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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잡아 죽이기로 맹세하 40명의 유대인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16.08.07|조회수441 목록 댓글 0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40명의 유대인

2016, 8, 7

행23 : 1-35

오순절 절기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있는 사도 바울을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보고 무리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잡아 그를 죽이려고 성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율법을 모독하고 성전을 모독했으며 이방인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율법을 모독하고 성전을 모독한 죄는 성 밖으로 끌어내어 반드시 죽이라고 기록된 죄입니다.

로마군 천부장이 예루살렘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가서 무리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는 바울을 채포해서 군부대 영내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만일 천부장이 곧 바로 바울을 무리들에게서 건져내지 않았더라면 바울은 무리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천부장에게 체포되어 군 영내로 잡혀 들어가면서 천부장에게 내가 이 무리들에게 말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바울은 천부장의 허락으로 층계위에 올라가서 히브리말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큰 빛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이 사실은 그와 함께 갔던 유대인들과 다메섹 성의 아나니아가 증인임도 이야기 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조용히 듣던 그들은 바울이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주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서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해서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면서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노라.”고 하셨다는 이 말을 듣고는 유대인들은 갑자기 소리를 질러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려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며 옷을 벗어 집어던지고 티끌을 날리며 소동을 벌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소동을 일으키자 천부장은 바울을 데리고 군 영내로 들어갔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동족에게 끝까지 인내하며 구주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그들에게 전 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대로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튼 날 천부장은 무슨 이유로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하는지 그 진상을 알기 위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 회원들을 소집하여 모으고 바울을 그들 앞에 세웠습니다.

바울은 공회원들을 주목하여 보며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울이 그 무리들 앞에서 외쳐 한 이 말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 둡시다.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을 말하며 그에 말에 거짓이 없음을 밝히려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로부터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나는 바울 사도가 한 이 말이 내 마음에 언제나 큰 도전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바울이 한 이 말은 참 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이 되는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외쳐 봅시다.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이 말을 우리 입으로 말할 때 혹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육신대로 살지 않고 성령으로 살려면 바울처럼 범사에 양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가장 최선의 방법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또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고 또 그 말씀이 우리들에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바울이 골로새서 1장 29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힘을 다 하여 애써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말씀은 기도만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범사에 자기 양심이 가리키는 대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양심은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양심의 말이 곧 성령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주의 말씀이 곧 우리 양심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는 우리 양심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바울이 이 말을 했더니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있는 사람에게 그 입을 치라고 했습니다.

왜 그리했습니까?

거짓말 마라 범사에 양심에 따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는 이미 율법을 모독했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모독했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입을 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이라는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도 성령님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는 바울의 증언을 거짓말로 여긴 것입니다.


3절에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하고 바울은 그를 꾸짖었습니다.

율법은 죄판 중에나 그 사람의 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그에게 어떤 가해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회칠한 무덤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재판석에 앉아서 율법을 어기느냐?”하며 바울은 오히려 그들을 정죄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대제사장을 향해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하는 바울의 말에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하고 바울을 책망했습니다.

이상한 일은 거기 모인 그 무리들은 대제사장이 율법대로 재판을 한다고 재판석에 앉아서 율법을 어기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어기는 자는 재판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회칠한 담이라 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자들에게 아주 부당한 재판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5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오래 동안 이방의 나라에 있으며 복음을 전하며 살았기 때문에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에게서 성직자다운 면모를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죤 파이퍼의 하나님을 들어라 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예수 믿는 사람처럼 보이십니까?

당신은 방금 주님과 교제하다가 나온 사람처럼 보이십니까?

그의 이 말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 말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요, 내 이야기요, 성령으로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6절에서 바울은 거기 그 무리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고 외쳤습니다.

바울 사도이 이 말을 하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서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성령도 없다고 믿는 무리들이요, 바리새인들은 다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두 파는 믿음이 서로 달라 적대시 하는 관계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내분을 일으켜 그들이 서로 분쟁하며 싸우게 하여 이 부당한 재판이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바울이 그가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이 재판을 받는다고 호소하자 바울을 이제까지 바울을 증오하며 죽이고자 하던 바리새인들이 태도를 확 바꾸어 바울 편을 들어 일어나 바울을 변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몇 사람이 일어나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성령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냐?” 하며 바울 편을 들어 그들 간에 분쟁이 생겼습니다.

이 분쟁으로 그들은 서로가 분열되어 그 날에 바울에 대한 재판은 이루어지지 않했습니다.

바리새인들 중에 몇 사람이 “혹 성령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냐?” 했던 것입니다.

혹 성령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을 해서 행한 것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고 이 재판은 부당한 것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뜻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물어 봅시다.

천사가 홀연히 여러분 곁에 나타나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고넬료 처럼 그 말씀을 귀히 여기며 어찌하든지 행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우리에게 천사가 나타나 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주님의 영이십니다.

결단코 천사보다 못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시며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면 천사가 우리에게 나타나 주의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더 귀히 여기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위해 우리의 마음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의 영은 천사보다 더 큰 권위가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 또 11절을 봅시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 밤에 주님의 환상을 보았고 그 환상으로 바울은 크게 격려를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바울의 염려를 아셨기 때문에 바울의 환상 중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를 감옥에 보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드시 죽이고자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살려 둔다면 바울은 다시 이방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필코 그를 죽이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 장래가 어찌 될지 불안하고 낙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에 주께서 환상 중에 그에게 나타나 항상 주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일깨워 주시며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굳건한 정신으로 그들과 맞서며 복음 전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말라하시며 다시 한 번 그의 사도로서의 소명을 불러일으키며 그를 격려 하셨습니다.

