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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의 조건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14.06.01|조회수45 목록 댓글 0

영생의 조건

2014, 6, 1

요17 : 1-5

요한복음 17장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임박하여 아버지께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최후만찬을 잡수신 다음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제자들과 많은 대화가 있은 다음 그 다락방에서 하신 기도인지 아니면 성 밖으로 나와서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스스로 잡히러 가시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던 중 어느 곳에서 기도하신 것인지 장소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과는 다른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이 땅에서 대제사장으로써의 드리는 장엄하고 위대한 기도이십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기도와, 제자들을 위한 기도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신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고, 또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 날 까지 거룩하게 지켜 주실 것을 기도하셨고, 또 이들만 아니라 오늘 날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될 그리스도인들을 보존해 주실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먼저는 1-5절까지의 기도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기도입니다.

17장 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하시는 말씀은 주께서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라는 뜻이라고 존 칼빈은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제자들과 하신 대화의 중심 내용이 “내가 아버지 하나님께 올라가면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리라.” 하시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라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몸짓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하는 기도는 대제사장이 제물을 아버지 하나님께 드릴 때 취하는 전형적인 기도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라는 말씀으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그 때란 주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를 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를 항상 의식하고 사셨다는 것은 복음서의 처음부분에서부터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1-7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그 때는 초막절 유대인의 명절이었습니다.

그 명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시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스스로 나타내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니 당신이 행하시는 일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고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조차 믿지 아니함으로 미워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2절에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 이끌겠노라.” 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2장 50절에 “내가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하시었습니다.

여기서 침례란 예수께서 죽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실 때를 늘 생각하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께서 그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에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시던 주님이 이제는 그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2장 27절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하고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실 일을 앞에 두고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께서 아들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이는 주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께서 자기는 물론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동안도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 땅에 오심으로 살아계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많은 표적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영화롭게 하실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경의 기록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여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들의 죄 값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친히 속죄 제물로 드려서 우리들의 모든 죄 값을 하나님 앞에 드렸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우리들을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 확실해 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경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분명하게 보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크게 온 것은 주께 못 박히신 대속의 십자가는

내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도 나는 죄 사함 받은 것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확신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확실하게 깨달았을 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완전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죄 사함의 확신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더욱 더 굳게 갖게 되었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후대하실 것을 약속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누가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을 알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누가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알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예수 믿지 않는 자에게 내세에 지옥이 있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예수님을 알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임박하여 “아버지여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아들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을 아신 것입니다.

2절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만민을 다르시는 권세”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생한 모든 새사람들의 머리로 삼으셨을 때 이미 그리스도께 허용된 권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은 옛 사람의 조상이요 머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을 얻은 자들의 조상이요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께서 만민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받으신 것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그 앞에서 산자와 죽은 자로 나누실 심판의 권세를 아버지께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것이 곧 만문을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중생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님께 순복하는 것을 항상 마음에 크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 순복하여 사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의 원천은 순종이요,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축복도 순종을 따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의 음성을 듣고 기꺼이 순종하며 따르는 선택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순종이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증거가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항상 주님의 뜻을 알고 마음으로부터 행하는 사람들을 주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것입니다.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영생은 우리가 예수 믿는 가장 큰 목표요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영생을 소유한 사람입니까?

또한 어떻게 영생을 소유하는 것입니까?

영생은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얻는 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실제로 아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를 실제로 아는 사람입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알고 교통하고 교제하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이들입니다.

지난 주 기독교 신문에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는 구원을 이렇게 받는다고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습니까? 예.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당신의 죄가 다 용서 받으신 것을 믿습니까? 예

당신은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했습니까? 예

세례 문답을 할 때 이렇게 묻는 말에 예라고만 대답하면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자기가 구원 받았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묻는 다면 자기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을 믿는 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구원 받았다고 합니다.

