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 ‘수역(水逆)’이란 이름으로 물이 역류
잡초 우거진 금강변에
봄기운 가득한데,
나그네는 터벅터벅
홀로 쪽배에 올라 옛 자취를 찾자니,
청산은 말이 없고
새들은 창공을 울며 나는구나.
-김상용(金常容. 조선 명종 때)의 한시 <금강>
□ 방언에 따라 지명도 제각각
금강(錦江). 비단 자락을 펴 놓은 듯한 모습의 강이라서 이 이름이 나왔다던가?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땅이름의 정착 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꾸며진 말일 테다. 이 ‘금강’의 원뜻을 알기 위해선 우리 옛말 공부를 조금 할 필요가 있겠다.
‘큼(大)’ 또는 ‘신성함’의 뜻을 가진 우리 옛말로 ‘감’ 또는 ‘검’이 있다. 이 말은 각 지방 말버릇에 따라 발음이 조금 달리 흘러오기도 했다. 입을 많이 벌려 말하는 경상도 지방에선 ‘검’이 되지만, 입을 오무려 소리내는 버릇을 가진 전라도쪽에서는 ‘곰’이 되고 만다. 그러나 입을 가로로 늘어뜨려 말하는 충청도쪽으로 가면 대개 ‘금’이 된다. ‘금강’은 표준 땅이름으론 분명히 적힌 그대로 ‘금강’이지만, 경상도 사투리식으로 하면 ‘검강’이 되고, 전라도식으로 하면 ‘곰강’이 될 것이다.
‘금강’은 ‘큰 강’이다. 그리고 ‘신성한 강’이다. 그래서 ‘금강’, ‘검강’, ‘곰강’이다. 그러나 충청도쪽 사람들은 그 중에서 ‘금강’을 택했다. ‘어른’을 ‘으른’으로, ‘성산동’을 ‘승산동’으로 발음하는 습성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이 큰 강, 신성한 강은 절대로 ‘금강’이나 ‘곰강’은 될 수 없었다.
‘큰 강’의 뜻을 가진 이 ‘금강’이 더 큰 강을 만들고 싶었음인가? 그 입 언저리에 커다란 시멘트벽을 쳐 놓고, 내려오는 그 상류의 물떼를 가두어 호수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 거대한 시멘트벽, 일컬어 ‘금강 하구둑’이다.
□ 하구둑 건설로 수역(水逆)에선 물이 거꾸로 거슬러올라와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시 성남면을 잇는 금강 하구둑이 건설된 것은 여러 해 전이다.
지난 1990년 9월, 하구둑 위의 아스팔트 포장을 끝냄으로써 하구둑 자체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되어 그 해 10월 말에 준공식을 가졌다. 7년 동안의 대역사 끝에 끝낸 큰 공사였다.
이렇게 이어진 다리 아닌 다리는 그 동안 ‘금강’이라는 너른 물띠를 가운데 두고 서로 멀게만 느껴 왔던 충청도와 전라도를 바싹 가깝게 끌어당겨 주었다. 그리고 서해안 시대의 길을 열어 주는 데도 한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이 하구둑의 건설로 지역의 홍수를 막아 줌과 동시에 부근의 평야에 풍부한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하구둑은 총 연장이 1,841m인데, 그 북단은 충남 서천군 마서면 도삼리이고, 남단은 전북 군산시의 성산면 성덕리이다.
이 곳에 하구둑이 들어서리라는 것을 말해주려 했음인가. 도삼리와 성덕리 근처에 물의 흐름과 관련된 특이한 땅이름이 있어 눈길을 끈다.
우선, 도삼리 근처 마을 이름이 ‘수역’(水逆)인 것이 그렇다.
한자 뜻 그대로 이 곳에선 하구둑 건설로 물이 거꾸로 거슬러 오르게 돼 있다. 즉, 금강의 물이 서해로 향해 내려가다가 새로 건설한 둑에 막혀 바다로 내려가지 못한 채 괴었다가 결국은 거꾸로 그 물이 수역 마을 앞까지 올라오게 돼 있다.
□ 도루매로는 물이 돌아들고
하구둑에서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도삼리 동쪽 3km 지점의 강가 마을인 ‘도루매’ 앞에서도 그 이름처럼 물이 돌아들게 돼 있다. ‘매’는 옛말로 ‘물’의 뜻이니, ‘도루매’는 돌아오는 물의 뜻이 된다.
하구둑과 관련된 예언 지명은 강 남쪽의 옥구 땅에도 있다.
성덕리의 ‘대수굴’이 바로 그것. 대수는 ‘큰물(大水)’의 뜻이니 하구둑 건설에 따라 이 곳에 큰 물이 모일 것을 잘도 점쳐 주었다.
하구둑 남단 근처의 마을이 ‘구렁목’인 것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구렁’은 전라도 사투리로 ‘구멍’을 뜻하기도 하는데, 바로 그 앞에 하구둑의 배수갑문(물구렁)이 20개나 설치되었다. 배수갑문은 수문의 조절로 바닷물이 불어날 때는 그 물이 금강으로 거슬러 오르지 못하게 하고 바닷물이 나갈 때는 갑문 상류쪽에 모인 물을 빼내는 구실을 한다. 구렁목 앞의 물구렁(배수갑문)들은 조수의 상황이나 강물의 양에 따라 수시로 열리고 닫힐 것이다.
구렁목의 바로 옆 마을이 수해(水海). 이 이름도 이 곳에 물이 많이 모일 것을 얘기해 주고 있었다. 즉, 강물이 모여 바닷물처럼 될 것을 말해 왔다. 수해 마을은 ‘수락(水落)’이란 딴 이름도 갖고 있는데, 배수갑문의 조절로 바닷물처럼 모인 물도 둑 아래 바다로 떨어져 내릴 것을 이 이름이 점쳐주었다. ‘수해’ 마을은 ‘구렁목’과는 행정구역이 달라 군산시 내포면 서포리이다.
이 하구둑 공사를 추진하는 데는 어려움도 많았다.
그렇다면 하구둑 북단 도삼리의 한 마을 이름이 ‘많은 땀’의 뜻인 ‘대한동(大汗洞)’인 것은 이 공사에 많은 노력이 들어갈 것을 말해 왔던 것은 아닌지?
어떻든 땅이름대로 돼 가는 세상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