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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13.02.24|조회수466 목록 댓글 0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2013, 2, 24

요6 : 36-40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는 먹는 그 사람도, 즉 나를 믿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믿는 사람은 반드시 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 믿는 사람은 나로 말미암아 살게 될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로 말미암아 살 수 있습니까?

말씀이 곧 주님이요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로 말미암아 사는 길은 주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주로 말미암아 사는 길입니다.

이런 말씀을 우리 주님은 수 없이 많이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36절에“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우리 주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그분의 표적을 보고 그들은 주의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분을 메시아로 믿고 억지로 잡아서 왕으로 세우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았고 또 주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았다면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몰랐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능력을 보았고 주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메시아를 몰랐다고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주께서 하늘로부터 오셨다는 알면서도 눈을 감아 버린 사람들은 바로 주로부터 버림받고 영원한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사람들입니다.

 

37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37절 말씀을 비추어 36절을 해석한다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지 않은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내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지 못한 자는 예수를 믿지 못하는가?

사람의 이성과 지혜로는 예수 못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14절 말씀처럼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일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지극히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신 자들은 성경의 여러 증거들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께서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으신 것을 깨닫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자들의 특징은 성경 안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발견할 목적으로 읽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께서 성경을 통하여 너무나 확실하게 의심할 여지없이 그 아들에 대해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 보내심을 받은 그 아들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육신의 축복을 목적으로 아들을 찾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주를 찾고자 하는 확실한 목표가 우선되지 못하고 다른 목적이 우선된 사람들은 10년 20년 교회를 다니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교회를 떠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평안과 위로 격려를 받기 원하고 축복받기 위해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어도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며 그리스도를 찾는 사람들은 마침내 그리스도를 만나고 확신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주께서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목적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말씀 가운데서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수 있는 분명한 길을 찾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주를 찾는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확언이십니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그저 우연하게 주를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사람들만 아들을 찾고 믿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알고 주의 신실하심과 보호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시고 영원히 지키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말씀을 볼 때마다 나는

존 번연을 생각하게 됩니다.

존 번연이 쓴 은혜냐 율법이냐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존 번연이 자기가 하나님의 성령을 모독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1절에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성령을 모독 했다고 하는 구체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을 모독했다고 생각하며 이 때문에 1년 이상을 낙심하며 심히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자기가 성령을 모독했기 때문에 자기의 믿음도 소용없고, 자기가 어떤 회개 기도를 해도 소용없고 자기는 하나님께 용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존 번연의 그 고뇌가 얼마나 깊은지 그는 심히 괴로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을 모독하고 자기 영혼을 마귀에게 팔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오늘 본문 말씀 중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않는다.”는 말씀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그 동안의 고민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주께 나오는 자는 결코 내쫓지 않는 다는 주의 말씀을 그의 생명의 줄로 잡고 주께 나오게 되었습니다.

주의 이 말씀이 그를 큰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이 은혜냐 율법이냐 하는 책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죄로 인해 큰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은 그 고민이 해결되면서 믿음이 크게 성장할 것입니다.

 

38절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하시는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주께서 “내가 하늘에서 온 것은.” 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께서 하늘에서 오신 분이심을 확신하십니까?

확신한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주 예수께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요, 아버지와 아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세상에서는 아주 드문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 보다 축복받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를 믿는 여려분들을 더욱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대통령 자리와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게 세계의 억만 장자의 부와 명예를 준다 해도 내가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잃는 다면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NO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영생과 천국을 확신하는 여러분들도 그러실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대로 행하려고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도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뜻을 행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늘에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곧 주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8절에서 빌립이 이르기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주께서 대답하시기를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겠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또 빌립보서 2장 6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무얼 또 의심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분을 믿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그분이 말씀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39절에“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복음은 언제나 택한 자들을 구원을 받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그들은 아무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몇 년 동안 지켜 주시는 것이 아니요, 끝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전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 우리가 부활할 때까지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있으며 절대로 중도에서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의 이 약속은 세상에서 많은 유혹과 시험과 고난을 당하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요, 우리로 하여금 부활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게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위로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십시오.

