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10:5-15)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속량하여 아들(자녀)로 세우기 위함이다(갈4:4-5).
왜 하나님께서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속량하시는가?
율법 아래에 있는 한 죄를 벗어나지 못하고(히10:4,11),
율법 아래에 있는 한 온전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히7:16-19, 10:1).
이는 율법으로는 하나님과 사이의 죄의 장벽을 없이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영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의 장벽을 없이하지 못함은
613개 항목의 율법이 죄 아래에서 시행된 여호와의 통치질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 죄 아래에 있다면 이방인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종말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심은 율법 아래에 있는 백성을 율법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이다.
율법으로부터 구원은 율법과 상관이 없는 자로 세운다는 말이다.
이는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시켜서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함으로 이루신다.
따라서 율법 아래에 있는 한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율법 아래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피 흘림이 요구된다.
피 흘림이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따라서 개혁신학의 주장처럼 예수께서는 모세율법에 순종하지 않으셨다.
예수의 공생애 사역은 613개 율법과는 다른 아버지 뜻에 따른 일이다.
아버지의 뜻은 예수를 율법 아래에 보내신 뜻이다.
이는 율법의 요구를 따라 죽으라고 율법 사회에 보내신 일이다.
이는 율법의 요구를 따라 화목제물이 되라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오심은 율법의 요구대로 죽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공생애 사역은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이다.
공생애 삶의 종착점은 십자가 죽음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죽음의 자리에 오신 유대인의 왕이시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께서는 율법 아래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 따르신다.
아버지의 뜻은 율법의 요구대로 저주스러운 죽음을 죽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 순종한 예수를 하나님께서는 다시 살리셔서 하늘 보좌에 앉히시고 만유의 왕으로 세우신다.
그리고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심으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다(엡2:6).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구원과 생명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됨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권세,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생명과 영광, 권세는 율법 아래에서는 주어지지 않았던 하나님 안에 있는 것들이다.
구약백성에게는 봉인되었던 하나님 품 안에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넓고 평탄하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고(7:15-23),
율법을 주장하고 가르치는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따르지 말고,
좁고 협착하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나의 말을 따르라고 권면하신다(8:13-14).
이처럼 마태복음이 말하는 넓고 평탄하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모세율법을 따라 행하는 일이며,
좁고 협착하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예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일임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 통치하시는 종말이 되었음에도,
모세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어리석은 자이나(7:26-27),
예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지혜로운 자이다(7:24-25).
따라서 모세의 말을 듣고 행하라고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자신의 말을 듣고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좁고 협착하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전파하도록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권능을 위임하셔서 보내신다(10:1-4).
사도들을 파송하신 대상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다(10:5-6).
이스라엘은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과 구별된 언약 백성이다.
이는 모세의 말인 613개 율법을 따라 여호와를 섬기는 구약백성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율법을 따르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명하신다.
이것이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목적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속량하셔서 아들(자녀)로 구원하기 위함이다(갈4:4-5).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에 충실하신 결과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의 곧 언약에 신실하게 행하신다.
이러한 아버지 뜻을 따라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으며(3:13-15),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받은 예수를 천국 왕에 취임케 하신다(3:16-17).
천국 왕에 취임하신 예수께서는 그의 권세를 열두 사도에게 주셔서 이스라엘 집으로 보내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은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대조된 백성들이며,
그들은 세리와 죄인들로 대표되는 율법 아래에서 작고 나중 된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의 소문이 온 땅에 펴지고 표적을 본 백성들이 놀라는데도(9:33),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냈다고 매도한다(9:34).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은 백성들을 예수에게로 이끌었으나(3:1-12),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통치하시는 종말의 통치에 봉사하였으나,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613개 율법을 고집하고 가르침으로,
종말에서의 그리스도 통치를 대적하고 훼방함으로,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였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그들이 거짓 선지자이며 목자라고 정죄하신다(7:15-27).
그것은 종말은 모세의 말이 아니라 예수의 말이 시행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 전파하라
예수께서는 열두 사도를 보내시면서
“가면서 전파하여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병 환자를 깨끗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
라고 명령하신다(10:7).
이처럼 예수께서는 사탄과 전투에서 승리하신 후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전파하던 사역을(4:17) 열두 사도에게 위임하셔서 파송하신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전파는 천국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회개하고 영접하라는 명령이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전파는 천국이 아직 임하지 아니하고 가까이 오고 있다는 말도 아니며,
공생애 동안의 사역에서는 천국만 소개되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천국이 시행된다는 말도 아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전파는 천국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회개하고 영접하라는 긴급한 명령이다.
이는 천국 왕의 오심은 천국의 임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은 예수께서 천국 왕이심을 확증하고
천국 왕을 영광스럽게 하신 사건으로서 천국을 만국 중에 확장한 일이다.
열두 사도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병 환자를 깨끗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도들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함과
천국 왕 예수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같은 일이다.
천국은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되었던 권세와 긍휼과 생명의 나라이다(사35;5).
