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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이요

작성자현우당 법오|작성시간17.07.15|조회수33 목록 댓글 0

선가귀감 서른 한 번 째 게송


斷煩惱 名二乘 煩惱不生 名大涅槃.

단번뇌 명이승 번뇌불생 명대열반.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이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이다.


번뇌를 끊는 것, 단번뇌(斷煩惱)는 이름하여 이승(名二乘)이고, 번뇌불생(煩惱不生),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 이것이 이름하여 대열반(名大涅槃) 큰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주해를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끊는 것은 능(能)과 소(所)가 벌어지는데, 일어나지 않는 것은 능(能)과 소(所)가 없도다.

여기서 능(能)이라는 것은 주관을 뜻하고, 소(所)라는 것은 객관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번뇌를 끊는다. 이게 바로 능(能)과 소(所)가 벌어지는 거죠. 

능(能), 주체인 내가, 소(所), 객체인 객관인 번뇌를 끊는다. 이렇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이렇게 능과 소가, 주관과 객관이 있으면, 그것은 진정한 열반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죠.

진정한 열반이란 무엇이냐? 능과 소 자체가 사라져버려야 된다.

“내가 번뇌를 끊는다.” 이렇게 되면 나도 있고, 번뇌도 있고, 끊는 것도 있는 것이 되죠. 그래서 그것은 궁극적인 대열반의 경지에 아직 못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열반이라는 것은 바로 범어 Nirvana를 한문으로 음사한 것이죠.

 Nirvana라는 것은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사라져서 지극히 고요하고 청정한 경지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번뇌의 불꽃이 꺼져버린 편안한 상태를 열반이라고 하죠. 

제가 하는 식대로 표현하자면 “완전연소”된 상태, 이것이 바로 Nirvana라고 하는 겁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주인이 되어서 완전 연소하는 것” 이것이 Nirvana예요.

이 불꽃이라는 것은 무언가 욕망, 성냄, 어리석음 이런 것을 지금 비유로서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탐(貪)・진(瞋)・치(癡) 삼독이 완전히 꺼져버린 쉬어버린 상태, 다시 말해서 완전연소가 된 상태, 더 이상 탈 것이 없는 그런 상태가 바로 Nirvana죠.

그래서 이 소승법에서는, “번뇌를 끊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야 열반에 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승법에서는, “번뇌가 본래 없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번뇌는 본래 공(空)한 것이다.” 그래서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달아서,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무슨 일을 하든 열반의 즐거움을 갖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대열반(大涅槃)이다.

기신론(起信論)에서도 이 열반의,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번뇌, 마음이 생(生)・주(住)・이(移)・멸(滅)하는 것이라고 일단 보는 거죠,

대승에서는. 마음이 생겨났다가, 머물렀다가 한 동안, 그 다음에 살살 사라졌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진다. 이게 바로 생(生)・주(住)・이(移)・멸(滅)이예요.

뭐, 대학에 다니면 미팅도 하고 많이 그러죠. 미팅을 해서 이제 상대방을 만났어요. 딱 보니까  바로 내가 원했던 그 이상형이야.  그래서 야!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바로 이 여자다. 그래 가지고, 좋아하고 다시 만나자고 해서 After 신청을 하고, 그래서 또 만나고 이러다 보니까, 점점 좋아져야 되는데, 이게 살살 이제 한 동안은 이게 가죠. 한 동안은 가는데 자꾸 만나다 보니까, 조금 뭔가 내가 생각했던 그런 게 아닌 거예요. 그러다 보면 마음이 처음에 생겨났다가, 애정이, 한 동안 머무르다가, 그게 이제 살살 식습니다. 이(移), 달라진다, 이거예요. 그래가지고 나중에 몇 년이 지나서는 또 언제 그랬느냐? 싶듯이 완전히 잊어버려요. 

그게 바로 마음의 생(生)・주(住)・이(移)・멸(滅)이라고 하는 겁니다.

생(生) 생겨났다가, 주(住) 머물렀다가, 이(移) 변화, 변이(變移), 변화됐다가,

멸(滅) 완전히 소멸(消滅)한다. 그래서 이 마음이라는 건, 본래 공(空)한 것이기 때문에 번뇌라는 것도 마찬가지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거기서 번뇌가 따라오게 되죠, 당연히. 왜? 내 맘대로 되어야 되는데, 내 맘대로 안 되죠. 내 몸뚱이도 내 맘대로 안 되고, 내 마음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남의 몸뚱이 남의 맘이 내 맘대로 그거 되겠어요? 내 맘대로 되는 경우도 있지만, 또 안 되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 보니까 걱정도 생기고, 근심도 생기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마음이 생(生)하고, 머무르고, 변화하고, 소멸되는 이 단계에 따라서, 어느 단계에서 그걸 알아차려서 그것을 소멸하느냐에 따라서 깨달음의 경지가 다르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완전히 멸(滅)한 다음에, 생(生)・주(住)・이(移)・멸(滅)을 다 거쳐서 그때서야, 아~ 그때 그랬었구나. 하고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중생의 단계이고, 그 다음에 처음에 생겨날 때부터 미리 알아가지고 아예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구경각(究竟覺)이고, 그 다음에 머무르고 변화하는 단계에서야 겨우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바로 수분각(隨分覺), 상사각(相似覺)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대열반이라는 것은, 아예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이다.

어떤 분이 요즘 참선 수행을 몇 년 열심히 해 가지고, 자 이제는 내가 어떤 경계를 당해서도 끄떡하지 않는다. 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막 큰소리, 호언장담(豪言壯談)을 했죠.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안 돼서, 일 년이 채 못 돼서 이 스님이 환속을 하게 되는 그런 경우가 생겨났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무언가에 대해서 너무 호언장담하는 것, 이것도 역시 사실은 거기에 매어 있는, “나는 거기에 매어 있습니다.” 라는 그런 증거가 되는 거예요.

아예 그것에 대해서 벗어나 있는 분은 호언장담 조차도 안 하게 되는 거죠.

왜냐? 그것에 대해 아예 초점이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누군가를 유난히 남의 허물을 잘 보는 사람은 제 허물이 많은 사람이고, 또 유난히 호언장담하는 사람은 아직도 거기에 매어 있는 겁니다.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에 호언장담을 하는 거예요, 막. 콤플렉스가 아예 없는 사람, 거기에 대해서 완전히 마음이 쉰 사람은 지나치게 호언장담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또 거기에 속박되지도 않는... 그렇다는 거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Nirvana, 열반의 상태인 것이지, 지나치게 거기에 대해서 자만심을 갖고 호언장담을 한다거나, 또는 지나치게 스스로를 비굴하게 묶어 놓는다거나, 이런 것들이 사실은 모두 이 구경각, 열반에서는 벗어나 있는 경지다. 

왜냐? 능・소가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죠. 이미 능・소, 주관과 객관이 있게 되면 그게 바로 분별심이고, 그 최초의 분별심으로 인해서 수많은 분별의 경지가 열리는 거죠.

그래서 능과 소가 아예 나지 않은, 쉰 상태, 주관과 객관이 벌어지지 않은 상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열반이라 그러죠.

금강경에서도 계속 이 말이 나오죠. 무엇을 베풀더라도 주었다는 생각,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었고, 너는 나에게 받았다. 내가 너를 깨닫게 해 줬고, 너는 나로 인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계속 나오잖아요

그게 바로 능과 소가 벌어지지 않은 이 대열반의 경지를 설하는 경전이기 때문에, 계속 그런 표현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최상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그런 중대한 비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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