바울의 불굴의 정신은 성령께서 항상 그를 옆에서 세우셨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과 같이 로마에 가서도 증언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도 않으셨고, 심지어 이 사건에 대한 좋은 어떤 결과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 크게 격려를 받고 새 힘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그 확신만 가지고도 우리는 얼마나 큰 격려와 새 힘을 얻습니까?

칼빈은 우리가 가장 최악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주의 말씀을 전하여 주는 것도 아니요, 주님이 환상 가운데 우리들에게 나타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바라 볼 때 성령님은 주의 말씀을 들려주기도 하고 말씀을 보여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비밀은 시편 34편 15절 말씀대로 “여호와의 눈을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도다.” 하신 말씀과 같이 주께서 우리를 항상 보고 계시는 그 눈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믿음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주님께 순종하는 그 사람만이 그를 보시는 주님의 눈을 의식하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의 눈이 항상 여러분을 보고 계시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주님이 여러분 곁에 계시는 것을 여러 가지로 느끼실 뿐 아니라, 주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듣게 될 것입니다.

시편 25편 14절에 “여호와의 친밀함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요 그의 언약의 말씀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라.” 하셨습니다.

정확하게 이 말씀과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언약의 말씀을 보이심으로 그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시며 주님을 의심없이 신뢰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들의 영혼은 순결하여 지고 눈은 밝아져서 주께서 우리 곁에서 하시는 일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주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순종하여 주의 영을 새롭게 덧입는 것 보다 더 큰 기쁨도 우리 영혼을 더 소성케 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주께서 결코 헛된 것들을 우리들에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 그 증거가 됩니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서 맹세하기를 바울을 잡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40명이 동맹했습니다.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가서 말하기를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맹세대로 행하기를 원하니 당신들은 바울에게 더 자세히 묻겠다고 하며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당신들에게 데려 오게 하소서 하고 청했습니다.

그리하면 바울이 당신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기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40명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맹세했다는 말은 이제 그 계획을 바꾼다면 그들의 목숨으로 값을 치루겠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맹세를 결코 철회할 수 없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결심한 일을 맹세로 묶어 놓습니다.

그러나 맹세는 저주와 끔찍스러운 공포와 두려움이 따라 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지옥을 두고 맹세했기 때문에 내 평생을 두고 따라 다니는 끔직스러운 두려움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꿈에서도 그 맹세를 두려워합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그 맹세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공포는 항상 따라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십시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지킬 수 없는 일에 스스로를 파멸로 인도하는 맹세를 한 것입니다.


바울의 생질이 유대인 40명이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사실과 이들이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매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울에게 가서 전했습니다.

바울은 백부장을 불러서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 데리고 가게 했고 그 청년은 천부장에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하고 매복하고 있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이들이 하는 짓을 하늘에서 보시고 계십니다.

잠언 21장 30절에 “지혜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리라.”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음모가 바울의 생질에 의해서 발각되리라고는 꿈에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그 밤에 가이샤라에 있는 총독 벨릭스에게 보내어 유대인들의 음모대로 사전에 무산 시켰습니다.

백부장 둘을 불러서 병사 200명과 기병 70명과 창을 든 병사 200명을 무장 시켜서 그 밤 9시에 바울을 호위하여 가이샤라로 떠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천부장은 총독 벨릭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 “이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살해당할 뻔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 내가 그들에게서 이 사람을 구해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사람을 고소하는 내용은 이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는 것이 아니요, 그들의 율법에 관한 것일 뿐이요, 사형 당할 죄나 감옥에 갇힐 죄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 사람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을 알고 곧 바로 이 사람을 각하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이 사람에 대해서 고소할 말이 있으면 각하에게 직접 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하고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군인들은 천부장의 명령대로 그 밤에 바울을 안디바드리까지 데리고 갔고, 그 이튼 날 기병대에게 바울을 가이사랴까지 호송하라고 하고 다른 군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기병들은 가이샤라에 도착해서 총독에게 편지를 전하고 바울도 총독에게 넘겨 주었습이다.

총독은 편지를 읽고 나서 바울에게 어느 지방 사람이냐고 묻고는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는 바울으 해롯이 지은 왕궁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의 그 성난 무리들에게 맞아 죽을 뻔한 바울은 천부장이 즉시 건져 내었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그 40명의 음모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울의 생질에게 미리 알게 하셨고, 천부장은 바울을 죽이고자 맹세한 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군병 470명을 동원하여 갑작스럽게 밤에 가이샤라까지 바울을 호송하여 옮겨 갔고,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에 대한 호의적인 편지를 써서 보낸 것 다 주께서 바울을 지키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 모든 일을 바울을 지키시는 주께서 하시는 일임을 여러분도 깨닫지요?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도 주 안에 있다면 우리의 삶 그자체가 주께서 행하시는 터가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항상 보고 계시는 것을 깨닫는 믿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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