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마11:2-19)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이스라엘의 율법 선생이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613개 항목의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 선생이다.
따라서 그들은 모세의 말이 시행되었던 다윗왕국의 관료들이다.
이처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하나님 나라 관료들이었다.
그런데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제자들과 바울과 같은 자들을 속량하여 아들의 명분을 주기 위함이다.
아들의 명분은 하나님 아들(자녀)이 되는 권세이다(요1:12).
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 영생을 누리는 신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심은,
아무리 613개 율법 항목을 온전히 지키더라도,
율법으로는 죄를 없이하지 못하고(히10:4,11),
율법은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온전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히7:16-19, 10:1).
예수께서 오심에서 율법 통치는 종결되고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시행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시행되는 종말에
모세의 제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처럼 나아온 백성들에게 예수를 소개해야 한다.
율법 아래에 있는 백성들을 예수에게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세의 말인 613개 율법을 따르는 삶을 살지 않고,
예수의 말을 듣고 따르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율법 아래의 고위관료들인 유대 제사장과 장로들,
모세의 제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고집하고 가르침으로,
자신들도 예수에게 나아오지 않고 백성들도 예수에게 나아갈 수 없도록 막았다.
그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백성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삼가라고 말씀하시며(7:15-23),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라고 말씀하신다(7:24-27).
세례 요한의 질문
본문과 같은 내용을 누가복음에서는 언급하고 있으나(눅7:18-35) 마가복음에는 언급하지 않는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은 대부분 일치하나 다른 점도 있다.
그것은 두 복음서에서 본문을 배열한 위치가 다르다.
이러한 차이점은 두 복음서의 강조점의 차이이다.
이는 누가복음은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치신 예수의 선지자 사역을 강조하고,
마태복음은 천국 왕으로서의 권세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천국 왕의 전령인 요한이 옥에 갇히자(마4:12),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기를 시작하신다(11:1).
요한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물었다(11:2-3).
이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세례를 할 하나님 아들로 알았으며(마3:14),
백성들에게 예수께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하나님 아들로 소개하였기 때문이다(마3:11-12).
이러한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께 질문한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두렵거나 믿음이 없는 질문이 아니라 흔들리는 믿음의 질문이다.
옥에 갇힌 요한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듣고 의심에 차서 질문한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예수 사역의 방식이 모세율법 내용과 달랐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모세가 명한 613개 율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알리라.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얻으며
귀먹은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신다(11:4-5).
예수께서는 새로운 내용을 언급하셔서 요한의 의문을 풀어주신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하신 일을 반복해서 언급하심으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설명하시면서 실족하지 말라고 격려하신다.
구약 성경에서 약속한 메시아(그리스도)의 사역은
이방을 심판하고 다윗 왕조를 온 세계 위에 군림하게 하는 것이다.
메시아의 나라는 모든 병자가 치유되고 희년이 선포되며 낙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요한 자신은 헤롯 왕에 의해서 옥에 갇혀 있으며,
당시의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 아래에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고 의심한 것이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사역들이 모세율법(구약성경)에서 약속한 모습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가 행하시는 일에서
이미 종말의 하나님 나라인 천국이 임하였으니 의심으로 인하여 넘어지지 말라고 권고하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미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과 경륜,
곧 종말의 하나님 통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그의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서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율법 통치는 종결되고,
자신의 말이 시행되는 종말에서의 하나님의 통치,
곧 종말의 하나님 나라인 천국이 이미 임하였음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말씀하신다(11:6).
그것은 예수의 말을 믿고 따르는 자는 종말의 하나님 통치인 천국에 거하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의 구원 역사적인 위치
예수께서 제자들과 무리에게 요한에 관하여 설명하신다.
세례 요한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은 철저하게 구원 역사적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너희가 광야에 나아가 본 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이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앞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고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다”
라고 말씀하신다(11:9-14).
그런데 예수께서 인용하신 말라기서에서는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다”
라고 기록한다(말3:1).
그런데 예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 자리에 자신을 대치시켜서 인용하신다.
이처럼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진 일로 해석하여 인용한다.
이러한 인용 방식이 ‘메시아 성취 인용’이며,
이러한 인용 방식을 사도들도 구약을 인용할 때 사용한다.
이것이 성경이 완전히 축자적으로 영감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옛 언약에서의 모든 사건과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으며,
이처럼 기록과 사실은 일치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세례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일어난 적이 없으며,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는 말은 구원 역사적인 측면에서 세례요한을 평가하는 말이다.
성경에서 크고 작다는 말은 하나님 중심적인 언약언어이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하나님과 가까운 위치에 세워진 사람이 크고 먼저 된 자이며
하나님과 먼 위치에 있는 자가 작고 나중 된 사람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중심으로 백성의 어떠함을 규정한 언어가 모세 언어이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하심은
하나님 아들인 자신을 친히 대면한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여호와를 친히 대면한 선지자가 있던가?
이처럼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이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11:11).
그것은 여호와를 대리하는 구약 선지자들은 종(머슴)의 신분이나
천국 백성들은 모두가 하나님 아들(자녀)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종(머슴)과 아들(자녀) 중에서 누가 크고 먼저 된 자이겠는가?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친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말씀하신다(11:12).
