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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14.05.18|조회수57 목록 댓글 0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2014, 5, 18

요16 : 16-24

신약성경을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일로 나눠져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성경대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성경대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심으로 다시 아버지께 올라가신 사건입니다.

두 번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올라가시고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고, 그 성령께서 오심으로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시오, 우리들의 구주로 세상에 오심 분이심을 확신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하시고, 우리를 세상 죄와 마귀의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육신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는 지혜와 능력이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근원은 육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죄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육신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과 실제적인 관계를 갖게 것은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여 살 때 모든 영적인 것과 신령한 것들을 경험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모든 영적인 경험을 할 수 없으며 성령님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알면서 주님과 실제적인 관계를 갖는 믿음으로 크게 바뀌게 됩니다.

16절에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이 말씀을 얼핏 보면 주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주께서 아버지께 올라가시면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죽음으로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내가 내영으로 너희에게 돌아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셨습니다.

주께서 성령으로 제자들에게 돌아오실 때 제자들이 주님을 보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성령님의 임재와 체험을 통해서 그 만큼 확실하게 주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알게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의 이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처럼 확실하게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영적인 모든 체험을 통해서 확실하게 아는 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께서 보내 주시는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내 안에 계신다는 믿음만 가지고는 그 실제를 모릅니다.

성령님을 아는 길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말 그 실체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17-18절에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 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주께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리니.” 하시는 말씀은 주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니” 하시는 말씀은 주님께서 주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주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시는 뜻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6절에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했습니다.

사도의 바울은 “이제부터는 주님은 육체로 계시는 분이 아니요, 성령으로 계시는 분이심을 깨달으라.”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19-20절에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주께서 꼭 귀머거리를 상대로 이야기 하는 것 같고, 아직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오셨으면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요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고 왕이 되시어 세상을 통치하셔야 할 분 아닌가?

그런데 다시 아버지께 올라가신 다는 말씀이 무슨 말인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기들의 상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도대체 주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도 없고 마음에 두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실은 우리도 그렇습니다.

영적인 일에는 아주 우둔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둔하고 무지합니다.

거기다 교만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마음에 두고 생각해 보려고도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가 아버지께 데려감을 받을 경우, 나를 보고 혹시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던 그들이, 나의 죽음을 보고 너희의 믿음이 헛되다고 즐거워하며 개선가를 부를 것이다.

그 때 너희들은 세상으로부터 힘겹고 무서운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늘에서 성령을 보내 줄 것이요, 너희는 내 영을 받고 크게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요, 성령은 너희가 세상을 능히 이길 능력으로 무장하게 할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그 때부터 슬픔을 모르고 기뻐하고만 살았다는 애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사도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숫한 수모를 당하고 매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가 꺾이고 움츠려 든 것이 아니요, 그 때 마다 오히려 성령으로 연단을 받고 새롭게 되어 과거의 연약한 사람을 벗어버리고 늘 새롭게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전투에 있어서 언제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곧 그들과 함께 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승리입니다.

21-22절에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이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니라.”

나는 여자의 해산하는 고통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큰 고통을 겪어야 아이를 낳는 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을 때가 되면 그 고통을 생각하며 근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자기가 낳은 아이를 보고 그 기쁨으로 모든 고통을 잊게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주께서 그들 곁을 떠나시면 그들은 근심하고 애통해 하고 세상은 그들을 이단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라 조롱하고 능욕하겠지만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면 그들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구주로 오신 분이시오, 또 주의 말씀은 온전히 신뢰할 수 있고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라는 확신 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됩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기쁨은 지극히 크고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주의 영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모든 지혜와 비밀을 알게 하시고, 세상과 마귀와 육신을 능히 이기는 능력을 주시고, 성령님은 그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잘 아는 바와 같이 그들은 모두 미천한 출신들이요,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고 믿음과 지혜와 능력이 온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세상을 크게 바꾸어 놓은 위대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을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은 성령님이셨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지혜와 새 능력으로 위대한 삶을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여러분 이 말씀은 주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나타내시겠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말씀을 보여 주시면서 그렇게 살라고 쫓는 분이 계십니까?

그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여러분 안에서 말씀을 주시면서 그렇게 행하라고 쫓는 분이 계시다면 힘써 반응하고 순복하십시오.

