차신불향금생도 갱대하생도차신.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이 몸을 이때 못 건지면 다시 어느 세상에서 건질 것인가!”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데, 참선하는 이가 스스로 자기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될지 그 설명이죠.
참선하는 이는 스스로 이렇게 돌이켜 보아야 한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높은 것을 알고 있는가?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죠. 부모님 은혜, 또 국가의 은혜, 또 스승의 은혜, 그리고 시주자의 은혜. 이것이 바로 네 가지 은혜입니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 때는 그 사람이 효자냐 아니냐를 보고서 베풀라고 했습니다.
효성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은덕을 베풀며는 십중팔구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이거죠.
이 세상에 은혜 중에서 최고의 은혜는 부모님 은혜죠.
이 세상에 내가 오게 된 것도 사실 부모님의 몸을 빌어서, 부모님 덕분에 왔고, 또 부모님으로 인해서 내가 컸고, 이런데. 부모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은혜를 알리가 없죠. 부모님 은혜도 모르는데 뭐 누가 좀 도와주고, 어려운 때 도와주고 그랬다고 그 사람 은혜를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남한테 도움을 줄 때는 그 도움을 줄 대상이 자기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면서 지내지는 않는가? 분주히 시비를 일삼고 있지나 않는가? 그거를 먼저 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는 사람이며는 아낌없이 도와주고, 왜냐? 그 사람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배은망덕하지는 않는다 이거죠. 그리고 부모님에게 불효하는 사람 같으며는 도와주지 말라 그랬어요. 왜냐? 배은망덕이기 때문에 나중에 배신당하고 나서 그럴 줄은 몰랐다는 둥, 그래도 그럴 수가 있냐는 둥,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거예요.
세상을 못 믿겠다는 둥, 그게 다 뭐냐? 어리석어서 그런 겁니다.
그래서 세상은 지혜롭게 살아야 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풀 때, 저 사람이 부모님한테 잘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먼저 살펴보고, 부모님한테 잘 하는 사람 같으면 아낌없이 베풀어 주고, 부모님한테 배은망덕한 사람 같으며는 베풀어줄 필요가 없다. 왜냐? 최상의 은혜인 부모의 은혜도 배은망덕 하는데, 다른 사람의 은혜는 당연히 그건 배은망덕할 수 밖에 없는 거죠.
그 다음에 또 국가의 은혜. 우리가 이런 국가에 지금 태어났으니까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는 거죠.
국가가 없이 남의 밑에서 이렇게 있다면은 참 살기 퍽퍽하죠. 힘들죠. 그래서 국가의 은혜를 알아야 되고. 또 스승의 은혜. 스승의 은혜야말로, 불가에서는 특히 스승이야말로 나를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분, 이게 바로 참다운 스승이죠. 그래서 이 육도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스승님의 은혜를 잊는다며는 그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죠.
과거에는 스승에게 정말 한 마디, 한 가지 가르침, 한 가지 경전을 배우기 위해서 몇 년씩을 시봉했다고 그래요. 삼 년을 시봉하고, 팔 년을 시봉하고, 십 년을 시봉하고, 그래 가지고, 겨우 몇 마디 딱 듣고 너무 기뻐서 환희심에 차고 이랬다는데, 요새는 인터넷도 발달하고, 통신 수단이 발달하고 이러다 보니까는 인제 뭐 아주 굉장히 그 중요한 질문 같은 것도 그냥 인터넷이나 통신 수단을 통해서 가볍게 던지고 그런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은 아무리 사회가 바뀌어도 또 바뀌지 않아야할 그런 부분이 있는 겁니다.
