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사함의 확신
2015. 01. 11
행 9 : 1 - 22
로이드존슨은 복음을 잘 알고 잘 전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믿어도 헌신되지 않은 사람,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사람은 죄사함의 확신이 없어서입니다. 복음을 알아도, 누구에게 잘 전할 수 있어도 죄사함의 확신이 없으면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그 복음이 그에게 큰 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아는 말씀이라도 확신이 가는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전혀 생소한 말씀을 가지고 확신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잘 아는 말씀이 어느 날 갑자기 확신으로 들어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되 많은 증거를 주어 보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많은 증거를 주시는 이유는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유다지파사람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한 선지자와 함께 보내신다 하셨고, 그가 세상에 오셔서 율법과는 다른 복음을 전하고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한 사람에게 은 삼십 냥에 팔린다고 하셨고 은 삼십냥에 판 사람은 배가 터져 죽는다고 하셨고, 은 삼십 냥으로 토기장이 밭을 산다고 하셨고 예수님은 찢기고 상하여 피흘려 죽는다고 하셨는데 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담당시키셨기 때문에 그 죄값으로 찢기고 상하고 죽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 겉옷은 벗겨져 네 쪽으로 나눠 갖고 속옷은 제비뽑아 나눠 갖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자의 새 무덤에 묻히시고 삼일 만에 부활한다고 했습니다.
구약에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하늘로 다시 데려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기록된대로 오셨다가 기록된대로 사시다가 기록된대로 가셨습니다.
구약에 예수님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과 신약의 예수님의 사신 행적을 확인만 해도 그분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아들이심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사함받고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땅에 오셔서 성찬식을 가지시며 떡을 떼어 나눠주시며 이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내 몸이다.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대속의 피라 하시며 이 피를 마시라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까지 이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아버지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걸 알고 믿으시지요?
주님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께서 내 죄를 대신 담당하고 그 죄값으로 희생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죄값으로 짐승을 드려 피는 하나님의 성전에 살은 번제물로 태워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람의 죄값은 짐승으로 치러지는 게 아니라 사람의 죽음과 생명으로 치러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값은 율법에 의하면 죽음입니다.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하고 생명을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드리시고 죽음의 형벌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피로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신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죄값을 완벽히 지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들어가서 나의 죄 때문에 받을 모든 형벌을 예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내세에 들어가서 내게 심판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구약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다는 모든 조건을 알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내 죄를 사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렇게 보내고 죄값으로 돌아가신 아들을 믿는다면 온전히 죄사함 받는다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믿는다해도 변화된 삶, 헌신된 삶을 사는 사람은 적습니다.
죄사함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죄사함의 확신이 있으면 빗나갈 수가 없고 예수를 안 믿을 수가 없고 하나님께 나가 헌신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예수를 믿지만 어딘가 부족한 것이 있는데 무엇이 가짜고 무엇이 부족한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죄사함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죄사함의 확신입니다.
나는 성경적으로 부족함없는 증거로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부족했습니다.
헌신되지 못하고 변화된 삶도 없어서 고민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서 사도바울처럼 주님을 만났다면 내가 꿈에도 의심하지 않고 확신 갖고 믿을 것 같았습니다.
무의식중에도 예수님을 믿을 것 같고 꿈에도 예수님 믿을 것 같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 같아 사도바울처럼 주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체포하러 가다가 다메섹도상에서 갑자기 정오의 빛보다 밝은 빛이 무리를 비췄습니다. 그 빛 가운데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주여 뉘시니까’ 하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는 음성을 듣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것을 그 때에야 알았습니다.
이 내용이 사도행전에 세 번 나옵니다. 9장, 22장, 26장입니다.
나도 이처럼 빛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났다면 그걸 어찌 부인하겠습니까. 나도 이처럼 만나고싶어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때는 예수믿은지 얼마 안되니까 이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내용입니다.
사도로 부르신 내용을 모르고 바울처럼 하나님 만나게 해달라고 몇 년을 기도했습니다. 바울처럼 만났다면 나도 사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몇 년을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 사도바울이 빛 가운데 부활하신 것을 옆에서 본 것처럼 믿게 해 달라고 바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도는 헛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의 기도도 주님이 부활하신 후로 삼십년 후에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내가 부활한 주님을 직접 만났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에 사도바울이 맹세하며 그것이 사실임을 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사도바울이 개척해서 세운 교회입니다. 그 당시 거짓교사와 거짓사도가 많았습니다. 누가 교회 하나 세워놓으면 거짓 교사와 거짓 사도들이 달려들어 수없이 재를 뿌렸습니다.
거짓 사도들은 사도바울은 열두 사도중 사도가 아니라고 하고 그가 전하는 복음은 다른 사람들한테 배운 것이지 그가 하나님께 직접 배우고 받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우리도 다른 사도들의 복음을 받았다고 하면서 구원을 얻으려면 할례도 받고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꾼들이고 다른 사도들에게 인정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갈라디아 교인들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만 가지고 구원받는다하고 예루살렘교회에서 파견된 전도자들은 율법도 지키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쓴 것입니다.
첫째, 나는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친히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기록한 것이고,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계시로 받은 것이라(갈1:11)고 전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예수님을 자기에게 나타내 보여주실 때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사람에게 의논하지 않았고 자기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바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출발해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는 말에 내가 눈이 확 뜨이며 성경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갈 1:20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맹세하며 하는 말입니다.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온 후로 3년 만에 예루살렘에서 게바와 야고보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말 때문에 내가 죄사함의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분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확증이 되었고, 사도들이 바울을 사도로 인정한 것은 사도들이 그 분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사도는 자청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다른 사도들이 인정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가 성경에 채택되었다는 말은 성경은 거짓이 없기 때문에 단 한마디라도 의심할 말이 있으면 성경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사도바울의 서신을 받고 잠잠해졌습니다. 아나니아가 다메섹상에서 주님이 보내셔서 사도바울에게 안수를 하고 사도바울이 눈을 떴습니다. 그 증인이 아나니아입니다. 이런 증인들을 보면서 사도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삼십년 후에 빛 가운데 나타나 사도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 성경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확신했습니다.
부활을 확신하면서 가장 큰 기쁨으로 온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내 죄를 사해주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에게 다메섹도상에서 빛 가운데 주님이 나타나신 것을 확신하면서, 예수님이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그 아들을 믿는 자마다 죄사해주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는 확신이 크게 내게 들어왔습니다.
이 확신이 들어오면서 기쁨이 밀려오면서 완전한 신뢰로 나도 모르게 변화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삶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믿음은 믿음이고 내 생활은 생활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내가 거듭나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사랑 선교회에서 나는 믿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믿음 좋은 팀장이었고 목사님들의 제자훈련을 내가 했지만 죄사함의 확신은 없었습니다.
죄사함의 확신은 이토록 어렵습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삼십년 후에 사도바울을 찾아온 것을 보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과 예수 믿는 내게 죄사함을 주셨다는 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믿음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말씀이 내게 살아있어 진리의 말씀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베드로사도도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4장 25절에 우리 죄를 위해 내어주시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부활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며 하나님이 하신 일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죄사함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