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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제일교회내에 있는 이팝나무 노거수

만개한 이팝나무, 대구 앞산이 자생지라고 하여 대구 시화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팝나무의 낙화
나는 재직 중에 백목련(白木蓮) 대신 이팝나무를 대구를 상징하는 시화(市花)로 지정하자고 제안했었다.
간부회의에 부의(附議)했다가 부결되었지만 아직도 아쉽다.
백목련이 어떻게 대구시화로 지정되었는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특정 도시를 상징하는 시화는 그 지역에 자생하는 수종, 다시 말해서 향토성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하고, 다음은 아름다움, 그 다음은 널리 보급할 수 있는 수종인지 여부 즉 보급 가능성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이팝나무는 대구가 원산지인 나무로서 첫 번째 조건에 부합하고 그 다음은 꽃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향기가 있어 좋고, 더 나아가서 아주 건조한 곳이 아니면 특별히 땅을 가리지 않고, 잔뿌리가 발달되어 이식이 좋은 점, 어느 하나 나무랄 데가 없으며, 또한 꽃이 피는 시기가 5월 상순이기 때문에 계절적으로도 매우 좋다.
꽃을 주제로 한 축제로는 진해 군항제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때는 바깥온도가 낮아 실외에서 다양한 행사를 하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러나 이팝나무는 5월 상순에 피기 때문에 계절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춥지도 덥지도 않아 야외에서 축제하기에도 알맞아 장차 이 꽃이 시화가 되어 많이 보급된다면 가칭 ‘이팝나무 축제’ 같은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산 순환도로의 이팝나무 가로수는 수종 선정 시 내 개인적인 입장, 즉 앞산이 원산지라는 사실에서 결정한 것으로 아직까지도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 후 김병식 공원관리소장이 공공근로사업을 활용해 도로 비탈면에 추가로 더 심었으나 가로수로 심을 당시에는 묘목이 귀해 종합건설본부에서 담당계장이었던 김진원(현 공원녹지과 관리담당)님이 전국을 상대로 구하느라고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과잉 생산되어 판로가 없자 2002년에는 대구산림조합의 정상화 상무가 키우던 나무를 무상으로 기증해 서변대교 밑에 심기도 했다.
이팝나무가 과잉 생산된 배경에는 내 영향도 컸다.
시화로 지정하자고 제안하면서 연차별로 보급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언론에 발표하였더니 너도나도 재배를 한데 비롯되었다. 나는 이팝나무를 많이 심기 위해 시에서 시행하는 공사장은 물론 아파트 등 민간 분야 조경계획을 심사하면서 건축법상(建築法上) 의무규정인 교목(喬木)의 10%는 이팝나무로 심을 것을 제도화한 일도 있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많이 심었지만, 그때 나는 아름다운 이팝나무에 미치다시피 했다.
현재 대구수목원 입구에는 이팝나무 노거수가 한 그루 있다.
원래 유가초등학교에 있었는데 길을 확장하면서 베일 처지에 있는 것을 당시 달성군 산림과장이었던 박원길님이 내게 연락해 옴에 따라 도로공사를 일시 중단시켰다가 옮겨 왔다. 그때에는 수목원의 기반조성이 덜되어 장차 성토(盛土)될 것을 감안해 측량을 하고 심었으나 안타깝게도 수형이 좋은 한 그루는 죽고 옮겨 올 때 터널을 통과하면서 가지가 부러진 것만 살았다.
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큰 이팝나무를 우연한 기회에 공짜로 얻어 대구의 새로운 명소가 된 수목원에 심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남구는 구화(區花)를 이팝나무로 지정해 남구청네거리-이천네거리 사이, 중앙대로, 영대네거리-명덕네거리 중앙분리대 등에 심었다.
이천로는 큰 가로수 사이사이에 그것도 작은 나무를 심어 미관상 그리 좋지 않으나 이 나무들이 크게 자라면 기존의 양버즘나무를 옮기고 이팝나무 거리로 만들기 위해서였었던 것 같고, 중앙대로 분리대에는 느티나무, 소나무 사이에 심어 역시 균형미가 떨어졌다.
