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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의 文化史

宋(송)의 性理學(성리학)

작성자시너먼|작성시간15.08.12|조회수38 목록 댓글 0

(宋, 960년~1279년)은 중국의 옛 왕조이다.

960년 조광윤

오대십국 시대 오대 최후의 왕조 후주로부터 선양을 받아

개봉(카이펑)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웠다.

국호는 송(宋)이었으나,

춘추시대, 남북조 시대 등과 구별하기 위해

황실의 성씨를 따라 조송(趙宋)이라고도 부른다.

통상 1127년 금나라의 확장에 밀려

장강 이남으로 옮기기 전을 북송,

이후 임안(지금의 항저우)에 도읍을 옮긴 것을 남송

이라고 불러 구분하였다.

북송·남송 모두 합쳐 송, 송 왕조라고도 한다.

 

수도는 개봉(開封, 또는 변경),

남쪽으로 옮긴 후 실질적인 수도는 임안(臨安)이다.

훗날 원나라에게 멸망당한다.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한 정권이며,

상비 해군을 설치한 최초의 중국 왕조이다.

문치주의 국가로 사대부 사명 의식이 있었다.

또한 이전의 왕조들과는 달리

철권폭정을 하지 않고 문화 정치를 폈다.

시대적으로 북송남송으로 나뉜다.

 

이 시기 당나라 시대부터 크게 발전된

괭이 등의 농기구를 배경으로

점성도(占城稻)라는 안정성이 있는 조도(早稻 이른 벼)가 도입되어

쌀과 보리의 이모작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농업으로 인해

북송시대의 인구는 약 1억 명에 달했을 것이라 추정되었다.

 

송나라는 예술, 사상 및 각종 실용기술의 발달이 두드러져,

문화적으로 풍요롭던 시기였다.

제지, 인쇄기술의 향상과

시민경제의 발흥으로 인해

이때까지 일부 관료, 귀족에게 독점되던

문학, 미술, 음악, 사상 등이

평민들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발전해 나가게 되었다.

자연과 사회의 발생·운동을

이(理)와 기(氣)의 개념에 의해 설명하는 유교 철학인

주자학(성리학)이 발달되었다.

 

  송대에는 유교 경전의 광범위한 출판과 활자의 사용이 시작되어

문학과 학문의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다.

사숙(일종의 사립학교)이 번성하여

국립 학교와 함께 많은 과거 시험 응시자들을 배출했다.

이렇게 과거를 통해 등용된 문벌 관료들은

송대의 핵심 세력이 되었으며 이들을 ‘사대부’라 했다.

 

사대부는 유교 경전의 자구 해석에 치중하는 훈고학에서 벗어나

천리와 인성의 연구를 중시하는

주자학(성리학)을 확립시켰다.

 

북송의 주돈이에서 시작되어

남송의 주희에 이르러 완성된 성리학은

인간은 명분론적 질서 속에서

각각의 계층적 지위에 합당한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존재로 설명했으며,

상하 신분 질서에 기초한 윤리적 덕목을 강조하여

전제 왕조의 지배 질서를 밑받침해주는 관학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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