또 시주자의 은혜. 시주자가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내가 이 몸뚱이를 보존할 수가 있고,
또 이 몸뚱이를 보존했기 때문에 공부를 꾸준히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부모님 은혜, 국가의 은혜, 스승의 은혜, 시주의 은혜. 이 은혜가 깊고 높은 것을 알고 있는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죠. 그저 지 공부할 생각만 앞에 서 가지고, 어떻게 하며는 내가 공부 좀 해 가지고 뻥~ 한 소식 터뜨릴까 그 생각만 가지고 있지. 부모님 은혜, 국가의 은혜, 스승의 은혜, 시주의 은혜를 이거 알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 공부에만 급급해서 자기 욕심에만 채울라고 이렇게 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한텐 절대 뻥~ 터지지가 않습니다.
그 마음가짐을 고쳐먹어야 돼요. 마음가짐을.내가 이렇게 공부, 참선할 수 있다는 것, 화두 잡고 이렇게 틀어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야~ 이것 자체만으로도 내가 엄청난 부모님 은혜다.
엄청난 이 국가의 은혜를 받고 있구나. 스승의 은혜를 내가 엄청 받고 있구나. 야~ 시주자들 너무 고맙구나. 이런 마음가짐으로 앉아 있으면요, 뻥~ 하지 말래도 뻥~합니다.
근데 그런 마음은 없이 그냥 내 잘난 맛에 ‘내가 깨달음을 얻어야지.’이런 욕심만 가지고 앉아있다. 그건 안 되죠. 왜냐?
그건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게. 우주는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 은덕을 베풀게 되어 있어요.
뻥~ 터지는 것도 이게 우주가, 부처님이 은덕을 베풀어야 터지는 것이죠, 은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은덕이 안 베풀어집니다.
그래서 이 감사함, 은덕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이미 반은 터진 겁니다. 왜냐?
인이 충실해졌기 때문에 연이 충실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우주는 은덕을 아는 사람에게 은덕을 베푼다.”이거를 명심해야 됩니다.
그 마음에 네 가지로 이루어진 이 육신이 순간순간 썩어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죠. 우리 몸은 지수화풍,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요. 단단한 땅 기운, 그 다음에 젖은 물 기운, 또 더운 불 기운 그리고 숨이 통하는 바람 기운 이렇게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가 흩어져 버리며는 과연 무엇이 남겠습니까? 이 몸뚱이는 무상한 것이다. 순간순간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어디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야 되죠.
그래서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려 있다. 과거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은,
“사람의 목숨이 얼마간에 달려 있느냐?”부처님이 물어보셨을 때,
“한 나절에 달려 있습니다.”“너는 도를 모르는구나.”
“밥 먹는 사이에 달려 있습니다.”“너도 도를 모르는구나.”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데 달려 있습니다.”“네가 도를 아는구나.”이렇게 얘기하셨죠.
그래서 우리의 이 목숨이라는 것은 무상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변화하는것은 당연한 것이죠.
변화를 변화로써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것, 이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것이죠.
부처님과 아난존자의 재미있는 일화도 있죠.
아난존자가 성 안으로 탁발을 갔다 와서,
“부처님, 오늘 아주 기이한 일을 봤습니다. 기이한 것을 목격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기이한 일이냐?”
“제가 성 안으로 탁발하러 들어갈 때, 풍악쟁이들이 성 문 있는데서 신나게 노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잠깐 탁발을 하러 갔다 온 사이에 나올 때 보니까 다 그 풍악쟁이들이 죽어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죽었습니다. 기이합니다.”
“그래? 여래는 어제 더욱 기이한 모습을 보았느니라.”
“무슨 모습을 보셨습니까?”
“응, 내가, 어제 여래가 성 안으로 탁발을 하러 들어갈 때 그 풍악쟁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느니라.”
“그런데요?”
“잠깐 동안 탁발을 하고 나오는데 역시 또 그 풍악쟁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더라.”
그게 더 기이한 일이라는 거죠. 신나게 놀고 있던 사람들이 탁발을 하고 나오는 동안에도 역시 똑같이 신나게 놀고 있는 것, 이것이 진짜 기이한 모습입니다.
