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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14.09.21|조회수53 목록 댓글 0

무덤에서 살아나신 예수님

2014, 9, 21

요20 : 1-10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믿음이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게도 복음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이 맨 나중에 확신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셨다는 것과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임으로 세상에 불신자들조차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믿지도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믿는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셨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들만 예수님의 부활하셨음을 알고 있었고 또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이전과는 다른 큰 확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이들이 구원 받은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4절에서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라고 했으며, 또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3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세상이 알게 되었고 또 사도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게 되었고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앙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신앙의 확신에 이르게 합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본문을 통해서 요한 사도가 제시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같이 살펴보시겠습니다.

1절에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이 입구를 막아 놓은 그 큰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즉시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 안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무덤에 안 계시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맨 처음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오래 동안 귀신이 들어 귀신의 종으로 사람대접을 받고 살지 못했던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일곱 귀신을 쫓아내신 이후 그녀는 예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증인 되는 사람은 지식 있고 지혜 있고 유능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 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는 사람들이요, 그분의 말씀대로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믿는 이들이요, 하나님의 신성에 감동된 사람들이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일곱 귀신이 들었던 세상에서 약하고 어리석고 멸시 받는 막달라 마리아를 택하시어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전하는 자로 삼으셨습니다.

신분과 학식이 아니라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그런데 얼핏 보아서 빈 무덤에 대한 증인들이 성경마다 제각각 다른 것 같이 보입니다.

나는 주님의 이 중요한 부활의 증인을 기록하는데 성경마다 증인들이 각각 다른데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 문제를 이상하게 생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여기서 집고 넘어가겠습니다.

요한 사도는 막달라 마리아만을 빈 무덤의 증인으로 삼고 있고, 마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두 여인을, 또 마가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 이렇게 세 여인을, 누가는 숫자를 명백히 밝히지 않고 갈릴리에서부터 그리스도를 따랐던 여인들이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당시 주님을 따랐던 여자들 중에서 잘 알려진 두 여자만을 기록하고 있고, 마가는 주님을 찾아 온 여인들을 다 말하고 있으며, 요한은 이 일을 주도적으로 사도들에게 전한 막달라 마리아만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2절 하반절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우리가 알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마리아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누구에게 빈 무덤의 사실을 전하였는지도 각각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가 자기와 베드로에게만 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고, 누가는 그녀가 열한 사도들에게 와서 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 그녀의 말을 미친 소리로 듣고 믿지 않았지만, 베드로와 요한만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서 그녀의 말 대로 빈 무덤을 보았기 때문에 요한 사도는 고의 적으로 다른 제자들의 이름은 생략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머지 9명의 제자들은 그들이 한데 뭉쳐 다닐 경우 관원들에게 발각 되는 것이 두려워 숨어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는 제자들 모두 허탄한 듯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기록은 다르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또 마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신 시간이 제자들에게 빈 무덤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타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서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오기 전에 주께서 먼저 그 여자들에게 나타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시간이 뒤 바뀐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먼저 말하고 그 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나중에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흔히 그렇지 않습니까?

사건이 일어난 순서는 다르지만 중요한 것을 먼저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복음에 대해서 사소한 의문이라도 있으면 특히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인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면 확신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직 분명하게 인식되지 못하신 분들은 인터넷 분당침례교회 카페에서 찾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안식 후 첫 날에”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께서 언제 어떻게 부활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 의해서 예수님의 빈 무덤에 대해서 전하여 들은 것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요한 사도의 기록과 모두 일치하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 날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내가 죽은 자 가운데 3일 만에 부활하리라” 하시는 말씀대로 주님은 죽으신지 3일 만에 일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가 예비일 다시 말해서 안식일 전날에 못 박히셨고 안식일 하루가 지났고 그 다음 날 새벽에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약속하신 대로 죽으신지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2-4절 말씀에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나이다하니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 새 둘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복음서 다른 세 기자들은 베드로와 요한도 여자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빈 무덤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말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말을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작은 씨앗으로 그들의 마음에 묻혀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은 아주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서도 땅에 묻힌 작은 씨앗처럼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믿음이 나타난 것은 그 신앙의 뿌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처음 신앙은 자기 욕심과 많은 미신이 혼합되어 있지만 이것을 신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의 씨가 복음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비로써 믿음을 갖게 된 것을 무덤에서 살아나신 주님을 만나고서부터입니다.

그 동안 그들은 주님과 3년 동안 함께 동거동낙하면서 많은 것을 듣고 보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자 그들의 믿음은 와르르 거기서 다 무너져 버렸고 끝난 듯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는 그들의 믿음은 다시 소생한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이토록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들에게서 보는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지 못하는 한 그 믿음은 어린 아이의 믿음에도 미치지 못한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확신을 가지면서부터 비로써 확실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그분의 우리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믿는 신적인 확신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믿음을 뒷바침 해 주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예수님이 무덤이 빈 무덤이라는 말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무덤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열정을 가져야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사도들 보다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 주를 위해 더 헌신 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5장에 보면 “너희는 믿음의 초보에서 멈추어 있지 말고 영적인 깊은 믿음으로 나아가라.” 했습니다.

