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짓골 성지 이야기..
서짓골 가는길..
보는 그대로
보령호변 길 따라
서짓골에 도착 했습니다
1866년(병인년)3월3일 갈매못에서 다블뤼 주교와 루카 위앵 신부와 장주기 요셉과 황석두 루카 가 참수되어 그 시신이 모래 자갈 속에 방치되었다.
성지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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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된지 두 달 뒤 황석두 성인의 시신은 가족들의 손으로 수습되어 삽티에 안장 되고...안토니오 다블뤼 주교 등 4위의 시신은 서짓골에 살던 신자들에 의해 9월1일(음.7월15일)이곳 서짓골 에 묻혔다.
목숨 걸고 순교자의 시신을 매장한 서짓골 신자들은 몇 달 후 체포되어 서울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
한동안 순교자들의 무덤을 지킬 사람이 없다가 16년 뒤인1882년 살아남은 신자들이 순교자 유해를 발굴하여 수습 하였다
이때 수습한 순교자 유해는 일본 나가사키 로 옮겨서 오우라 성당에 12년 동안 모셔 졌다가... 1894년 서울로 옮겨진 유해는 용산 신학교 를 거처..1900년 명동 성당에 모셨다가 ...1967년 절두산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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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하부 내포 성지 주관으로 나가사키 오우라 성당에 병인 순교자 4위 기념비를 세웠다
서짓골 의 사성제대 는 죽음을 무릅쓴 신자들의 신앙이 담겨 전해지는 빈무덤 이다.
사성제대 (四聖祭臺)앞에서 ...
순례를 마치고 보령호를 돌아본길에...장맛비에 만수 한 보령호 담수를 방류합는그림...몇 년만에 첨으로 방류합니다.
보령호 반대편 에서 바라본 서짓골 성지 그림 입니다.
이렇게 반대편 에서 바라 봣습니다.서짓골 성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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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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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화맨 작성시간 20.09.07 이번에도 수고 했구먼, 몇년 전에 나가사키 성지순례갔을 때 오우라 성당에 들렀을 때 위 성인들의 유해를 그곳에 모셨었다는 안내를 받고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유해 일부를 모시고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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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안드레아,김현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9.08 그러네유.
순교자 들의 시신을 수습하는것도 힘들었을 텐데 그 시절 교통 모든것이 불편한 가운데도 바다건너 나가사키 까지...그리고 다시 한국으로...대단한 순교와 신앙심 깊은 신자가 아니면 도저히 할수없는 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