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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14.08.31|조회수46 목록 댓글 0

다 이루었다

2014, 8, 31

요19 : 28-30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구원은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이요, 또한 그분이 우리들의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요, 그분의 부활하심을 아는 것이요, 믿는 것이요,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의 이 3가지 조건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복음적인 교회에서는 교회의 설교중심은 이 복음으로 언제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은 많은 이들이 듣지만 다 믿음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많은 이들에게 가리어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복음은 수백 번 듣고 수 없이 읽고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또 묵상하면서도 쉽게 믿음과 확신에 이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복음에 확신에 이르러 생명을 얻었는지 아니면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확신에 이르렀는지는 이 양자 관계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생명을 얻으면 영생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소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기 전에는 우리의 모든 관심은 우리 육신에 대한 관심과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고부터는 우리의 관심은 변함없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관심이요, 나라에 대한 큰 소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내 육신의 생명과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 사이에 말할 수 없는 많은 갈등들이 있지만 그러나 이러는 중에도 우리의 새 생명은 어린 아이가 성장해 가듯이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성장해 가면서 여러 가지 경험으로 인하여 이 새 생명을 더욱 확인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든가 또는 확신 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안다고 말합니다.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은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아직 이런 믿음에 이르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복음의 중심 내용을 항상 생각하셔야 합니다.

경복궁 근정전 옆에 이런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얻지 못하느니라.”

성경 말씀이 그렇습니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만 분명히 깨닫고 확신 한다면

성경을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달라질 것이요 성경 말씀을 마음으로 깊이 받을 뿐 아니라 여러분의 관심은 그 말씀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 외에 없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증거는 확실합니다.

성경에 예언대로 주는 한 선지자와 같이 오셨고 성경의 기록대로 많은 표적으로 행하셨습니다.

이 표적들은 사람이 행할 수 없는 표적들이었습니다.

그분은 성경의 기록대로 오셔서 율법과는 다른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증거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어느 것 하나 사람이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분이 오셨기에 사도들이 있었고 그분의 행하심과 말씀을 기록한 것이 신약성경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 조금만 관심만 갖는 다면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들의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성경을 보는 눈도 없고 듣는 귀도 없으며 마음은 세상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성경을 마음으로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특별한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이마다 그분의 말씀도 믿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는 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내 세우지 않고 자기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지만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접어 두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을 아는 지혜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이기 때문에 항상 그 십자가를 생각하게 되고 묵상하게 됩니다.

주가 지신 그 십자가는 누구나 쉽게 마음에 와 닿고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고 오래 동안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 내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십자가도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주께서 지신 그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이심을 확신하는 사람마다 생각하면서 깨닫는 세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 째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앞에 죄인으로 그 죄로 멸망할 것은 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신이 구원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행하신 이 모든 일을 온전히 믿고 그분에게 자기 영혼을 의뢰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과 진실로 깨닫고 믿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무엇이 다른가?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증거가 따라 옵니다.

자기가 죄인이요, 이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단번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거짓말하고 도둑질 하고 간음했기 때문에 죄인이라기보다는 자기는 본래 온전히 부패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주 통렬하게 깨닫습니다.

이는 일반 사람들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는 다른 깨달음입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고 내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으니 이제 내 죄로 죽게 되었다고 깨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갔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처음 깨달은 것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가 주 앞에 무릎은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고백한 것은 그 때 주님의 신성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깨닫는 사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깨닫는 이마다 자기가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도둑질하고 간음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자기의 죄성과 온전히 부패해 있는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깨닫는 이마다 자기의 이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요, 자기의 이 죄는 자기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죄 그 자체요 죄 덩어리임을 보게 되고 자기는 자기의 죄와 죄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하신 것과 같습니다.

왜 애통하지요, 자기 죄를 보고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자기 죄로 인해 애통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가 준비된 것입니다.