나태하고 태만하면 주님께 대한 확신을 갖기도 어렵고 영적인 깊은 믿음으로 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베드로 요한 두 사도가 주님이 무덤을 향해 달려간 그들과 같은 열정을 가져야 주님에 대한 더 많은 실제적인 증거와 영적인 믿음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무덤을 향하여 달려 나갈 때 요한이 먼저 도착하고 베드로 사도가 그 다음에 도착한 것은 요한은 아직 젊고 베드로는 그 때 나이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요한은 두 사도의 주님을 찾는 열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5-10절 “구부려 세마포가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가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비로써 무덤에 먼저 갔던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기니라.”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세마포로 시체를 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따로 쌉니다.

그래서 머리를 쌌던 수건과 몸을 쌌던 세마포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이 세마포는 일종의 허물과 같은 것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입니다.

누군가 시체를 훔쳐 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갈리 없습니다.

당시 제자들의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제 목숨 살겠다고 떨고 숨어 있는 그들의 상황을 아신다면 그런 소리 안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다 감추어 놓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거짓 소문을 내면서 그들의 일생을 거짓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그들 모두가 다 순교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거짓된 말을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시체를 훔쳐갈 이유도 없습니다.

그들은 누군가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그 무덤을 로마군들로 하여금 지키도록 했던 자들입니다.

아무도 시체를 훔쳐갈 이유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하고 다니면 예수님의 시체를 내 보이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거짓이라는 것을 밝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체를 누군가 훔쳐 갔다면 시체를 둘러쌌던 그 세마포를 벗기고 알몸 된 시체로 훔쳐갈 리가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몸을 쌌던 그 세마포는 예수께서 늘 말씀하시던 대로 “내가 죽은 자 가운데 3일 만에 다시 살리라.” 하신 말씀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8절에 “그 때에야 무덤에 들어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요한 사도가 “믿더라” 하고 기록하고 있는데 무엇을 믿었다는 것인지 학자들 간에 두 가지 해석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첫 째는 요한은 무덤에 들어가 예수님의 몸을 쌌던 세마포만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 대로 빈 무덤이라는 것을 알고 그녀의 말을 믿었다는 해석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요한은 그 때에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여러 번 말씀하셨던 3일 만에 부활하리라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다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나는 요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그 때 깨닫고 믿었다는 해석하는 것을 따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어떤 책에도 그 때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믿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만약 그 때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었다면 작은 사건까지 세세히 기록하는 그들이 이 큰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4장12절에 “베드로가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 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느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없어지고 예수님을 쌌던 그 세마포만 보이기 때문에 당연히 놀랍게 여기지요.

그러나 그들이 그 때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본문 10절과 다른 모든 성경에서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하고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만약 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었다면 그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더라면 부활하신 주님을 찾았을 것이요, 아니면 그들은 함께 어딘가 머물러 있으면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을 찾아오시기를 초조하게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 아닙니까?

이 다음 말씀도 이 해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때까지 주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다는 구약에 말씀도 알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빈 무덤을 보고도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예수 믿는 많은 이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다음에 부활하신다는 구약의 예언된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분들이 태반입니다.

구약성경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하신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기록은 없어도 죽으시고 다시 사신 분으로 기록된 말씀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본 분들이라면 성경에서 이런 기록들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도 바울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32-37절까지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기록된 두 가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34절에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지 않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쁘신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이사야 55장 3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너희는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하신 말씀을 유의 하십시오.

“너희 영혼이 살리라,” 하신 말씀은 우리 영혼이 산다면 우리는 영원히 산다는 의미입니다.

영혼이 멸망하면 영원히 멸망하는 것이지만 “영혼이 살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확실한 은혜의 약속이란 뜻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라는 사도 바울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산다면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사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는 말씀으로 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 사도행전 22장 37절에“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이 구절은 시편 16편10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시리라”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 말씀을 인용해서 사도행전 2장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하셨음을 증거 하여 많은 자를 회개시켰습니다.

이 뿐 아니라 시편 110편 1절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였도다.” 하시는 말씀도 역시 예수님이 살아나심으로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실 것을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에 예수님은 죽어서 땅에 묻히고 썩어질 분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다시 사시는 분으로 아주 여러 가지로 기록되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예수 믿는 자의 부활을 약속하셨는데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먼저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들의 부활을 확신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3절에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으리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구원 받았으면 부활은 확실한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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