그것은 모세율법이 시행되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죄의 장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거하는 날과 땅, 사람 사이에도 여러 등급과 장벽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크고 먼저 된 자와 작고 나중 된 자의 차등과 등급이 있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지성소에는
가장 크고 먼저 된 자인 제사장이라도 아무 때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 속죄일에만 잠시 들어갈 수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세례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친노를 당하며 침노하는 자는 천국을 차지한다(11:12).
종말에서는 누구든지 예수에게 나아오는 자는,
율법 아래에서 크고 먼저 된 자인 제사장과 바리새인이나,
가장 작고 나중 된 자인 세리와 창기라도,
누구든지 먼저 예수에게 나아와서 그를 따르면 천국을 차지한다.
따라서 천국은 먼저 예수에게 나와서 그를 믿고 따르는 자의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의 옛 통치질서인 율법 통치와 종말의 통치질서인 그리스도 통치가 다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613개 율법 항목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셨던 기간은 세례 요한까지이다.
그래서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고 하신 것이다(11:13).
이처럼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여호와의 율법 통치 아래에서 사역하였던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러나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이다.
이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사역한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
그것은 천국 백성은 모두 하나님 아들(자녀)이나 세례 요한은 종(머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심에서 율법 통치는 종결되고 아들을 통한 종말 통치가 시행된다.
따라서 종말에 그리스도 복음과 다른 모세율법(구약성경)을 주장하고 가르치는 자는 거짓 선지자이다.
그는 종말에서의 그리스도 통치를 대적하고 훼방하는 거짓 선생이며 목자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단락의 자리에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
라는 다른 내용을 언급한다(눅7:29-30).
이는 같은 자리에 배치되어 있으므로 병행 구절로 삼는 것이 합당하다.
이처럼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요한이 앞서 온 전령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신실하시다) 하였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증거한 예수를 하나님 아들이며 그리스도로 믿고 천국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을 부인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아서 하나님 뜻을 거역하여 천국을 빼앗겼다.
이러한 누가복음의 문맥은 고난과 박해를 이기라는 격려가 아니라
세례 요한이 증거한 예수를 믿음으로 천국을 차지하라는 권고이다.
이처럼 아담 이후로 죄 아래에 세워진 옛 백성들의 완악함에 조절된
613개 율법이 시행되던 때가 세례 요한까지이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예수를 소개할 때부터 천국의 문은 열렸으며,
예수에게 나아와서 침노하는 자는 천국을 빼앗는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빼앗아 차지한 것이 모델이다.
이처럼 말라기가 예언한 종말의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도 예수에게 돌이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경고한다(말4:5-6).
이처럼 귀 있는 자는 듣고 천국 왕 예수에게 나아옴으로 천국으로 침노하여 빼앗아야 한다.
맺는 말
누가복음에서는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라는 말을 반복함으로 믿음이 없음을 탄식한다.
공생애 당대 사람들은 편을 갈라서 놀고 있는 장터의 아이들과 같다.
세례 요한이 와서 금식하며 회개를 외치자 그들은 귀신이 들렸다고 조롱하며 회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께서 와서 먹고 마시자
그들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방하였다.
이처럼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예수에게 나아오지 않음은,
종말에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거절하는 일이다.
이는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이 모세가 전한 율법과 달랐기 때문이다.
모세율법(구약 성경)은 땅의 일을 말하고 그리스도 복음(신약성경)은 하늘의 일을 말한다.
구약 성경은 아래로부터 나서 가나안땅에 세워진 율법의 나라인 다윗왕국의 흥망성쇠를 기록하고,
신약성경은 위로부터 나서 하늘에 세워진 복음의 나라인 천국의 설립과 성장 과정을 기록한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라보면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은 모세율법과 다른 이단의 가르침이다.
그리스도 복음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고 참된 그리스도임을 말한다.
모세율법은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계시는데,
율법이 명하는 바대로 성전제사를 드려왔는데,
나사렛 출신 예수를 어떻게 하나님 아들이며 그리스도로 인정할 수가 있겠는가?
율법 아래의 대제사장과 장로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바라보면
나사렛 예수께서는 자신이 여호와라고 사칭하는 이단의 괴수가 아니겠는가?
공생애 당시의 제사장과 장로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유대 사회에서 크고 먼저 된 자들이다.
그들의 삶은 유복하였고 유대 사회에서 존경과 명예를 누리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눈과 마음은 부족함이 없는 삶과 사회적인 부와 명예에 맞춰져 있었다.
이처럼 그들의 눈과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눈은 상하였으며 그들의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하였다(마6:19-24).
그 결과 예수에게 파견한 첩자들로부터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전해 들었으나
그가 하나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알지 못하였다.
이는 그들의 눈은 상하여 썩었고 그들의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 사회에서 작고 나중 된 갈릴리 출신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믿고 따랐다.
이는 그들의 눈과 마음은 오직 여호와께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방의 갈릴리 사람으로서 유대 사회에서 개나 돼지처럼 취급받는 상항에서도,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한 여호와의 구원만을 바랐다.
그 결과 그들의 눈은 성하였고 그들의 마음은 빛으로 가득하였다.
그래서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 아들 곧 하나님이시며 모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구원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믿고 따른 것이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열두 제자를 파송하신 내용을
다른 마을로 가서 가르치시는 시점에 배열하여
세례 요한과 그가 소개한 예수의 증거를 거역하는 당대 세대를 정죄한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