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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에 앉으신 예수님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12.11.04|조회수76 목록 댓글 0

주와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2012, 11, 4

요 4 : 1-10

 

오늘 말씀은 사마리아의 우물 가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여인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과 부도덕하고 말갈양이 같은 사마리아여인과의 우물가의 대화 내용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 마음에 감동으로 와 닿게 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모든 종교지도자들과 모든 학자들과 모든 유력한 사람들을 다 놔두고 지극히 높으신 영광의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아주 부도덕한 여자에게 그 여자 의 영혼을 생각하시며 그 여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손을 내 미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칼빈은 이 여자를 창녀라 했습니다.

창녀와 같은 아주 부도덕한 여인에게 구원의 손을 내 미시는 하나님의 기이하고도 놀라운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이 사랑을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1절“예수께서 제자들을 삼고 침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아시는 지라.”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침례를 베푸신 것이 선지자 요한보다 많다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아시고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선지자 요한에 대해서도 좋지 않는 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요한은 곧고 강직한 성품으로 유대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과 선생들을 그들의 불신앙과 위선을 계속해서 꾸짖으며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외치며, 회개하고 그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은 다면 너희에게 구원은 없다고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이요, 유대인들의 지도자요 선생들로 당시 유대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며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는 지도자들인데 선지자 요한이 그들의 죄와 불의와 불신앙과 위선을 계속해서 꾸짖고 회개하라고 외치기 때문에 그들은 위신이 크게 손상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요한을 제거할 수 없었던 것은 모든 백성들이 요한을 하늘에서 보내신 진정한 선지자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이 그들을 책망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요한을 잡아 가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요한을 잡지 못한 이유 요한은 정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허물을 잡아 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선지자 요한이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요한보다 예수님이 더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예수께서 유대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장로들을 요한보다

더 직접적으로 그들의 불신앙과 죄와 위선을 책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은 회칠한 무덤이요, 겉은 깨끗이 하나 속은 더러운 위선자들이라고 꾸짖었습니다.

더욱이 요한이 예수님은 약속된 그 메시아요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말을 듣고 주를 따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요한의 말보다 더 신뢰했고, 그분의 행하시는 표적은 그분이 전하시는 말씀에 확신을 주었고, 그분은 많은 병자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본 유대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요한보다 예수님이 더 큰 해를 그들에게 끼치는 위험인물로 보고 있었습니다.

복음은 늘 대적들에게는 분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2절“예수께서 친히 침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푸신 것이라.” 했습니다.

침례는 베푸는 사람의 인격에 따라 그 가치가 좌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푸는 침례는 그리스도에게 직접 받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침례에 대한 모든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해서 주께서 직접행하시지 않고 제자들로 하여금 행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몇 사람 외에는 자기가 침례를 행하지 않고 제자들로 하여금 베풀게 했습니다.

우리가 침례에 대한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침례는 우리가 모든 죄를 씻고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침례는 우리가 죄로부터 깨끗해졌음을 명백하게 표시하는 것입니다.

 

 

3-5절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리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먼저 사마리아인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에 대해서 적대감을 갖게 된 것을 역사적으로도 아주 오래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한 나라 이었는데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될 때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의 장수 였던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10지파를 이끌로 예루살렘의 북쪽으로 가서 세겜을 도성으로 삼고 이스라엘 왕이 되었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 두 지파를 이끌고 남쪽 유대 땅의 왕이 되어 그 나라를 유대라 했습니다.

여로보암이 세운 이스라엘 왕조가 300년을 계속 되다가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과 또한 하나님 앞에 불의한 많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여러 번 경고하셨던 대로 앗수를 군대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 침략으로 멸망하게 되었고,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 여러 나라로 흩어서 옮기고, 또 이방 여러 민족을 북쪽 이스라엘 땅에 옮겨 정착하여 살게 했습니다.