탁발 하러 들어갈 때 신나게 놀던 사람들이, 탁발하고 나올 때 다 죽어 버린 것, 이게 기이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뭡니까? 당연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기이한 것을 당연하다 그러고, 당연한 것을 기이하다 그러는 거예요. 그게 바로 중생들의 소견이고, 여래의 입장에서 보자며는 제행무상,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변하지 않는 것이 기이한 것이다.
이렇게 아는 것이 수행자의 올바른 마음가짐이죠.
그래서 이 몸뚱이가 숨 한 번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는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그런 스승을 만나고 그대로 지나쳐 버릴 수가 없겠죠. 왜냐? 스승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한 가지, 한 대목, 이것은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이 압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정~말 고생을 하고, 정~말 궁금해 하고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 스승 귀한 줄을 알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스승 귀한 줄도 모릅니다.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잡담을 하거나 시비를 일삼죠.
잡담은 줄여야 하고 법담은 늘여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화두가 어느 때나 똑똑히 들리는가?
남과 이야기 하고 있을 때도 화두가 끊임없이 이어지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도 한결 같은가?
제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 부처님의 지혜를 이을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자신이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화두를 들 때는, 처음에는 물론 앉아서 좌선을 하면서 화두를 참구하는 연습을 합니다.
그러나 화두를 가부좌 틀고 앉아서만 들어서는 안 되고, 앉아서 하는 것은 연습이죠.
그래서 나중에 이게 숙달이 되며는 앉으나 서나 화두 참구가 되어야죠. 또 그게 숙달이 되며는 오나가나 화두 참구가 되어야 됩니다. 그것을 동정일여라고 합니다. 動, 움직이나, 靜, 고요히 있어나, 一如, 한결 같다. 그 다음에 오나가나 까지 또 숙달이 되며는 자나 깨나, 그것을 오매일여라고 하죠. 寤, 깨어있으나, 寐, 자고 있으나 한결 같다.
그래서 마침내 오매일여의 경지를 넘어서서 나중에는 생사일여, 죽어나 사나 화두 참구.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화두라고 할 수 있죠.
참선한다고 가부좌 틀고 앉아 있을 때는 조금 되는 듯하다가, 또 왔다 갔다 할 때, 잠잘 때, 내지는 죽을 때 화두 참구가 안 된다며는 그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자신이 없는 거죠.
육신이 죽을 때도 한결같이 화두를 참구하고, 또는 염불을 하고 이렇게 된다며는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거죠.
그 다음에 공부가 잘 되고 있느냐, 안 되느냐를 확인하는 방법은 또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공부의 척도입니다.
내 마음공부가 지금 얼마나 됐느냐? 이것은 바로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 마음이 얼마나 움직이느냐?
여덟 가지 바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마음에 맞는 것과 거슬리는 것. 이겁니다 바로. 세상 일이 또는 내 주변 사람이 내 마음 뜻대로 되며는 좋아하고, 또 내 뜻대로 안 되고 나를 거스르는 사람이 있으며는 거기에 막 화를 내고 이렇다며는 그것은 여덟 가지 바람에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경계와 순경계를 당할 때 마음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공부가 되어가고 있는 거죠.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 얼른 화두를 챙겨야 됩니다. 또 기쁜 일이 생길 때도 얼른 화두 참구, 또 슬픈 일이 생길 때도 얼른 화두 참구 이렇게 해서 마음을 여여부동하게 해야된다는 거죠. 그렇게 해야 결국 “이 몸 이때 못 건지면 다시 어느 세상에서 건질 것인가?”정말 이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몸을 받고, 불법을 만나고, 또 불법 가운데서도 정수인 금강경, 또 참선의 가르침 이런 것을 만났을 때 건져야지 금생에 못 건지며는 어느 생을 기다려서 이 몸을 제도할 것인가?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이리요.”
너무 멋진 게송이죠.
“이 몸뚱이를 금생을 향해서 제도하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서 이 몸뚱이를 제도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