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侯祀(무후사)
무후사란 일반적으로 제갈량을 모시는 도교 사당이다.
무후라고 하면 보통 제갈량을 말한다.
중국 쓰촨 성 청두 시에 있는 것이 가장 유명하고 원조이다.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과 그 임금 유비를 함께 모신 사당이다.
보통 군신을 같이 모시지 않은 관례로 인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무후사의 무후란 충무후(忠武侯)라고 시호가 내려진 제갈량을 말하고,
그를 모시는 사당을 무후사라고 한다.
또한 촉의 임금인 유비나 그의 후대를 이은 유선까지 모시게 되었다고 전한다.
유선의 제위는 나라를 말아먹은 어리석은 군주라고 하여
남송 때 폐사(廢祀)시켜 버렸다.
서기 223년 유비의 능묘가 조성되었다.
촉나라의 이웅은 무후사를 만들고, 지금의 장소에 옮겼다.
현재와 같이 제갈량과 유비를 같이 모시는 사당으로 정비된 것은
명조에 이르러서이다.
현재 남은 옛날 건축물은
청나라 때 조성된 것이고,
성도 무후사 박물관으로 1961년에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사당 내에는
내부에는 제갈량의 소상이나 유비의 소상이 있다.
모두 후세의 작품으로 삼국지연의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인 것이다.
關帝廟(관제묘)
중앙에 관우의 위패를 두고
그 좌우에 관평(관우의 아들)과 주창(관우의 심복장수)의 위패를 둔다.
그러나 주창은 실존하는 인물은 아니고
삼국지연의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17세기 이후 중국 대륙 각지에 세워졌으며
이것이 발전하여 한국, 대만, 홍콩, 일본 등지에도 관제묘가 세워졌다.
개성에 대청관을 세우고 한성에 천도하여 소격전을 두어 3청(三淸)의 초재를 올리고,
삼청전에 3청을 비롯한 여러 도교의 신위들을 안치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자연히 이것들이 없어졌으나
민간에는 관우 숭배가 전래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지방에도 여러 곳에 관제묘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