 

그 후 유대도 그들의 불신앙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로 경고하며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바벨론 군대를 보내서 예루살렘이 성이 황폐한 곳이 되도록 치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에워쌀 때 까지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왕은 유대를 멸망시키고 별 쓸모없고 가난하고 늙은 사람들만 유대 땅에 남겨 두고 모든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지 않은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땅에 이주해서 정착하고 있던 이방들인 사이에 생겨난 혼열족이거나 이방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거기다가 유대인들이 바벨로 포로에서 해방되어 유대 땅으로 돌아와서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을 때 온갖 술책으로 방해를 하며 해를 끼친 사람들이 사마리아인들이었고 성전을 지을 때도 그들의 방해로 한 때 중단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뿌리 깊은 적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땅에 이방인들이 또는 혼열족이 산다는 것에 대해서 시기와 분노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오랜 역사를 두고 뿌리 깊은 적대감으로 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당시에도 유대인들의 사마리아 인들에 대한 멸시와 적대감으로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유대 중간에 경계선처럼 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마리아 땅입니다.

그래서 남쪽 유대에서 북쪽 갈릴리를 가려면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바다 쪽으로 멀리 돌아서 험한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런다 해도 유대인들은 남쪽 유대에서 북쪽 이스라엘로 갈 때면 사마리아 땅을 거치지 않고 아주 멀러 돌아서 갔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그만큼 적대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북쪽 갈릴리로 가시면서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주님 사마리아 땅에 들어가서 수가라는 동네의 한 우물가에서 곤한 몸을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우물은 야곱의 우물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물가에 곤하고 피곤한 몸으로 편하게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그릴 수 있지요?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에 들어가서 한 우물가에 쉬셨는데 그 곳을 수가라 하는 동네라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 동네 이름이 수가라 했지만 옛 이름은 세겜이었습니다.

지금은 네압볼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내가 성지 순례를 하면서 분명히 네압볼리를 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지 순례를 하면서 우물을 몇 개 보았습니다.

한데 야곱의 우물이 내가 본 우물 중 어느 우물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성지 순례하면서 잊을 수 없는 이 유서 깊은 우물을 보고도 기억을 못하는 것이 지금에 와서는 참 안타깝습니다.

지금도 옛 성지에 남아 있는 유적 중 이 야곱의 우물이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야곱의 우물을 야곱이 그 우물을 팠거나 그 우물을 마시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야곱의 우물은 창세기 때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 입니까?

수가라 하는 동네의 옛 이름은 세겜으로 시몬과 레위가 자기 여동생 디나가 세겜의 추장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자 세겜의 모든 남자를 죽이는 잔인한 살인극이 있었던 곳이요,

르호보암이 이스라엘 나라를 두 쪽으로 나누어 이곳을 도읍지로 삼은 곳입니다.

놀라운 것은 성지 순례하면서 성경에 기록된 옛 성지의 이름이 지금도 대체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서 옛 유적지임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네압볼리에 있는 이 우물은 예수님이 사마리아여자와 대화를 나누시던 곳으로 더 유명합니다.

 

예수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시쯤 되었더라.” 정오쯤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분의 육신이 피곤하실 정도로 이스라엘 온 땅을 다니시며 영혼을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고도 그분의 증거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 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으며 그 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도 바울이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서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에 대해서 언제나 그의 마음에 큰 감동으로 있었구나, 하고 내게 그렇게 느껴집니다.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을 생각하면 종종 큰 감동으로 내 마음에 옵니다.

 

때는 정오이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주님은 홀로 우물가에 앉아서 쉬고 계셨습니다.

그 때 사마리아 한 여인이 물을 기르러 왔습니다.

이 일은 우리 눈에 보기에는 아주 우연히 일이난 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하셨습니다.

행로에 피곤한 사람은 의례 그렇듯이 우리 주님은 그 때 갈증으로 물을 마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부스러기 시간까지도 낭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기회가 닿은 대로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체조요정 손연재가 TV기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잠간 들었습니다.