큰 나무를 좋아하는 문 전 시장 눈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침내 이팝나무와 소나무를 옮기고 느티나무로 교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사실을 남구청에 통보했더니 당시 이재용 청장(전 환경부장관)이 구를 상징하는 구화이니 만큼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실무자를 통해 전해 왔다.
나 역시 명색이 자치구의 수장(首長)인데 관내에 심는 나무 한 그루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시의 지나친 월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청장의 의견을 시장께 보고하고 느티나무와 소나무를 옮기고 그 자리에 이팝나무를 더 보식(補植)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이팝나무는 본래부터 조경 가치가 뛰어난 나무이지만 내가 대구시목으로 하자고 제안하면서 더 확대되었으나 그때만 해도 전국적으로 키워 놓은 큰 나무가 없는 것이 흠이었다.
따라서 신천동로 비탈면에 심은 100여 그루도 지름이 10cm 내외의 비교적 작은 나무였다.
신천동로에 대해 한 마디 더한다면 주로 근원 직경이 20㎝ 정도 되는 느티나무를 심어 처음부터 숲이 우거지도록 하였으나, 만약 상동교에서 금호강까지 9㎞ 전체를 이팝나무 단일수종으로 심었다면 당장에는 보기 싫어도 10년 또는 100년 후 꽃이 필 때에는 장관을 이룰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더 많이 심지 못한 것이 아쉽다.
꽃이 뭉게구름같이 피는 5월 상순, 시민들이 손을 맞잡고 신천 둔치로 나와 축제를 연다고 가정해 보면 어쩌면 세계적인 명소로 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대구수목원 한 쪽에는 푸른 대구 가꾸기 1차 사업 목표 300만 그루를 1년 앞당겨 달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임업직 공무원은 물론 아내나 자녀들까지 참가하여 역시 이팝나무를 심은 ‘임업직 공무원 및 가족’들의 기념식수 동산이 있다.
꽃이 흰 쌀알 같아 쌀밥인 ‘이밥’이 변해 이팝나무로 되었다는 설과 24절기의 하나로 여름으로 들어선다는 ‘입하’때를 전후해 꽃이 피는 나무라 하여 입하(立夏)가 변해 이팝나무로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꽃이 적게 내리면 흉년이 든다는 풍흉을 점치는 나무라는 속설도 있으나 그것은 아마 꽃이 못자리를 설치할 때에 피기 때문이 아닌가 하다.
농경시대에는 쌀농사가 중요한 데, 수리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에 논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받는 일은 전적으로 하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못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가 자주 와야 하고 그때 수분(水分)을 좋아하는 이팝나무는 꽃을 많이 피울 수 있으니 결국 이팝나무 꽃이 많이 핀다는 것은 그만큼 비가 자주 왔음을 뜻하고 따라서 못자리를 쉽게 할 수 있어 못자리가 반농사라는 속담처럼 그 해 쌀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기에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 앞으로 해마다 5월이면 청계천변에서 흰 꽃송이가 만발한 이팝나무의 장관을 볼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오는 2005년 청계천 복원 공사가 끝나면, 개천을 따라 이팝나무 1527그루를 가로수로 심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중부 이남에서 주로 자라는 이팝나무는 소복한 꽃송이가 흰 쌀밥(이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로 불리다가 나중에 ‘이팝나무’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서울 시내의 공원수나 관상용 정원수 등으로 심어져 왔지만, 가로수로 선보이긴 이번이 처음이다.
시는 또 복원 공사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청계천변 주위의 상가변에도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등 743종의 나무를 심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시(市)와의 우의를 상징하기 위해 세운상가 앞 세운교 위에 ‘로마 분수대’를 세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팝나무꽃
글쓴이 : 해찬솔 번호 : 166
조회수 : 67
2007.05.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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