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4일 날씨 눈
'다운타운가면 분명 방을 구할 수 있을거야. 돼지코도 살 수 있어. 다운타운만 가면...다운타운만 가면...분명..분명..옹알옹알'
한참 달게 자다 밝음을 느끼고 번쩍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악~~~!!!!! 11시~~!!!!!!!
어제 밤에 연군과 한 대화가 머리 속을 스쳐간다.
'내일 아침에는 매니져가 7시에 breakfast time 이랬으니까 6시쯤 일어나서 밥 먹고 새벽같이 다운타운으로 나가서 하루종일 집 구하러 다녀보는거야. 우리 집 못 구하면 안 돌아 올 각오 하자~!!!! 푹 자. 굿나잇~'
젠장...-_-
그 와중에도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샤워까지 다 마치고-_-v김군은 소중하니까요
잠깐 나갔다 온 연군의 '대따 추워-0-' 한마디에 안에 츄리닝까지 입어주시고
어제 사 온 맥도널드 햄버거를 반씩 대충 우겨넣고 부리나케 모텔에서 뛰쳐나왔다.
근데 버스정류장이 어디냐-_-???
맞아, 어제 INFO 찾아서 정신없이 걸어가던 길에서 건너편에 어떤 여자가 버스 기다리는 거 본 것 같아. 그래?? 암튼 거기가서 기다려보자.오케바리.
이놈에 버스노선도는 아무리봐도 모르겠따-_-;;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몇 시에 오는지도 모르겠고 오늘 토요일인데 설마 주말이라 버스 안 오는거 아냐?ㅠㅠ 일단 무작정 기다려보자. 우린 무작정 좋아하잖아 하핫-_-;;
덜덜덜 떨면서 10분정도 기다리니 백인 아저씨 둘이 나타났다. 요호 다행히 버스는 있나보다 ㅎㅎ 잠시뒤 버스가 왔다.
어디까지가? 응? 아...구간별로 요금이 틀리다고 했지.. 음...지도에서 봤던게 생각이 난다. 아! 호..호호호스피탈~!! 훠스삐럴? 예~호수삐럴-_-'
이 나라 버스는 잔돈은 거슬러주지 않는다. 우린 한명당 1.25불, 김군연군 셋트니까 2.5불씩. 김군 버스 한 번 타봤다고 머리속으로 벌써 monthly pass 계산중이다-_-
한참 덧셈뺄셈곱셈나누기의 무아지경에 빠져있는데 옆에 있던 연군 옆에서 중얼거린다. 이거 어디서 내려야되는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중얼중얼.
얌마 이 나라는 장애인이 우선인 나라야~ 분명히 음성안내시스템이 있을거야. 없음 이상한거야~걱정마 걱정마'
이상하다-_- 대자연의 나라는 역시나 조용한 걸 좋아하는 걸까...두 정거장이 지나가는 동안 소리는 커녕 내리는 사람도 없다 흑
앞서 탄 두 백인 아저씨들은 우리가 신기한지 연신 곁눈질로 흘깃흘깃 쳐다보고 지들끼리 머라머라 하다 내려버렸다.
우앗, 저 아저씨들 다운타운 간다고 했는데~!!! 여기가 다운타운인가보닷!! 이 걸어다니는 네비게이션 김군만 믿으라고~유후
저~기 앞에 사거리에 이정표에 H라고 대빵 크게 써 있다. 오홋!! 야야야 병원병원~ 이번에 내려내려.
예상대로 사거리에서 좌회전 하자마자 내리니 언덕 위에 하얀 건물이 있다. 정신병원은 아니겠지 ㅎㅎ 자, 이제 다운타운을 뒤져보자고 홧팅~
일단 지도를 보니 다운타운은 그리 크진 않은것 같으니까 시청 쪽으로 걸어가면서 알아보자 오케바리.
<둘이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혼자는 정말 힘들었을거야...>
아파트먼트 렌팅한다는 전화번호 몇 개 적고 나니 지도상으로 다운타운 끝까지 왔다. 무슨 시내가 이리도 작아.-_-
영하 5도의 날씨에 주택가를 두시간 정도 헤매고 나니 춥고 배고프고 실망감에 의욕마저 완전 떨어진 상태.