예수와 사도들이 행한 권세와 긍휼의 사역은 천국이 임한 표적이다.
그것은 예수께서는 하늘의 권세를 가지신 종말의 천국 왕이시며
그가 임함은 그의 말이 시행되는 천국의 임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두 사도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지신의 권능을 주신다(10:1).
이러한 기사와 이적들은 천국이 임하였음을 나타내는 표적들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권세 있는 하나님 아들이시며,
파송을 받은 제자들은 천국 왕의 권세를 위임받은 천국의 일꾼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신다(12:28).
이처럼 천국은 땅에 속한 율법의 나라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복음의 나라이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을 위임받은 천국 왕의 대리자이다(롬15:18-19, 고전2:4, 고후12:12).
그러므로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내신 분의 이름과 권세로 사역한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라.
여행을 위해서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라고 말씀하신다(10:9-10).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은 마가와 누가에도 비슷하게 언급된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만 독특하게 언급하는 말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음이 마땅함이라.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가 빈 평안함이 거기 임할 것이요
합당하지 않으면 그 평안함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이다(마10:6-15).
이처럼 마태복음에만 언급하는 말이 마태가 강조하는 내용이다.
천국의 사도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대조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613개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 선생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서 거짓 선지자이므로 삼가라고 경고하시며(7:15-23),
그들의 말을 듣고 행함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신다(7:26-27).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비판함은 그들이 가짜이기 때문이 아니라
종말은 예수의 말이 시행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이 시행되는 종말에 모세율법을 주장하고 가르침은
예수를 율법 아래에 보내신 하나님 뜻을 거절하고 대적하는 일이다.
세례요한처럼 나아온 백성들에게 예수의 말을 듣고 따르라고 가르쳐야 함에도,
서기관과 바라새인들은 율법을 고집하고 가르침으로 종말의 하나님 뜻을 대적하고 훼파하였다.
따라서 종말에 모세율법을 주장하고 가르치는 자는 거짓 선생이며 선지자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는 훈화는 이전과는 다른 새 시대 일꾼의 본분에 대한 가르침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는 613개 율법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셨으나,
종말에는 그리스도 복음으로 믿는 자들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613개 율법이 설 자리가 없다.
모세가 명한 할례나 성전제사, 제사장제도와 제사장들을 위한 십일조 제도 등은 설 자리가 없다.
만일 613개 항목 중 하나라도 주장하고 가르치는 일은
종말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신 목적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심은 율법의 멍에를 진 자들을
율법 아래에서 속량하여 아들의 명분을 주기 위함이기 때문이다(갈4:4-5).
맺는 말
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다윗왕국이다.
다윗왕국은 613개 율법 항목이 시행되는 율법의 나라이다.
이러한 율법 통치를 위한 관료들이 공생애 당시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613개 율법 항목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율법 선생들이다.
그런데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과는 다른 새로운 통치를 시행하신다.
따라서 종말에도 모세율법을 주장하고 가르친다면 그는 거짓 선생이며 선지자이다.
이는 종말에서의 하나님 뜻과는 다른 율법을 가르치고 전파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는 613개 율법과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는 자들이나
종말에서의 거짓 선지자는 그리스도 복음과 다른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이다.
이처럼 구약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가르치는 선지자들이었다(마23:2).
그런데 그들은 세례요한처럼 백성들에게 예수를 소개하여 따르도록 해야 함에도,
예수의 가르침과 다른 613개 율법을 계속 주장하고 가르쳤다.
그 결과 그들 자신도 예수에게 나아와 따르지 않고
백성들도 예수를 믿고 따르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이 말은 그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백성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이다.
이처럼 그들은 종말이 되었음에도 613개 율법을 주장하고 가르쳤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거짓 선지자라고 정죄하신다(7:15-23).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율법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신다(7:24-27).
이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신다(10:1).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은 공생애 당시의 유대인들이다.
율법 아래에서 목자는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었으나
예수를 거절하고 대적함으로 목자 없는 잃어버린 양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파송하신다.
사도들을 영접하면 그들을 보내신 예수를 영접함이며,
예수를 영접함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일이다(10:40-42).
이처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통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으나
종말에는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히1:1-2).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말씀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어진 모세율법(구약성경)이 아니라
아들을 통해서 주어진 그리스도의 복음(신약성경)이다.
우리에게 구약성경은 옛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 말씀으로서 역사적인 권위만을 가질 뿐이다.
구약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말씀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재해석되어야 한다.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재해석되지 않는 구약성경은 유대교의 경전일 뿐이다.
예수를 이단의 괴수로 정죄하여 죽인 유대교의 경전일 뿐이다.
그대는 유대교를 기독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따라서 우리에게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
구약성경도 하나님 말씀이니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자들은
종말에 아들을 통해서 나타내신 하나님 뜻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거짓 선생이며 목자이다(갈1:6-10).
그래서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자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저주한다(갈1:6-10).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은 모세가 전한 613개 율법을 가리킨다(갈1:6-7).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