손연재는 러시아에 가서 연습을 하는 동안에 몸이 아파서 쉬는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쉬는 시간이 아주 아까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시간 아까운 줄을 모르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물 좀 달라 하는 말에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으로써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하여 그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난을 받는 것을 그들의 명예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이와 같은 힐문은 평상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멸시에 대한 보복이었습니다.

여인의 말은 “당신들은 우리를 짐승처럼 멸시하면서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핀잔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자신의 목마르심보다 이 여자의 구원을 더 생각하시며 은혜를 베풀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아무 가치 없는 비천한 이 여인의 구원을 생각하시고계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큰 사랑이십니까?

우리 주님이 이 여인의 영혼을 생각하시며 주님이 먼저 여자에게 구원의 손을 내 미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여자가 말을 건네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먼저 물 좀 달라 하시며 여자에게 손을 내 밀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여자가 죄인이신 것을 아시면서도 그 여자의 죄를 꾸짖지 아니하시고 물을 청하시며 그 여자에게 은혜를 베풀 기회를 찾으신 것입니다.

 

10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제 이 기회를 통해 그 여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하심을 전하셨습니다.

그것도 우리 주님으로부터 복음을 들을 자격도 없는 여자에게 하나님 나라의 구원에 대해서 전하고 있으십니다.

우리 주님의 이 여자와의 대화는 지극히 우연히 일어난 일 같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어떻게 오는지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러 오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시는 아주 훌륭한 예를 이 여자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비천한 여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따르는 제자가 될 만한 요소가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이 여자에게 베푸신 그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도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여자에게 베푸신 똑 같은 자비를 우리에게 베푸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이 아들을 따르는 제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자격이 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이 여자의 예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백성 삼으신 사람이 어떤 자격이나 가치가 있기 때문에 택하신 것이 아님을 보여주시는 좋은 예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여자는 정말 말할 수 없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이해시키려 하셨고 지금은 그 여자에게 은혜의 때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하시는 말씀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시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하시는 말씀의 뜻을 생각해 봅시다.

주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은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베푸시는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신 것은 아무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베풀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선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 여자에게 하시는 말씀은 “지금 네게 물 좀 달라하는 나를 네가 알았다면 네가 나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구했을 것이고, 나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생수”는 사람을 구원 받게 하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실 수 있는 지에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비로써 영적인 눈을 떠서 하늘의 일을 알고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믿고 또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성령을 받고 구원받게 됩니다.

여기서 여자에게 하신 중요한 말씀은 “네가 내게 구하면 내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니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진리는 구하는 자의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목마른 사람에게 주시고 사모하며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9편 10절에도 “여호와여 주를 아는 자는 주를 의뢰하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라.” 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 하셨습니다.

야고보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하는 것 외에는 다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말고 믿음으로 구하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면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결코 헛된 약속을 하지 않으시는 것을 아십니까?

이러한 확신이 없으면 구하는 마음은 곧 식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오는 자를 만나 주시며 그가 구하는 것을 만족하게 채워 주실 것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를 미루거나 싫증이나 지루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신은 주의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하신 약속임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주의 약속의 진실하심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광야를 여행하면서 참 기이한 땅을 본다는 생각이 들어갔습니다.

그 넓은 광야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볼 수 없는 것이 내게는 사뭇 기이했습니다.

그러나 비가 하루만 오면 그 광야의 불모지에 새 풀이 파랗게 온 땅 가득하게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죽어 있는 듯한 땅에 비가 내리자 참 신기하게도 온 땅에 새 풀이 올라왔습니다.

불모지와 같고 광야와 같은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지면 우리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새 순이 나고, 그리스도를 아는 새 순이 나고, 새 생명의 새 순이 나고, 말씀을 믿는 믿음의 새 순이 올라 올 것입니다.

태양의 열기만 이글거리고 죽어 있는 듯한 광야에 비가 오면 새 풀이 올라오듯이 우리 영혼에 성령이 부어지면 하나님의 새 생명의 새순 말씀의 새순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은 광야처럼 불모지요, 그 결국은 영원한 파멸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나 우리 육신의 생명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가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이를 믿고 찾고 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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