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2017, 4, 23
고전10 : 12-22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항상 반복되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면서부터 우리들의 신앙생활 가운데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믿음에 섰다고 생각하면 바로 넘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피할 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무리 성숙한 단계에 이르러서도 이 두 가지 일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첫 째는 “선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시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은혜를 받고 하늘을 높이 날아오르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금방 바닥으로 추락하여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비참한 패배자의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확실한 믿음을 가졌다고 여겨졌는데 또 어느 때는 전혀 믿음이 없는 깨진 쪽박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굴곡이 심한 신앙생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이 성장하면서 겪는 일입니다.
적어도 십 수 년 이상을 이러한 굴곡이 심한 믿음을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많은 시일이 지나가면서 점점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폭도 적어지고 찾아오는 주기도 늦추어지게 됩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라면 믿음이 성장하여 어느 시점에 이르면 시험을 받아 믿음이 아무리 바닥까지 내려간다 할지라도 구원을 의심하는 데까지는 내려가지 않게 됩니다.
어떤 시험을 받아도 자신이 구원 받은 믿음은 흔들이지 않게 됩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믿음에 이르게 한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주의 깊이 철저하게 검증한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들은 어느 날 갑자기 깨닫고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동안 주의 깊이 검증해 오면서 확증을 얻은 말씀입니다.
우리의 경험으로도 검증 된 말씀이요, 우리를 항상 은혜로 세워주는 말씀이요, 지혜와 힘과 능력이 되는 말씀이요, 굳건한 믿음을 세워주는 반석 같은 말씀입니다.
어떤 이론으로도 흔들 수 없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그 말씀 아래로 추락하는 일은 없습니다.
내 구원의 반석은 예수님의 그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어떤 이론도 나를 흔들 수 없는 내 구원의 반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구주로 세상에 오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주께서 죄인인 나를 부르신 것을 알고 내가 그분을 의지함으로 구원 받게 된 것입니다.
주의 행하신 모든 것과 주의 말씀이 취소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구원 받은 것이 취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그 사실도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실제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내가 다만 믿는 것이라면 그 믿음은
어떤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육신의 삶은 죄된 멸망의 삶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매일 주를 의뢰하며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주의 말씀대로 심판을 받는 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내 육신의 행위들과 육신의 생각들은 주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고 소멸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사실들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니요, 내가 깨닫고 경험하고 알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오래 동안 철저하게 검증하고 확인하고 얻은 믿음이요, 수 없이 반복으로 경험하며 얻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내가 믿음이 떨어진다 해도 내게 반석이 된 그 믿음 아래로 추락하는 일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확증을 얻으면서부터 나는 거듭나는 믿음을 얻기 위해 온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떨어지면 늘 구원까지 의심하는 데까지 떨어졌습니다.
그 때 마다 나는 구원의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로 세상에 오신 것을 알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의심이 생기면 마음을 다해서 찾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이전과는 다른 깨달음과 확신을 가지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기를 수 없이 반복되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여 철저하게 검증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말씀을 얻게 되었습니다.
로이드 존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주의 깊이 철저하게 검증한 결과로 얻은 말씀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깨닫고 아는 것을 그분을 통해서 다시 확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확신이 올 때까지 구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확신을 얻지 못하면 시험 받을 때 깨진 쪽박처럼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검증된 확증된 말씀으로 믿음을 갖게 되면 시험을 받을 때에도 그 믿음이하로 추락하는 일은 없습니다.
사도들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로 말미암아 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이 믿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나도 내 안에 계시는 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얼마동안은 주로 말미암아 살며 주의 뜻을 따라 행하는 은혜를 맛보며 즐거워했습니다.
주의 친밀하심이 내게 있으며 주께서 모든 것을 보이시고 모든 것을 말씀하시고 모든 것을 행하시며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너무도 큰 은혜를 경험하고 기뻐하고 있었는데 바로 육신의 생각이 들어오면서 이 큰 은혜를 잃게 되었습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시는 말씀을 절감합니다.
