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와 진리
2014, 8, 3
요18 : 33-40
오늘은 본문 말씀에 따라 하나님 나라와 진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내가 왕이라 하시며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진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중심으로 내세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에는 내세에 대한 아주 많은 속설이 있습니다.
내세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설득력 있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읽어 보면 그가 그냥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경험한 듯한 용들입니다.
스웨덴 보르그가 저술한 천국과 지옥이라는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내가 이 사람의 책을 읽고 이 사람이 기록한 영적인 중간 세계에 대한 그의 기록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 사람의 책이 워낙 유명한 책이고 또 많은 이들이 그 사람의 기록을 믿고 있기 때문에 말씀드린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분의 체험을 믿고 실제요, 사살이라고 지지하는 한 구룹의 단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죽은 영혼들, 즉 귀신의 존재가 영혼의 중간 세계에 있는 존재들인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합니다.
유명한 신학자들도 이 책의 기록을 실제로 간주하고 또 영의 중간 세계는 이 사람의 기록대로 사실일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론을 우리나라의 감리교 신학교 총장이라는 사람도 믿고 있었고 감리교 교수인 변 누구라는 교수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 김홍도 목사님을 비롯한 몇 분의 주도로 총장과 변교수를 해임한 사실이 있습니다.
스웨덴 보르그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영적인 중간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중간 세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들어가는 영혼들도 있지만 대개는 이 영적인 중간 세계에서 짧게는 2-3년 길게는 50년까지 머물다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 영적인 중간 세계에 들어가서는 처음에는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을 못하고 또 아직도 자기가 육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의 중간 세계에서 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자기가 죽은 것과 영혼만 있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 중간 세계는 누구의 간섭이나 제재가 없는 세계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의 중간 세계에 들어와서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나면서 자기가 영혼만 있는 것도 알고 이 중간세계에는 아무 제재도 없는 것을 알면서부터 가식이나 외식을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그 본성대로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중간 세계에는 악한 천사도 있고 선한 천사도 있어 이들에게 접근하여 악으로 유인하는 악한 천사도 만나게 되고, 또한 그들을 선으로 유인하는 선한 천사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영혼은 그 본디 악한 성향대로 악한 천사에게 끌리어 가서 마귀와 그 사자들을 예비한 곳으로 들어가고, 그와 다르게 선한 성향의 영혼은 그 선한 천사에게 끌리어 선한 자들을 예비한 나라로 인도 받아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보르그의 말은 사람의 영혼이 죽어서 영의 중간 세계에 들어가서 그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악한 자는 악한 천사에게 이끌리어 그들을 위해 준비된 곳으로 가고 선한 자들은 선한 천사들의 이끌리어 또한 선한 자들을 위해 준비된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하지만 스웨덴 보르그의 기록은 성경 말씀과 다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말씀과 사도행전에서는 천국과 지옥에 들어갈 자를 심판하시는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스웨덴 보르그의 말은 사람이 영적인 중간세계에 들어가서 그 성향대로 그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에 의해서 지옥과 천국으로 갈 자가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스웨덴 보르그가 이단성이 있는 것은 구원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탐욕을 버리고 선하게 살아온 선한 영혼을 다 구원 받는 다고 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종교든 선하게 살아온 선한 영혼이라면 다 구원 받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올라갈 자가 없느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지 않은 자는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스웨덴 보르그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이지만 주님의 말씀과는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체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은 진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직 주의 말씀만 신뢰해야 합니다.
또 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설이 있습니다.
연옥이라는 단어가 첫 2세기까지는 그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AD 379-395)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식적인 종교로 삼는다는 칙령을 발표하자 수많은 이교도들이 기독교로 밀려들어오게 되었고 그들이 들어오면서 가져온 신조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사람의 영혼을 속죄할 수 있는 ‘정화의 장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개념이 연옥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연옥설은 단테의 신곡에 나와 한층 더 유명해 졌습니다.
단테는 연옥은 지구의 남반구에 있는 한 산으로 묘사했습니다.
연옥은 이렇게 지구의 어느 한 곳에 있는 한 장소로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3세기부터 20세기까지 연옥은 장소의 개념으로 알려져 왔다가 그 것이 근래에 와서 바뀌었습니다.
1999년에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연옥에 대해서 “그 용어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를 가리킨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연옥은 세상의 어느 장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 교황의 바로 직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2011년에 연옥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의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연옥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연옥은 자신의 영원한 구원은 확신하지만 천국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아직도 정결함을 받을 필요가 있는 가운데 하나님과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죽은 자들의 상태라” 고 대답합니다.
연옥설을 일부 개인적인 진술과 이교도들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생성된 이 연옥설은 오늘날에 와서는 성경을 아는 일부 학자들과 천주교 교인들 사에서도 성경에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배척을 당하고 있는 설입니다.
이 연옥설을 스웬덴 보르그의 영의 중간설과도 비슷하고 또 성경의 낙원과 같은 곳을 말하는 것인가 해서 상당이 혼란을 주어 왔습니다.