다시 반대편 동네로 돌아오는 길에 코인세탁소에 들렸지만 룸렌트 게시판은 완전 깨끗ㅠㅠ 주말이라 신문도 안보이는건가 흑 포트 맥머레이에서 집 구하기 힘들거란 말이 사실이었나??
우린 정말 무모한 어리버리였단 말인가...이제 몇 시간 고생했는데 뭐 주말이라 그럴수도 있지. 벤쿠버에서 며칠 있다가 올 걸 그랬나. 하필 주말에 올게 뭐람...
오늘 집 못 구하면 하루에 백 불 넘게 주고 며칠 더 있어야 되는데...온갖 생각들이 머리 속에 가득차서 멀 어찌해야 될 지 몰랐다.
혹시라도 집 못 구하게 되면 좀 더 싼 데로 옮기고 이틀 더 있어보자. 모텔보단 INN이 더 싸겠지?? 우선 눈 앞에 보이는 INN으로 들어가서 물어봤는데.
헉 180불?? 세탁소 옆에 있던 다른 INN에 물어보니 190불 -_- 다운타운이라 더 비싼가보다 ㅠㅠ 옮기는건 일단 포기하고 오늘 열심히 돌아다녀보자~
춥고 발도 시렵고 저기 Jellers 쇼핑몰 같은 데 구경하면서 몸 좀 녹이자. 우오~ 길거리에 사람이 왜 하나도 없나 했더니 몽땅 여기 들어와있었군!!
여기저기 구경도 하다 부동산코너를 발견하고 기쁜 맘에 뛰어갔지만, sale sale sale ㅠㅠ우린 돈 없다고...징징
저기 전기제품 가게 있다. 온 김에 돼지코라도 사가자. 안되면 오늘 밤에 인터넷이라도 믿어 보자구 친구!! 밤새도록 인터넷 쓸 생각에 갑자기 기분 업 ㅋㅋㅋㅋ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간신히 찾았다~ 반갑다 돼지코~!!! 근데 10불???? 한국에서 500원도 안하는데 10불이라니!!!! ㅠㅠ 나의 준비성이 이렇게 한심스러워보긴 처음이다 흑
평소 같으면 더 싼 데를 찾아 열심히 돌아다녔겠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상황이 상황인 지라 눈물을 머금고 계산을 했다. ㅠㅠ10불이라니 어헝~
너무 억울한 맘에 김군과 연군 너무 크게 궁시렁 거렸나 보다. 지나가던 연세 지긋하신 중년의 동양인 한 분이 우릴 빤히 쳐다보고 계신게 아닌가?? 어라?? 아는 분인가?? 부끄럽게 뚫어져라 쳐다보시긴 >_<
'한국 분이세요?' 악~!!! 며칠만에 듣는 한국말에 너무너무너무 진짜 너무너무너무 반가웠다. 그때까지만해도 이놈에 포트 맥머레이라는 도시에 한국인은 우리 둘 뿐인듯한 기분이었으니까.
이렇게 한국 분을 만나다니 눈 앞이 아찔하고 기분이 몽롱한게 한겨울에 한나절을 신나게 눈싸움하다 들어와서 뜨거운 욕조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예~!! 한국에서 어제 왔어요. 아니 그저께 왔는데...횡설수설~ 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되고 한국인이 그렇게 반갑다고 들었는데 정말 정말 눈물나게 반가웠다.ㅠㅠ흙
하긴, 하루종일 헤매면서도 한국 차만 보면 반가워서 우앗 우앗을 연발했으니까 ㅋㅋㅋ
각설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 상황을 말씀 드렸다. 캐나다 오자마자 바로 어제 여기 도착해서 오늘 방 구하러 돌아다니는데 찾기 힘들다고...
지금 생각하면 웃기고 부끄럽지만 이 말 하는데 왜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였는지 모르겠다. 마치 학교에서 친구한테 흠씬 두들겨 맞고 와서 큰 형한테 이르는 기분... 그런 기분이었다.
밴쿠버에서 30년 살다가 가족들은 다들 밴쿠버에 있고 돈 벌러 잠깐 용접일 하러 오셨는데 샌드오일 붐때문에 워낙 사람들이 많이 밀려 들어와서 집 구하기 힘들거라고 하신다. 더 좌절 ㅠㅠ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시고 지금 있는 모텔이 부담된다면 혹시 모르니까 요 앞에 안면이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INN 있는데 같이 가보자고 하셔서 흔쾌히 동행 했다. 너무 고마운 분이었다.