이 이 은혜를 맛본 나는 어떻게든 다시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 말씀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해 사는 사람들에만 적용되는 말씀이요, 하나님께서도 그를 아시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주의 말씀에 순종해 사는 그리스도인이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아시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감당 못할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감당 못할 시험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때 피할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불신자처럼 사는 사람이라면 이 말씀은 그에게는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 수요일에 본 역대하 20장과 21장 말씀이 그 좋은 예일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 왕 때에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족속이 연합하여 큰 군대를 이끌고 유대를 침략에 들어왔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세 민족들이 연합한 이 큰 군대를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온 백성들도 금식하며 기도하게 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성전 뜰에서 백성 가운데 서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우리를 치러 온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유다 백성들도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과 어린 아이까지 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국가의 위기를 맞아 온 백성으로 하여금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나와 서서 간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이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에게 임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를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이 전쟁은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가 구원하시는 것을 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고 여호사밧 왕은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였고, 레위 사람들은 서서 큰 소리로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노래하는 사람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해 가도록 했습니다.
전쟁터로 나가는 군대로는 참 이상한 행렬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적의 큰 무리가 보이자 여호와께 큰 소리로 찬송을 드렸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하는 찬송이었습니다.
찬송이 시작 될 때에 모압과 암몬 자손이 합세해서 세일산 족속들을 죽이고 그들은 세일 산 주민들을 전멸시킨 다음 모압과 암몬은 서롤 그들끼리 전쟁을 하여 그들도 전멸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연합해서 유다를 쳐 들어왔지만 그들 세 민족의 속셈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 연합군은 함께 유대 땅을 점령하고, 그 다음은 전쟁으로 약해진 틈을 노려 자기들과 연합한 다른 민족의 군대를 기습하여 쳐서 죽이고 서로가 자기 민족이 유다 땅을 점령하여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들끼리 먼저 전쟁을 하게 하심으로 그들 모두가 공멸하게 된 것입니다.
야하시엘의 예언대로 여호사밧 왕의 군사는 한 사람도 전쟁에 참가하는 일 없이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믿음의 사람 여호사밧 왕과 그의 백성들의 금식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피할 길을 내사 그들을 이 전쟁에서 구하신 유다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와 반대로 여호사밧 왕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된 후 그의 형제 여섯 왕자와 방백들을 죽이고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우고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하기를 “네가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하고 너 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께서 네 백성과 네 자녀들과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리라.” 고 했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여호람 왕에게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밖으로 빠져나오리라.”고 했습니다.
엘리사의 예언대로 블레셋 군대와 아라비아 군대가 유다를 침략에 들어와서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해 갔습니다.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쳐서 사람이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심으로 여러 날 후에 창자가 배 밖으로 빠져 나와서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여호람 왕을 치실 뿐 아니라, 여호람 자신도 창자가 썩어 밖으로 빠져 나오는 병을 얻어 죽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유대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감당할 시험 밖에는 허락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저를 아시는 순종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의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시련이 닦아 와도 언제나 피할 길이 하나님이 열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시련과 시험을 주시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째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 징계로 치시는 시련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죄를 짓자마다 하나님이 바로 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로 우리를 징계하시기 전에 여러 번 수차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들이 능히 깨달을 수 있는 방법으로 경고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고 죄를 범할 때에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이 징계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들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주시는 시련입니다.
우리는 이 시련을 당하면서 하나님이 왜 이 시련을 주시는지 능히 깨닫고 우리 자신이 아는 시련입니다.
다윗이 말한 대로 우리가 시련을 당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였으나 그러나 시련을 당한 후에 깨닫고 믿음 위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육신의 유혹과 그 죄 때문에 늘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그 다음 7절과 8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죄 없는 거룩한 삶을 위한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거룩한 삶을 방해하는 것은 육신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괴롭히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탐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들의 정욕과 탐심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은 정욕과 탐심을 벗어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절대로 육신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의 영을 의지할 때에만 육신의 모든 유혹과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시편 22편 4절에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너훔 1장 7절에 “하나님은 자기를 의뢰하는 자는 아시며 자기에게 피하는 자를 아신다.”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참되고 주를 의뢰하는 믿음이 되면 다윗과 바울처럼 우리도 주의 도우심을 실제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138편 3절에서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들의 영혼에 힘을 주어 강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오직 주를 의지하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멘.