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는 사람들
2014, 6, 22
요17:20-26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내용은 복음을 듣고 장차 예수 믿게 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현재까지 예수 믿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우리들을 위한 기도이십니다.
주께서 아버지께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신 내용은 현재의 우리들에게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내용들입니다.
주께서 우리들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신 내용을 요약하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같이 그들이 내 안에 내가 그들 안에 있게 하여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 되는 온전함을 이루게 하옵시고,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시는 기도입니다.
더 간단히 요약하면 “그들이 내 안에 내가 그들 안에 있게 하옵시고,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짧은 본문 안에 “그들이 내 안에 내가 그들 안에 있게 하옵소서,” 하는 내용이 21절과 23절과 26절 세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의 본질이요, 정의를 말하는 아주 중요한 내용임을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고 또 그분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너희 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아주 단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 14절에서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계시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은 예수 믿으니까 천국 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2-5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있을 뿐 실제적인 경건의 삶이 없다는 것입니다.
새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도의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구원 받은 자들에 대한 여러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어느 한 가지 조건이라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며 그 조건이 우리에게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심각한 조건은 “그들이 내 안에 내가 그들 안에 있게 하옵소서,” 주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주의 영이 곧 그들 안에 없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 믿는 다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실제로 주의 영이 계시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주의 영 곧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4장 17절에서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면 너희가 아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면 너희가 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여기서 이런 말씀을 간단히 증거하고 있지만 성경에는 이런 말씀들이 수 없이 거듭 거듭 강조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교인들은 이런 말씀들을 어찌 된 일이지 아주 생소하게 듣습니다.
그들은 이런 중요한 말씀들은 성경에 수많이 기록되어 말씀 중에 어느 하나의 말씀으로만 여기고 내가 어찌 그 수많은 말씀들을 다 상관하랴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말씀이요, 그 증거로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 받고 성령을 받는 과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그 그리스도요 구주이심을 믿는 것이요, 또 그분이 성경의 약속대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그 죄 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는 완전히 씻어지고 용서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쉽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가 하나님 앞에 완전히 지불되고 청산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들에게 생소한 개념으로 우리들의 마음에 깊이 완전한 확신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이해한다 해도 우리 마음에는 희미한 안개 같은 의심이 덮여 있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구약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레위기 1장 4절에 보면 사람이 죄를 지으면 소나 양을 성전의 번제 단으로 끌고 가서 그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짐승을 속죄 제물로 드려 번제 단에서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죄인이 속죄 제물에게 안수함으로 자기 죄를 그 짐승에게 옮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짐승에게 자신의 죄를 옮긴 다음에 그 짐승을 태워서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때 속죄 제물로 드려진 그 짐승은 제물을 드린 사람을 대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은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한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짐승은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한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주님이 친히 오셔서 우리들을 위한 완전한 속죄 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들의 죄에 대한 속죄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면 우리들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주님 안에 있는 것 아닙니까?
구약의 속죄 제물이 자신을 대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속죄 제물의 본래의 뜻은 자신을 대신 한다기보다는 사실은 자기 자신이라는 더 강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큰 죄이든 작은 사소한 죄이든 또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죄이든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죄이든 우리들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내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는 것은 내가 도둑질 죄 간음한 죄 거짓말한 죄
누구를 속여 빼앗은 죄 그런 우리의 행위로 지은 모든 죄들만 담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게만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 주님의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신 것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죄는 나의 옛 사람, 다르게 말한다면 내 영혼이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옛 사람의 영혼은 항상 죄의 종으로 있었고, 나의 옛 영혼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내가 지은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있었고 또한 내 영혼은 그 자체가 온전히 부패해 있는 죄 덩어리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여기서 마음이란 사람의 영혼을 말합니다.
나의 옛 사람의 그 영혼 자체가 심히 부패해 있는 죄 덩어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지 못한다면 자기가 행위로 지은 죄만 아니라 바로 이 부패한 영혼 때문에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예수께서 나의 옛 사람을 대신 담당하시고 그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께서 내 죄를 담당하실 때 내가 행위로 지은 죄만 아니라 죄 그 자체인 내 영혼도 주 안에 들어가 있었고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도 주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나의 옛 사람 즉 나의 옛 영혼이 주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나의 육체가 죽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 나의 옛 사람, 즉 나의 영혼도 그 십자가에 안에 있어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죽은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내 죄만 주께서 십자가에 담당하셨다고 생각하지 말로 나의 옛 사람을 주께서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분명한 깨달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내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 나도 그분 안에 함께 있고 주와 연합되어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 우리들의 행위로 지은 죄만 아니라 온전히 부패하여 죄 그 자체로 있는 내 영혼까지도 주께서 대신 담당하시고 그 죄로 인하여 죽으신 것을 참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그 때 우리 영혼도 거기 주 안에 있었던 것을 참으로 깨닫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이를 위해서 오셨고, 부활하여 아버지께 올라가심으로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셨음을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주께서 죽으신 것은 2000년 전의 일인데 지금 내 영혼이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의심이 가는 분이 있습니까?