나도 언젠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손길이 나타난다면 한치 망설임 없이 잡아주리라 다짐했다.
들어가보니 카운터에 동양인 여자 분이 앉아있었는데 반갑게도 한국 분이었다. 얘기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오너 조카이고 역시나 밴쿠버에서 살다가 일 도와주러 왔단다. 원래 숙박료는 지금 있는 곳과 비슷했지만 삼촌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더 저렴하게 해 줄 수 있단다^-^ 역시 한국인은 정이야ㅠㅠ 초코파이라도 가져올걸 흑
포트맥머레이 시청 뒷편에 ACE INN이라는 모텔이다. 운영하시는 분이 한국 분이고 일하시는 분 중에 한국인 남자분이 있었지만 우선 내 코가 석자라 안정이 되면 차차 통성명도 하고 술도 같이 하고 혹시나 깻잎이 아닌지도 물어봐야겠다 ㅋㅋㅋ혹시나 포트맥머레이에 올 분이 계시다면 여기를 찾아가시길^-^
매니저분은 우리의 무모한 포트 맥머레이 습격기를 듣더니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다-_- 와우~정말 대단하세요!!라고 했는데 왜 내 귀에 들리기엔 완전 무모하세요!!!! 라고 들렸을까 ㅠㅠ 심신이 지치니 헛 것이 들리나보다 흑
내일까지 집 못 구하면 내일 오후에 짐 옮기기로 하고 매니저 명함 한 장 받아서 나왔다. 이러다 정말 일주일내내 모텔신세 지는건 아닌지 ㅠㅠ
아저씨께서 버스 시간이 좀 남았는데 점심 먹었냐고 물어보신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3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안먹고 하루종일 돌아다녔구나.
그냥 대충요^-^;;; 그럼 간단히 요기나 하자며 여기서 한국사람 보기 힘든데 만나서 반갑다며 같이 가자신다. 시간이 별로 없어 근사한 식사는 대접 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우시다며... 완전 고마움 감동 ㅠㅠ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오홋 웬디스랑 팀홀튼이랑 붙어있네??? 국민학교 때 이후로 처음 가 본 웬디스. 잠시 추억에 잠겨...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웬디스 어린이 셋트 먹고 나면 주는 장난감이 왜그리 좋았는지...말 그대로 웬디스 런치셋트에 환장했었다. 중학교 이후로 안보이더니 한국에선 망한건가???
주문하는 걸 잊은 채 옛 추억에 잠겨 있는데, 머 먹을래요? 네? 음...어린이 셋트요!! 가 튀어나올뻔했다가 아무거나요 헤헤. 이러저러 말씀도 고마운데 점심까지...캄사합니다^-^
이정도는 먹어야 젊은이 양이 차겠지 하며 치즈랑 패티 세장 들은 트리플버거를 시키신다-0- 연군 또 남기겠구나.ㅋㅋ
버거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에도 여러가지 말씀을 해주신다. 포트맥머레이의 약간 암울한 현실을 말씀하시면서도 힘내라는 격려를 빼놓지 않으신다. 이 고마움을 나중에 어떻게 갚아드릴까하다 연락처와 이멜주소를 받아적었다.
버거가 나오고 5분정도 말씀하시다가 버스시간이 다 되서 가봐야겠다고 천천히들 먹고 몸 좀 녹이고 나오라며 힘내라는 말과 함께 문 밖으로 나가시는데 어찌나 마음이 허전하던지...연군은 또 다시 막막해진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단다.
이제 다시 우리 둘 뿐이다. 이거 먹고 힘내서 다시 돌아다녀보자. 아자~!!!
<방도 못 구하고 모텔 방으로 돌아가는 길. 4시밖에 안됐는데 어둑어둑>
한 시간 반 정도를 더 돌아다니다가 결국엔 다운타운 끝까지 와 버렸다. 해는 이제 산 끝에 걸리고 점점 어둑어둑해지는데 집은 못 구하고 눈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Heritage park 앞에서 기념사진 찍어주는 센스는 잊지 않은 걸 보니 아직 덜 고생했다-_- ㅋㅋ
<Heritage park 앞에서. 아직 고생 덜 했지 이자식들-_->
아까 버스타니까 금방 오더라. 지도에서 봐도 별로 안 멀어 보이지. 집도 못 구했는데 그냥 걸어가자. 오케바리.