사도 바울도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 골로새서 1장 29절에서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도 그분의 지시에 따라 힘써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16절에서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주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주의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의 마음을 갖게 하시고 주의 마음과 주의 영으로 행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영이 없다면, 온전히 육신 뿐인 우리가 육신과는 전혀 다른, 주의 영에 속한 삶을 사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육신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사람인 내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주신 분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은 신의 성품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신의 성품 얻고 신의 성품으로 살게 하실 뿐 아니라 영적인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하고 영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고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맛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모두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는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성령으로 사는 삶은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이며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입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들은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소망과 큰 기쁨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는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곧 사라질 것들을 위해서 또 그것을 구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요, 영원한 것들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순종하는 말씀은 영원히 우리의 상속 받을 분깃이요, 영적인 우리의 능력이요, 영역이요, 지혜요, 권세요, 영화가 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삶이 없다면 그에게는 아무 상도 없습니다.

영적인 모든 실제를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서부터입니다.

우리들이 순종의 삶을 살지 않는 다면 우리들은 주님과 실제적인 관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우리들의 믿음은 모두 허상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23절에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말씀은 요한복음 14장 26절과 요한일서 2장 27절에 나오는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하시는 말씀과 정확히 같은 뜻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하늘의 신비까지 깨우쳐 주는 이해의 빛이 온다는 뜻입니다.

그 때 당시 제자들은 아주 사소한 문제까지도 아주 어리석다 할 정도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글을 처음 배운 아이들이 글 한 줄을 읽는데도 여러 번 멈칫 멈칫하면서 더듬더듬 읽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성령의 조명을 받아 그들은 그리스도의 지혜의 말씀에 곧 친숙해 지고 하나님의 신비한 것까지 깨닫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날이 올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서 31장 34절에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켜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라고 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은 너희가 성령을 받고 여호와를 알리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이러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너희를 위하여 모든 것에 풍성하게 예비하신 분이요, 너희를 풍성하게 채워 주시는 분이시다.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너희가 구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이다.”

그러나 “구하라” 하십니다.

받고자 하는 이 마다 진정으로 간절하게 구해야 받습니다.

야고보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라 했습니다.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여러분 우리 주님은 “내 이름으로 구하라” 하시는 말씀을 그처럼 자주 반복해서 하시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드리는 모든 간구와 기도가 아버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중보로 아버지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 받는 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 없는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합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은 애초에 믿음이 없는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한 확신하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서 갖는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 하리라,”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빈 약속을 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묵상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여 영적인 것을 경험할 때 우리의 실제적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했으면 응답을 받아야 정상입니다.

우리가 구해도 받지 못한다면 우리의 기도가 어딘가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고 기도 내용을 바꾸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몇 번 기도해도 받지 못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응답 받기까지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기도해도 받지 못한다고 멈추는 것은 한 마디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내의 기도는 믿음의 표시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하지 않아도 주님을 병을 고쳐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구하는 자들에게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거의 다 아주 끈질긴 기도로 응답 받은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끈질기게 청하는 한 과부의 이야기와 또 밤중에 찾아 온 친구를 위해서 이웃에 가서 끈질기게 떡덩이를 구하는 사람을 비유로 인내로 끈질기게 기도할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인내의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진실한 믿음을 시험하시고 또 간절한 기도를 듣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하기까지 응답을 연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 기도 생활의 경험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으면 기도 응답을 받은 그 자체보다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기쁨,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확신, 내가 아버지께 받아들여졌고, 아버지의 은총을 받고 있다는 확신 때문에 기쁨이 더 크게 옵니다.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서 1장 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나는 이 말씀을 잘 믿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기도하면 거의 100%로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또 주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7장 9-11절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식이 떡을 달라하는데 아들의 입에 돌을 넣어 줄 사람이 있습니까?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넣어 줄 사람이 우리 중에 있습니까?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내게는 또 기도에 확신을 갖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게 구하며 내가 시행하리라.” 하시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나는 기도할 때 마다 거의 습관적으로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주께서 들으셨다는 내 마음에 확신이 들어올 때까지 기도합니다.

그 다음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시행하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 다음은 나의 기도의 결과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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