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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고린도에서 만난 사람들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16.04.17|조회수690 목록 댓글 0

바울이 고린도에서 만난 사람들

2016, 4, 17

행18 : 1-11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고린도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지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고린도는 기원전 44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인구는 20만이 넘는 당시로서는 큰 국가 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바울 사도가 방문할 당시 육상과 해상의 무역로가 집중되어 있어 상업이 크게 발전한 나라요 부요한 도시국가로서 그 주민들은 심히 부도덕하고 타락과 백성들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성적으로 아주 부도독한 사람들을 가리켜 “고린도 사람들 같다.”고 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에는 여신 아프로디테의 웅장하고 거대한 신전이 있었고, 이 여신을 섬기는 수 천 명의 여 사제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프로디테에게 여신에게 제사하는 한 과정 주의 하나가 이 여사제들과 섹스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고린도라는 도시가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타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에 들어와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아굴라는 남편이고 브리스길라는 그의 아내 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이었지만 본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로서 천막을 만들고 수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유대인의 회관에서 복음을 전하다 만난 사람들인지 아니면 천막을 만드는 같은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다가 만난 사람들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고린도에 오게 된 동기는 로마의 황제 글라우디오가 다시 말해서 로마 황제 씨저가 서기49년 1월에서 50년 1월까지 로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추방하라는 칙령을 내려 그들이 로마에서 고린도로 오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 대해서 로마서 16장 3-4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동역 자”라고 했으며 4절에서는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리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를 위해서는 자기들의 목숨까지 아끼지 아니하고 내 놓을 만큼 사도 바울을 충실하게 돕는 동역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크게 변화된 사람들이 되었고 사도 바울을 돕는 일이라면 그들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동역 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바뀌고 그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 안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종종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한 사랑선교회로부터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지 안했더라면 나는 지금과 같은 목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 사랑선교회를 통해서 큐티를 배웠습니다.

나는 큐티를 통해서 성경에 대해 눈이 열렸고 크게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 사랑선교회를 통해서 거듭나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도 내 마음에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사랑에 있을 당시 복음을 듣고 자기 죄를 고백하고 주를 영접하면 그 기도를 통해서 주님을 내 안에 모시게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나는 한 사랑선교회를 그만 두고 나와서도 오래 동안 이 믿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교인들이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 믿음은 가짜다” 하는 양심의 소리 때문에 끊임없이 거듭남을 추구해 왔으며, 그렇게 거듭남을 추구하던 중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그리스도의 종들의 많은 책들을 통해서 거듭나는 비밀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나는 많은 위대한 종들의 공통된 진술을 통해서 거듭남의 비밀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아는 그들은 한 때에 거듭남을 위해서 깊이 고민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거듭남의 비밀은 죄 사함의 확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지 못한 그 분명한 원인은 죄 사함의 확신이 없이 단순히 믿는다고 하며 죄 사함의 확신이라는 이 절대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야 할뿐 아니라 성령님을 알아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분당침례교회의 다른 교회와 구별되는 분명한 두 가지는 사실은 거듭남과 성령님을 안다는 이 두 가지 사실에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고백을 해도 거듭나지 못하면 자기를 위해서 살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자기를 위해서 모든 것을 구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면 주께서 주신 생명으로인해 육신의 생명은 멸망할 생명이라는 이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는 자가에게 약속하신 그 영원한 생명은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된 신앙생활이란 주의 말씀에 순종해 가면서 멸망할 사람의 생명을 주의 영이요 생명이 되시는 주의 말씀으로 바꾸어 가는 그 과정이 신앙생활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4절에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멸망할 육신의 생명을 영원한 새 생명이 삼키시는데 이 일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해서 성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전하는 것은 이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한 동안 유대인들과 마찰 없이 고린도의 유대인의 회관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기다리던 실라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그에게 와서 그들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사도에게 좋은 소식도 전해 주었고 나쁜 소식도 전해 주었습니다.

디모데로부터 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은 바울 사도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두고 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로부터 이 좋은 소식을 듣고 크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쁜 소식은 그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혼란이 생겨 주께서 곧 오실 것으로 생각하고 날마다 무위도식하며 지내는 자도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고린도에서 데살로가 교회에 서신을 써서 보낸 것이 곧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또 빌립보교회가 보내는 헌금을 실라와 디모데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그 헌금으로 바울 사도는 천막을 만드는데 시간을 보내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전심전력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시라고 증언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의 은혜에 붙잡혀 큰 감동으로 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의 은혜에 붙잡혀 큰 감동으로 예수는 그리스도시라고 담대하게 전하자 유대인들이 일어나 대적하며 비방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사도가 전하는 말씀을 대적하며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사도는 “옷을 털면서 말하기를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고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의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하는 뜻은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며 배척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음을 그의 말과 행위로 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도 공공연하게 배척하고 짓밟는 자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죄 보다도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일어나는 죄와, 예수는 그리스도시라는 명백하게 기록된 말씀을 보면서도 이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배척한 그 죄는 하나님이 작다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깨끗하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에스겔 3장 17절에서 18절에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을 사도 바울이 자기에게 적용해서 한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그들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하여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요,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하고 주의 종 에스겔 선지자에게 경고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의 말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듣지 않는 것은 그들의 죄악 중에 죽을 것이지만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구원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였기에 자신은 하나님께 책망 받을 어떤 허물도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우리들의 이웃과 우리의 주위 사람들에게 그들의 영혼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나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하고 그 이후로는 말씀을 전하는 집회 장소를 유대인들의 회관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그의 집은 유대인의 회관 옆에 있었습니다.