그러나 연옥은 성경에 기록된 낙원과는 다른 것으로 성경을 아는 이들은 이 연옥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영적인 경험을 말한다 해도 그것이 성경의 진술과 같아야 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낙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2-43절에 보면 예수님의 오른편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했을 때 예수께서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에 낙원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낙원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우리는 낙원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을 벗으면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먼저 낙원에 들어가서 주님이 이 지상에 재림해 오실 때까지 성도의 영혼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낙원에 들어간 영혼들은 그 때 낙원에서 영혼의 상태로만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신령한 몸을 입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 되어 왔습니다.
낙원에 들어간 그 영혼들도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다고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그 신령한 몸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낙원에 들어가서 그 영혼이 잠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낙원에 들어간 영혼은 잠자고 있지 않습니다.
잠자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몸의 상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 영혼이 낙원에 있는 동안에는 신령한 몸을 입고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잠자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해 오실 때 낙원에 있는 영혼들은 그 때야 비로써 신령한 몸을 입고 주와 함께 이 땅에 함께 올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아닙니까?
하나님 나라도 있고, 죄인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있고, 아들을 통하여 죄 사함 받은 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입증하신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을 확실히 아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 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합니까?
이 뿐만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 않습니까?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주께서 바울 사도에게 증거 하라고 말씀대로 주 예수를 믿는 자는 죄 사함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닙니까?
본문으로 돌아가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빌라도의 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빌라도의 관저 앞에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몰려 와 예수님을 고발하기를 예수는 자기를 왕이라고 한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관저로 들어가서 예수님께 묻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하고 되물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주님의 대답을 듣고 주께서 스스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그렇게 고발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말에 귀 기우려 주는 최고 통치자 총독에게 자신의 진실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에 대해서 어떤 변호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오셨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35절에 보면 빌라도가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나를 네게 고발한 자들의 말대로 내가 왕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3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 어느 지역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속한 나라 였다면 나의 군대가 싸워 나를 너희에게 넘겨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빌라도에게 자기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땅에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땅에 와서 발란을 선동하며 정부를 전복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고소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빌라도도 주님의 말씀을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37절에 빌라도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묻기를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하고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께서 하늘나라의 왕 이신지에 대해서는 알고 싶은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그의 관심은 예수께서 이 땅의 왕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그것만 확실하게 알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서 “그러면 네가 이 세상 왕이 아니라는 말이야?” 하고 물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해서 태어났으며 이를 위해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하셨습니다.
주님은 빌라도의 말에 “내가 왕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노라.”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속한 자가 내 음성을 듣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뜻은 예수님은 이 세상과는 다른 영역에서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뜻입니다.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다른 영역에서 오신 예수님의 증언에는 전혀 거짓이 없으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깊이 깨달으셔야 합니다.
예수께서 전하시는 진리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오셔서 전하시는 진리이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지혜와는 전혀 다른 것이요, 이 세상 지혜는 그것을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38절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말은 “진리가 네게 밥 먹여 주느냐” 하는 경멸하는 말이었거나 아니면 진리라는 추상적인 말에 왜 네 생명을 거느냐? 참 답답하구나.” 하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빌라도에게 대답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라 무엇인지 그 중심된 내용은 분명히 알고 또 확신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께서 전하시는 진리의 중심은 인간은 모두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고 저주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본성적으로 타락한 존재요, 마귀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아직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온전히 타락해 있는 존재요, 마귀의 세력 하에 있는 마귀의 종들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 즉 진리를 들어도 진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들의 죄를 용서 받고, 본성적인 타락에서 그리고 마귀의 종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가 죄 용서 받고 타락한 본성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 없는 의로운 자로 거듭나야 하고 하나님과 화목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께서 전하시는 복음이요, 진리입니다.
그러면 누가 거듭나서 진리에 속한 자가 되는가?
“그러나 진리에 속한 자가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 말씀은 모든 사람이 진리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진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뿐 아니라 누구나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속한 자는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에 속한 자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분이 자기를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는 자가 진리에 속한 사람입니다.
주께서 그분의 말씀 가운데 자기를 개인적으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그분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주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뜻은 주께서 자기를 개인적으로 부르시는 그 부르심을 듣는 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분의 음성을 듣는 자는 그분의 부르심이 생명을 얻는 믿음이 되며 그 영혼 안에 뿌리를 내리며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칼빈의 말을 빌린 다면 믿음의 초보적인 단계인 진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10명 중에서 한 명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고 주님을 진심으로 찾는 이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들어도 어리석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는 사람의 성향과는 아주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있으며 주께서 약속하신 영생과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는 자들입니다.
38-39절에 “빌라도가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말하기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주님의 무죄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내 주님을 살릴 방도를 찾고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찾은 방법은 유월절 명절이면 한 사람을 사면하여 놓아 주는 전례가 있는데 예수님과 바라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바라바는 극악무도한 강도 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할 수 있는 좋은 계책을 마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예수님을 석방해 주겠다고 제의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의 사주를 받은 유대인들의 외침은 바라바를 석방하고 자기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님을 죽이라는 무리들의 외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외침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 제물이 되시고 화목제물이 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누가 방해하며 누가 거슬릴 수 있겠습니다.
저 죄인들의 무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하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사야 14장 24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생과 하나님 나라는 확실한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