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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연구방

가재 없는 가재울 - 배우리

작성자소석|작성시간17.04.16|조회수678 목록 댓글 0

가재 없는 가재울
"이 너머 개울에 가재가 많았대지, 아마."

어느 가재울 마을이라도 그 이름의 내력을 물으면 비슷한 대답이다.

그러나, 대개는 '가재울'과 가재는 별 관계가 없다.



하천 상류 돌 밑에 사는 가재

 땅이름들을 보면 무엇이 많다고 해서 '무슨 골' 식으로 붙은 것이 많다. 돌이 많다고 '돌골', 모래가 많다고 '모랫골', 갈나무가 많다고 '갈골', 밤나무가 많다고 '밤골', 뱀이 많다고 '뱀골'....
 그런데, 이러한 땅이름들 중에는 전혀 그런 연유와는 관계가 없는 곳도 무척 많다.
 '가잿골', '가재울'과 같이 '가재'가 들어간 땅이름도 그 한 예인데, 이런 곳을 실지로 답사해 보면 정말로 그것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는 '가잿골', '가재말' 등 '가재'가 들어간 땅이름이 적지 않다.
 대충 보건대, 한 군에 보통 10개 정도씩은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로 가재가 그렇게 많아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일까?
 의문을 풀기 위해서 우선 가재가 어떤 동물인가를 알아보았다.


 어느 생물도감에 나온 '가재' 항목의 내용은 이렇다.
 
 '가재(가재과) : 몸의 길이가 65cm 안팎이다. 셋째다리까지 집게다리 모양이며, 첫째집게다리는 굵고 기운이 세다. 우리 나라의 맑고 찬 하천 상류에 산다.'

 또, 어느 백과 사전에 나온 '가재'에 대한 내용은 이러하다.

 '가재石蟹(Cambaroides similis) : 가재과의 게. 민물에서 산다. 몸길이는 3∼8cm에 달하며 대하大蝦와 비슷하나 작고 맨 앞의 큰 발에 가위발이 있다. 한국산 가재는 제1촉각이 짧으며, 뒷걸음질을 잘하는 특성이 있다. 개울 상류의 돌 밑에 사는데, 논 농사나 수산생물에 해를 입힌다.'
 
 또, 어느 국어사전의 '가재' 항목,  
 '가재(동물) : 가재과의 민물 게. 게와 새우의 중간 형상임. 개울 상류의 돌 밑에 살며 게의 맛과 비슷함. 폐디스토마의 중간 숙주.'


모래내와 가재울 이 내용들에서 중요한 것은 가재가 주로 어디에 사느냐 하는 것이다. 사전 등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가재는 하천 상류의 돌 밑에 산다.
 어렸을 때 냇가에서 물 밑의 돌을 들춰 가며 가재를 잡던 생각이 난다. 가재는 아무 데나 있지 않았다. 대개는 물이 그리 많지 않은 작은 골짜기 냇바닥 돌 틈에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러기에 가재를 잡으려면 돌이 많은 좁은 냇가로 가지, 모래나 개흙이 깔린 넓은 시내로 가지 않는다.
 '가잿골' 마을이 가재가 많아 붙은 것이라면, 이런 마을은 산골 돌 많은 냇가에 있어야 옳다. 그런데, 가잿골 분포 상태를 지역적으로 살펴본 바, 가잿골은 그런 냇가와는 거리가 먼 것이 많았다.


 우선 서울의 가좌동(서울의 북가좌동·남가좌동)만 해도 그렇다. 이 곳의 땅이름 '가좌리'(가좌동)를 낳게 한, '가재울'에 대한 설명을 보자.

 '가재울加佐里'(이계말)(마을) : 경티말 너머에 있는 마을. 가재가 있고 산이 둘러 쌌으므로 '가재울' 또는 한자명으로 가좌리加佐里라고 하며 '이계말'이라고도 한다.

 예외 없이 이 곳도 '가재울'을 '가재'와 관련지어 설명해 놓고 있다. 그러나, 지금 서울 사람들이 '모래내'라고 부르는 이 곳이 과연 '가재' 때문에 '가재울'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이 곳은 산 속도 아니고 내(개)의 상류도 아니다. 북한산쪽에서 홍제동을 거쳐 흘러오는 '모래내(홍제천)'라고 불리는 내가 한강으로 흘러드는 곳이니, 내의 위치로 보아서는 도리어 하류에 속한다.
 그리고, '가재울'이란 이름이 '가재' 때문이라면 '모래내'란 이름과도 거리가 멀어진다. 모래가 많은 내라고 해서 '모래내'라고 했다는데, 모래 많은 하류에 무슨 가재가 그렇게 많아 '가재울'이겠는가?


