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진 조약(天津條約)
1858년, 애로호 사건 이후 청나라가 서양의 여러 나라와 맺은 여러 불평등 조약이다.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사이에 협정이 맺어졌다.
이 조약은 광범위한 외국의 특권을 규정하고 있어, 이후 불평등 조약의 근간이 되었다.
1858년의 조약
1857년에 시작한 애로호 전쟁으로 영프 연합군이 광저우를 점령하고,
북상하면서 톈진을 제압했기 때문에,
청나라가 텐진에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의 4개국과 조약을 맺게 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전비의 배상
- 외교관의 북경 주재
- 외국인의 중국 여행과 무역의 자유 보장
- 기독교 포교의 자유와 선교사 보호
- 우장(만주), 등주(산토우), 한구(장강 연안), 구강(장강 연안), 진강(장강 연안), 대남(대만), 담수(대만), 조수주(광둥성 동부, 이후 샨토로 변경), 경주(해남도), 난징(장강 연안) 등 10개의 항구를 개방할 것
영국-프랑스군이 주도하는 불평등 조약에 대해 청나라 정부는
조약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하며, 조약의 비준을 거절했다.
이 때문에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다시 톈진에 상륙하여, 베이징을 점령했다.
러시아의 중재로 1860년의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어
톈진의 개항과 외국 공사의 베이징 주재, 구룡반도의 영국 할양이 추가되었다.
따라서 1858년의 텐진조약은 1860년까지 이행되지 않았다.
베이징 조약(북경조약, 중국어: 北京條約 Běijīng Tiáoyūe)
아편 전쟁의 결과로, 1860년 10월 18일에 청나라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체결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6개의 항목으로 되어 있으며,
이 조약에 따라 청나라는 영국에 주룽(현재의 홍콩 중심부)을 내주었고,
1860년 10월 18일, 청나라와 제2차 아편 전쟁을 치른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천단, 이화원, 원명원 등 베이징 주요 문화재와 주변을 약탈하고,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공친왕을 대표로 내세워
영국 대표인 엘진 경과 프랑스 대표인 그로스 남작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었다.
또, 교전 당사자가 아니었던 러시아까지 조약을 중재했다는 핑계로
조약 당사자로 끼어들었다.
영불연합군은 유럽인 죄수들에게 청나라 관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구실로
이 조약은 1860년 10월 24일에 자금성의 남쪽 건물에서 마무리되었다.
조약은 중국-영국, 중국-프랑스, 중국-러시아 간 조약의 형식으로 각각 맺어졌다.
조약내용
- 청나라가 비준을 거부한 1858년의 톈진조약 내용을 비준한다.
- 톈진을 개항한다.
- 외교사절의 베이징 주재를 허용한다.
- 배상금 800만냥을 지불한다.
- 프랑스에 대해 몰수한 가톨릭 재산 반환을 인정한다.
- 청나라에 의한 자국민의 해외 이주 금지 정책의 철폐와 이민 승인
결과
영국과 러시아는 위의 조건 외에 개별적으로 청나라와 조약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