 

믿음에는 항상 확신이 따르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말씀을 아는 것과, 설득 당함과, 행동이 따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믿음은 전 인격적이란 뜻입니다.

참 된 믿음은 행함이 그 증거가 됩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가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결코 부족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네 저는 믿습니다. 저는 그 교훈을 받아 드립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믿음이란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이 지니는 모든 문제는 그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난제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상황이나 환경이 자신을 지배하게 만듭니다.

삶의 문제와 어려운 환경이 그 손에 몽둥이를 들고 그들의 머리를 후려치게 만듭니다.

그러면 절망 가운데 패배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은 그것을 피하는 방법은 바로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장 필요할 때 우리를 돕지 못하는 믿음은 결코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참된 믿음은 우리를 돕는 일에 실패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실제입니다.

여러분 문제와 어떤 어려움이 오면 기도하고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으로 문제 위에 올라서야 합니다.

그리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문제를 밟고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이 풍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는 문제였던 거센 풍랑을 밟고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고통해서 말씀을 경험하고 믿음은 확신 있게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 된다면 그런 고난을 오히려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떤 문제이든 그 문제를 통해서 우리가 말씀을 얻고 그 말씀으로 그 문제를 밟고 일어서면 그 문제를 통해서 말씀의 능력을 깨닫고 그 말씀의 실제에 이르며 주님을 경험하며 믿음은 성장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우리가 겪는 그 문제만을 통해서, 다른 무엇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믿음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문제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믿음의 축복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제 우리는 마지막 절이 40절을 봅시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하시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영생을 얻는 분명한 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 9-10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을 경험하고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도 친히 주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세상에 오셨음을 요한복음 5장에서 다섯 가지로 그 증거를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첫 째는 선지자 요한의 증거요, 둘째는 주께서 행하시는 그 능력이요, 셋째는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이요, 넷째는 성경에 기록된 분이요, 다섯째는 모세의 증거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아주 확실하고 분명한 증거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보다 더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께서 성경대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일이요, 그 다음에는 주의 부활하신 사건이요, 그 다음에는 주께서 아버지께 올라가면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주의 모든 말씀도, 주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지신 대속의 십자가도, 주께서 하늘에서 오셨다는 말씀도 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헛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께서 “내가 3일 만에 다시 살리라 너희는 이것을 보고 나를 믿으라.” 하신 말씀도 거짓말이 되고 그렇다면 누가 주님을 믿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주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믿을 수 보증이 되었습니다.

내가 가장 믿기 어려웠던 것은 주께서 내 죄 값으로 흘리신 피로 인하여 내 모든 죄가 용서 받는 다는 것과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주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피로 내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이 내 마음에 설득력 있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믿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내가 이해가 되든 안 되든 그분의 말씀과 행하심을 참되고 진실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행하시는 것을 다 이해하고 알겠는가? 하는 생각하며 주가 지신 대속의 십자가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완전히 설득되어서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그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고 그로 인해 내 죄가 완전히 사해졌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게 된 것은 우리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면서 였습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오랜 추구 끝에 갈라디아서 1장의 사도 바울의 증언을 통해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막혀 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 맨 먼저 깨달은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아 우리 주님이 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신 것이 사실이었구나 하는 확신이었습니다.

주의 말씀과 행하심이 거짓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주님은 결코 부활시키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의 부활은 그분의 모든 말씀과 행하심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전에도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 죄를 위해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주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부활하신 것을 확신하면서 주가 내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 죄가 온전히 사함 받은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분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의문과 고민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확신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 믿는 다는 것은 바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천성적으로 의문이 많은 사람이라 고통당하고 괴로워하며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의문을 통해서 괴로워하며 오래 동안 기도했기 때문에 증거를 얻었고 마귀도 내 믿음을 흔들 수 없는 뿌리 깊은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다고 하셨습니다.

주를 믿는 다는 것은 주는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요, 주는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모든 죄 값을 온전히 지불하신 분이요, 주의 부활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주께 대한 이런 확신하는 믿음을 가진 여러분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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