10분정도 걸어서 조그만 다리를 건너고 나니 웬욜-0- 인도가 없어졌다. 어쩌지어쩌지어쩌지 이 길로 계속 가면 나올 것 같아. 아냐 저 위에 길 같은데. 이 길 맞는 것 같다니까.
그래 일단 가보자. 어딘지도 모른 채 인도도 없이 눈이 잔뜩 쌓인 가드레일에 바싹 붙어서 가끔 미끄러지면서 걷고 있자니 갑자기 서러워지는거다. 울컥. 아냐 이정도 일로 약해지지 않아. 마음 굳게 먹고 힘내자.
지도를 꺼내서 자세히 보니 아무래도 다른 동네로 들어 가는 길 같다. 해는 져서 어두컴컴해지고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돌아가서 버스 타고 가는게 낫겠다. 도착부터 되는 일도 없고 우리 왜이럴까....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 몇 개 밖에 없는 공원을 가로질러 오는데 사람도 한 명 없고 왠지 분위기가 으시시한게 저 쪽 숲 속에서 꼭 머라도 나올 것 같았다. '야 여기 야생동물공원 아냐? 늑대 나오고 곰 나오고-_-;;'
다시 20분을 걸어서 Keyano college 앞에 있는 정류장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갑자기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생각이 들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보고싶고 사랑하는 애인도 보고싶고 몇 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는 진급까지 해 놓고 왜 그만두고 돈 많이 벌 수 있고 조용하다는 말만 철썩같이 믿고 캐나다 땅 처음 밟아 보는 놈이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마저 거의 없는 정말 무지의 낯선 이 완전 시골까지 와서 what the fXXXXXX am I doing hereㅠㅠ
내가 너무 일찍 좌절을 맛 보는건가. 그래도 연군 니가 있어서 의지가 된다. 혼자였으면 아마 지금 아무도 없는 이 정류장에 앉아서 울어버렸을거야.
'연군아 우리 오늘 한 게 머지... 집도 못 구하고 모텔비는 하루에 백불이 넘는데말야. 그냥 밴쿠버에서 몇 달 적응하고 올 걸 그랬나. 내일 아침에 체크아웃하고 숙소 옮기고 이틀 더 구해보다가 안되면 에드몬튼으로 가자. 근데, 그럼 우리 900불 들여서 여기 4일 있다가 에드몬튼 가면 여긴 뭐하러 온거지. 오늘 우리 다운타운 가서 머했지?'
'돼지코 샀잖아'
'풉, 그래 돼지코 샀지...ㅋㅋㅋ 그럼 우리 여기 900불 짜리 돼지코 사러 온거네?ㅋㅋㅋ 밴쿠버에서 여기까지 900불 짜리 돼지코 사러 온거구나 한국에서 500원짜리 ㅋㅋㅋㅋㅋ'
'응, 여기 돼지코가 좋다더라 ㅋㅋㅋ 기념품으로 잘 간직하자ㅋㅋㅋ'
이런 헛소리를 주고 받으며 힘 빠질 정도로 한참을 웃고나니 골목 끝에서 버스가 도로를 환하게 밝히며 오고 있는게 보인다. 마치 우리의 앞 길을 예고하듯.
그래, 그래도 서로 농담이라도 주고 받을, 서로 격려해 줄 친구가 있기에 우린 다시 힘내서 일어날 수 있겠다. 힘내자 김군!! 연군!! 우리는 강해지고 있어!!
"The hard is in my head. not in my legs."
-어려움은 내다리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내 머리속에 있다.
"힘들면 쉬었다 가도돼. 포기하지만 않으면돼. 끝까지 가야돼.
포기하면 안돼. 힘들면 걸어가도 되고, 그래도 힘들면 5분, 아니면 50분이라도 쉬었다 가면돼. 하지만 포기만은 안돼. 오늘 포기하면 내일도 포기하고 싶어지고, 그러면 그 다음날, 힘든 매순간마다 너는 포기하고 싶어질꺼야. 미안하다. 너는 계속가야돼. 포기하면안돼."
'90일간의 유럽자전거여행 두바퀴로 유럽지도를 그리다-김남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