 '가재'는 '가(邊)'의 사투리

 '가재울', '가잿골'은 어떤 뜻에서 붙여진 것인가?

가재울 . 경기도 안성 가좌리의 근처를 흐르는 가재울이라는 내의 모습이다. 보다시피 이런 뻘흙 같은 곳에 가재가 있을리는 만무하다.


 어느 땅이름이나 그것의 취명取名 동기를 알아보는 데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그 '위치'이다. 우리 땅이름은 대개가 위치 개념의
것이 많기 때문이다. 깊은 골짜기에 있어 '기픈골', 벌판에 있어 '벌말', 벼랑에 있어 '벼랑골' 식으로 위치와 관련된 것이 많다.
 여기서 '가재울'을 위치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가재'는 '가장자
리'의 사투리인 '가새'나 '가쟁이'를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커진다.
 가장자리란 뜻의 옛말은 원래 '갓'이었다.




갓에+자리 = 가새자리 > 가사자리 > 가상자리 > 가장자리


 이 '가장자리'란 말은 경기도와 충청남도 일부에서 '가생이'란 사투리로 쓰고 있고, 경상남도 지방에서도 이 사투리를 쓰고 있는 곳이 있다. 호남 지방에선 '가상'이라고 쓰고 있는 곳이 많다. '가싱이' 또는 '가쟁이'라 불리는 곳이 있고, '가시리', '가상', '가상다리', '가상자리'로 쓰고 있는 지방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가스'라고도 한다.
 이를 보면 사투리에도 '가邊'의 옛말 '갓'이 모두 그 흔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갓골'과 '가재울'은 같은 뜻

 '가재'가 들어간 땅이름에서는 주로 ' '에서 나온 것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가장자리'란 뜻의 ' '은 '가사', '가자', '가재' 등으로 전음되어 전국에 무척 많은 관련 지명을 이루게 했다.
 가장자리의 골짜기나 또는 그러한 골(마을)이란 뜻은 대개 '가실(가오실)'이나 '갓골'이 되었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경남 밀양군 상동면, 경북 영양군 일월면, 전남 곡성군 오산면,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읍 등에 있는 '가곡리佳谷.柯谷.嘉谷里'는 모두 '가실(가오실)'이 원이름이다. 전북 김제군 진봉면,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에 각각 있는 가실리加實,稼室里도 역시 '가실'로 불렸던 마을이 있어 붙여진 것이다.
 '갓골(갓굴)'도 '가곡리佳谷.可谷里'란 행정지명으로 충남 논산군 노성면, 전남 영광군 홍농읍 등에 남아 있다.
 더러는 '갓골'을 '갓笠의 고을'로 보아 충남 공주군 신풍면의 입동리처럼 '입동笠洞'이 되기도 했고, 경남 울산군 웅촌면 고연리 '갓골'처럼 '관동冠洞'이 되기도 했다.
 '갓골'은 발음상 '각골', '갑골'이 되기도 해서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의 '각동리角洞里', 충북 청원군 오창면의 '각리角里', 대전시 중구의 '갑동甲洞' 같은 이름을 이루게 했다.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의 '갑곶리甲串里'는 '가장자리의 곶(고지)'이란 뜻의 '갓곶(갓고지)'이 원이름일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 서구 백석동의 '각골角谷'도 '갓골'이다.
 '가야골'로 불리던 곳은 '가곡佳谷里'(충북 청원군 오창면) 또는 '가동佳洞里'(충북 영동군 양강면)이 되기도 했다.
 '가술' 또는 '가숫골'로 불리던 곳은 '가술리可述.加述里', '가수동佳水洞'이 되어서 경남 산청군 신등면, 창원군 대산면, 경기도 오산시 등에 행정지명으로 붙어 있다.
 '가사'나 '가삿골'도 '갓邊'에서 나온 이름인데, 이들 지명은 '가사리佳士.加士.加沙里'가 되어서 경북 영일군 죽장면, 경기도 안성군 보개면, 전남 영광군 군서면 등에서 행정지명을 이룬다. 강원도 명주군 옥계면 산계리에도 '가삿골嘉士谷'이 있고, 강원도 삼척군 원덕읍 탕곡, 동해시 천곡동, 제주도 남제주군 표선면 가시리에는 각각 '가시랭이', '가싯양지', '가시오름' 같은 마을이름이 있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는 가장자리에 있는 섬이란 뜻의 '가삿섬加沙島'이 있다.
 그 밖에 '가오嘉五里'(전북 부안군 상서면), '가오터加午洞'(대전시 동구), '가오자기佳伍作里'(강원도 양구군 남면), '가엇굴稼業里'(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같은 '갓' 관련 땅이름이 있다.
 그러나, '갓' 관련 땅이름 중에는 '갓'이 더러는 산山의 뜻으로 들어간 것도 있어 무조건 '가장자리'의 뜻으로 이해함도 잘못이다.
 삼국 시대의 땅이름에서는 '갓'이 '가주加主', '가阿'(현재 음은 '아'이지만 옛 음으로는 '가'), '가지加支' 등으로 나타난다. '갓벌'로 유추되는, 경남 진해시의 옛 땅이름인 '가주화加主火', '나릿가'로 유추되는, 전북 전주의 한 속현이었던 곳의 옛 땅이름 '내리가乃利阿', '가지달'(가장자리의 산)로 유추되는 함남 안변 부근의 옛 땅이름 '가지달加支達' 등이 그 예이다.

