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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노라.

작성자천향|작성시간26.06.12|조회수28 목록 댓글 3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노라(마10:34-39)

 

파송을 받는 제자들에게는 고난과 핍박이 주어질 것이다.

이는 제자들이 전할 그리스도 복음이 모세가 전한 613개 율법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가 핍박하는 상황에서 제자들은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

끝까지 견딤이 제자들의 지혜이며 순결이고 구원이다.

왜 나중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가?

인자가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구원의 의미는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하고 동행하는 것이다.

성경도 구원이란 하나님과 동거하고 역사를 동행하는 일임을 말한다.

구약에서의 구원은 각 시대 중보자의 하나님과 동거하고 동행함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모세율법과 제도에 부착하여 여호와와 옛 시대를 동행하였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구원이며 생명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부모가 어린 자녀와 동행하여 장성한 자녀로 양육함과 같다.

창조의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 백성과 함께하셨다. 

죄에도 불구하고 각 시대에 세우신 중보자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모양과 여러 부분으로 말씀하시며 옛 시대를 동행하셨다.

각 시대 백성들은 그들의 중보자를 믿음으로 여호와와 동행하였다.

그러므로 신구약에서 요구되는 믿음의 본질과 내용이 다르다.

그에 따라 각 시대 백성들의 본질과 사명도 다르다.

따라서 공생애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서 고난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

그것은 인자가 다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부활의 영으로 임하셔서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제자들을 파송하는 훈화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여기저기에서 언급된다.

이는 선교의 상황에서 예수께서 제자의 도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10장에서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이는 천국 왕께서 천국 관원인 제자들에게 명하신 복무규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천국 관원의 복무규정인 본문은 세 단락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단락은 자기 식구가 원수이리라는 내용이고(34-36),

두 번째 단락은 가족을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하지 않다는 내용이며(37),

세 번째 단락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만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내용이다(38-39).

본문은 누가복음과 비교된다.

누가복음에서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려고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다.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분쟁하리니

     아버지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라고 기록한다(눅12:49-53).

이처럼 누가복음은 많은 가족 구성원 간의 극심한 불화를 강조한다.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세상을 정결케 할 세례 사역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불화가 있을 것이라고 제자들과 무리에게 경고하신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분쟁하라는 언급이 없다.

이는 마가복음은 권세가 있는 제자에게 이르신 말씀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불화의 대상이 자기 식구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결론인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 식구이리라’가 강조점이다.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짝을 이루는 가족 구성원이다.

불화의 주체는 아들과 딸과 며느리이며,

그들은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와 시어머니와 불화한다.

이처럼 마태복음이 언급하는 불화는 적을 겨누는 검과 같은 불화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마지막에서는 가족 간의 화평을 말한다.

말라기 선지자는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법을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않으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라고 기록한다(말4:4-6).

이처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약의 하나님 나라로 세우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가족 구성원들은 여호와 백성으로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의 전령인 세례 요한이 행한 사역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의 사역이 화평함이 아니라 분쟁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율법 아래의 관원인 서기관, 바리새인과 천국 왕과 따르는 제자들 사이에 분쟁이 있게 된다.

이러한 분쟁은 모세의 말인 613개 율법과 예수의 말인 그리스도 복음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시어머니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이며

그들과 분쟁하는 아들과 딸과 며느리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다.

구약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시어머니와 자녀들은 서로 화목해야 한다.

그러나 종말에서는 모세의 말을 따르는 아버지와 어머니 시어머니는

예수의 말을 따르는 자녀들과 분쟁하게 된다.

모세의 말을 따르는 부모들과

예수의 말을 따라는 자녀들 간에는 다툼과 분쟁이 있게 된다.

이러한 분쟁의 원인은 모세율법과 그리스도 복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말의 천국은 예수를 대적하는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이다.

천국 관원인 제자들도 율법 아래의 관원들과 분쟁하는 자들이다.

이처럼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율법 나라의 관원들과 분쟁하는 나라인 천국을 세우셨다.

예수께서 율법 아래의 옛 관원들과 분쟁을 언급함은

율법을 고집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말을 듣고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예수를 보내신 종말의 하나님 뜻과 경륜을 대적하는 거짓 선지자이며,

종말의 천국 왕이신 예수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백성들을 대적하는 이리이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을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

 

천국 왕 예수께서는 그의 사역이 분쟁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신다.

이는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이 모세율법과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말의 천국은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율법의 나라인 다윗왕국과는 다르다.

그래서 율법 아래의 관헌들과 예수와 제자들 간에 대립과 분쟁이 일어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가족 구성원들을 언급하신다.

아버지와 어머니, 시어머니는 모세율법을 따르는 자들이며

그들과 분쟁하는 아들과 딸과 며느리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다.

그런데 모세율법과 예수의 가르침은 다르다.

그 결과 모세의 말을 따르는 아버지와 어머니, 시어머니와

예수의 말을 따르는 자녀들은 서로 다툼과 분쟁이 있게 된다.

그런데 예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모세율법을 따르는 부모세대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스라엘이다.

제자들은 율법 아래의 관헌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대체하는 천국의 관헌들이다.

이처럼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말로 통치되었던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천국을 세우신다.

