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어느덧 예수성심성월 6월입니다. 저희 부부는 지금 ‘까미노’라고 일컷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안부인사 올립니다. 이 길은 출발점인 프랑스 남부 생장이라는 곳에서부터 스페인을 가로질러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전체거리 800km를 하루 20여km씩 걸어서 이제 250여km 지점에 와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사연을 간직한 채 배낭을 메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만날 때마다 반갑게 나누는 공통적 인사인 ‘올라? 부엔까미노!(안녕하세요? 좋은 길 되세요!)’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 길을 시작할 때 초반의 육체적 고통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걸을수록 점차 몸이 단련되어, 마치고 나면 아쉽고 그리운 향수에 젖어 또 찾게 되는 마약같은 순례길임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미 두 번이나 왔던 길이기에 편안하고 익숙해진 면도 있어 갑자기 예상치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이제는 당황하기보다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의 12제자 중 첫 번째로 순교하신 야고보 성인께서 생전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거닐었던 그 땅, 그 길,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되새기는 길 또한 십자가를 메시고 골고타 언덕을 넘어지고, 피땀 흘리시며 힘겹게 오르시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그분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걸으며 묵상하는 길이기에 저 또한 경건하고 숙연함에 빠지게 됩니다.
잉크 빛 파란 하늘에 끝없이 펼쳐진 그분의 작품인 아름다운 들판을 걸을 때는 제 마음도 기쁘고 마치 새처럼 날아갈 것 같은 가벼운 느낌이며, 마을마다 성당에 들러 예수님께 인사하고 기회가 되면 미사도 드리며, 지나가는 곳곳에서 개최되는 아름다운 축제의 광경도 볼 수 있어 저의 피로한 육체가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5년 전 첫 번째 올 때는 모든 게 낯설고 목적지까지 가는 데만 열중하느라 사력을 다해 땅만 보고 걷기만 했던, 더구나 어설픈 영어로 소통이 힘들어 많은 당황스러움을 겪으며 겨우 산티아고에 입성해서는 대성전 앞마당에 엎드린 채 무사히 올 수 있게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어 한참이나 울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고통의 길이기에 이번에도 역시나 힘들어하는 저를 끝까지 이끌어주시라고 아침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그 감격을 또다시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훗날 주님 대전에 갔을 때 ‘너는 그래도 그 길을 세 번이나 다녀왔으니 네 죄를 조금은 덜어 주겠다.’ 하시지 않을까 하는 바람, 한편 이번 길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속 서글픔이 젖어올 때도 있지만, 그러하기에 더 천천히 이 길 위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많이 그리고 오래도록 느끼며 걷고 싶습니다.
자신의 몸도 완전치 않으면서 이번에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겠다고 매번 이 길에 동행하며 저의 지킴이가 되어 준 동반자 세라피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힘든 중에도 행복합니다. 두서없는 안부인사는 여기서 마치고 저는 내일 또 길을 나서려 합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하느님께 감사하며 행복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 6. 3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정주훈 대건 안드레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