가재울에 가재가 많다?

 '가재'가 들어간 땅이름은 무척 많다.





한글힉회에서 낸 <한국땅이름름큰사전>에서


 경기도 송탄시의 '가재동佳才洞', 화성군 팔탄면의 '가재리佳才里', 용인군 원삼면의 '가재월리加在月里', 고양·이천·충북 청원·충남 서산군 등의 '가좌리加佐里', 인천시 서구의 '가좌동佳佐洞', 충남 공주군 탄천면의 '가척리加尺里' 등은 모두 '가재울'이 원이름이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원당리와 충북 옥천군 옥천읍 가풍리에는 '가잿골'이라는 이름의 골짜기와 마을이 있는데, '가재울'의 경우처럼 '가재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해 놓고들 있다. 경북 경산군 용성면의 '가재加尺'도 마찬가지다. 충북 청주시 용담동에도 '큰 가잿골'과 '작은 가잿골'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신라 신문왕이 탄 가마가 머물러 있던 곳이라 해서 왕가재王駕在(큰가재)라고 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설을 담고 있다.
 '가장' 또는 '가장골'로 불리던 곳으로는 전남 여천군 율촌면의 '가장리佳長里', 대전시 서구의 '가장동佳狀洞', 경기도 오산시의 '가장동佳長洞' 등이다.
 경북 상주군 이안면의 가장리佳庄里, 충남 부여군 부여읍의 가증리佳增里는 각각 '가재이', '가징개'로 불리던 곳이다.


마을 사람들도 가재울 뜻 몰라

 '가재울'이란 이름이 붙은 마을 중 하나를 찾아보았다.
 경기도 안성군 보개면 가율리의 '가재울'.
 안성읍에서 용인군의 원삼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북쪽으로 뻗은 339번 지방도로를 따라 좁은 아스팔트 길을 달렸다. 운전 기사에게 지도에 표기된 대로 '가좌'를 지나느냐니까 그렇다고 한다. 처음 가는 길이라 하차 지점인 가좌가 어디쯤이냐고 물었더니, 옆에 앉은 어떤 촌로가 대신 나서서
 "가재울말유? 한창 가니깨니 앉아 계시우."
 한다. 분명히 그는 '가재울'이라 했다.
 지도에 박인 대로 나는 '가좌'를 물었는데도.
 창 밖을 보니 산자락에 붙은 마을들이 뒤로 물러가고 있었다. 지도를 보면서 통과 지점을 어림해 보니 가현加峴, 산밑가테, 가사리加士里 등의 마을들이었다. 이미 얻어진 상식으로 '가현'은 '벌갓터', '가사리'는 '가사' 또는 '갓터'이니 도로의 초입부터 '갓邊' 관련 땅이름이 많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버스가 20분쯤 달렸는가 했는데, 아까 말을 걸던 촌로가 어깨를 툭 친다.
 "저 동네가 가재울이유. 버스가 스거들랑 내리시우."
 버스에서 내리니, 마을 입구에 이제는 쓸모없게 된 연자방아 돌을 세워 만든, 안내 표석이 눈을 끌었다.
 '가율리加栗里 가좌'
 분명히 버스 안에서의 촌로는 '가재울'이라 했는데 표석에서는 '가좌'라?
 이 동네 한 젊은이의 안내로 마을 어른들이 잘 모인다는 어느 집 사랑채를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화투놀이에 열중하던 그들은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적당히 한번 쳐다보곤 다시 화투판에 눈을 모은다.
 쇠화로 속의 장작숯이 제법 열기를 내면서, 찾아든 나그네의 언 손을 녹여 주었다.
 "서울에서 이 마을에 대해서 알아볼려구 오셨대여."
젊은이의 소개말에
 "그럼 신문 기자여? 아니문 땅 사러 오셨다여?"
 머리가 유난히 허연 사람이 눈가에 잔뜩 주름을 담고 빤히 쳐다본다.
 마을에 온 목적을 말하고 좀 도와 달라고 했더니, 3대째 이 마을에 산다는 그는 무엇이든지 물어 보라면서 화로 앞으로 다가온다.
 그와 나는 화로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도 그는 이 가율리 근처뿐 아니라 보개면과 고삼면, 용인군의 원삼면까지 모든 마을 이름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김수한(63세)이라고 하는 그의 말에 의하면, 가율리는 '가재울', '밤골', '분토(분톳골)' 등 세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이 가재울이 40여 호로 가장 크다고 했다. 6·25 전에는 19채의 집이 있었는데, 계속 늘어서 지금은 2배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지방의 마을들 중에는 줄어드는 곳이 많은데, 이 마을이 늘어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느냐니까 논이 넓어 살기가 괜찮고 물이 흔해 가뭄도 별로 타지 않는 데다가 교통도 그리 불편하지 않아 살 만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요즘은 젖소 목장이 여섯 군데나 있어서 여기에 매달려 사는 사람까지 외지에서 들어왔기 때문이란다.
 근처 마을 밤골은 20여 채, 분토는 30여 채의 집이 있다고 했다.
 이 곳이 행정지명이 가율리로 된 까닭을 모르는 체하고 물었더니 대답을 하질 못한다.
 옆에서 화투놀이를 구경하던 다른 노인에게 물었더니 역시 그도 모른다고 했다. 좀 도덕적(?)으로 잘못되긴 했지만, 거꾸로 내가 설명을 했더니 고개들을 끄덕였다. '가재울'의 한자 표기인 '가좌加佐'와 '밤골'의 한자 표기인 '율동栗洞'의 첫 글자를 각각 따서 이룬 지명이라는 설명에 엿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수긍을 했다.

