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이상한 어른들의 세계
이 소설에서 화자는 어린 왕자가
"당신은 마치 어른 같은 말을 하는군!"
하고 말할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는 어른의 세계,
다시 말해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린 어른들의 삶의 실상은 어떠한가.
어린 왕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어느 별의 검붉은 얼굴을 한 신사 이야기를 한다.
그 분은 아무도 사랑한 일도 없었고,
일상 하고 있는 일이란 덧셈뿐이야.
그리고 그는 날이면 날마다 당신처럼
'나는 중요한 일로 바쁘단 말이야'라고
입버릇처럼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지.
그리고는 그 말이 무슨 자랑인 양 뽐내기만 하거든.
이 신사처럼 어른들은 늘 덧셈을 하느라 바쁘다.
덧셈이란 무엇일까.
사랑이 결여된 욕망의 덧셈일 수 있다.
권력, 명예, 재산 등을 보태려는 욕망의 덧셈 말이다.
뿐만 아니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소혹성을 떠나
여행했다는 몇몇 별들에서 만난 어른들의 이야기들에서
어른들의 세계는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된다.
첫 번째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모든 존재를 자기 신하로 삼고 싶어 하는 권력의 화신이다.
금지와 허용, 지배와 명령을 통해
모든 존재들이 자기에게 복종하도록 하려 한다.
두 번째 별에는
허영심이 많은 독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칭찬하고 찬미하는 말 이외에는 들을 줄 몰랐다.
세 번째 별에서는
술고래를 만났다.
부끄러운 것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고
또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는
무기력한 술꾼을 어린 왕자는 이해할 수 없어 한다.
네 번째 별에서
만난 실업가는 숫자만 세고 있었다.
하늘의 별마저 소유하고 싶어 안달인
그는 소유의 욕망에 사로잡힌 어른의 상징이다.
가장 작은 별인 다섯 번째 별에서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맹목적이고 부조리한 어른의 표상으로 비쳤다.
여섯 번째 별에서
만난 지리학자는 허황된 지식분자로 보였다.
이런 별들을 거쳐 지리학자의 권유로
어린 왕자는 일곱 번째 별로 지구를 택한다.
지구는 "111명의 왕(분명히 흑인 왕까지 넣어서)과
7천 명의 지리학자,
90만 명의 실업가,
750만 명의 술고래,
3억 천백만 명의 젠 체하는 사람들,
즉 모두 합해서 약 20억의 어른들이 살고" 있는 커다란 별이었다.
이런 어른의 생태는 인간다움의 본성에서 멀어진 세계다.
어린 왕자가 보기에는 참으로 이상한 세계다.
일상적으로 늘 되풀이되는 현상을 놓고
이상한 세계라고 얘기함으로써 본질적 반성을 촉구하는 셈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어린 왕자가 파악한
이상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존재값을 입증하지도 못하고,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도 맺기 어렵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나 배려가 거세된 자기 욕망으로 인해
고독과 불안은 깊어만 간다.
세계의 의미는 감소되고 꿈은 한없이 추락한다.
그렇다면 이런 무의미한 일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의미를 추구하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의미로 충만한 진정한 삶을 위한 지상의 척도는 어디에 있는가.
『어린 왕자』에서
여우와 어린 왕자 사이의 대화 부분이 주목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여우가 보기에
"인간들은 이미 길들인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은 지금 아무것도 알 틈이 없어요.
그들은 이미 만들어 놓은 물건이나 상점에서 사지요.
그러나 우정을 파는 상점은 없으니 인간들은 친구가 없어요"
하고 여우는 진단한다.
교환가치가 횡행하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진정한 인간관계가 차단되어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대목이다.
특히 '우정을 파는 상점'이 없다는 통찰은 비범하다.
일상적인 의무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나머지 새로운 창조적 가치를 발견하고 추구하는 것에도 인간들은 게으르다.
이미 길들인 것 이외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
여우의 말은 그런 뜻이다.
왜 그런가. 보이는 것에 비해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제대로 헤아리는 마음의 눈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우는 말한다.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매우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심연에서
인간과 삶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어린 왕자에게 영혼의 교사 역할을 하는 여우가 보기에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심연에서의 책임과 배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소혹성에서 장미를 길들이다 속상해서 떠나왔다.
장미는
때때로 아무렇게나 말하고 요구했다.
때로 거짓말을 하다가 부끄러워서 얼버무리기도 했다.
어린 왕자는
자기가 길들인 장미지만,
장미의 이런저런 태도 때문에
장미에게 공감하거나 동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미를 떠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 왕자는 그것을 후회한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어.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했어야 했는데.
꽃은 나에게 향기를 뿜어 주었고 눈부신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는데. ···
그 불쌍한 말 뒤엔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 챘어야 했는데.
그러면서 "
하긴 난 꽃을 사랑하기엔 너무 어렸어" 라고 말하기도 한다.
장미가 겉으로 드러낸 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미의 심연을 보았어야 했다는
어린 왕자의 반성적 사유는 매우 도저하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의 많은 인간관계는 바로 이런 지점에서 그릇되지 않던가.
세상의 많은 다툼과 시기, 미움과 결별이 이런 심연의 눈
혹은 심연의 사유 내지 심연의 배려의 결여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렇게 반성적 사유를 길어 올릴 줄 아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책임의 윤리를 거듭 강조한다.
"당신은 당신이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예요.
당신의 장미에게 당신은 책임이 있어요."
책임과 배려를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심연을 성찰할 수 있는 심안을 지녀야 한다.
화자는 이 점을 거듭 강조한다.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그렇다. 어린 왕자도 그랬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심연의 심안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던 것이되,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삶에서 잃어버린 것,
바로 어린 왕자는 눈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 눈의 회복을 위해 우리는 부단히 탐구해야 함을 작가는 아울러 강조한다.
"어린 왕자는
한 번 묻기 시작하면 답을 얻을 때까지 묻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성미였다."
같은 부분에서
명료하듯,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정녕 인간적인 것의 상실과 회복과 관한 우주적 드라마를
『어린 왕자』는 연출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오래된 미래의 진실과 통하는 신화다.
그 신화를 통해 인간은 본원적인 삶을 새롭게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된다.
꿈은 진실한 존재 정립의 가능성과 아울러 고정 관념과 인습의 틀을 넘어선
역동적 창조성의 밑거름이 된다.
『어린 왕자』를 통해
우주적 동경과 인간적 진실의 신화를 넉넉하게 가늠해 보고
새롭게 꿈꿀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 우찬제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