죄 사함의 확신과 자기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을 알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는 이들이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죄가 한 번도 지은 일이 없는 것처럼 완전히 사해 졌고 완전히 용서 받은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렇게 묻는 다면 많은 이들이 대답을 못합니다.

그 확신을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하고 묻는 다면 더더욱 대답을 못합니다.

대체적으로 자기가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기가 예수 믿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오해입니다.

죄 사함의 확신이 없다면 그는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죄 사함의 확신은 막연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에 의해서, 자신도 부인할 수 없고 증거에 의해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할 때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보고 확신했듯이 말입니다.

죄 사함의 확신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주의 말씀을 참으로 믿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의 말씀에 자신을 순종하여 드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해 살아가면서 주님을 여러 가지로 경험하고 주께서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초기에는 순종하는 것이 좀 억지가 있기 때문에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숙해 지고 순종이 자연스러워 질 때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곧 살아계신 주님을 아는 사람들이요,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면을 말씀드리지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나의 지난 과거의 일을 기억하듯이 주께서 행하신 일도 그렇게 생생한 모습으로 내게는 다가옵니다.

나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내가 본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나도 그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처럼 주님을 생생하게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주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생은 주님을 이렇게 실제로 아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4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께서는 이제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많은 표적을 통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들어내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또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주님을 보내신 가장 중요한 일을 아직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 값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곧 이루실 것이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보내신 일을 내가 다 이루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사옵나이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하시고 몇 시간도 안 되어 대속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버지께서 주께 하라고 보내신 일을 완전하게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 문제는 주께서 친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보내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 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의 죄 문제는 완전히 청산되고 해결 된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죄 사함이 조금 이라도 온전치 못하면 아버지께서 보내신 일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고,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 믿는 우리가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천국 들어가는 일에 아무 문제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친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라고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 졌다는 것을 확증지어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 사함의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은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붙드시고 확신을 가지십시오.

주께서 만일 거짓말을 하셨다면 주님은 만인을 속인 죄인 중에 죄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심으로 죄 없는 의인이시라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믿고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죄 사함의 확신은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5절에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전부터 지혜와 말씀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분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 없이는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하라고 보내신 일을 다 이루시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에 올라가셔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으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30년 후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을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로 부르시기 위해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사울에게 둘러 비친 그 빛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었고 또 그분의 빛 가운데 하신 말씀은 그분은 살아계신 분이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에 단번에 그 빛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시는 빛이요, 그분이 하나님이신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사울에게 임하신 그 빛이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시오,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분의 말씀은 거짓이 없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임하신 그 빛은 살아계신 주님을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고 그분의 복음은 우리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는 진리의 길임을 확신을 갖게 하셨습니다.

아멘.

영생의 조건

2014, 6, 1

요17 : 1-5

요한복음 17장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임박하여 아버지께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최후만찬을 잡수신 다음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제자들과 많은 대화가 있은 다음 그 다락방에서 하신 기도인지 아니면 성 밖으로 나와서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스스로 잡히러 가시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던 중 어느 곳에서 기도하신 것인지 장소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과는 다른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이 땅에서 대제사장으로써의 드리는 장엄하고 위대한 기도이십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기도와, 제자들을 위한 기도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신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고, 또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 날 까지 거룩하게 지켜 주실 것을 기도하셨고, 또 이들만 아니라 오늘 날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될 그리스도인들을 보존해 주실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먼저는 1-5절까지의 기도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기도입니다.

17장 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하시는 말씀은 주께서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라는 뜻이라고 존 칼빈은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제자들과 하신 대화의 중심 내용이 “내가 아버지 하나님께 올라가면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리라.” 하시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라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몸짓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하는 기도는 대제사장이 제물을 아버지 하나님께 드릴 때 취하는 전형적인 기도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라는 말씀으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그 때란 주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를 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를 항상 의식하고 사셨다는 것은 복음서의 처음부분에서부터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1-7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그 때는 초막절 유대인의 명절이었습니다.