613개 율법 항목을 따르는 유대인들과 대립하고 분쟁하는 천국을 세우신 것이다.

이처럼 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율법의 나라이나

종말의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말이 시행되는 복음의 나라이다.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율법 사회에서 예수의 말을 듣고 행함은 십자가를 지는 길이다.

십자가를 짐은 고난과 핍박을 받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잃는 일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613개 모세율법과 다른 이단으로 정죄가 되고 죽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음의 길을 걸으심은 이 길을 걷는 것이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죽음이 지배하는 유대 땅에 오심은 아버지의 뜻이며 죽음의 자리에 오심이다.

당대 유대 사회는 613개 율법이 시행되는 율법 사회이고 율법은 죽음을 요구한다.

율법 아래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피를 흘리지 않고서 나아갈 수 있던가?

그러므로 예수의 공생애 삶은 죽음의 행로를 걷는 삶이다.

이러한 죽음의 여정이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신 뜻이다.

종말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율법 아래에 보내심은 율법의 요구를 따라 죽으라고 보내신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을 온전히 이행하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정도가 아니라

믿는 자의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믿는 자의 아버지가 되심은 율법이 없이하지 못하는 죄를 없이 함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심으심으로 이루신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무런 장벽이 없이 가장 가깝고 친밀하며 하나가 된 관계를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모세의 말은 서로 다르다.

유대 당국자들이 바라보면 예수의 가르침은 모세율법과 다른 이단이다.

그래서 유대 당국자와 백성들은 예수를 거절하고 대적하며,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도 핍박과 고난을 받는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으며(10:6),

나는 세상에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으며(10:34),

내가 온 것은 사람이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며(10:35),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10:38).

자기 십자가를 짐은 고난과 핍박만이 아니라 목숨까지 잃는 것이다.

이처럼 공생애 당시에 예수를 믿고 따름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따름은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이것이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 목적이며(갈4: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을 온전히 완성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을 온전히 완성한다고 함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가 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을 충실하게 행함이 하나님 의를 이루는 일이다.

 

맺는 말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공생애 사역 전에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을 온전히 이행하기 위함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백성들이 율법의 요구를 받는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피를 흘려야 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도 율법의 요구를 감당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후의 일정은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율법 아래에 세워진 백성의 죄를 속량하기 위하여,

율법이 그 아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요구하는 죽음을 죽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신 후에는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신다.

이처럼 613개 모세율법은 죄 아래에서 시행된 여호와의 뜻과 경륜이다.

따라서 아무리 613개 율법 항목을 온전히 이행하더라도,

율법 아래에 있는 한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며 그 결과 죽음이 요구된다.

그런데 죄는 한 번 죽은 자에게 다시 죽음을 요구하지 못한다.

이미 죽음이라는 값을 치른 자에게 다시 죽음을 요구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심으셔서

죄와 사망이 범접하지 못하는 아들(자녀)로 세우신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과 생명은 율법이 주지 못하는 것들이다.

아무리 613개 율법을 온전히 지키더라도

율법 아래에 있는 한 결코 주어질 수 없는 구원과 생명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모세의 말인 613개 율법을 따르지 말라고 강조하신다.

이에 대한 표현이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삼가고(7:15-23),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한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지혜로운 자라고 말씀하신다(7:24-27).

예수를 따름으로 인하여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고난과 핍박이 주어지더라도,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다(10:22).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는 자도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10:37-39).

이 말은 제자들과 백성들이 모세의 말인 613개 율법으로 돌아감을 경계하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합당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어법은 반드시 하라는 강조법이며 경고이다.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유대 땅이라고 하더라도,

죄가 왕으로 군림하는 세상에 속하였기 때문에,

이처럼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길만이 구원과 생명을 얻는 일임을 강조하신다.

그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그의 몸에 연합된 자는 율법과는 영원히 절연되었고,

죄는 죽음을 요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면,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여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면,

이전처럼 613개 율법을 따르는 삶으로 돌아간다면,

죄의 요구인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생명을 잃을 것이나,

예수를 따름으로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됨을 강조하신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천국의 일꾼으로 파송하면서,

모세의 말인 613개 율법이 시행되는 유대 땅에 보내시면서,

제자들이 당면하게 될 고난과 핍박의 현실을 언급하신다.

제자들에게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주어지는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여 모세율법으로 돌아가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권면하신다.

제자들이 예수의 말을 듣고 행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그를 시인하실 것이나(10:32),

모세율법으로 다시 돌아가서 부인하면

예수께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다(10:33).

이는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심으로 율법 통치는 종결되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말이 임하였는데도 모세율법을 고집하면 종말의 하나님 심판을 받게 된다.

그것은 종말에서의 하나님 통치는 율법 통치가 아니라 그리스도 통치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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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멋진가지 | 작성시간 26.06.12 아멘~목사님!
    한날도 주님주신 은혜와 평안으로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 작성자서재복(착한서씨) | 작성시간 26.06.12 아멘!~ 금요일날 아침시간에 컴앞에 앉자서.
    하나님말씀 강해글,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노라.강해말씀글 잘 읽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 작성자서재복(착한서씨) | 작성시간 2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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