 "가재가 눈이 멀었나요?"
 가장 궁금한 것은 왜 마을 이름이 '가재울'이냐 하는 것.
 물어 봤더니 선뜻 말해 주려 하는 이가 없었다. 몇 사람이 대답을 해 줄 듯하더니 이내 대답을 입 안에 묻고 만다. 이들은 아마 이것도 잘 알면서 시험삼아 묻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화툿장을 집어들던 한 촌로가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을 했다.
  "이 너머 개울에 가재가 많았대지, 아마,"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정말 가재가 그렇게 많으냐니까, 그 개울물을 따라서 산쪽으로 올라가면 많다고 했다.
 사랑을 나와 우선 마을 앞의 내를 찾았다. 마을 앞엔 큰 내가 없었다. 논에 물을 대는 작은 수로 하나가 논 가장 자리를 지날 뿐이었는데, '가재'가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엔 아까 사랑에서 가재가 많다고 하던 개울을 찾아가 보았다. 눈길에 미끄러져 가며 마을 뒤쪽 언덕길을 내려가니 논들 사이로 작은 개울이 선을 긋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들이 꽤 넓었다. 냇바닥은 말라빠진 풀섶이 어지럽게 엉크러져 있고 돌은커녕 모래도 별로 보이질 않았다. 목장 일을 보는 사람이 마침 지나가기에 이 내에 가재가 많으냐고 했다.
 "가재라뇨? 무슨누무 가재가 눈이 멀었다고 이런 개흙바닥 개굴창에서 산다여?"
 질문같지도 않은 질문을 했다는 투로 대답을 던져 버리곤 가 버린다.
 혹시 내의 상류쪽으로 가면 모래나 자갈이 깔렸나 해서 냇줄기를 따라 올라가 보았다. 내의 상태는 위쪽이나 아래쪽이나 거의 마찬가지였다. 정말 눈이 멀었거나 미친 가재가 아니고는 이런 내에 가재가 살 리가 없다.
 내가 흘러온 쪽은 그리 큰 산도 없었다. 자그마한 언덕 같은 것이 들 끝에 아물아물했다.
 설사 그 상류에 가재가 많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3km 정도는 떨어져 있는 이 마을에 그 가재를 옮겨 붙여 '가재울'이란 이름으로 했을 리가 없다.
 어떻든 가재와 관계 없는 '가재울'이었다.
 조금 어둑해서 마을을 빠져나와 먼 모습으로 이 마을을 바라보았다. 들 가장자리의 작은 언덕에 붙은 마을. 누가 보나 이 마을은 갓邊 마을이다.
 가재울.
 역시 이 마을은 그 위치에 어울리는 '가재이(가장자리)의 울'이란 뜻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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