그 명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시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스스로 나타내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니 당신이 행하시는 일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고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조차 믿지 아니함으로 미워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2절에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 이끌겠노라.” 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2장 50절에 “내가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하시었습니다.

여기서 침례란 예수께서 죽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실 때를 늘 생각하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께서 그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에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시던 주님이 이제는 그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2장 27절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하고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실 일을 앞에 두고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께서 아들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이는 주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께서 자기는 물론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동안도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 땅에 오심으로 살아계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많은 표적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영화롭게 하실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경의 기록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여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들의 죄 값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친히 속죄 제물로 드려서 우리들의 모든 죄 값을 하나님 앞에 드렸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우리들을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 확실해 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경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분명하게 보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크게 온 것은 주께 못 박히신 대속의 십자가는

내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도 나는 죄 사함 받은 것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확신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확실하게 깨달았을 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완전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죄 사함의 확신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더욱 더 굳게 갖게 되었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후대하실 것을 약속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누가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을 알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누가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알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예수 믿지 않는 자에게 내세에 지옥이 있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예수님을 알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임박하여 “아버지여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아들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을 아신 것입니다.

2절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만민을 다르시는 권세”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생한 모든 새사람들의 머리로 삼으셨을 때 이미 그리스도께 허용된 권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은 옛 사람의 조상이요 머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을 얻은 자들의 조상이요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께서 만민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받으신 것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그 앞에서 산자와 죽은 자로 나누실 심판의 권세를 아버지께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것이 곧 만문을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중생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님께 순복하는 것을 항상 마음에 크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 순복하여 사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의 원천은 순종이요,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축복도 순종을 따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의 음성을 듣고 기꺼이 순종하며 따르는 선택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순종이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증거가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항상 주님의 뜻을 알고 마음으로부터 행하는 사람들을 주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것입니다.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영생은 우리가 예수 믿는 가장 큰 목표요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영생을 소유한 사람입니까?

또한 어떻게 영생을 소유하는 것입니까?

영생은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얻는 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실제로 아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를 실제로 아는 사람입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알고 교통하고 교제하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이들입니다.

지난 주 기독교 신문에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는 구원을 이렇게 받는다고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습니까? 예.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당신의 죄가 다 용서 받으신 것을 믿습니까? 예

당신은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했습니까? 예

세례 문답을 할 때 이렇게 묻는 말에 예라고만 대답하면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자기가 구원 받았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묻는 다면 자기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을 믿는 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구원 받았다고 합니다.

죄 사함의 확신과 자기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을 알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는 이들이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죄가 한 번도 지은 일이 없는 것처럼 완전히 사해 졌고 완전히 용서 받은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렇게 묻는 다면 많은 이들이 대답을 못합니다.

그 확신을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하고 묻는 다면 더더욱 대답을 못합니다.

대체적으로 자기가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기가 예수 믿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오해입니다.

죄 사함의 확신이 없다면 그는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죄 사함의 확신은 막연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에 의해서, 자신도 부인할 수 없고 증거에 의해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할 때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보고 확신했듯이 말입니다.

죄 사함의 확신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주의 말씀을 참으로 믿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의 말씀에 자신을 순종하여 드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해 살아가면서 주님을 여러 가지로 경험하고 주께서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초기에는 순종하는 것이 좀 억지가 있기 때문에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숙해 지고 순종이 자연스러워 질 때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곧 살아계신 주님을 아는 사람들이요,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면을 말씀드리지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나의 지난 과거의 일을 기억하듯이 주께서 행하신 일도 그렇게 생생한 모습으로 내게는 다가옵니다.