사도는 디도 유스도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의 전도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경건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남다른 믿음을 가진 디도 유스도와 회당장이 그리스보가의 믿음을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보는 이 성경에서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도 유스도와 그리스보고는 다른 이들과는 구별되는 믿음을 가졌고 그들의 믿음은 다른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여기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회당장이 그리스보고와 그 가족이 사도 바울로부터 침례를 받은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9절에 보면 밤에 주께서 바울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밤에 환상 중에 나타나서 격려하시는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은 어떤 일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으며 크게 눌림을 당하고 있었고 약하여 두려워하며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의 상황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3절에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도하고 마음을 다하는 일은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을 성령님을 의지해서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와 후서를 살펴 볼 때 고린도교회에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았고 사도를 대적하고 멸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하나님의 종에게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일들로 마음을 크게 상하게 했습니다.


이 때 사도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주님은 밤에 환상 중에 사도에게 나타나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고 위로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성에서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맞아 의식을 잃고 거의 죽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내 던졌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정신이 돌아왔을 때 일어나 다시 그 성에 들어가서 믿는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세우고 돌아 나 온 주의 일에 목숨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담대한 사람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가 세운 어느 교회보다 그 교인 수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도시에 세워진 이 교회에서는 교회 안에 들어온 그 사람들 가운데서도 바울을 대적하고 바울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는 이들의 멸시에 마음에 상해 있었고 실망하고 있었으며 한편 어찌하면 거듭나게 하며 생명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할 수 있을지 그들에게 참된 믿음을 심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염려하고 심히 약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심히 약해 있는 사도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는 하시며 소심하고 낙심하지 말고 내가 네게 가르치시는 대로 거침없이 담대하게 전파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바울 사도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염려와 두려움으로 침묵하며 네 입을 닫아서는 안 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 같지 않습니까?


내게도 이런 염려가 많이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목회하기 전에 거듭났기 때문에 주님의 뜻대로 목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전하는 말씀 때문에 누군가 상처를 입고 낙심해 있는 경우는 나도 너무나 마음이 안 좋습니다.

내가 사람을 의식하게 되면 나는 내가 깨닫는 말씀을 솔직하게 전하지 못하게 되고 마음에 억제를 당하게 됩니다.

아직 육신에 있으면 내가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 일을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강해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를 생각해서 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해서 어떤 말씀을 선정해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주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의 중심 되는 해석과 정확한 그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씀을 들어서 자기를 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 시간부로 주의 종 되기를 포기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누군가가 내가 전하는 말씀 때문에 상처를 입는 일이 있더라도 혹은 나와 관계가 소원해 지는 한이 있더라도 주의 말씀은 막힘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침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 맡기고 타협이 없이 전합니다.

마귀가 내 마음에 속삭이는 말 때문에 내가 입을 다물고 멈칫 거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께서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심히 약해져 있었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의 심령이 크게 고무되고 용기를 얻고 힘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환상으로 나타나 말씀하시기 전에도 언제나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염려하고 낙심하고 실망하는 그 일 때문에 주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시는 말씀을 들은 후 그는 그가 행하는 모든 것에서 주의 임재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에서도 주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고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도 “나의 계명을 지키는 그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요,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시고 분명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당시는 성경이 없었기 때문에 주께서 종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환상이나 꿈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에게 주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 있습니다.

이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우리 마음에 떠 올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우리는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가장 확실한 길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우리의 마음을 열고 있으면 주님의 음성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주를 믿는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실 때에 언제나 성령으로 인하여 주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떠 올려 주십니다.

주를 믿는 자는 주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인하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지혜와 자기 안에 말할 수 없는 넘치는 큰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담대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 앞에서 여러분의 육신의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주를 믿고 주를 의지하여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담대하게 행하십시오.

첫 째는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그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죽이기 위해서 그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성령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바울 사도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중에는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셨습니다.

이 성중에는 아직 주 앞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주의 백성들이 많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네가 침묵하지 말고 입을 다물지 말고 계속 말씀을 전하면 내가 너를 통하여 내 백성을 내 앞으로 나오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아직 주 앞으로 나오지 않는 그 사람들까지도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침묵하지 말고 입을 다물지 말고 계속해서 전하면 아직 주 앞으로 인도되지 못한 주의 백성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 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지 않고 1년 6개월을 머물며 전도하고 주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침묵하지 말고 입다물지 말고 계속해서 전하라는 주의 명령을 사도 바울처럼 받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주위에 주님 앞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주의 백성들이 많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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