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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히러 가시는 예수님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14.07.06|조회수51 목록 댓글 0

잡히시려 가시는 예수님

2014, 7, 6

요18 : 1-11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잡히시려 가시는 내용입니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모든 사람을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30살에 그리스도로서 공생애를 시작 하셨습니다.

그리고 3년 반 동안 그리스도시오, 구주로 공생애를 사시다가 이제 바로 그 대속이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기드론 시내 건너편 동산으로 가시는 내용입니다.

이제 주님이 가시는 길은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길이요, 죽음의 길입니다.

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하시는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씀입니까?

앞에서 말씀 하신 그 중요한 뜻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어 온전히 하나를 이룬 것처럼 내가 그들 안에 있어 온전히 하나를 이루게 하옵소서 하시는 말씀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아버지께서 그들도 사랑하시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이 말씀은 내 영혼을 다시 깨우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내게 새삼 와 닿는 말씀은 첫 번째는 내 안에 오신 주님이 나와 온전히 하나 되시기를 간절히 주님이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뭔데 나와 온전히 하나 되기를 주님이 그토록 원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게 왠 사랑입니까?

나처럼 부패한 인간에게 주께서 온전히 하나 되시기를 간곡하게 원하신다니 이 어찌된 사랑입니까?

이 말씀은 내가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 나에 대한 주님의 사랑의 불로 꺼지지 않고 내 가슴에서 타고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나를 좀 더 강하고 굳게 서 있게 하실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주님이 받으시는 그와 똑 같은 사랑을 나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아버지여 그들도 사랑하시옵소서.” 하지 않고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는 그 사랑을 그들도 받는 것을 그들도 알게 하시옵소서.” 하시었습니다.

주님이 받는 그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잘 믿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버지로부터 받는 사랑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뭐 길래 아버지의 그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실 때부터 벌써 알아채고 깨달았어야할 우리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버지로부터 받는 그 큰 사랑을 우리가 어찌 다 감당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내 안에서 나와 온전히 하나 되기를 그처럼 간곡하게 원하신다는 말씀과 아버지로부터 주님이 받으신 그 사랑을 나도 받는 다는 말씀은 내 마음에 결코 꺼지지 않는 불로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사야 26장 11절에 “백성들을 위하시는 열심을 보면 저들이 부끄러워할 것임이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절과 2절에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그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예수께서는 예수를 잡고자 하는 무리들에게 잡히시기 위해서 기드론 시내 건너편 동산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곳은 예수님을 판 유다도 잘 아는 곳이므로 예수께서 이곳에서 유다가 이끌고 온 무리들에게 잡히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잡히시는 것이 곧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장 14-16절에 보면 가롯 유다가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 유월절 명절의 음식을 제자들과 함께 잡수시면서 유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4절에“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는 영원히 저주 받은 이름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는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인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자 나아가서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대답하기를 나사렛 예수를 찾는 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내가 그니라.”하고 대답하셨습니다.

6절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예수께서 “내가 그니라.” 하실 때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보고 경배하는 마음으로 뒤로 물러나서 엎드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주께서 내가 그니라 하시는 말씀을 하시자 그 말씀의 그 위력으로 뒤로 저 만치 나가떨어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태해 목사님이 능력사역하실 때 그 때 나도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때 그분의 능력 사역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그분이 설교를 마치고 능력 사역을 하시는데 그분이 손으로 가리키는 사람마다 뒤로 나가 떨어졌습니다.

한 사람이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무더기로 나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뒤로 나가떨어지지 않으려고 앞으로 몸을 약간 숙이고 낮추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나를 보자 손으로 나를 가리켰습니다.

그 때 누가 나를 힘 있게 떠다 밀어 버린 것처럼 뒤로 뒷걸음질 치다가 벽에다 뒤통수를 쾅하고 부딪치고 넘어 지게 되었습니다.

전에 내가 이 사실을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

책을 통해서 보면 많은 분들이, 예를 들면 찰스 웨슬리 같은 목사님의 집회 때 마다 이런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성령의 역사가 이렇게 강하게 일어난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그 일이 예수님을 통해서 그 때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그니라.” 하실 때 그들은 뒤로 나가 엎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칼빈의 주석을 보니까 그들은 주님의 능력에 광풍에 휩쓸린 것처럼 벼락에 맞은 사람들처럼 땅에 엎어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주님께서 자기를 잡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주님을 잡지 못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그니라” 하시는 부드러운 말씀에도 이렇게 나가 엎어지는 자들이 무슨 능력으로 감히 주님을 체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러 오셨기 때문에 스스로 그들에게 잡히신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주님을 체포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들의 무지함을 보셨습니까?

어쩌면 이토록 깨달음이 없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주님의 하늘에서 오신 이 능력을 보고도 도무지 깨달을 줄을 모릅니다.