주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은 2000년 전의 일이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은 우리들에게 항상 현재와 현실로 있는 것입니다.
그 때의 십자가나 지금의 십자가나 동일한 십자가로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항상 현재로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5절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와 연합하여 함께 죽었으면 이와 같이 주님의 부활에도 연합한 자가 되리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목적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연합되어 죽게 하신 목적은 예수님의 부활과도 연합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나의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죽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죽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나도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연합되어 새 생명을 얻게 하여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놀라운 진리입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에게 로마서 6장 5절에서 들을 수 있는 위대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죽으심과 연합하여 죽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도 연합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은 그 새로운 생명의 자아와 새로운 생명의 본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 된 옛 생명 곧 옛 영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새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함께 얻은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지혜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죄에게 종노릇하던 그 옛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해서 죽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즉 옛 영혼은 죽었습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짊어지고 있어 지옥에 갈 우리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위대한 진리입니다.
이제 우리의 옛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죽었으므로 지옥에 들어갈 그 영혼이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지옥에 들어갈 그 옛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지옥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함께 연합 되어 나온 새 생명이 있을 뿐입니다.
그 새 생명은 성령 안에 있어 죄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 생명으로 있는 성령은 결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새 생명으로 인한 새로운 본성과 새로운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명의 본성으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옛 몸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 즉 옛 영혼은 죽었지만 우리는 옛 몸은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죄의 몸’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죄의 본성이 육신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육신의 본성은 정욕과 탐욕과 교만과 이기심 등 모든 죄가 육신으로부터 나오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방해하고 거룩한 삶을 방해하는 것들이 곧 육신의 본성에서 나오는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의 탐욕과 정욕으로 인해 죄를 짓는 다고해서 우리가 다시 지옥에 들어갈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다고해서 결코 다시 멸망할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육신이 지은 죄일 뿐입니다.
이러한 죄들이 우리들의 육신에서 나오는 것이지 우리들의 새 생명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라고 말할 때 자기 육신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육신을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영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그 영혼이 육신을 옷처럼 입고 있을 뿐입니다.
육신은 벗는 것이지만 영혼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육신을 벗으면 죄의 유혹도 없고 죄의 소욕도 없어 죄는 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죄의 육신으로 말미암아 죄의 유혹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고 또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영혼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육신과 영혼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새 생명은 성령이시고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17절에서 “이제는 그것을(죄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하셨고 또 20절에서는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죄)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하셨습니다.
참 기이하게 들리는 말이죠?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할 때 “내가는 누구죠?”
“새 생명”입니다.
우리의 새 생명 즉 성령은 죄를 원하지도 않고 죄를 짓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만일 죄를 짓는 다면 죄는 짓는 자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 다시 말해서 내 육신의 본성에서 나오는 죄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어도 내 영혼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요 내가 언젠가 벗을 육체가 짓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마음대로 죄 짓고 살아도 상관이 없습니까?
내게 지옥에 갈 영혼도 없지 않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 안에 새 생명이 있다면 여러분이 육체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짓는 죄를 성령께서는 결코 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은 우리의 육체에서 나오는 죄의 소욕을 죽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본성입니다.
이전에는 우리의 육체는 죄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새 생명인 성령의 본성으로 인하여 우리의 육체를 정복하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죄를 정복하고 우리 몸을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리는 만큼 그 만큼 우리 새 생명은 영화롭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는 거듭난 새 생명을 가지고 있어 죄를 지어도 언제가 벗을 내 육체가 짓는 것이요, 내 영혼이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지어도 나는 지옥에 가는 일은 결코 없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안에는 생명이 없는 사람이요, 즉 성령이 계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그런 사람들이 오래 동안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반쪽 이론만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아는 목사님 한 분이 그런 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첩을 얻어서 복덕방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계속해서 그들이 내 안에 내가 그들 안에 있게 하옵소서 하고 아버지께 간곡하게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성령의 본성으로 인하여 자기 육체의 소욕과 죄를 죽이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의 소욕과 죄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경건한 삶과 정결한 삶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으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거룩함에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고난과 고통 가운데 일어나는 육신의 모든 강한 소욕을 죽이고 우리들의 육신을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려 거룩하게 하고 우리들의 새 생명은 우리 주님의 모습에 이르는 장성한 생명이 되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의 목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기 전에 모든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내 안에 내가 그들 안에 있어 우리가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우리 주님의 기도가 충분하게 이루어져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