나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내가 본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나도 그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처럼 주님을 생생하게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주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생은 주님을 이렇게 실제로 아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4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께서는 이제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많은 표적을 통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들어내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또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주님을 보내신 가장 중요한 일을 아직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 값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곧 이루실 것이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보내신 일을 내가 다 이루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사옵나이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하시고 몇 시간도 안 되어 대속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버지께서 주께 하라고 보내신 일을 완전하게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 문제는 주께서 친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보내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 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의 죄 문제는 완전히 청산되고 해결 된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죄 사함이 조금 이라도 온전치 못하면 아버지께서 보내신 일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고,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 믿는 우리가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천국 들어가는 일에 아무 문제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친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라고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 졌다는 것을 확증지어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 사함의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은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붙드시고 확신을 가지십시오.

주께서 만일 거짓말을 하셨다면 주님은 만인을 속인 죄인 중에 죄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심으로 죄 없는 의인이시라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믿고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죄 사함의 확신은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5절에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전부터 지혜와 말씀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분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 없이는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하라고 보내신 일을 다 이루시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에 올라가셔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으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30년 후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을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로 부르시기 위해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사울에게 둘러 비친 그 빛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었고 또 그분의 빛 가운데 하신 말씀은 그분은 살아계신 분이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에 단번에 그 빛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시는 빛이요, 그분이 하나님이신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사울에게 임하신 그 빛이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시오,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분의 말씀은 거짓이 없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임하신 그 빛은 살아계신 주님을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고 그분의 복음은 우리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는 진리의 길임을 확신을 갖게 하셨습니다.

아멘.

영생의 조건

2014, 6, 1

요17 : 1-5

요한복음 17장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임박하여 아버지께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최후만찬을 잡수신 다음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제자들과 많은 대화가 있은 다음 그 다락방에서 하신 기도인지 아니면 성 밖으로 나와서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스스로 잡히러 가시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던 중 어느 곳에서 기도하신 것인지 장소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과는 다른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이 땅에서 대제사장으로써의 드리는 장엄하고 위대한 기도이십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기도와, 제자들을 위한 기도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신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고, 또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 날 까지 거룩하게 지켜 주실 것을 기도하셨고, 또 이들만 아니라 오늘 날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될 그리스도인들을 보존해 주실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먼저는 1-5절까지의 기도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기도입니다.

17장 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하시는 말씀은 주께서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라는 뜻이라고 존 칼빈은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제자들과 하신 대화의 중심 내용이 “내가 아버지 하나님께 올라가면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리라.” 하시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라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몸짓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하는 기도는 대제사장이 제물을 아버지 하나님께 드릴 때 취하는 전형적인 기도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라는 말씀으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그 때란 주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를 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를 항상 의식하고 사셨다는 것은 복음서의 처음부분에서부터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1-7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그 때는 초막절 유대인의 명절이었습니다.

그 명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시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스스로 나타내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니 당신이 행하시는 일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고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조차 믿지 아니함으로 미워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2절에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 이끌겠노라.” 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2장 50절에 “내가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하시었습니다.

여기서 침례란 예수께서 죽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실 때를 늘 생각하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께서 그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에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시던 주님이 이제는 그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2장 27절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하고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실 일을 앞에 두고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께서 아들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이는 주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께서 자기는 물론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동안도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 땅에 오심으로 살아계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많은 표적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영화롭게 하실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경의 기록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여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들의 죄 값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친히 속죄 제물로 드려서 우리들의 모든 죄 값을 하나님 앞에 드렸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우리들을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 확실해 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경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분명하게 보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크게 온 것은 주께 못 박히신 대속의 십자가는

내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도 나는 죄 사함 받은 것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확신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확실하게 깨달았을 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완전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죄 사함의 확신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더욱 더 굳게 갖게 되었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후대하실 것을 약속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누가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을 알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누가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알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예수 믿지 않는 자에게 내세에 지옥이 있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예수님을 알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임박하여 “아버지여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아들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을 아신 것입니다.