이들은 짐승만큼이나 영적인 일에는 무지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 그를 주님 앞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는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고 칭찬하셨습니다.

그 때 나다나엘이 “나를 어떻게 아시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시기를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가 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때 나다나엘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하고 고백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자기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보셨다는 주님의 작은 신성을 맛 보고도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의 고백을 압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대로 바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두 배가 잠길 정도의 많은 고기를 잡고 돌아와서 주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몹시 두려워하며 고백했습니다.

나의 깨달음은 베드로 사도가 두 배가 잠길 정도의 많은 고기를 잡고 기뻐하며 돌아와서 주여 감사하나이다. 주여 내가 주께 큰 복을 받았나이다하고 고기 많이 잡을 것을 기뻐했다면 그는 결코 사도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보아야할 하나님의 신성을 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주님의 신성을 깨닫고 또 자기가 죄인인 것을 그 순간에 깨닫고 두려워하며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하고 고백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신성을 느끼고 맛보지만 결코 굴복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신령한 능력을 맛보고도 굴복하기 보다는 오히려 대적하고 파멸을 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불의와 악의는 하나님의 일을 주목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들은 결코 하나님의 일에 주목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유의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그의 원수들에게 “내가 그다” 하시는 말씀만 듣고도 주님의 위엄에 뒤로 나가 엎드러지는 그들은 후에 주께서 심판하실 때 주의 음성은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되며 가장 무서운 형벌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것을 무시하는 자들은 사후에 영에 세계에 들어가서 그들은 감당치 못할 무서운 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들을 영의 세계의 그 무서운 형벌에서 구원하시고자 오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무시하는 그들이 어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누구를 찾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 할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다면 이 사람들은 그냥 가게 하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기는 잡히시되 제자들은 그냥 보내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9절에 나와 있습니다.

9절에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요한복음 17장 12절에서도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이다.”

멸망의 자식이란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판 유다를 가리켜 하신말씀입니다.

예수님을 팔 유다에 대해서 성경에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편 41편 9절에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먹든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발꿈치를 들었다.” 하는 뜻은 짐승이 뒷발질을 해서 자기 주인을 찼다는 뜻으로 자기 주인을 배반했다는 뜻입니다.

유다는 대제사장에게 은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이 사실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도록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 27장 3-10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유다는 자기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을 판 그 은 30냥을 도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고 유다는 그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돌아와서 목매여 죽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 돈은 핏 값으로 도로 성전 금고에 넣는 것이 옳지 않다하여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습니다.

이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스가랴 11장 12절 13절에 기록되어 있고, 기록된 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그 밭을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밭이라고 해서 피 밭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예언된 말씀이 얼마나 무섭게 이루어졌습니까?

어떨 때는 소름이 끼치기까지 합니다.

이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얼마나 무섭도록 정확하게 이루지는 가를 우리는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내세에 들어가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반드시 무서운 대가를 치루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참 기가 막힌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사실은 그들은 우화나 신화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저 세상에 가서는 가장 무서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어린 학생들 300명 이상의 생명을 물속에 수장 시킨 안타까운 사건으로 온 국민의 마음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온 세계의 뉴스들도 이 사실을 보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이 바다 물에 수장되는 것 보다 더 큰 문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기정사실이요, 확실한 사실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음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무서운 형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주께서 그들은 영원히 지켜 주십니다.

주께서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무리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는 말씀을 하신 것은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는 말씀을 응하게 하려함이러라.”

우리 주님은 예수 믿는 우리를 영원히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에서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이루지십니다.

주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는 이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시몬 베드로는 주께서 이들에게 잡혀 가시면 그 결과는 죽음인 것을 알기 때문에 격분하여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어 버렸습니다.

참으로 용감한 행동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진실로 믿고 주를 사랑하고 주께 대한 큰 열성을 가진 그는 그들과 싸워서라도 주님을 보내 드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 꾸중을 듣습니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하시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 믿는 모든 이들에게 큰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대적을 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뜻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주님의 뜻과 다른 것이라면 온 세상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할지라도 주님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거슬러 하는 행동은 주님께 반기를 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한 치라도 벗어나 행동하는 그것이 곧 죄요 악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주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행위 하나 하는 분별의 영이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찰스 핫지라는 목사님은 주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주님은 원수들에게 잡히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성경에 기록대로 찔리고 상하셔야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일을 반드시 이루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는 책망하시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잔을 다시 말해서 내게 맡기신 일을 하지 않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아무리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뜻대로 행하는 것은 그것은 죄요 마귀의 종으로써 주님을 대적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실을 자기를 위해 사는 이들이요, 육신의 종들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뜻에 따를 줄 아는 이들이 진실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이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사야 51장 16절에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너를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라.”하셨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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