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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추어 보아,

작성자현우당 법오|작성시간17.07.16|조회수30 목록 댓글 0

선가귀감  서른두 번째


수허회자조(須虛懷自照)하야,

신일념연기무생(信一念緣起無生)이어다.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추어 보아, 

한 생각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 사실은 일어남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추어 보아. 비추어본다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뜻하죠.

보통 우리 육신의 눈은 밖으로 향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꾸 바깥을 보는데 숙달돼 있죠.

그것을 돌이켜서 마음의 눈으로, 밖을 향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향해서, 육신의 눈과는 반대가 되는 방향으로 보는 것, 이것이 바로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비추어보아서, 한 생각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 사실은 일어남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한 생각 연기(緣起)가, 연기(緣起), 연 따라 일어났다가 연 따라 사라지는 것, 이것이 본래 무생(無生), 생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믿어야 한다.

그 주해에서 보면, 이것은 성품이 일어나는 것만 밝힌 것이다. 차(此)는 단명성기(單明性起)라. 성품이 일어난다. 이 성(性)과 상(相)을 나누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다음 구절은 성과 상을 함께 밝혔다. 이렇게 돼 있고, 지금 이 서른두 번째 구절은 성품이 일어나는 것만 홑으로 밝혔다.

성품(性品)이라는 것은 본체(本體)를 뜻하고, 상(相)이라는 것은 작용(作用)을 뜻합니다.

본체와 작용,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을 하게 되죠. 일심(一心)에는 이문(二門)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한 마음 자리에 본체의 문과 작용의 문이 있다.

우리 보면, 법성게(法性偈)에는 처음에 이렇게 나오죠.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법의 성품, 진리의 성품이라는 것은 원만하고 융통성이 있어서, 두 가지 상이 없다. 두 모습이 없다. 한 모습이라는 거죠.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은, 모든 존재는 부동(不動), 움직이지 아니하고 본래 적적한 것이다.

어젯밤 꿈속에서 미국에도 갔다 오고, 중국에도 갔다 오고, 캐나다에 가서 스키도 타 보고, 저기 태국에 가서 리조트에서 수영도 하고, 호주에도 갔다 오고,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다가, 아침에 딱 깨 보니까 꿈이었어요.

어젯밤에 잠들 때의 그 자리가 깨어난 후의 이 자리구나. 

이것이 바로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의 소식이라고 하는 거죠.

꿈속에서 사방팔방을 돌아다녔어도, 꿈 깨고 나면 그냥 그 자리인 것이죠. 

그것이 바로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이라. 예부터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다. 이름하여 부처다. 본래 부처 자리, 성품 자리, 본마음 자리에서 나와서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헤매다가, 방황도 하다가, 공부도 하다가 한 것 같지만, 딱 돌아가 보면, 바로 그냥 그 자리인 것이지, 어디 한 발자국도 움직인 적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죠.

대체 이게 무슨 소식일까? 어떻게 해서 한 생각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 사실은 무생(無生)이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그러죠. 무생법인(無生法忍)

우리가 중생이다, 부처다 나누고, 중생심을 쉬고, 부처의 본마음 자리로 돌아가고자 애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돌아가 보면, 바로 고향 그 자리 본마음 자리였던 것이지, 지금까지 한 번도 본마음 자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죠.

본마음 자리에서 나와서 본마음 자리로 돌아가는 바로 이거죠.

인생은 나그네 길이지만 결국은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고향을 왜 떠난 적이 없다고 할까? 우리가 항상고향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고향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한 번도, 한 발자국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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