2절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만민을 다르시는 권세”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생한 모든 새사람들의 머리로 삼으셨을 때 이미 그리스도께 허용된 권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은 옛 사람의 조상이요 머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을 얻은 자들의 조상이요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께서 만민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받으신 것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그 앞에서 산자와 죽은 자로 나누실 심판의 권세를 아버지께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것이 곧 만문을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중생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님께 순복하는 것을 항상 마음에 크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 순복하여 사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의 원천은 순종이요,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축복도 순종을 따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의 음성을 듣고 기꺼이 순종하며 따르는 선택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순종이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증거가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항상 주님의 뜻을 알고 마음으로부터 행하는 사람들을 주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것입니다.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영생은 우리가 예수 믿는 가장 큰 목표요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영생을 소유한 사람입니까?

또한 어떻게 영생을 소유하는 것입니까?

영생은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얻는 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실제로 아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를 실제로 아는 사람입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알고 교통하고 교제하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이들입니다.

지난 주 기독교 신문에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는 구원을 이렇게 받는다고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습니까? 예.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당신의 죄가 다 용서 받으신 것을 믿습니까? 예

당신은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했습니까? 예

세례 문답을 할 때 이렇게 묻는 말에 예라고만 대답하면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자기가 구원 받았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묻는 다면 자기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을 믿는 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구원 받았다고 합니다.

죄 사함의 확신과 자기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을 알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는 이들이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죄가 한 번도 지은 일이 없는 것처럼 완전히 사해 졌고 완전히 용서 받은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렇게 묻는 다면 많은 이들이 대답을 못합니다.

그 확신을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하고 묻는 다면 더더욱 대답을 못합니다.

대체적으로 자기가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기가 예수 믿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오해입니다.

죄 사함의 확신이 없다면 그는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죄 사함의 확신은 막연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에 의해서, 자신도 부인할 수 없고 증거에 의해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할 때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보고 확신했듯이 말입니다.

죄 사함의 확신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주의 말씀을 참으로 믿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의 말씀에 자신을 순종하여 드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해 살아가면서 주님을 여러 가지로 경험하고 주께서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초기에는 순종하는 것이 좀 억지가 있기 때문에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숙해 지고 순종이 자연스러워 질 때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곧 살아계신 주님을 아는 사람들이요,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면을 말씀드리지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나의 지난 과거의 일을 기억하듯이 주께서 행하신 일도 그렇게 생생한 모습으로 내게는 다가옵니다.

나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내가 본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나도 그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처럼 주님을 생생하게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주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생은 주님을 이렇게 실제로 아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4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께서는 이제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많은 표적을 통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들어내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또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주님을 보내신 가장 중요한 일을 아직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 값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곧 이루실 것이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보내신 일을 내가 다 이루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사옵나이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하시고 몇 시간도 안 되어 대속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버지께서 주께 하라고 보내신 일을 완전하게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 문제는 주께서 친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보내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 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의 죄 문제는 완전히 청산되고 해결 된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죄 사함이 조금 이라도 온전치 못하면 아버지께서 보내신 일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고,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 믿는 우리가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천국 들어가는 일에 아무 문제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친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라고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 졌다는 것을 확증지어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 사함의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은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붙드시고 확신을 가지십시오.

주께서 만일 거짓말을 하셨다면 주님은 만인을 속인 죄인 중에 죄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심으로 죄 없는 의인이시라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믿고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죄 사함의 확신은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5절에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전부터 지혜와 말씀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분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 없이는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하라고 보내신 일을 다 이루시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에 올라가셔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으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30년 후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을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로 부르시기 위해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사울에게 둘러 비친 그 빛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었고 또 그분의 빛 가운데 하신 말씀은 그분은 살아계신 분이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에 단번에 그 빛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시는 빛이요, 그분이 하나님이신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사울에게 임하신 그 빛이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시오,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분의 말씀은 거짓이 없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임하신 그 빛은 살아계신 주님을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고 그분의 복음은 우리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는 진리의 길임을 확신을 갖게 하셨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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