주의 십자가는 이들을 위해서 예비 된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보고 깨닫는 이 마다 주께서 죄인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주가 못 박히신 그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에서“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주의 이 말씀은 죄인임을 깨닫고 있는 나에게 나를 부르시는 주의 음성으로 확실하게 들렸고,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주님의 약속이었고, 이로 인해 나는 나를 부르시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께 나아갈 수 있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를 주께서 못 박히신 그 십자가 앞으로 나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내가 확실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깊이 깨닫는 자마다 그 죄로 인해 애통하는 이마다 주가 지신 그 십자가 앞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멸망할 죄인임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멸망할 죄인이라는 깊은 깨달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주께서 지신 그 십자가에 대해서 천만번 설명을 해도 그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서 본 사람이라면 주가 지신 그 십자가에 점점 더 깊은 관심으로 붙잡히게 될 것입니다.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이 지신 그 십자가에 대해서 주님과 사도들이 한 말씀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깊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들이 그들의 의심과 모호함에서 점점 벗어나게 하고 점점 확실함과 분명함으로 들어오고 그 말씀들이 믿음으로, 새로운 인식이요, 지식이요, 지혜요, 새로운 법과 기준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5절과 26절 말씀을 알기 쉽게 각색을 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하나도 손상되지 않게 말씀드리지요,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는 자들을 위한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속죄제물로 세우시고, 이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선포하신 것은 “모든 것은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신 하나님 나라의 영원하신 영의 법인 율법에 따른 것이라고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롭게 되었다는 말은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았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3장 26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들의 속죄 제물로 삼으심으로써 우리들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하신 의에 법에 따른 것으로 이를 행하신 하나님도 의로우시고 이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시기 위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1장 7절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말씀입니다.

로마서 5장 9절에도 똑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히브리서 10장에서는 이와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이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두루마리 책은 구약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 다시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이 말씀을 하시고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얻었다는 뜻은 의롭게 되었다는 뜻이요, 죄 사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몸과 피로써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께서 자기 피로써 하나님께 제사 드리신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어떻게 믿느냐고 하실 분이 있습니까?

그것은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9절에서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니” 하셨고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려고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아들에게 돌리셨다고 하셨습니다.

또 21절에서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 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신약 성경에 아주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들을 믿는 다면 그분의 말씀도 믿어야 하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 사함을 위해서 스스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과 6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심으로 우리들의 죄에 대한 속죄제물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잡히시던 그 밤에 최후만찬을 잡수실 때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눠 주시며“떡을 떼어 나눠주시며 이것을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 하시고 또 그들에게 포도주를 나눠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리니라.”

하시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흘리는 그 피는 많은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해 약속된 그 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이를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빌라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를 위해서 태어났으며 이를 위해서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 6장 40절에서도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아버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그리스도라고 믿으신다면 여러분의 생각보다 그분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합니다.

오직 내세를 전하러 오신 그분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28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 마르느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그 죄의 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죄에 대한 모든 고통을 받으시고 이제 죽음을 앞에 두고 아버지의 뜻을 충분히 이루신줄 아시고 마지막 성경에 기록된 것을 응하게 하시려고 “내가 목마르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때 “거기 신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맛보시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을 위해 사람들이 미리 준비해 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시편 69편의 21절에 “내가 목마를 때 초를 마시게 하였고” 하신 예언 된 말씀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맛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원히 떠나가시니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외치심을 “다 이루었다.” 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예수께서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예수를 보고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모든 자의 죄의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들의 죄를 사함 받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그 말씀을 통해서 그분의 거짓 없는 진실 된 마음과 참 뜻을 알고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들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 주가 못 박히신 그 십자가를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주님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사람마다 각인각색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고 외치신 주님의 진실 된 마음과 주님의 참 마음을 깨닫는 다면 주님의 진실되신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 주님의 마음을 그대로 받는 것아 가장 확실하고 가장 분명한 믿음을 갖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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