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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사

理性(이성 logos)

작성자시너먼|작성시간13.11.26|조회수71 목록 댓글 0

사물을 판단하는 힘.

참과 거짓, 선과 악을 식별하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식별하는 능력을 이성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동물과 구별짓는 것은 이성이며

이로써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다'라고 하는 인간에 관한 고전적 정의가 성립한다.

 

데카르트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게 갖고 있는 이성능력을

'양식' 또는 '자연의 빛'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예로부터 이성은

어둠을 비추는 밝은 빛으로 상징되어왔다.

 

이성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비례적·조화적 관계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어둡고 예측이 불가능한 혼돈(카오스)으로부터

어떤 체계 속에 자리한 조화적 우주(코스모스)가 출현한다.

 

원래 그리스어 로고스(이성),

로고스의 라틴어인 라티오(ratio)에는

비례·균형과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밝은 빛인 이성에 견주어보면

감성적 욕망이나 정념은 어둡고 맹목적인 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성과 가장 뚜렷하게 대비되는 것은

狂氣(광기)라고도 할 수 있다.

 

기쁨·슬픔·분노·욕망·불안 등의 정념은

어둡고 비합리적인 힘으로서 내부에서 폭발한다.

이것을 이성적 의지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면

정신의 자율성을 지킬 수 없다.

여기서 이성에 의한 정념(情念) 지배라고 하는 도덕적 문제가 발생한다.

 

칸트에 따르면

본능이나 감성적 욕망에 기초한 행동에 반해서

의무 또는 당위(sollen) 의식에 의해 결정되는 행위는

'이성적'이다.

 

우리들에게는

자율적으로 자기의 의지를 결정하는 이성적인 능력이 있어

그것에 의해 도덕적 행위가 가능해진다.

 

이것이 이론이성과 구별되는 실천이성이다.

 

감성이 감수성의 능력인 데 대해

이성은

자발성의 능력으로 여겨지는데,

이러한 경우

이성과 오성(悟性)은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성은 흔히 오성과 대립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일찍이 개념적·논증적 인식능력으로서

이성(라티오)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실재를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인식능력을 悟性(오성) 또는 知性(지성)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우위관계는 계몽시대 이후 역전되었다.

칸트에 따르면

悟性은

감각의 다양성을 개념적 통일로 이끄는 피제약적(被制約的)인 인식 능력인 데 대해,

 

理性은

판단의 일반적 제약을 끝없이 추구하는 무제약적(無制約的)인 인식능력이다.

 

헤겔에 의하면

悟性이

추상적 개념의 능력임에 대해

이성은

구체적 개념의 능력으로서

오성적 개념에 의한 대립의 입장을 초월하여 통일을 이루게 하는 힘이다.

 

또한 理性은 우주를 지배하는 근본원리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의 누스(動因力)설도 그 일례인데,

가장 전형적인 것은

헤겔의 '세계정신'으로,

역사는 세계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으로서

거기에는 어떤 이성적 원리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는 설이다.

 

형식논리학에서

추론방식(흔히 ratiocination['삼단논법']이라고 하는데,

이는 '추론능력을 사용한다'는 뜻의 라틴어 ratiocinari에서 유래한 말임)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연역법(일반자에서 특수자로 나아가는)과

귀납법(특수자에서 일반자로 나아가는)으로 분류된다.

 

신학에서

理性은

신앙과 구분되는 것으로서

발견이나 설명을 통해 종교적 진리에 대해 행사하는 인간 지성이다.

 

이성 사용의 한계는

교회와 사상단계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왔다.

전체적으로 볼 때

현대의 그리스도교, 특히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성을 인정하지만

신학의 궁극적(초자연적) 진리는 신앙의 영역으로 지키는 경향이 있다.

 

logos(로고스)

  그리스 철학과 신학에서

우주에 내재하면서 우주를 다스리고

우주에 형식과 의미를 부여하는 신(神)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개념.

 

'로고스'라는 용어로 정의되는 개념은

그리스·인도·이집트·페르시아 등의 철학·신학 체계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리스도교 문헌과 교리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신이 우주창조 및 질서유지의 원리이자 신의 인간구원 계획을 계시하는 원리로

묘사하거나 정의하는 데 이 개념을 사용했다.

따라서 이 개념은 예수가 선재(先在)했다는

그리스도교의 기본교리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 사상에서 로고스 개념은

적어도 BC 6세기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우주의 진행과정에는

인간의 이성능력과 비슷한 어떤 로고스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그리스 종교).

 

그뒤 키티온의 사상가 제논(BC 4~3세기)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토아 학파

로고스를 모든 실재에 스며 있는 활동적인 이성적·정신적 원리로 규정했다.

그들은 로고스를

섭리, 자연, 신과 우주적 영혼 등으로 불렀으며

이 로고스는 우주의 로고스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종자 '로고이'(logoi)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1세기 유대인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로고스가 신과 우주를 매개하고 창조를 수행하며

인간정신이 신의 존재를 믿고 신의 뜻을 따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가르쳤다.

 

필론과 중세 플라톤주의자(BC 4세기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플라톤의 가르침을

종교용어로 해석한 사람들)에 따르면,

로고스는 세계에 내재하며 동시에 초월적인 신적 정신이었다.

 

〈요한의 복음서〉 제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成肉身)한 '말씀'(logos)과 동일시된다.

 

이렇게 예수를

로고스와 같다고 보는 것은

'주의 말씀'(신의 활동과 권능의 관념을 함축한)이라는

자주 쓰이는 구절에서 나타나는 구약의 계시관념과

지혜는 인간을 신에게 인도하는 신의 대리자로서

신의 말씀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유대인의 견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헬레니즘 세계(그리스 문화)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리스도의 인성이 가지는 구원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했다.

 

유대인들이

토라(유대인 율법)를

하느님과 함께 선재한 것이라 보았듯이,

 

〈요한복음서〉의 저자도

예수를 선재하다고 생각했으나

인류의 생명과 구원의 인성화(人性化)한 근원이라 여겼다.

 

이 복음서의 저자는

로고스를 예수의 인성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했으며

단순히 예수가 선포한 계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교부문학).

 

예수를 로고스와 동일시한 것은

〈신약성서〉의 여러 부분에서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고

특히〈요한의 복음서〉의 4장에 뚜렷이 나타나는데,

이런 관점은

초기교회에서 〈구약성서〉보다는 그리스 철학에 근거를 두고 더욱 발전했다.

 

이 발전은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자와 변증론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헬레니즘 세계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표현하려 했고

또 그들에게 그리스도교가 가장 좋은 이교도 철학보다 더 뛰어나거나

혹은 그 철학의 계승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따라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변증론 및 논쟁적 저작들을 통해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 선재하는 '로고스'라고 주장했다.

 

①그리스도는

하느님을 인간 앞에 드러내주는 존재인 동시에

〈구약성서〉에 나오는 신의 현현(顯現)의 주체이다.

 

②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신의 이성이기 때문에

BC 6세기 철학자와 이성적 삶을 살았던 그밖의 사람들은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도교도였던 셈이다.

 

③그리스도는

세계의 틀이 되는 神(신)의 의지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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