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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의 文化史

절개와 지조로 충만했던 예양(豫讓)

작성자시너먼|작성시간17.04.20|조회수118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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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개와 지조로 충만했던 가신

 

예양의 석상

예양의 석상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얼굴을 없애버린 모습이다.

 

춘추시대 말기

진(晉)나라 사람으로

성은 희(姬), 씨는 필(畢)이다.

협객(俠客)이자

진나라의 경(卿, 대부)이었던 지요(智瑤, 지백(知伯))의 가신이다.

진출공 22년인 BC.453년,

진(晉)나라의 실권을 좌우하던 지백

조양자를 비롯한 한(韓), 위(魏)나라가 함께 연합한 세력에게 잡혀 죽었다.

 

처참하게 살해된 지백의 참모들 중

예양이란 인물이 있었다.

 

예양은 

일찍이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를 도왔으나

제대로 기용되지 못하고

지백에게까지 흘러 들어왔는데,

지백은 평소 그를 높이 평가하여 큰 일을 맡겼다.

지백이 죽자

가신들은 놀란 짐승들이 흩어지듯 뿔뿔이 도망쳤다.

예양도 산 속으로 숨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예양은 하늘을 말없이 우러러보더니 이렇게 탄식했다.

“오호라!

뜻 있는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내를 위해 화장을 한다고 했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

 

지백은 나를 알아주었으니,

그를 위해 죽음으로 복수하여 보답하는 것이

내 혼백에게 부끄럽지 않으리!”

그런 다음

예양은 온몸에 옻칠을 바르고,

숯을 삼켜 벙어리 행세를 하며 여러 차례 조양자를 죽이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예양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조양자에게

옷이라도 찔러 지백의 원한을 갚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조양자가 입고 있던 옷을 내주자

검으로 찌른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당시

조나라의 뜻 있는 인물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2. 예양 관련 고사

1) 칠신탄탄(漆身呑炭)

예양이

조양자 암살에 실패한 다음

다시 기회를 엿보기 위해

온 몸에 옻칠을 하여 몸뚱이를 바꾸고

숯을 삼켜 목소리도 달라지게 했다.

이를 ‘칠신탄탄’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아내도 예양을 몰라보았지만 친구는 알아보았다고 한다.

2) 삼약격지(三躍擊之)

예양이

조양자 암살에 실패하고

조양자들의 병사에 에워싸였을 때,

자결하기에 앞서

조양자의 옷을 빌려 달라고 하였다.

“이제 나도 기꺼이 죽으리다.

다만 그전에 당신의 옷을 내게 주어서,

그것을 찌를 수 있게 해주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죽어도 한(恨)이 없겠소.

부탁이오.

내 소원을 들어주오.”

예양의 의리에 감동한 조양자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주자

예양은 칼을 뽑아

‘껑충 뛰어오르며 그 옷을 세 번을 옷을 찌른(삼약격지)’ 다음

“이제 지백의 원수를 갚았다”라고 말하고

스스로 칼을 찌르고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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