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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모음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작성자황성재|작성시간16.10.09|조회수233 목록 댓글 0

복음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2016, 10, 9

고전1 : 18-25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들을 하나님 앞에서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 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모든 사람들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멸망 받을 사람들의 견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습니다.

예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구원 받은 자와 멸망 받을 자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19절에서 기록 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대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이사야 선지서 2914절 말씀인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 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한 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하신 말씀을 우리들이 알아듣기 쉽게 응용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죄에 대한 진노로 인간에게 형벌을 내려서 그들의 지혜와 총명을 가려지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지혜와 총명이 가려진 인간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 중 가장 기이하고 기이한 일인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알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19절의 내가 지혜 있는 자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의 총명을 폐하리라.”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멸하고 폐하셨다.”는 뜻은 말살하다” “인멸하다혹은 지우다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제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께 대해 우매자요, 하나님께 대한 참된 판단과 지식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0절의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이 세상의 어떤 지혜를 가진 자라 할지라도, 어떤 학문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이 세상의 자연의 모든 의문들을 풀어가는 지혜를 가진 자가 있다할 지라도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세상 지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이해력과, 경험과 학문과 예술 등 인간의 이해력이 미칠 수 있는 모든 이해력과 모든 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은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이 아니고는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영적인 일로 오직 성령의 지혜로만 깨닫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통찰력은 하나님이 영적인 지혜를 얻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가 세상의 모든 학문과 지식과 지혜를 갖고 있으며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어 하나님을 알려고 모든 노력을 다한다 해도 그것은 분명히 헛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나 감성으로는 하나님을 깨달을 수 없도록 감추어진 비밀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지혜는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물에 잘 나타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 이 세상 만물이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마치 하나님의 지혜와 그 능력과 영광을 보여 주시는 극장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의 지혜로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그 지혜와 능력과 영광을 세상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위엄과 능력과 지혜와 영광이 우리 눈앞에 놀라운 광경으로 펼쳐져 있는 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전혀 보지 못하는 완전한 소경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빛이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자기 지혜를 버리는 자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자들이 되고,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으로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솜씨와 지혜와 능력과 권능과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이 모든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사람 누가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고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 세상 사람의 지혜로는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혜를 모두 버리기 전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지식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여러분들이 가진 이 세상 지혜를 모두 버려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지난주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심으로 사람의 이성만으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을 충분히 깨닫도록 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이 구주로 오신 것을 깨닫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도록 하게 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성만으로도 예수는 하늘에서 보내신 구주가 되시는 분이심을 깨닫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보내신 구주가 되시는 분이심을 우리 이성만으로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이 하늘에서 구주로 보내신 분이심을 확증할 수 있는 분명한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 허술한 데가 없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증거들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우리의 구주로 보내신 분이심을 증거 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가졌다 해도 우리의 마음에 참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뼈 속까지 굴복하고 믿는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논리적인 확증이 되는 아무리 많은 증거들을 우리들이 가졌다 해도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결단코 참 믿음, 다시 말해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성의 지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분을 붙들고 천국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성적으로 확증할 수 있으며, 논리적인 충분한 증거를 가졌다면 그 다음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가 성령으로 깨닫고 믿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닫는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113절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하시는 말씀을 우리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12-14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또 사도는 말하기를 그가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대로 가르친 것은 하나님의 일은 성령으로만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은 오직 성령으로만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내 경험으로도 이성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증거들을 가졌음에도 하나님께 대한 참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닫고 통렬하게 깨달으며 온 바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믿음을 주셔야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주님께 순종할 수 있는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결정적인 믿음의 조건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구주로 세상에 오신 것이 그 첫 째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자기 몸을 우리들의 죄 값으로 희생 제물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분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입니다.

이 세 가지 믿음의 조건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온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다면 우리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 세 가지 믿음의 조건 중에서도 가장 믿음에 이르기 어려운 부분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이 대속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그에 대한 말씀을 요한복음 314-15절에서 주께서 친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깨달으려면 이 말씀을 마음이 깊이 두고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모세가 광양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양에서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맨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민수기 21장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살던 애급에서 나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가는 광야 길에 먹을 것도 박하고 물도 없고 길도 험하다고 그들을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진노하심으로 광야에 불 뱀을 보내었고 이 백성들은 불 뱀에 물려 그 맹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와 모세를 원망했던 것을 회개함으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 끝에 달아 높이 세워 불 뱀의 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보게 하라고 하시며, “보는 자마다 살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모세가 장대에 높이 세운 놋 뱀을 본 자마다 불 뱀의 독에서 놓여나와 그들의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 내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장대 끝에 세워 놓은 놋 뱀을 본 자들은 어떻게 해서 그 불 뱀의 독에서 그들의 목숨을 건지게 된 것입니까?

모세가 만들어 세운 이 놋 뱀에서 불 뱀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해독약이 흘러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들을 불 뱀의 독에서 놓여나게 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 때문입니다.

모세가 만들어 세운 놋 뱀을 보는 자마다 불 뱀의 독에서 놓여나 살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놋 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 뱀의 독에서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도 이와 같다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도 예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들의 죄 값으로 희생 제물이 되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들의 죄 값으로 희생 제물이 되게 하신 것은 우리들의 죄 사함을 위한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보고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생에 이르는 죄 사함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아무 조건도 없고, 사람의 어떤 지혜도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 믿음만이 요구 되는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복음에 사람의 지혜나 다른 어떤 교훈이 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복음에 사람의 어떤 지혜를 끼워 넣는다면 죄 사함을 받는 조건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순전하게 믿는 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불신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순전하게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순전하게 믿는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하고 다시 말해서 복음에 대한 지식을 갖춘 다음에 성령께서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순전하고 온전한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성적인 믿음을 먼저 갖게 하신 것은 많은 의심과 싸우면서도 우리들로 하여금 죄 사함의 확신에 이르도록 구하고 찾고 기도하게 하심으로 성령이 주시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는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시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도 나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것을 믿었고,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하심도 확실하게 믿는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믿음은 가짜라는 생각이 내 마음에 항상 있었습니다.

나는 그 이유도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내 믿음이 가짜라는 마음 때문에 염려가 되어 계속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주님을 보면서 주님의 부활에 대한 나의 깨달음은 마치 하늘에서 비추어 주시는 새로운 빛으로 보는 것처럼 밝게 보며 알게 되었고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라기보다는 마치 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비로써 성령이 주시는 부활에 대한 확신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 가장 먼저 예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신 것이 사실이었으며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구나 하고 다시 깨닫게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도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 믿는 자의 거듭남은 사람의 이성이나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님을 크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들에게 거듭나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면 다시 중생하게 되면 먼저 삶이 달라집니다.

죄에 대한 회개가 크고 깊어서 통해하고 애통해 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해가 갈수록 달라질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그 은혜로 살고, 죄에서 떠라 정결한 삶을 살려는 마음이 가면 갈수록 깊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주의 임재를 구하며 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런 다른 삶이 여러분이 중생한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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